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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는가 (고전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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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는가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아이들은 참으로 귀엽고 아름답습니다. 특히 활짝 웃는 모습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입니다. 부모의 입장은 생각도 않고, 집안 형편이 어떤지 걱정도 않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둘째, 참을성이 없습니다. 조금만 아파도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조금만 배가 고파도 난리가 납니다. 또, 분별력이 없습니다. 먹을 것인지 먹지 못할 것인지 구분을 못 하고, 아무거나 먹습니다. 이로운지 해로운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어린아이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누군가가 돌보아 줘야지 내버려두면 위험합니다. 내버려두면 혼자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도 꼭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이기적인 사람,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생각할 줄 모르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어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유익만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입니다. 또, 참을성이 없어 조금만 화가 나도 버럭 화를 내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참아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장성해지면 장성해질수록 참을성이 많아집니다. 

미국에서 세탁업을 하는 신실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단골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아끼는 옷이 없어졌다며, 옷을 내놓으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세탁소 주인인 집사님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어 잘 찾아보라고 점잖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 옷 주인은 여전히 성질을 내고, 욕을 하며 옷을 내놓으라고 일주일 동안 괴롭히고, 동네에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욕하던 그 사람 집에서 옷이 발견되었습니다. 얼마나 미안하고 창피했을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세탁소 주인이 한 번도 자신에게 성질을 내지도 않고, 한 번도 반항하지 않으며, 점잖게 끝까지 참아준 것입니다. ‘역시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며 세탁소 주인의 태도에 감동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어느 집사님이 날씨가 너무 추워서 저녁에 연탄을 활활 피워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밤중에 너무 추워 나가 보았더니 누군가 그 연탄을 가져가 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또 없어지는 것입니다. ‘도둑을 잡아야겠다.’라는 생각에 자는 척하고 밖을 보니 셋방에 사는 아주머니가 연탄을 가져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장 뛰어나가 악을 쓰고, 한바탕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집사이니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참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밤만 되면 연탄을 빼 가는 일이 2주간이나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참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셋방 아주머니가 찾아와 “내가 연탄 빼 가는 것 아셨죠?”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자기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점쟁이가 누구와 실컷 싸우면 액운이 물러가고 행운이 온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한바탕 싸우려고 일부러 그랬는데 도저히 싸움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신이 한 것을 자백한 것입니다. 그러자 집사님은 그 점쟁이의 잘못됨을 깨우쳐 주고, 전도하여 그 가정이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참을성이 있어서 잘 참으면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고, 존경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보면 분별력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단인지, 진리인지를 분별을 못해 이단이 들끓고, 설명을 하면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 젖먹이와 같은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도 모르고,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런 사람이 젖먹이 신자입니다. 

그런데 이 어린아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리니까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사람은 나이가 많음에도, 장성했음에도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짓을 하는 사람입니다. 연세는 70, 80세가 되었지만, 하는 행동은 꼭 두 살배기 철없는 아이 같은데 그 사람은 치매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고린도전서를 보면 고린도교회에는 이런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1장을 보면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5장을 보면 음행을 행하는 사람이, 6장에서는 세상법정에 송사를 해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 8장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도 있었고, 10장을 보면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교회에는 은사와 직분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은사가 얼마나 있으며, 우리가 방언을 하고, 은사가 얼마나 나타나는 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은사를 통해 교회에 얼마나 큰 유익을 주고, 얼마나 교회를 든든히 세워주느냐가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집사냐, 권사냐, 장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로 말미암아 교회가 얼마나 유익하고, 교회가 얼마나 든든히 서 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은사는 대단한데 교회가 아수라장과 같았습니다. 

교회를 든든히 세우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은사는 대단한데 신앙과 인격이 형편없었습니다. 여러분, 은사가 대단하다고 해도 신앙생활과 인격이 엉망이면 그 사람은 교회에 해를 많이 끼칩니다. 그런 사람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내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신앙과 인격이 온전 하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고린도교회에는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소에 말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말을 해야 합니다. 평소에 내가 말하는 것이 어떠한지, 어떻게 말을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깨닫지를 못해서 나이가 60,70살이 되어도 철없는 짓을 하고, 덕을 못 세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만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깨달음이 오는데 내 죄와 허물이 깨달아지고, 은혜받기 전에는 몰랐는데 은혜 받고 나니 내가 허물과 죄가 많음을 깨달아 겸손히 회개하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갑니다. 그뿐 아니라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깨달아집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깨달아지면 감사하면서 살고, 주님 앞에 보답해드리려 하고, 예수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은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사명이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집니다. 우리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은혜 받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충성된 일꾼이 되기 때문에 교회를 부흥시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성장하고, 믿음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변화가 일어납니다. 

옛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새사람으로, 마귀를 닮은 성품이 하나님을 닮은 성품으로, 악하던 성품이 착한 성품으로, 불의한 성품이 의로운 성품으로, 거짓된 성품이 진실한 성품으로 변화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믿음이 자라나는데, 믿음이 자라날수록 성품의 변화, 생각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삶의 목적과 목표의 변화, 말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세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예배드리는 자세가, 기도드리는 자세가, 찬송하는 자세가, 봉사하는 자세가,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참으로 좋은 교회는 변화된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변화된 사람이 많습니다. 은혜충만한 교회는 변화가 빨리 됩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많은 분들이 모여 성례식을 했습니다. 두 분의 간증을 들었는데 얼마나 은혜로웠는지 모릅니다. 그 중의 한 분은 어머니께서 석가모니 탄생일에 태어나 아예 절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 집안은 절 외에는 가면 안 되는 집안인데, 전도를 받아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예배당에 들어오자마자 그 마음에 감동을 받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첫 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리 밤을 세고, 피곤해도 주일만 되면 머리가 맑아지고, 교회에 오는 기쁨이 있고, 교회에 오자마자 변화되고, 은혜를 받는 이 모습이 은혜충만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수영로교회는 변화되지 않으면 기적입니다. 제가 볼 때 우리 교회 성도들은 다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좋은 교회는 사랑이 많은 교회입니다. 참으로 좋은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며, 주의 종들을 사랑하는 성도가 많은 교회입니다. 빌립보서에 보니 빌립보교회가 얼마나 좋은 교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5~16절을 보면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조직교회가 아니어서 교역자들을 위해 사례를 분배해 주는 것이 없어 사도 바울이 천막 치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감옥에 있게 되었는데 돌봐주는 교회가 없었지만, 빌립보교회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 외에는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는 헌금을 해서 요즘의 장로와 같았던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해서 사도 바울을 돕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정성껏 도왔는지 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되어, 사도 바울이 걱정을 했습니다. 또, 이 소문을 들은 교회도 매우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때문에 걱정하는 교회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빌립보서 2장 25절 이하를 보면 교회와 에바브로디도와 사도 바울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인 줄 믿습니다. 이런 사람이 많은 교회일수록 좋은 교회인 줄 믿습니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교회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천국 생활을 훈련하는 곳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올 때마다 ‘내가 천국에 간다.’라는 생각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만 보고 생각하지 마시고, 교회에 나올 때마다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고, 천국생활을 훈련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며 서로 만나면 기뻐하고, 사랑하는, 상상만 해도 너무 좋은 그런 곳입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 천국 같은 생각을 하고 사시면 천국 같은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제가 교만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많은 교회, 크고 작은 교회, 외국의 교회에서도 집회를 하지만, 제가 40여 년 목회를 하는 가운데 수영로교회보다 좋다고 느끼는 교회가 없습니다.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교회에서 스트레스가 쌓여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이나 다른 곳에 집회를 하러 가게 되면 신이 나고, 행복한데,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쯤 되면 머리가 아프고,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입니다. 밖으로 집회를 나가게 되면 영적 전쟁이 시작됩니다. TV도 켜지 않고, 신문 볼 시간도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고, 집회도 해야 하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부산 상공에만 와도 얼마나 좋은지, 교회에만 들어오면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편안합니다. 세상에 이런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수영로교회가 좋은 교회인 이유는 

첫째, 말없이 기도만 하는 성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입을 사용해서 교회를 쑥밭으로 만들고, 시끄럽게 만들고, 싸우게 만들고, 지옥과 같이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입을 꼭 다물고 기도만 하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사탄에게 우리 입술을 사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니 성령이 역사 하셔서 문제가 일어날 것도 그냥 없어지게 하고 교회가 항상 평안한 것입니다. 

둘째, 말없이 충성만 하는 성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충성을 많이 하는 사람이 교만해지기 쉽고, 자화자찬을 하기 쉽고, 교만한 말을 하기 쉽습니다. 말이 많으면 덕을 잃어버립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존경을 못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묵묵히, 말없이 충성하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얼마나 은혜롭고 좋은지 모릅니다.

셋째, 자원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힘든 일,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골라서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자원해서 일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입니까.

넷째, 자원해서 헌금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구상에 이렇게 수백억 들여 성전을 짓는데도 헌금 작정을 한 번도 하지 않고, 그저 기도만 해서 IMF임에도 성전을 지어 돈이 엄청나게 남는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9천 평의 교육관을 다 지었습니다 마는 헌금 작정도 하지 않고, 자원해서 기쁨으로 드리는 헌금으로 건물을 짓는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개척된 지 36년이 되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어쩌면 우리 교회는 작정할 필요가 없는, 내버려 두어도 되는 교회인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런 교회가 다 있느냐?’라고 다들 놀랍니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고, 감동 받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께서 이렇게 좋은 교회 나오시는 것을 아십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앞으로 우리 교회는 이런 전통을 계속 이어가야 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린아이의 일을 다 버리고 장성한 성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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