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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태)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 서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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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 신앙을 위한 바른 관계성


예수 잘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이치대로 연관관계성을 잘 갖는 것입니다. 


1. 대신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모르면 하나님을 바로 알 길이 없습니다.  인간을 왜 지었는지, 무슨 목적으로 지었는지, 인격적으로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무슨 역사를 하시는지,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무슨 역사를 하셨는지, 내가 죽은 후에는 나를 어떻게 하실 건지?  성경을 통해 인간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2. 자아관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기에게는 옛 사람이 있고 새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가 어느 자기를 주격으로 삼고 사느냐에 따라 영원히 자기가 존영자로 될 수 있고, 또는 영원히 처참한 무능자로 살아가게도 됩니다. 


보통 보면 자기의 성화구원을 무시하고 알지 못한 채, 진리지식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미래의 존영성을 알지 못한 채 자기가 자기를 무시하고 사는 기독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3. 대인관계가 있습니다. 


대신관계가 바로 된 상태에서 대인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로 인인관계 연관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성도의 생활인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요 설교요 기도요, 이것이 가르치는 교훈이요 자기의 영광이요 상급이 될 수 있습니다. 


죄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자는 영광이 있다.(예: 사도바울, 선지자들, 사도들)

세상을 중심하여, 물질을 중심하여 대인관계를 맺는 자들이 기독교 안에 대단히 많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4. 대사관계가 있습니다.


일을 맡기고 주신 것은 사람 만들어지라고 주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서 사람이 대화를 갖고 사람이 만들어져 갑니다.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 진리로 연관을 짓고, 또 일을 주시면 일을 어떻게 성공리에 마치느냐 하는 목적보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일을 바로 하느냐 입니다.


보통 보면 이방 불신세상 사람들처럼 일 크게 많이 한 것을 가지고 은근히 신앙을 저울질을 하고 기준을 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깨닫고 신앙이 성장했느냐 하는 그 면을 전혀 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무개 너는 예배당 몇 개 지어 놓고 왔느냐’ 하고 그것에 대한 상을 주게 되면 하나님은 불공평, 불공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비판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출생하는 시간, 사람이 출생하는 지역, 사람이 출생하는 상황은 인간 자기는 모르고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부자 집에 태어나게 하시던, 하나님께서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하시던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물질이 풍부한 부잣집에서 예수 믿은 사람은 물질을 가지고 큰 예배당을 지을 수 있으나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가난도 하지만 그나마 불구자도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크게 해서 하나님께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은 성전도 부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성전 안에서 죄를 짓고 돌아가니 이방군인들을 불러 전쟁으로 성전을 부숴 버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로 일을 크게 사역한 것을 보시지 않고 ‘그 일을 네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바로 했으며, 얼마나 네가 깨닫고 참 사람으로 만들어졌느냐’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안을 보면 복음을 빙자하여 자기 노후대책을 세우고, 자기 출세 발판을 만들고, 자기 명예 영광성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운 일들입니다. 


모세는 바로가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그 때에 태어났습니다.  민족적 노예요, 생활적 노예요, 참으로 불행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훗날을 보면 모세는 하늘나라에서도 알아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계시신앙 사상적 정신적으로 보면 그 시대의 사건을 잘 이용을 하였고, 자기 개인에게 오는 사건을 잘 이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누가 일을 크게 하느냐, 46년간 성전을 으리번쩍하게 짓느냐가 아니고 누가 진리에 붙들리고, 진리를 붙잡고 하나님 앞에 인정되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느냐 입니다.


5. 대물관계가 있습니다.


물질세계를 왜 지었느냐?  물질을 왜 주었느냐?  자기의 이룰 구원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이룰 구원을 위해서 이용을 하라는 물질입니다. 


물질세상을 만드실 때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나님의 택한 선민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룰 구원, 성화구원 면에서 이용하고 사용하고 활용을 하여 부족함이 없이 만족하다는 뜻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구원을 위해서 쓰고,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일을 크게 하는 것보다 자타의 이룰 구원을 위해서 진리를 깨닫게 해서 주님으로 닮는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그 면에다가 투자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진리교육을 위해 쓰지 않고 다른 곳에다 투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로 들어온 헌금을 누가 주었던간 성지순례로 쓰면 안 됩니다.  몇 명 안 되는 성도의 살림살이를 쥐어짜서 예배당 건물 세우느라고 빚더미 위에 올려놓으면 그게 무슨 영광이겠습니까?  하나님 얼굴에다 칠을 해 놓은 격입니다.  물질을 많이 가졌으면 많이 가진대로, 물질을 적게 가졌으면 적게 가진대로 어디다가 썼느냐에 따라 책임추궁이 클 것입니다.


이렇게 성화구원 신앙은 진리이치의 깨달음이 되고, 정신이 진리이치로 무장이 되고, 사상화 되고, 인격화되어서 생활 구석구석에 다 적용이 됩니다.


무조건 예수 믿음으로 한다?  이건 자기 주관적인 신앙입니다.  신앙사상이 아니면서 말로만 성화구원을 지껄인다고 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자기는 성화구원으로 살지 않으면서 남보고 성화구원, 이룰 구원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고, 진리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나에게 좀 안 도와주나’ 하고 말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신앙을 가진 사람은 분별력이 예민하기 때문에 물질이 없으면 없어서 못하지만 설령 물질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악한 사람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도우면 하나님 앞에 영원히 고치지 못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됩니다.  무조건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룰 구원의 이치, 성화구원의 신앙사상이 없느니 만큼 자기 속에는 세상성, 일반성, 육의 생각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이 ‘나는 믿음으로 무엇을 한다’ 하면 100%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 뜻을 알아서 나온 신앙이요 믿음이겠습니까?  뭘 알아서 믿음으로 한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보통은 그게 믿음인 줄 알지. 


제대로 된 믿음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이것을 드리오니 물질을 보지 마시고 은혜 받고 감사한 이 마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나는 주를 위하여 죽는 곳에도 가겠습니다. - 베드로의 신앙이 하나님의 본질화된 신앙에서 나온 말입니까, 사태가 어려워지면 도망을 가는, 도망을 갈 수밖에 없는 그 얇퍅한 신앙에서 나온 말입니까?


1. 가만히 보면 자기 주관적인 신앙, 자기 주관성이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지식으로 희생정신으로 나오는 믿음이 있습니다.

2. 객관적인 신앙, 객관적인 믿음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 목적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 것이 된 것. 이렇게 돼서 나가는 것이 객관적 주관적인 믿음입니다.


모여서 구호를 외치고 교파를 초월해서 많이 모이면 성령이 크게 역사하고, 성령님이 보실 때 ‘와, 사람이 많구나’ 하고 성령님이 감동이 되어서 크게 역사하고, 작게 모이면 사람이 없으니까 성령도 힘이 없어서 ‘에게게’ 하며 역사도 안 하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두 세 사람이 모여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 - 예수님 당신처럼 만들어지고자 하는 그들에게 있겠다, 역사 하시겠다, 보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 참고 ●



  


성경은 특별계시다: 물질계의 모든 존재 사건 환경을 다 들어서 신령계를 가르친다.  이 영능의 실력을 갖게 하자니 물질계가 필요했다. 


신령계에는 자체적으로 자기 만들어진 것만큼 누린다.  똑 같다고 주장을 하면 성경을 뒤집는 사단의 소리다.  물질계의 누림성에도 활동도 행복도 차이가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 중에 천국의 비유가 있다.  ‘하늘나라를 말씀하시더라, 천국복음을 전하시더라,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해와 달과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 10고을 20고을을 다스려라, 행위가 따른다, 심은대로 거두리라, 뿌린대로 거두리라’


성경을 가지고 딴 짓을 하는 것은 사단 마귀의 운동이다.  사단, 마귀, 귀신, 악령, 용, 거짓 선지자, 거짓 스승, 거짓 복음, 세상 운동, 육 운동, 옛 사람이 주격이 된 운동, 일반지식 전부는 이 물질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르침이다.


영의 눈이 먼 자는 세상을 위해서 믿는다.  부끄러운 구원, 불탈 구원이다.


성경 가지고 진리이치, 생명이치, 도덕이치를 바로 깨달아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으로, 지혜 지식성, 도덕성, 능력성으로 자체화되고 인격화되고 사상화되고 실상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이다.  기능적 온전, 지능적 온전, 신령적 온전이다.  모든 성경 구구절절이 여기에 강조된다. 


누림과 실력을 통 털어서 궁극적 최종적 목적적 결과적 구원이라 한다.


이것이 인간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요, 이것이 주님이 하신 일이요, 이것이 성령이 하신 일이요, 하나님의 예정이요, 교회가 할 일이요, 인도자들이 할 일이다.



● 칼빈주의 예정론에서 보면


가. 타락 전 선택설이 있고.


1. 먼저 하나님의 의중에 ‘택자를 만들어야 되겠다’ 하고 불택자는 타락 후에 만들고 택자는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이 마음을 가지고.

2. 인간을 창조하고.

3. 선악과 따먹은 후 불택자를 만들고.

4. 그리고 택자에게는 구원의 길을 열어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 타락 후 선택설이 있습니다.


1. 일단은 먼저 인간을 창조해 놓고.

2. 다음은 선악과 따먹는 타락을 허용하고 난 뒤에.

3. 그 다음은 몇 명은 선택을 하고, 몇 명을 유기하고.(버려두고)

4. 선택을 한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고.

알미니오파의 만인 득구설은 하나님의 은혜를 항거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영원 궁극적 구원에 관한 이룰 구원, 성화구원 면에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칼빈주의 예정론이나 또는 알미니오파의 만인 득구설을 생각을 해 볼 때에 어떤 면이 다르다고 느껴집니까?  똑같다고 느껴집니까, 다르다고 느껴집니까, 그저 그렇다고 느껴집니까? 


그것들은 존재선택은 있는데 무엇이 없습니까?  주님께서 인격적 애정적 수수관계적으로 그 좋은 신령세계를 주고 싶어하시는 사건선택이 없습니다.  이 사건을 전제하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존재선택을 했고, 기본구원을 입혀서 성화구원인 영능의 능력 실력을 키워서 신령계를 주어 하나님과 같이 누리도록 하는 것이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진행되어 흘러나오는 구원역사입니다.


궁극구원, 누릴 구원을 전제해 놓고 보면 창조와 타락,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구원, 심판 등은 영원 궁극적 목적적 결과적 최종적 구원을 위한 하나의 순서요 과정입니다.  이것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신학적으로 ‘타락 전 선택이냐, 타락 후 선택이냐, 만인 득구설이냐’ 하고 설교를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격적 애정적 수수 관계성은 슬며시 빠져 버리고 완전히 사무적인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까 하나님께 죽으라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영광을 돌리려면 영광될 만한 일거리를 자꾸 찾아서 만들고, 그 일을 이루려면 열심히 충성 봉사하고 목숨까지 바쳐야 이루어지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만인 득구설은 항상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은 늘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앞뒤에 이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경 구절적으로만 보면 예정 예지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런 구절도 있으니까! - 또 예지 예정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런 성경 구절도 있으니까!


성경을 읽다가 ‘너희는 구원을 얻었나니 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 하는 구절을 보면 ‘아, 내가 구원을 얻었구나’ 하고 생각을 하다가 또 성경에 ‘너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하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보면 ‘아직 내가 구원을 얻지 못했는가?’ 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말씀도 있는데 그렇다면 안 죽고 구원을 기다려야 할 텐데 죽으면 어떻게 하나?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는 말씀도 있고, ‘성령을 받으라’ 라는 말씀도 있는데 이 말씀을 읽고 묻기를 ‘성령을 어떻게 받느냐?’ 하면 ‘기도하면 능력을 받는다.  신유은사 받아야지!’ 이렇게 구절만 따다가, 역사만 따다가 가르친다면 무슨 운동이 나오겠습니까?  시대론, 세대론적으로 연도 따지다가 재림파 말세파가 나오기 마련이고, ‘내가 구원 시켜야지’ 하는 구원파가 나오기 마련이고, ‘나도 예수처럼 병 고쳐주어야지’ 하는 신유은사파, 안수파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단 삼단이 왜 나옵니까?  칼빈의 예정론이나 만인 득구설을 못 배워 그런 것이 나옵니까?  학사, 박사가 쓴 책 다 읽고 40일 금식기도도 했는데 왜 그런 것이 나옵니까?  성경에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지는 영원 궁극적 성화구원의 신앙사상이 안 보이고, 옛 사람 새 사람, 악령 성령의 분별이 안 되니, 안 보이니 오늘날 교회들이 이렇게 신앙사상이 혼탁하고 혼합되고 혼란스럽습니다.


성경 구구절절이 궁극적 계시 사상이 들어 있고, 궁극적 구원에 속한 천국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온전을 위해서 기록되었고, 하나님의 온전을 닮으라는 것이고, 주님처럼 인격이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기본구원은 별로 없고 기본구원을 전제한 상태에서 성화구원이 강조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밑에서 인간 편에서 보면 역사적 시간적으로 보이나, 성경을 위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위치가 되는고로 한 눈에 하나님의 의사성을 알게 됩니다.  궁극적 결과를 전제하고 보니까!


자, 그렇다면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누가 일으켰습니까?  하나님이!  왜 일으켰습니까?  제자들 실력 키워주려고!(사도의 실력)  자기에게 부딪치는 세상풍파를 누가 일으켰습니까?  하나님이!  왜?  만일 마귀가 일으켰다고 하면?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 자존성, 주권성, 하나님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고, 마귀도 하나님 위치에 동등권으로 올려놓게 됩니다. 


‘열심히 부르짖어라, 해결해 달라고 하라, 기도 듣고 해결해 주실 것이다’ 하는 것은 그 신앙의 뿌리가 영입니까, 육입니까?  이런 사고방식의 신앙은 귀신들려 악령운동하기 쉽습니다.


1. 가난하고 못 사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

2.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그런가?

3. 잘 사는 것은 믿음이 있어서 그런가?


우리가 구원도리인 성화구원의 진리이치를 모르면 몰라서 모르고, 넘어지고도 넘어졌는지도 모르고, 빠졌는데 빠졌는지도 모르고, 이단소리 해 놓고도 무엇이 이단인지도 모르고, 자기 안에 어떤 자기가 주격이 되어서 한 건지도 모르고, 징계를 받으면 ‘믿음으로 안 해서 그런가’ 하고 애만 더 쓰고 열심만 더 부립니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바로 잡겠느냐 그 말입니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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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 서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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