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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난제(難題)를 만났을 때 (요 1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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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難題)를 만났을 때 (요 19:1-16) 
 
 
1. 인생을 살아가면 갈수록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삶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습니다. 건강문제, 경제적 문제, 직장문제, 자녀교육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부모님을 섬기는 문제, 환경문제, 사회불안의 문제, 지역갈등의 문제, 심지어 교회의 문제까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거기에서 항상 문제와 고통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문제나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나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즉,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2차대전 때 유대인 의사 한 사람은 이대로 가스실로 끌려가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리 조각 하나를 줍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그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나치는 매시간 가스실로 보낼 유대인들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매번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젊은 의사를 끌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가스실행은 이렇게 하루 이틀 미뤄지다가 마침내 독일이 패망의 날을 맞아 젊은 의사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젊은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도움을 늦추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해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까지 참지 못할 뿐이다.” (정호승,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신다”, http://blog.daum.net/blue032b/17187566)

그렇습니다. 고통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까지 참고 견뎌내는 것입니다. 

2.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주후 30년경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제국은 빌라도라는 총독을 파견하여 속국인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의 총독이라는 지위를 가진 것 하나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대표적인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주일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빌라도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큰 실패자 중 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 우리는 빌라도가 왜 실패자인지를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루는 이른 시간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빌라도가 거주하는 총독공관으로 왔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을 재판해달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라는 젊은이가 일부 유대인들에게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유대의 상류층 권력자들에게는 적대시되는 인물이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보기에는 예수님은 좀 골치아픈 존재였습니다. 빌라도는 이 골치아픈 일에 엮이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알아서 재판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하고서 사람을 죽일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으니 재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다시 유대인들을 설득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유월절 명절인데, 유월절마다 죄수를 한 사람씩 석방해주는 전례가 있는데, 예수를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니요. 바라바를 놓아주시오”라고 했습니다. 

3. 빌라도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재판하는 일은 난제(難題)였습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사형에 처할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풀어주자니 유대인들은 죽이라고 압력을 가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빌라도는 이 난제를 지혜롭게 풀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오고 오는 세대에 예수님을 처형한 인물로 낙인찍혀버렸습니다. 우리는 오늘 빌라도를 반면교사로 삼아 난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세 가지 찾아볼 것입니다. 

첫째, 문제를 피하려 하지 말고 직면하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는 사건과 엮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넘겨주고자 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고 했습니다(요18:31). 오늘 본문 6절에서도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난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문제에 직면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벌떼같은 압력에 자신감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이것이 빌라도가 실패한 첫번째 요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겠지’ 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때, 그 때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은 그가 쓴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제와 고통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질질 끌지 말고 이들과 정면 승부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문제와 고통을 견디어 내려는 훈련을 기꺼이 감수하라.”
2차대전 때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대 다가오는 위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달아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위험은 배로 늘어난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즉시 정면 돌파 한다면 위험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절대 어떤 것으로부터도 달아나지 마라. 절대로!”

성경을 보면, 사사시대 때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엘리멜렉은 그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흉년을 피하여 먹고 살기 위해 이방인의 땅인 모압으로 이사갔습니다. 거기에서 두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모압 땅에 거주한 지 10년만에 나오미는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죽고, 며느리 둘과 함께 홀로된 여인 셋이 남는 비참한 처지에 내몰리게 됩니다.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도피한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말론이란 이름은 질병이란 뜻이고, 기룐은 상실이란 뜻입니다. 도피의 결과는 질병과 상실입니다. 모압에서의 10년은 잃어버린 세월입니다. 

난제를 만났을 때, 도피하거나 체념하면 안됩니다. 직면해야 합니다. 
회피하거나 체념하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나 고통에 직면할 힘과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시편 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쓰나미가 밀려오고, 원전 방사능이 몰려와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난제를 만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해결책을 이미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문제에 직면할 수 있고 풀어갈 수도 있습니다. 

4. 둘째, 감정에 호소하면서 적당히 넘어가려하지 마라.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수를 쓰던 빌라도는 이제 유대인들의 감정에 호소하려 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을 합니다. 그리고, 로마군인들은 가시나무로 만든 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옷을 입히고는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또, 손으로 예수님을 때립니다. 모욕과 수치를 당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빌라도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 사람인지요. 채찍으로 예수님을 때렸으니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가시관을 머리에 씌웠으니 가시에 찔려 이마에는 피가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왕이 입는 자색옷을 입혔으니 유대인들이 조롱하던대로 함께 조롱하니 유대인들의 기분이 좀 풀렸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정도 했으면 되었지 않느냐는 식으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끌고 다시 유대인들 앞에 세웠습니다. 감정에 호소한 것입니다. 적당히 문제를 넘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감정에 호소하려던 빌라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마음에 감동을 주면, 안 되는 일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은 한 두차례의 마음의 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부흥회를 통해 은혜를 받지만, 한 두 번 받은 은혜로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아픔이나 상처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잠시 숨었을 뿐입니다. 이후에 그와 비슷한 일이 생기면, 잠시 숨었던 옛날의 아픔과 상처가 다시 살아납니다. 감정을 통하여는 결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그에 따른 이성적인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야곱이 아내와 자녀들을 거느리고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합니다. 그런데, 그의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야곱은 형 에서의 감정을 풀려고 선물을 앞서 보냅니다.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는 낙타 30마리와 그 새끼,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새끼나귀 10마리. 
야곱의 생각에는 선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형을 만나면 형이 혹시 자기를 받아주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을 죽이려는 형 에서의 마음이 선물을 많이 준다고 감정을 풀도록 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한편 야곱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홀로 남아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 날, 형 에서는 야곱을 만나자마자 달려와서 동생을 얼싸안고 입맞추고 울었습니다. 화해가 되었습니다. 
동생을 죽이려는 형 에서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돌이킨 것입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감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기도의 힘으로 풀어가시기를 바랍니다. 

5. 셋째, 난제를 은혜의 기회로 받아들이라.
이것은 문제를 보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말합니다. 문제를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기회로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골치 아픈 사람으로 봤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엮이지 않을까, 이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루 빨리 보내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골치꺼리가 맞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은 축복의 기회입니다. 누가 감히 예수님과 이렇게 가까이서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까?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구원의 길이 열리는 데 말입니다. 18장에 예수님과 빌라도가 나눈 대화를 보십시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가 왕이니라. 이것이 진리다. 

나는 이 진리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 진리를 위하여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 이 정도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귀찮은 듯, 비꼬는 듯, 피상적으로 물으면서 끝납니다. 진리를 발견할 기회, 하나님을 믿을 기회, 구원의 기회, 은혜받을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난제는 큰 은혜를 받을 기회입니다. 난세가 영웅을 낳습니다. 
한 팔만 쓸 수 있는 뇌성마비 지체1급 장애인, 
온 몸이 뒤틀려 있고, 걸을 수도 없고, 언어장애가 있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의 장애와의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물리치료사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세호는 영 걸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몸에는 팔근육, 다리근육등과 같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 즉 수의근과 소화관, 방광, 혈관 등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아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불수의근이 있다고 합니다. 세호가 걸으려면 수의근을 불수의근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팔과 다리 등 움직이지 못하는 근육을 움직이게 하려면, 3천만번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세호는 운동을 하면서 걷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에서 곤봉던지기와 포환던지기 2관왕을 비롯하여 89년 영국세계대회 2관왕, 북경아시안게인 석권 등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박세호 집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의 부정적인 말에 나의 몸과 영혼은 뛰기 시작했다.”
고통을 당하면서 도리어 강해졌습니다. 더 큰 열정이 생겼습니다. 
그 열정과 힘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는 던지기를 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던질 때에 나의 장애로 던지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힘으로 던질 수 있도록 해주세요.”

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마음이 아무리 담대할지라도
내 믿음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내 찬양이 아무리 크게 울릴지라도
주의 마음이 없으면
주의 믿음이 없으면
주의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박집사님은 그 이후 계명대학교, 명지대학교를 비롯하여 수많은 교회와 군부대에 강연과 간증을 다니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답니다. 
“나에게 장애 주심에 감사!
그것도 적당히 주시지도 않으시고
걷지 못하는 두 다리와 
항상 뒤로 돌아가 있는 왼팔과 
일그러진 표정과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입 주심에 감사!
나의 핏빛 장애 이길 수 있는, 하늘과 같은 희망과 꿈 주심에 감사!
내게 던질 수 있는 팔 주심에 감사!
올림픽 금메달을 두 개나 어머님 목에 걸어 드릴 수 있는 기회 주심에 감사!
내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 주심에 감사!”

박세호 집사에게 있어 큰 고통은 도리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6. 오늘 우리 앞에 놓여있는 문제들, 우리 힘으로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고난의 때, 문제 속에 쌓여있는 때, 이 때가 은혜받을 만한 때입니다. 
우리 앞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물러 서 있지는 않습니까?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도피하지 마시고 직면하십시오. 
감정에 얽매이지 마시고 기도로 풀어가십시오. 
난제로 고민하는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임을 믿으십시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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