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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픔이 자신을 깨운다

  • 최장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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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왕하19;1-28 아픔이 자신을 깨운다



어떤 사람이 몇 해 전 안산에서 볼링을 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스윙을

하던 중 키 낮은 쇠모서리 천장에 부딪쳐 손가락이 으깨어진 것이지요.

시술을 받고 조각난 뼈들을 맞췄는데 그 뒤 계속 통증이 왔습니다.

잠자는 시간만 빼곤 하루 종일 손가락이 씀벅씀벅 아렸습니다. 이상하게도

길 가다 옆 사람과 부딪치면 꼭 상처 난 손가락이었고, 실수를 해도 상처 난

손가락이 문제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통증은 그대로 심장에 전해졌고,

역설적으로 아픔을 통해 손 끝에 손가락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을 한국교회의 성자라 말하는데

주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위대해진 이유는 어디 있을까요.

혹자는 오산학교 때 만난 스승들의 영향이라고 하며, 미국 유학 중 폐결핵으로

죽어가다 체험한 신앙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습니다.

1992년 종교의 노벨상이라는 템플턴상을 수상하고 기념 축하 예배를 드리던 날

한 목사님은 울면서 고백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영혼을 맑게 행구고 깨어있게 만든 것은 내면 깊숙이

앙금처럼 가라 앉아있던 부끄러운 죄의식이 아니었을까요. “아픔이 때로

우리를 깨어있게 한다.” 고민하며 사는 성직자가 그리운 시절입니다. 치타는

지구상에 사는 동물 중 가장 빠른데, 최고 시속 112㎞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빠른데도 사냥에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치타는 사냥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엉금엉금 기는 낮은 포복부터

풀밭에 숨어서 낚아채는 매복까지,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발휘합니다.

전속력으로 뛰면 잡을 수 있는데도 절대 조급하게 굴지 않습니다.

일단 사냥감을 발견하면, 걷다 기다리길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충분히 탐색한 뒤,

성공률이 높다고 판단되었을 때에 전속력으로 내달립니다. 가끔은 사냥감을

잡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갑자기 추격을 멈추고 풀밭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합니다. 치타가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불과 30%입니다.

열 번 시도하면 일곱 번 실패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그 빠른 치타가 열 번 중

일곱 번은 먹잇감을 놓친다니, 사람으로 치면 ‘공부 제일 잘하는 학생이

평균 성적이 30/100점’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결국,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 한계를 일찌감치, 그리고 확실히

깨닫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스스로 최선을 다하되,

전능하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좀 더 바른 인생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우리도 

어러가지 일을 하다가 잘못하거나 실수로나 고의적인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큰 아픔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아픔을 통해서 더 자신을 깨운다.

 

본문은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 전에 들어가 중진들을 이사야에게 보내 기도해주라고

부탁하자 이사야가 히스기야를 위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앗수르 왕이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칼에 죽는다고 예언하고 앗수르 왕이 에디오피아

디르하가가 공격해온다는 소문을 듣고 재차 사자를 보내 편지를 써서

앗수르 왕의 능력을 말하며 항복하기를 요구하자 사자 손에서 편지를 받고

성전에 올라가 펴놓고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이 임하여 교만한 앗수르가 멸망될 것이며 예루살렘이 오히려

앗수르를 비웃게 될 것이며 회복을 예언하면서 앗수르 왕이 공격하지도

못하고 돌아가고 성을 보호할 것이라고 하였고 그날 밤에 하나님 사자가

앗수르를 군대를 전멸시키고 산헤립이 돌아가서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할 때 아들들에게 죽는다 즉 산헤립 왕의 항복 요구로 위기에 봉착한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사람들을 보내서 기도를 요청하니 앗수르 패배를

 

예언하고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최후 통첩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선민 구원을 요구하여 응답으로 앗수르 심판 예언과 유다 회복 예언과

앗수르에 심판이 단행되어 퇴각하게 되는데 앗수르의 침략이 도리어

히스기야에게는 자신을 깨우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아픔이 있을 때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도리어

자신을 깨우는 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아픔이 자신을 깨울까요 본문에서 알아 봅시다

첫 번째로 여러움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웁니다.

히스기야 왕도 그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슬퍼서 베옷을 입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갔습니다. 히스기야는 엘리야김과

셉나와 나이 든 제사장들을 아모스의 아들인 예언자 이사야에게 보냈습니다.

엘리야김은 왕궁 관리인이었고, 셉나는 왕의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베옷을 입고 이사야에게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사야에게 말했습니다.

"히스기야 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슬픔과 심판과 부끄러움의 날이오.

마치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도 아이를 낳을 힘이 없는 여자와도 같소.

앗수르 왕이 랍사게를 보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조롱했소. 하나님께서도

그 말을 들으셨을 것이요. 당신의 하나님께서도 그를 책망하실 것이요.

그러니 살아 남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드려 주시오. "이와 같이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오자,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그대들의

왕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시오. '너는 앗수르 왕의 신하들이 한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앗수르의 왕에게 한 영을 넣으리니,

그는 자기 나라에서 들려 오는 어떤 소문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를 그 곳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하겠다.'"

즉 히스기야가 랍사게 말을 전해듣고 하나님 전에 들어가 이사야에게

사람보내 기도 요청하자 이사야가 신복들에게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본국으로 돌아가서 피살될 것을 예언하여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23;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여호사밧은

아합과 정략결혼하여 징벌로 3개국 연합군이 쳐들어 왔을 때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라고 기도했더니 연합군의 군대가 피차에 죽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여호사밧의 아픔이 도리어 자신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러움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웁니다.

 

왜 우리에게 아픔이 자신을 깨울까요

두 번째로 위협해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웁니다.

그 때,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립나로 가서 만났습니다. 왕은 립나 성에서 싸우는 중이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에티오피아 왕 디르하가가 자기를 치려 한다는 보고를 듣고 히스기야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말했습니다. "네가 의지하는 하나님께 속지 마라.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네 하나님의 말을 믿지 마라.

너는 앗시리아의 왕들이 여러 나라들을 멸망시킨 일을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너라고 해서 구원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의 조상들은 고산과 하란과

레셉을 멸망시켰고, 들라살에 사는 에덴 백성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그 백성들의

신들도 그들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하맛과 아르밧의 왕들이 어디에 있느냐?

스발와임 성의 왕이 어디에 있느냐?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어디에 있느냐?"

히스기야는 사신들이 보낸 편지를 받아 읽고는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기도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보좌는 날개 달린 생물인 그룹들 사이에 있습니다.

오직 주만이 땅 위 온 나라의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는 하늘과 땅을 지으셨습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여호와여, 눈을 열어 보아 주십시오.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조롱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여호와여, 앗수르의

왕들은 정말로 여러 나라와 그 땅을 멸망시켰습니다. 그 왕들은 여러 나라의

신들을 불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은 사람이 만든 나무요,

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왕들이 그것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시여, 우리를 저 왕의 손에서 구해 주십시오. 그러면 온 땅의

나라들이 주만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랍사게가 돌아갔으나 산헤립이 자신의 능력을 말하며 항복을 요구하며

최후 통첩 편지하자 히스기야가 편지받아 성전에 올라가 편지를 펴 놓고

앗수르에게서 구원해 달라 기도합니다. 앗수르 왕이 위협해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니까 아픔이 히스기야 왕 자신을 깨웁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37;4-5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다니엘은

디리오 왕이 왕에 외에 무엇에든지 구하면 사자굴에 넣는다고 했는데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에서 하루에 3번씩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래서 사자굴에 던져지나 사자가 잡아먹지 못합니다,

다니엘에게 아픔이 자신을 깨우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도

위협해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웁니다.

 

왜 우리에게 아픔이 자신을 깨울까요

세 번째로 하나님이 적들에 대해 심판하시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웁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에 대해 기도한 것을 들으셨소.

그리고 산헤립에 대해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시온 백성이 너를

미워하고 조롱할 것이다. 예루살렘 백성이 도망치는 너를 보고 비웃을 것이다.

네가 누구를 꾸짖으며 조롱하였느냐? 네가 누구에게 목소리를 높였느냐?

네가 누구에게 눈을 부릅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에게냐?

너는 사자들을 보내어 여호와를 조롱하며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나에게는 전차가 많이 있다. 나는 그 전차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으며

거기서 레바논의 가장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레바논의 키 큰 백향목과

훌륭한 잣나무를 베어 버렸다.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고 가장 울창한

숲까지 들어갔다. 또 나는 내가 빼앗은 다른 나라에서 샘을 파서 그 물을 마셨다.

내 발바닥으로 이집트의 모든 강물을 마르게 했다. 앗수르 왕아, 나 여호와가

 

오래 전에 이 일들을 결정했고 옛날에 이 일들을 계획했다는 것을 네가

틀림없이 들었을 것이다. 네가 성벽이 있는 저 굳건한 성들을 쳐서 잿더미로

만들 수 있게 한 것도 바로 나 여호와이다. 그래서 그 성에 사는 백성들이

겁을 내고 두려움에 떤 것이다. 그들은 들의 식물과 같았고 연약한

풀과 같았다. 자라기도 전에 말라 버리는 지붕 위의 풀과 같았다.

나는 네가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언제 나가고 들어가는지도 다 알고 있다.

네가 나에게 악한 말을 하고 있는 것과 분을 품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너는 나에게 반역하였고 네 교만이 내 귀에까지 들렸으므로 네 코에 갈고리를

걸고 네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 그리고 네가 왔던 그 길로 다시 돌아가게 하겠다.

히스기야야, 내가 너에게 이 증거를 보이겠다. 너는 금년에 들에서 저절로

자란 곡식을 먹겠고, 내년에도 들에서 저절로 자란 곡식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삼 년째 되는 해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밭을 가꾸어서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다. 유다 집안의 남은 백성은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자라나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 나오겠고 시온 산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 나올 것이다. 나 여호와는 열심으로 그 일을 이룰 것이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소. '그는 이 성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는 화살 한 발도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성을 공격할

흙 언덕도 쌓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왔던 길로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이 성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종 다윗을 위해 이 성을 지켜 구원해 주겠다.'" 그 날 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의 진으로 나아가서 앗수르군 십팔만 오천 명을 죽였습니다. 백성이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그들이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앗수르 왕

산헤립은 그 곳을 떠나 니느웨로 돌아가서 그 곳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

산헤립이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하여 산헤립의 아들 에살핫돈이 앗시리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응답으로 앗수르에 대한 심판 예언을 하시며

결국 산헤립 왕을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식들에게 죽게 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세력인 사울의 세력을 불레셋을 통해서 심판하시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통해 아픔이 자신을 깨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여러 가지로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적들에 대해 심판하시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우심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살면서 여러 가지 아픔들을 만나는데 그때는 힘들고 어려움이 많으나

그 아픔으로 인해서 도리어 더 성숙해지고 자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왜 우리에게 아픔이 자신을 깨울까요

첫 번째로 여러움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우고

두 번째로 위협해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우고

세 번째로 하나님이 적들에 대해 심판하시니까 아픔이 자신을 깨우므로

아픔을 성숙의 계기로 삼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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