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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의 계승자들

  • 김부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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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6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4장 1절~12절

설교제목 : 진리의 계승자들


【그 무렵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자기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 때문에 그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헤롯은 일찍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에 요한을 붙잡아다가 묶어서,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요한이 헤롯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민중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서, 헤롯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헤롯은, 그 소녀에게,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맹세로써 약속하였다.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로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왕은 마음이 괴로웠지만, 이미 맹세를 하였고, 또 손님들이 보고 있는 앞이므로, 그렇게 해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보내서,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하였다.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 갔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장사지내고 나서, 예수께로 가서 알려드렸다.(마태 14:1~12)】

 

  <성경 이야기>

  오늘 성경의 등장인물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진리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는 요한과 예수가 있고, 그 반대편에 정치적 권력자 헤롯이 있습니다. 또한 헤롯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는 도덕적 불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정치권력자의 ‘사모님’이 된 쾌락에 취해 있었죠. 오늘 성경 이야기는 ‘요한과 예수’, 그리고 ‘헤롯과 헤로디아’의 대결 상황입니다.

 

  <세 가지 이야기>

  오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저는 세 가지 차원의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첫째, 진리의 계승자들은 비진리(非 眞理)의 상황에 대해서 불화(不和)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치 권력자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결혼한 사건, 그리고 그 아내 ‘헤로디아’가 이를 즐기고 있는 현상은 명백히 잘못된 역사였습니다. 이른바 비진리(非 眞理)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가만히 있는 다는 것은 ‘하늘의 진리’를 섬기는 자의 태도가 아니었죠. 그래서 요한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시대는 불화(不和)보다는 화(和)를 권장하는 시대입니다. 특히 일부 엘리트 지식인들 중에서, 또 종교적 명상가들 중에서 무슨 대단한 도사(道士)인양 잔뜩 겉멋을 부리면서, 부드러운 화(和)가 진리의 완성인양 떠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타락한 부드러움은 권력자들의 궁전 안에서 기생(寄生)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리의 광야로 나선 자들은 분명하게 비진리(非 眞理)에 단호하게 불화(不和)하는 것입니다. 이를 온몸으로 보여준 이가 세례자 요한이었고, 예수는 그 요한의 법통(法統)을 잇고 있었습니다.


  둘째, 제가 오늘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으로 받아들인 사건은, 요한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가 헤롯과 불륜을 맺은 헤로디아와 그의 딸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요. 권력은 달콤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최고 실력자 헤롯의 ‘사모님’이 된다는 것은, 무서우리만치 달콤한 사건이었습니다. 헤롯 대왕도 민중의 눈초리가 무서워서 감히 어쩌지 못한 인물을, 권력(그 어마어마한 돈, 그리고 급부상하는 명예의 상승, 그 아래서 굽신거리는 무수한 사람들)의 달콤함에 취한 여자가 간교하게 죽이고 맙니다.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영원히 권력은 무서운 것입니다. 즉 사람들을 마음껏 부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급스러워지며, 그 주머니에서 돈이 넘쳐나는 쾌락, 그 무서운 힘, 그 권력 …….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자들은 무슨 일이든지 저지를 수 있습니다. 가벼운 선거부정에서부터, 피를 나눈 부모와 형제를 죽이는 일까지, 혹은 더 나아가서 하느님을 모욕하는 일까지 …… 그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은 무서운 것이며, 위험한 것이며, 더러운 것입니다.


  셋째, 오늘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안심이 되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법통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는 점입니다. 요한과 예수, 그리고 요한의 장례를 지낸 그의 제자들, 또 그 제자들이 찾아온 예수와 그의 친구들 …… 그 진리의 계승자들에게서 인류의 희망을 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족보를 들먹거리며, “누구누구의 몇 대 손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육신(肉身)의 족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육신의 족보 말고, 영성(靈性)의 족보가 있고, 또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는 진리의 도도한 흐름, 그 계승자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한과 예수처럼, 또 요한과 예수와 함께 했던 그의 아름다운 길벗들.

 

  <중국의 역사 이야기>

  끝으로 중국의 역사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중국의 여러 왕국 중에 ‘제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떠오르는 권력자 ‘최저’라는 인물이 임금인 장공을 죽였습니다. 이에 제나라의 태사(太史), 즉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최저, 장공을 시(弑)하다”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권력자가 임금을 죽였다는 사건을 분명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당연히 권력자 ‘최저’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최저는 그 사관(史官)을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당시 중국의 전통에서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가업(家業)이었습니다. 즉 부모와 형제들이 그 일을 함께 전담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둘째 동생이 태사의 자리를 전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둘째 동생 역시 똑 같은 문장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최저, 장공을 시(弑)하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최저는 둘째 동생을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셋째 동생이 태사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셋째 동생 역시 형들과 똑 같은 문장을 남겨놓게 됩니다. “최저, 장공을 시(弑)하다.” …… 이를 알게 된 최저는 두려움에 휩싸여서 감히 그 세 번째 태사를 죽이지 못합니다. 물론 그 문장, “최저, 장공을 시(弑)하다.”는 기록도 어쩌지 못하게 됩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진리의 계승자들’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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