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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시리즈(8) : 십일조의 기적 (말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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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시리즈(8) : 십일조의 기적 (말 3:7-12)


우리 식단이 서구화하면서 아침에 시리얼을 먹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리얼 식단의 혁명을 이끌어낸 사람으로 “아침 식단의 황제”(The autocrat of the Breakfast Table)라는 별명을 얻은 미국의 퀘이커 오츠사(The Quaker Oats Company)의 창립자 헨리 파슨스 크로웰(Henry Parsons Crowell)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경건한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철저한 교회 생활을 익혀왔습니다. 열심히 교회 예배에 출석했고 열심히 성경을 읽었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루터 크로웰이 40대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 장례식을 집례한 호크스 목사에게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고 질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홉 살 먹은 어린 소년은 한 시간에 걸친 복음 설명을 듣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1872년 고등학교 졸업 1년을 앞두고 예일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그는 그의 부친의 목숨을 앗아간 페질환으로 그는 학교를 중단하고 요양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의 나이 17세였습니다. 그는 부친이 만든 회사였던 제화회사에서 여가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을 시작하면서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가며 자신의 미래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하던 차 그 이듬해 1873년 봄 그의 나이 18세되던 해 그가 출석하던 교회에 유명한 전도자 무디가 와서 설교를 하게 됩니다. 

무디는 오직 한번 밖에 살수 없는 인생, 하나님께 쓰임받는 위대한 생애를 살자고 도전하면서 그런 위대한 쓰임 받는 삶을 십일조 헌신으로 시작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구체적으로 시인하는 결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자기 수입중 10분의 일을 따로 구별하여 주일마다 헌금하기로 합니다. 당시 제화회사에서 일 년에 모두 100달러를 벌면서 그는 10달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후일 일 년에 수입이 100만달러를 넘어서도 그 가르침을 이어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십일조의 교훈을 담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느헤미야와 동시대를 살았던 포로 후기시대(BC 400년대)의 선지자 말라기는 십일조는 삶의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라고 증언합니다. 도대체 십일조는 어떤 의미에서 기적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1.십일조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기적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살던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7절에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 하였다”고 말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그랬더니 백성들이 반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8절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이런 상황에 처해있던 주의 백성들이 다시 십일조의 헌신을 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회개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웨슬레는 자주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회개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성도가 참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했다면 헌금 생활의 변화가 따라오지 않을수 없습니다. 어떤 성도가 침례를 받게 되었는데 침례조에 들어오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집례하던 목사님이 묻습니다. “왜 안들어 오십니까?” “제 주머니에 지갑이 있어서요” 목사님이 다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지갑도 침례를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전임 전도사로 처음 목회를 경험한 교회가 있던 마을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과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가 교회에 처음 나오셔서 예배드리던 날 헌금 시간에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제가 물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헌금 시간에 눈물을 흘리셨느냐?”고. 솔직하게 대답하시더라구요. “제가 남편이 죽은후 아이들 키우고 공부시키면서 돈이 너무 아까와 아무 곳에도 돈을 써 본 일이 없습니다. 오늘 처음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오네요” 

그녀는 헌금을 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깨트리는 헌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의 헌신이야 말로 우리가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안에서 새 삶을 시작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2.십일조는 하나님의 사역을 흥왕하게 하는 기적입니다.

본문 10절 전반부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포로 후기 시대 이후 예루살렘 성전에는 본 건물옆에 창고를 짓고 그 안에 진흙으로 구운 항아리들을 비치하여 그 안에 기름, 포도주, 곡식, 육류 거제물, 각종 말린 과일들을 저장해 놓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성전의 창고는 적어도 느혜미야의 시대까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느13:5을 보겠습니다.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이런 십일조는 특히 두가지 용도로 쓰여 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전임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레위 자손들이나 제사장들을 지원하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구제 사역이었습니다. 

신14:28-29을 읽겠습니다. “매 삼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렇게 해서 성전의 창고는 신실하게 드려지는 십일조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집행하는 중심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를 묘사하는 열쇠 단어의 하나가 ‘흥왕함’입니다. 그러나 이런 흥왕의 배경에는 처음 성도들의 아낌없는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바나바 같은 사람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행4:36-37을 보십시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그래서 초대 교회는 거침없이 선교하고 구제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지평을 넓힐수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남아 있습니다. “율법을 따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의무이다. 그러나 십일조 이상을 드리는 것은 은혜 받은 성도들의 특권이다” 신약시대는 십일조가 폐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적인 강제성의 차원에서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오히려 율법아래서 드리던 구약 성도들의 차원을 넘어서는 십일조 이상의 자발적 헌신이 요구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일조는 지금도 하나님의 사역을 흥왕하게 하는 기적의 방편입니다. 구약의 십일조로 구약 시대의 사역자들의 필요가 공급되어 그들이 사역에 전념했던 것처럼 오늘도 여전히 목회 사역자들과 선교 사역자들이 일상의 공급을 걱정하지 않고 목회 사역과 선교 사역에 헌신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종종 일부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의 재정적 실수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만 그런 일부의 과오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이 위축된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낳을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최근 GMN 설립을 계기로 재단 법인 인가를 받음으로 보다 투명한 재정 운영을 기하게 되었고 사역자의 사례를 제외하고도 금년부터 교회 예산의 37가 선교와 구제에 쓰여지게 된 것을 감사드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지금도 여전히 십일조는 하나님 나라 사역을 흥왕하게 하는 기적의 원천입니다.


3.십일조는 하나님의 축복을 시험하는 기적입니다.

성경은 거듭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십일조에 관한 한 “시험해 보라”고 초대합니다. 

10절의 하반부입니다.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만큼 주의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는 자들에게 복을 부어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까? 십일조를 안하면 수치상으로는 내게 유익입니다. 그러나 십일조 안하시는 분들은 대개 그 십일조를 메뚜기(황충)에게 갖다 받치고 병원에 갖다 바치고 은행에 갖다 바친다는 것을 아십니까? 

11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저는 오늘 설교의 화두를 퀘이커 오츠사(시리얼 회사)의 창설자 헨리 크로웰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그가 전도자 무디의 설교를 듣고 헌신하던 밤 그는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설교자로 헌신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위한 사업가로 헌신하겠습니다. 우선 십일조로 시작하여 그 이상도 모든 수익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그는 마침내 60-70의 재정을 주께 드리는 헌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세월이 흘러가며 더 깊고 더 질적인 헌신을 드리게 됩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며 그의 돈만이 아닌 시간을 헌신해야 하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 교회 사역, 간증 사역, 그리고 시카고의 무디 신학교의 이사장으로 신학교로 출근하면서 구체적으로 이 신학교가 위대한 학교가 되도록 돕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이사회를 주재하였습니다. 그의 헌신을 거기에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며 사회악을 추방하는 일에도 헌신하고자 또 다른 시간의 십일조로 시카고에 만연한 마약과 범죄, 매춘을 뿌리 뽑기 위해 시카고 15인회, 시카고 범죄 위원회의 일원으로 헌신합니다. 

그는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재산이 이런 선한 일에 쓰여 지도록 신탁(Trust)을 만들어 그가 남긴 돈으로 전 세계 해외 선교, 교육 선교, 사회 선교를 위해 쓰여지도록 했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쓴 조 모서는 그의 전기의 책 제목을 <삶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 시리얼 왕 크로웰>이라고 명명했습니다. 

1943년 89세를 일기로 그가 숨을 거둔 날 그의 죽음을 온 시카고 시민들이 애도했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식은 그가 평생 헌신해온 무디 신학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무디 신학교 교장 윌 호튼은 그를 추도하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헨리 크로웰은 제가 만나본 모든 사람중에 가장 예수님을 많이 닮으신 분이셨습니다. 제 손에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 그분의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이 몇 개 있습니다. 그것은 돈보다 더 고귀한 그분의 유산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시 한편, ‘크리스쳔이 되는 법’이라는 기사, ‘하나님과 함께 걷기’소책자 그리고 애니 존슨 플린트의 시 한편, 이 시가 아마 마지막으로 묵상한 시이었고 이 시가 바로 그의 일생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이 바로 그의 사역을 행할 유일한 손입니다/그분은 발이 없습니다. 우리의 발이 곧 그의 길을 인도해야 할 발입니다./그분은 혀가 없습니다. 우리의 혀가 곧 그의 죽음을 증거할 유일한 혀입니다./그런데 그리스도의 사역말고 다른 일로 내 손이 바쁘다면 어찌할꼬/죄가 유혹하는 길로 내 발이 걸어가면 어찌할꼬/그분이 꾸짖을 수치스런 말을 토한다면 어찌할꼬/이런 손과 이런 발과 이런 혀로 어찌 그분을 섬길것인가/어찌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릴까!” 이것이 십일조의 기적이 낳은 기적이었습니다. 십일조-드리고 계십니까?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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