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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인생에 열정의 날개를 펴라! (신 3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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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열정의 날개를 펴라! (신 32:7-12)

      
지난 금요일에 영남신학대학교에 갔더니 학교 담벼락으로 노란 개나리가 아름답게 활짝 핀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겨울 동안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저 나무에 무슨 꽃이 피겠나 싶지만 그러나 거기에 생명의 기운이 들어가니까 다시금 아름다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모든 존재에 생명의 기운이 들어가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영혼의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겔의 골짜기를 보십시오.  사람의 눈과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 골짜기는 이미 다 끝났습니다.  그곳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았을 때 다 끝났고, 절망적인 그곳에도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니까 신비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아무리 어둡게 왔고, 아무리 힘들게 왔다고 할지라도 내 영혼에 생명의 바람만 불어오면 나는 다시 생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답답한 마음으로 왔다고 할지라도 내 생명에 하늘의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다시 한 번 소망이 가득한 인생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인간은 어둠을 뚫고 생명의 빛을 찾는 존재들입니다.  그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명의 빛을 찾는 존재들입니다.  그 영혼이 어두우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생명의 바람이 불어와 여러분의 심령이 밝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비록 여러분의 영혼과 삶 위에 흑암의 권세가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 예배를 드리다가 여러분의 심령에 한 줄기 생명의 빛이 들어와 밝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다가 내 영혼에 하늘의 신령한 계시적인 체험들이 여러분의 심령에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삶의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것은 오늘 이 시대가 열정이 사라진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현대인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인생에 치열함이 묻어나는 과정은 없이 일확천금만을 꿈꾸는 로또 인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삶의 열정을 품고 뜨겁게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뜨겁게 사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열정을 품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생애에 공급하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삶에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삶에 이루고자 하는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에 열정을 품고 하나님의 뜻에만 집중하며 따라가십시오.

가만히 보면, 그 삶에 열정이 사라진 사람은 문제를 따라갑니다.  문제를 자꾸 따라 다니는 사람은 문제에 얽매이고 맙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생이 자꾸만 소극적이 됩니다.  그 마음에는 불평과 불만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일에 반항적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마음에 열정을 품고 문제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면 문제가 우리를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절대로 문제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인생에 얽힌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삶에 열정을 잃어버린 것은 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모든 행복이라는 것도 사실은 사람과 일 사이에서 열정이 남긴 자국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태하지 않고 그 마음에 열정을 품고 꿈과 비전을 향해 중단하지 않고 나아간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큰 교회는 없습니다.  한 두 사람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가 주님이 주시는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뜨겁게 사명을 감당했더니 큰 교회가 된 것입니다.  교회를 보면 부흥하는 교회와 부흥하지 못하는 교회 차이점은 한 마디로 성도들의 마음에 있는 열정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다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의 열정을 붙들고 자신의 나약성을 깨십시오.  나는 할 수 없다, 우리는 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떨쳐버리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무조건 누구나 인도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정을 품고 몸부림치는 자를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교회는 천사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의인들의 집합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결코 성자들의 박물관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과 달리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임재와 만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한 지체가 되고자 오는 곳입니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 오지는 않습니다.  큰 사람, 작은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교회마다 다양한 사람들이 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한 가지 목적과 한 가지 사명으로 묶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복음과 사명에 대한 열정입니다.  자신의 전 존재를 불태워서 산 제물로 드리고자 하는 열정이 건강한 교회를 세워갑니다.  때문에 열정이 사라진 교회는 세상 속에서 짓밟힘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열정이 사라진 성도는 사탄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이라는 사명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파트너이고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밝힐 등불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희생으로 나타내 주신 지고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면 증오와 미움을 가진 사람이 주님의 사랑에 눈을 뜨고 나면 용서하고 화해하고 감싸주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과 고통에 죽은 심령으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받고 소망과 문제 해결을 얻고 나갑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에 복음과 사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을 밝힐 등불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열정이 사라진 교회는 결코 세상에서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기적을 일으킨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부흥하는 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의 공통점은 시간마다 일마다 때마다 뜨거운 열정을 품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끝까지 성령을 의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의 이야기에 나오는 집안의 탕자인 맏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맏아들에게는 삶에 대한 열정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에게는 어떤 기대감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지금까지 해 오던 습관을 따라 밭에 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삶에 열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생활에 즐거움도 없었습니다.  삶에 대한 즐거움이 없으니까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아버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늘 비평하면서 불평과 불만 속에 살았습니다.  결국에는 아버지의 기쁨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바깥에서 바라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우수함을 추구하고 그 우수함에 대한 열정을 불같이 일으킬 때 그 마음 속에는 꿈이 일어납니다.  그 꿈이 일어날 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열정의 날개를 활짝 펴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열정을 품으십시오.  열정을 품고 꿈의 날개를 활짝 펴십시오.  그리고 그 꿈과 비전을 향해서 힘차게 날아오르십시오.  그리고 결단하십시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리라!"

특별히 오늘 저는 우리가 인생 여정에서 열정의 날개를 펴고 꿈과 비전을 향해서 날아오르기 위해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인생에서 열정의 날개를 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내면적인 계시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심령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내면적 계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있으면 속된 말로 '내 손에 장을 지져라'"
이렇게 그릇된 열정에 미쳐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생명을 걸고 좇아 다니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당대에 유명한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못 됐는지 오늘처럼 이렇게 예배하는 곳이 있으면 말을 타고 가서 사람들을 잡아죽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사울도 열정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릇된 열정과 잘못된 열정에 자신을 내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도 비록 내가 지금 주님의 전에 나와있지만 세상 열정에 생명을 걸고 온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혼란과 혼돈 속에서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운명에 맡겨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이라고 하는 곳에 말을 타고 그날도 힘을 다해서 그 그릇된 열정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데 갑자기 "사울아! 사울아!" 하는 음성과 함께 하늘로부터 빛이 쏟아졌습니다.  저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사울에게 쏟아졌습니다.  그 내면적 계시를 받는 순간 그는 말에서 떨어져 꼬꾸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울이라고 하는 당대의 망나니가 변하여 거룩한 믿음의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내면적 계시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중요한 시간에 왔다 앉아서 발 도장만 남기고 구경만 하고 가지 마시고, 그 어두운 세계에 하나님의 신령한 빛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햇빛보다 더 밝은 하늘의 신령한 빛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만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기도의 역사를 우직하게 믿고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다시 권면합니다.  기도하십시오.  구해야 됩니다.  기도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기도와 금식 이외에는 아무 능력도 내는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경하지 마십시오.  잘하는 기도든, 못하는 기도든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최악의 순간에도 기도만 일어나면 뭔가 잡을 것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가 걸어가는 인생 길, 그 최악의 순간에도 기도만 붙들면 뭔가 건질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고르는 것처럼 그렇게 까다롭지가 않습니다.  인간은 선물을 줄 때 이것은 누구에게 줄까, 저것은 누구에게 줄까, 그렇게 선물을 구별해서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물은 은혜라고 하는 것인데, 인간이 선물을 고르는 것처럼 그렇게 유별나지도, 그렇게 까다롭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대단히 골고루, 그리고 아주 공평하게 줍니다.  하나님의 눈은 인간만큼 그렇게 까다롭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속에 나는 종교성이 전혀 없다거나, 나는 성령을 제대로 못 받았다거나, 나는 일주일 내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 뿐이라거나, 나는 내 스스로가 보아도 정말 하나님 앞에 주장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값없이 골고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사모하십시오.  사모하시되 절대적으로 사모하십시오.  크게 사모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인생에서 열정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내면적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인생에서 열정의 날개를 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고 일단 마음을 바로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을 바꾸십시오.  이 시간 옆 사람을 보면서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고 마음을 바꿔보십시다!"

사람은 환경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힘든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이런 유혹에 빠져들 때가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아! 내 환경과 저 환경, 저런 사람의 상황과 환경 속에 내가 산다면…"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가 처한 환경을 지금 당장 바꿀 수는 없습니다.  또 내 여건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대처하는 내 마음만은 내가 지금 당장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환경을 바꾸려고 하면 낙심합니다.  사람을 바꾸려고 하다가 싸움이 일어납니다.  인간은 환경을 바꾸려고 하면 자포자기하고 말 것입니다.  인간은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환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환경에 대처하는 내 마음만은 당장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마음을 바꾸십시오.  마음을 다시 강하고 담대하게 가지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크고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내 삶에 일어난 어떤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 하는 그 마음 자체가 더욱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내게는 이런 못된 일들만 일어나는가?  왜 내게는 이런 답답한 일들만 일어나는가?  왜 내게는 이런 근심된 일만 일어나는가?  왜? 왜? 왜?  왜 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내게 일어나는 그 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저들에게 어떻게 대처했느냐고 하는 내 마음의 반응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똑같이 어떤 일이 일어나지만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찬송하면서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무 여유도 없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도 없이 포기하고 화를 내고 혈기를 부리며 기분적으로 살다가 막 떠내려갑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꾸어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바꾸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마음이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마음에 있습니다.  무슨 능력, 무슨 능력해도 마음을 극복하는 능력 이상 큰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은 그의 자녀들이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넘어지더라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명이 살려면 어두움도 있어야 됩니다.  비옥함과 풍요와 소출이 있는 땅은 구름도 있고, 비도 있고, 어두움도 있습니다.  그늘도 있고, 밤도 있고, 바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빛과 함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생명이 삽니다.

지금 어두운 역경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여러분,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이 넘어지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그곳에서 일곱 번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독수리처럼 날개를 치고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주의 영광을 볼 것이요, 무너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리니 네가 수치를 당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리라.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믿음의 뜻입니다.  이 시간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십시오.  자신의 의지의 날개를 활짝 펼치십시오.  실천은, 실행은 이론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믿고 행해 보십시오.  내 손이 닿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내 발이 닿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산을 생각해 보십시오.  산에 가보면 그 깊고 깊은 산, 정말 귀하고 귀한 산들을 보게 됩니다.  이 산들이 왜 귀합니까?  산이 크기 때문에 귀합니까?  산이 높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산이 크기 때문에 귀하다든가, 산이 높기 때문에 귀하다든가 하는 것은 산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저도 대학교에 다닐 때 높이가 1,430m인 가야산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큰 산, 높은 산을 올라가 보면 그곳에는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국내산도 높은 봉우리에 한 번 올라가 보십시오.  모진 바람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높아서 아름답습니까?  가보면 썰렁합니다.  진짜 요즘말로 썰렁합니다.  그렇다면 왜 산이 아름답습니까?  거기에는 크고 작은 계곡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크고 작은 계곡 속에서 샘물들이 일어납니다.  그 샘물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산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도 매 한 가지입니다.  사람이 크기만 하면 아름답겠습니까?  사람의 키가 2m70cm나, 80cm쯤 되면 아름답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속된 말로 해서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2m70cm 되는 사람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대단히 멋없습니다.  기업도 크기만 하면 아름답겠습니까?

기업도, 사람도 그 속에 계곡이 있어야 됩니다.  크고 작은 아름다운 생명을 거느리고 보화를 거느린 계곡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귀합니다.  계곡 가운데 샘물이 솟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온갖 금은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생명을 만들고, 가치를 만들고, 샘을 만들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일어나서 계곡을 만들고….  그러기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거기에 하나님의 계곡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늘의 계곡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내 인생에서 열정을 잃어버리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험한 산지에 놓였다고 할지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곳이 옥토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흥하는 교회, 부흥하지 못하는 교회의 차이점은 그곳에 모인 성도들의 마음의 차이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세워보겠노라고 하는 마음의 열정을 품고 있다면 주의 몸된 교회는 반드시 아름답게 세워집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복음과 사명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고 구경꾼의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 교회는 결코 희망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그 마음에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이 거룩한 비전에 열정을 품은 제자가 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님은 무리가 아닌 제자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무리들은 피하셨지만 제자들과는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무리들에게는 어떤 기대도 갖지 않으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세계의 선교 비전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리가 되지 말고 제자가 되십시오.  사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제자보다 무리가 되는 것이 훨씬 편할 것입니다.  제자는 사명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무리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 없습니다.  제자에게는 눈물과 희생을 요구하지만 무리에게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무리에게는 칭찬과 상급이 없지만 제자에게는 반드시 칭찬과 상급이 있습니다.

편안한 것과 평안한 것은 다릅니다.  편안하다고 해서 반드시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무리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것도 복음과 사명에 열정을 품은 강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인생의 날개를 활짝 펴고 꿈과 비전을 향해 높이 날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인생에서 열정의 날개를 펴기 위해서는 혼돈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혼돈과 혼란 앞에 자기 스스로의 길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의 혼돈과 혼란은 하나님의 새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또 다른 질서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실 때에 또 다른 하나님의 질서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혼돈이라고 하는 것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돈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결국 두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혼돈과 어려움 속에서 떠나가던가 남던가.  남은 사람들 가운데도 두 가지로 결정이 됩니다.  방관자로 구경꾼이 되던가, 아니면 생명을 걸고 사명을 붙잡던가.  사랑하는 여러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열정이 있는 사람은 혼돈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사람입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혼돈 속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선교적 사명에 생명을 겁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열정이 있는 그 한 사람을 통해서 더 크고 넓은 세계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를 통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모세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운명으로 보면 죽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묘한 방법으로 모세를 인도하십니다.  갈대 상자 속에 담겨 나일강에 떠내려가면서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기도 밖에는 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울음의 기도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귀한 일이 있으리라."
"내가 네 눈물을 보았고, 네 기도를 들었노라."

상자 속에서 울기만 했었는데 그 울음이 왕궁에까지 들릴 줄 어떻게 알았느냐 말입니다.  그 울음이 바로 왕궁에 들어가는 다리를 놓을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 풍운아가 그렇게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왕궁에 들어갔습니다.  노예의 아들로 노예의 신분으로 자랐으면 그런 교육을 어떻게 받습니까?  그런 경험들을 어떻게 압니까?  그런 국가 통치라든가, 국가 관리에 대한 경험들을 언제 압니까?  하나님이 거기에다 앉혔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들을 하고 그런 가운데 자기 나름대로 의와 불의에 대한 자기 판단이 섰습니다.

어느 날 자기 딴에는 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 자기 동족에게 매를 치는 애굽 사람을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해서 격분한 나머지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보호한다고 했던 동족들이 도리어 자기를 멸시해서 쫓겨나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다시 풍운아가 되어서 쫓겨갑니다.  미디안 광야는 애굽의 끝입니다.  그의 인생이 갈 데까지 간 막장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곳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사십년을 앉아 있는 가운데 하루는 기가 막힌 일이 자신에게 일어납니다.

오늘 주신 신명기 32장의 음성은 바로 그런 음성입니다.  광야에 가서 때로는 여러 가지를 보는데 낙심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공평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왜 하나님의 의로운 사람이 쫓겨야 되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번영을 해야 되고, 악인은 잘 되어야 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류가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입니다.

모세는 구름을 많이 보았습니다.  혼란과 어두움 속에서 모세는 넓은 초원을 보았습니다.  그 광활한 초원!  크고 작은 것들, 높고 낮은 것들이 서로 화합해서 같이 사는 그런 삶의 융통성을 보았습니다.  혼란과 어두움 속에서 양떼들을 보았습니다.  누군가 바른 나팔만 불면 따르리라!  저들이 들을 수 있는 바른 나팔만 불면 양떼가 따르듯 내 백성이 따라 올 날이 오리라!

이것이 다 혼란과 혼돈과 아픔 속에서 본 것입니다.  이 혼란과 어두움 속에서 모세는 약속의 무지개를 보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혼란과 어두움 속에서 미래의 어느 날일지는 모르지만 미래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정확한 날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때로 우리들의 삶 속에는 어둠도 있습니다.  혼란도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때도 있습니다.  내 이성과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사람이 정말 그 믿음이 강하여 질 때가 언제이던가?  그 믿음의 깊은 진수가 일어날 때가 언제이던가?  그 사람이 잘 될 때인가?  아닙니다.  그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환난 가운데 있을 때 그 인생의 날개에 무서운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른 믿음에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열정이 없는 믿음은 병든 믿음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핑계 삼아 나태한 삶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비극입니다.  모름지기 믿음의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따르고 탐내는 사명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열정은 모든 신앙의 승리자가 가지는 속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만 재산이 아닙니다.  활활 불타는 가슴도 재산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불타는 가슴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재산입니다.  불타는 열정의 사람은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열정은 그 사람의 개성을 만들고 더 큰 사랑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기적은 열정이라는 열쇠로 열리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사람이 좋은 말로만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에게서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의 날개에 힘을 얻으십시오.  그리고 꿈과 비전을 향해 높이 날아오르십시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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