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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요일 4:1-21)

첨부 1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성경본문: 요1서4:1-21

어느날 연변 사람이 천국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그 연변 사람 했던 말입니다.
고저 저희 천국에서는 성경10번 읽어가지고는 성경 보았단 소리도 못 함다. 
고저 100번 읽으면 고 놈 이제 성경 읽기는 좀 하겠구나 함다. 
한 200번 읽었다 싶으면 고 놈 성경공부 시키면 좀 이해하겠구나 하고 의심은 해 봄다. 
하루는 우리 뒷집에 새로 천국 온 사람이 성경을 300번 읽었다고 자랑하다가 
천사한테 끌려 가서리 성경인물 빙고게임하다 
욱실라게 혼나고 다시는 성경 많이 읽었다고 자랑 안 함다. 
요전엔 성경 600번 읽은 권사님이 예수님 앞에서 성경외우다 
글씨하나 틀려 고저 무쟈게 혼났음다. 
그런데 어느날 이었음다. 
예수님이 허허허 웃으시면서 이렇게 성경을 잘 아는 자가 누구냐며 
하늘이 떠나가라 칭찬하시는 것이였음다. 
나는 그래서 그 사람이 성경을 한 1000번은 읽었나보다 생각했음다. 
아니였음다. 
그는 성경을 이제 겨우 한번 읽고 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 
천국에 온 신입이었음다. 
예수님이 성경에 대해 물었음다.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해 보거라." 
그러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였음다. 
"성경은... 고조..... 사랑입내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를 쓰다듬으며 성경 제대로 안다며 칭찬하시던 것이였음다. 
내래 1000번 읽은 사람도 이런 이야기 한 적 들은적이 없었음다. 
천국에서는 성경을 얼만큼 많이 읽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음다아아~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진정 원하고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사랑하며 사는 삶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요일4:8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되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1서4:7절-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순간 거듭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며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기억하기로 역대 가스펠송 가운데 가장 많이 불리 웠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 그것도 크리스천이 아닌 넌 크리스천들에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곡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사의 내용처럼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외아들을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고 변함없이 지금까지 사랑하시고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를 사랑해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러나 이 가스펠송에서 멈추어서는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동시에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이 땅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의 삶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는 사랑을 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랑을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며 사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이 땅위에서 살아가길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일서4장 말씀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9절-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셔서 우리를 살리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기에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때 마땅히 사랑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이 땅위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고 사랑할만한 하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싶지 않아도 사랑해야 하고 도저히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어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크고 놀라운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남은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뜨겁게 더 간절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먼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눈에 보이는 ,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그 사람을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20절에 보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거짓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형제와 자매, 가족들 그리고 친척들과 직장 동료, 동네 사람들 심지어 처음 만나는 그 어떤 사람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억만분의 일만큼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리 주위의 사람들, 우리 교회의 성도들과 우리 가족들 우리의 친척들과 친구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까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사랑할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사랑스럽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솔직히 내 주위의 어떤 사람들 중에는 도저히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한테 하는 행동이나 말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주위의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그 사람조차 사랑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도저히 받아줄 수 없을 것 같은 그 사람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 이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그 사람들의 모습과 말과 행동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한테 저렇게 말하고 나한테 저렇게 행동하는 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어? 절대 못해 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우리는 절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나한테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나한테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절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사람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받아주셨기 때문에 받아주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 형제 때문에 그 형제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나도 사랑하고 나에게 잘 해주기 때문에 나도 잘해준다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함께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마5:43-48절입니다. 46절에 보시면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절에 보시면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절에 보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사랑의 방식과는 다른 사랑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사랑의 방식은 때문에 사랑입니다. 네가 나한테 이렇게 했기 때문에 사랑하고 네가 나한테 이렇게 했기 때문에 사랑하지 못한다는 식의 조건부식 사랑이죠.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이 땅에 새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세상 사람들의 사랑의 방식과는 다른 사랑의 방식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이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도 없이 범죄하고 실수하고 잘못된 길로 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고 우리의 고집대로 살려고 몸부림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이기에 우리 역시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는 나은 방식으로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서로 불편하고 오해가 있고 갈등이 있으면 야, 술 한잔 하자하면서 그동안 나는 이런게 서운했고 이렇게 불편했고 이런게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서로 미안하다고 괜챦다고 하면서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관계로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풀건 풀고 덮을 건 덮고 또 다시 관계를 시작하는데 사랑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모습속에는 때때로 이런 모습이 너무 부족합니다. 
무엇인가 오해가 있으면 꿍해가지고 뒤에서 험담하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 쉽지만 오해를 풀려고 또 갈등을 해결하려고 또 실수를 용서하려고 시도 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야 어떻게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무엇인가 세상사람들과는 다른 남다른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옛날 제가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장교는 병사와 달라야 한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장교는 훈련을 받을 때도 품위유지비가 따로 나왔습니다. 제발 장교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떡볶기도 못 사먹고 호떡도 못 사먹었습니다. 장교로서의 복장을 갖추고 있는 한 정 자세로 언제 누가 봐도 장교로서 손색이 없고 부끄럽지 않을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한다고 교육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하늘 나라의 왕자요 공주입니다. 
하늘 나라의 왕자와 공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무엇인가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고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가 두 번째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오늘 말씀 속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라는 것인데 오늘 본문 요1서 4장에서는 사랑하라는 표현속에 꼭 서로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7절에 보시면 서로 사랑하자. 11절에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12절에도 서로..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요한 사도를 통하여 우리가 사랑함에 있어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사실임을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서로 사랑할 때 모두가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가장 바라고 계신 것이 있다면 모든 가정이, 모든 교회가 모든 나라가 서로 서로 모두 사랑하며 살 수 있길 간절히 원하고 바라실 것입니다. 
천국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닙니까?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모두가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랑을 통하여 그 사람이 변화되고 그 사람이 변화되어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온갖 죄악과 어둠이 관영한 이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천국과 같은 사랑의 나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을 믿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네가 먼저 나한테 사랑을 요구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 가십시오. 
네가 먼저 용서하라고 말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용서하고 네가 먼저 이해하라고 말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이해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서로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서로 사랑하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거울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거울의 방에 들어간 개는 그 다음날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몰골이 무던히도 지쳐 힘이 빠진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그 개는 
거울의 방에 들어가자 수천 수만 마리가 
동시에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순간 그만 긴장하고 마구 짖었습니다. 
한번 짖자 수천 수만 마리가 동시에 
자기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면서 짖는 것이었다. 
그만 놀란 개는 두려움을 느끼며 
더욱 배와 목에 힘을 주고 짖었습니다. 
그러자 수천 수만의 개도 질세라 
배와 목에 힘을 주고 짖었습니다. 
결국 죽기 살기로 밤새 사투를 벌이며 짖어댔던 그개는 
그만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 개가 처음 거울의 방에 들어갔을 때 낯설었다 할지라도 
긴장을 놓고 먼저 웃음을 보였더라면 
수천 수만 마리의 개가 자기를 향해 웃어줬을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거울의 방과 같은 것입니다. 
그 방에서 내가 먼저 짖기 시작하면 다 따라 짖는 것입니다. 지기 싫어 더 크게 짖어대면 다 나를 따라 더 크게 짖어대고 결과는 다 지쳐 죽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웃기 시작하면 다 웃는 사람뿐인 거울의 방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축복을 하면 다 축복만 하는 사람 뿐인 거울의 방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이해하고 용서하면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람 뿐인 거울의 방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먼저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과 같은 가정을 원하십니까? 내가 먼저 이해한다고 용서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천국과 같은 교회를 원하십니까? 내가 먼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안아주십시오. 천국과 같은 직장, 이 나라와 민족이 되길 원하십니까? 내가 먼저 웃어주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사랑해주십시오. 그것이 계속해서 번져갈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직장이 우리 나라가 그런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되어 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짧은 인생 사랑하며 살아도 용서하며 살아도 이해하며 살아도 우리의 인생은 짧은 인생입니다. 그 짧은 인생을 미워하고 불신하고 오해하고 원망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짧은 인생 사랑하며 살아도 부족한 시간, 부족한 인생입니다.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용서하며 살아가는 성도들, 이해하며 살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우리는 바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고 무한한 사랑을 받은 자이기에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때로는 얼토 당토않는 소리를 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고 내 마음에 비수를 꽃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건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함으로 그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할 때 저 사람도 사랑하게 되고 저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사랑하게 되고 결국 모두가 사랑하게 되는 가정, 교회 직장 이 나라가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쉽지 않은 그것을 시작하는 그 사람을 통하여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천국으로 변화되어져 가는 것을 믿으며 바로 오늘부터 여러분이 이 사랑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용서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시작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내가 먼저 사랑을 시작함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안디옥 교회가 천국으로 변화되게 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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