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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생을 믿음으로 산다는 것 (창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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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믿음으로 산다는 것(창5:21-24)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장거리 경주 곧 마라톤과 같아서 시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끝을 맺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처음 예수 믿을 때에 화끈하고 힘차게 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도 바울의 말처럼 인생의 마지막까지, “선한 싸움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평생을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그 비결을 에녹으로부터 찾으려고 합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 후 300년을 신앙으로 살았는데, 그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다시 말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웠습니다. 성경에 단 두 사람 엘리야와 에녹만 이런 특권을 누렸고,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은 믿음의 전당이라고 일컫는 히브리서 11장에까지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생애를 산, 평생을 믿음으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첫째,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동행한다는 것은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함께 살면서 동고동락, 즉 좋은 일 나쁜 일, 기쁜 일 슬픈 일들을 모두 함께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행이 뭡니까? 함께 사는 것입니다. 비위 맞춰드리고 잘해드리고 편안하게 해드리고 기분 좋게 해드리며 함께 사는 것이 동행하는 것입니다. 부부도 동행자, 가족도 동행자입니다. 동행자가 되려면 서로 이해하고 인내하고 기분 좋게 해 줘야 합니다. 

에녹의 경우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는데 히브리서 11:5을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다"라고 했습니다. 감정이나 기분으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는 못합니다. 기분이나 일시적 감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금방 실증 나고 변덕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면 3백년도 1천년도 가능한 것입니다. 에녹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처자식도 있었고 감정도 있었고 기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도 불구하고 300년 긴 긴 세월을 한결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믿음」때문이었습니다. 

300년이라는 세월을 동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녹은 그렇게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좋은 일도 겪었겠지만 안 좋은 일들도 겪었을 것이고 쉬운 일도 있었겠지만 어려운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평생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급한 일을 만나면 다른 방법을 찾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감정 따라, 기분 따라, 상황 따라 믿음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일이 잘 될 때는 어느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기도를 게을리 하고, 자신이 높아지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성공의 길, 행복의 길, 축복의 길이 다 있습니다. 약 20년 전에 서울에 한 재력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미스코리아 출신이었고, 궁궐 같은 집에서 외제 승용차 몇 대를 굴리며 살았고, 구두가 200켤레, 옷이 300벌, 가정부도 몇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늘 공허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여자들은 예쁘고 늘씬한 미스코리아와 살면서 바람피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다 이해합니다. 연애할 때나 신혼 때는 아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지만 몇 년 지나서도 마음이 울렁거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문제입니다. 맨 날, 마음이 울렁거리면 그 남자는 집안 다 말아먹고, 사업 다 말아먹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책임한 남자라는 증거밖에는 안됩니다. 세월이 지나 울렁거리는 마음은 사라져도 책임감과 헌신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아내들은 계속 남편이 울렁거리는 사랑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분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 변했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변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변하지 않고 마음이 울렁거리기만 한다면 어떻게 설교 준비를 제대로 하겠습니까? 사람에게 자연적인 변화나 좋은 변화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미스코리아라도 결혼해서 살면 남자는 아내에 대한 집착이 줄어듭니다. 성숙한 남편이라면 관심은 멀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얼굴에 대한 관심은 멀어집니다. 며칠 볼 때 예쁘지, 몇 달이 지나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얼굴에 관심이 가게 됩니다. 남자들은 대개 그렇습니다. 그런 성향을 생각할 때 남편이 예수님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처럼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이 부인은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대판 싸우고 자살하러 한강으로 갔습니다. 마침 그날 비가 왔습니다. 비를 맞으며 한강변을 걷고 있는데, 오순도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재민들의 임시 천막집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가족이 라면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때 그녀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삶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감동적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망이 생기고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곧 집으로 돌아와 그 다음 주일에 그녀는 교회를 찾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남편도 자기 아내의 삶이 변한 것을 보고 같이 예수님을 믿고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예수님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채워주시지 않아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행복을 노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끝까지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축복의 날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바람에 젖지 않고 성숙해지는 신앙이 어디 있습니까? 가진 것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없으면 더 높이 비상할 수 있고 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분의 글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그분이 약에 쓰려고 청둥오리 농장을 찾았습니다. 사육장에는 청둥오리들이 가득했는데 사방으로 울타리만 쳤고 하늘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속으로 걱정했습니다. "저러다가 다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해 "저러면 날라 가지 않나요?" 하고 물으니까 주인의 대답했습니다. "하하하! 저렇게 살찐 녀석들이 어떻게 날아갑니까?" 가만히 보니까 정말 집오리처럼 살이 토실토실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저 청둥오리들은 하늘을 나는 것들과 종자가 다른가요?" "아닙니다. 태어나자마자 영양식을 듬뿍 주면 저렇게 살이 찌고, 결국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해요." 그 얘기를 듣고 그는 절제의 중요성과 "무엇이든지 조금 모자란 것도 괜찮은 삶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조금 가지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다 가지면 오히려 비상할 수 없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을 수 없고, 예수님 믿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 전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형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이 땅에서 비상할 수 있고, 때가 되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 품에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항상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항상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삶을 통해 축복 받고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뜻이 같아야 합니다. 아모스 3장 3절에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께 뜻을 맞추어야 합니다. 

둘째, 도덕적 동질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은 도덕적인 성품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대화가 없고 말이 안 통한다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영적 대화가 있을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됩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 그렇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늘 하나님께 뜻을 맞추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며 더 나아가서 말씀과 기도로 늘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의 삶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남은 세월을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주일 한주일이 모여서 한 달이 되며, 한 달 한 달이 모여서 일 년이 되고, 한 해 한 해가 모여서 평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라톤 하는 사람들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뛰다가 결국은 그 먼 길을 완주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에녹과 같이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루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5-6)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데, 그 믿음은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로 살면서도 서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상대방을 의식하지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는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계신 줄은 알지만,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의식 없이 내 나름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진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늘 좋은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함께 살면서도 불평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대방 흉을 보고 약점을 찌르며 상대방의 좋은 것보다 나쁜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늘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자기에게 상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자기 보기에 안 좋은 일도, 힘든 일도 하나님이 주시면 다 좋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셨고, 그의 마지막에 죽음을 보지 않도록 하늘로 올리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에녹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유 1:14) 에녹도 자녀를 창세기의 말씀처럼 365세를 살면서 아이를 낳아 길렀고 그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썼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일이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일이었는데,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예언이라고 했는데, 그가 살던 그 당시는 매우 악한 시대였고 악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도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주신 예언의 사명을 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직분상의 은퇴는 있어도 사명상의 은퇴는 없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비록 사회에서 은퇴한다 해도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우리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에녹이 예언한 것과 같이 우리 이웃들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에녹과 같이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를, 그래서 마지막이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해 나가기 바랍니다. 평생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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