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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겨자씨 한 알의 비전 (마 1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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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 알의 비전 (마 13:31-32)


물리학에서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카오스’라는 말은 ‘혼돈’이라는 말로 ‘컴컴하고 텅 빈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물리학에서 이 ‘카오스’는 ‘불규칙적인 결정론적 운동’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결정된 혼돈’(determonistic chaos)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상 속에는 기존의 설명 체계로는 포착되지 않는 복잡한 구조의 질서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것 가운데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것이 있는데, ‘나비효과’란 예를 들면, 중국 북경 하늘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였는데, 그것 때문에 지구의 반대쪽인 저 미국 뉴욕의 날씨가 맑음에서 폭풍우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E.N.Lorentz)가 기상 모델을 연구하면서 발표하며 이론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지금도 활발히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요즘 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이론이에요. 어느 곳은 몇 십 년 만에 대 홍수를 겪고 있고, 어떤 나라는 유례가 없는 엄청난 눈이 왔고, 어디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기근이 심각하고, 또 어느 곳에서는 화산이 폭발하고, 그리고 또 어느 곳에서는 대지진과 엄청난 쓰나미가 일어나는 심각한 뉴스들을 우리가 듣고 보지 않습니까? 오늘의 기상 이변과 천재지변들의 이유를 밝히는 가운데, 오늘날 이 나비효과 이론은 근거있는 이론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학설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1) 자연계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는 무엇이든지 그 시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2)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 년 전에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탄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러한 것도 아주 작은 것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국민들이 생각없이 낭비한 몇 푼의 돈, 공무원들이 정리해야 할 기업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끌려간 일, 대통령이 개인적 감정에 매여 내린 작은 결정 하나, 담당 장관이 외환보유고에 대해서 한 거짓말, 등,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 같은 일들이 결국은 나라의 경제 몰락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나비효과’를 보여주는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전쟁 중이었는데 다윗왕이 낮잠 자고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반합니다. 그 일로 다윗이 간통하고, 그 남편인 충실한 장수를 죽이고, 그것 때문에 선지자의 책망과 예언을 듣는데, 그 예언대로 다윗 왕국에 무서운 재난이 닥쳐옵니다. 다윗의 집안과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큰 난리를 치르게 됩니다. 결국 그렇게 엄청난 사건의 원인이 다윗이 눈길 한 번 잘못 돌렸기 때문에 시작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눈길 한 번 잘못 돌려서 온갖 비극이 인류에게 덮친 것입니다. - 또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이나 고생한 것도 가나안을 정탐한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작은 것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나비효과는 천국의 원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겨자씨의 비유’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가 15개가 나옵니다. 그 중에 7개가 13장에 나옵니다. 이 13장의 비유들을 ‘천국 비유라고 합니다. 그것은 비유가 시작할 때 ’천국은‘ 이라고 시작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 

어떤 사람이 작은 겨자씨 하나를 심었습니다. 그 씨는 자라서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었습니다. 가지들이 펼쳐지고 울창한 나무가 되었을 때,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노래하며 쉴 수 있는 아름다운 자리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에 담긴 이 꿈과 비전 이야기는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하나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시대의 나비효과를 일으킬 겨자씨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다면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은 위대한 진리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교훈과 진리는 무엇입니까? 

1.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작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모든 위대한 것은 시련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처음 따르기 시작했을 때 굉장한 기대를 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스타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사람 치고 세례 요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 요한이 “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내 뒤에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 위대한 요한이 말하는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 할 때 드디어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까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굉장한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다녀 보아도 별 큰 사건은 나타나지 않고 몇 번의 작은 기적은 있었는데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들고 일어났고 제자들도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전도를 해보았지만 별로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의 비유를 언급하고 있는 다른 본문인 누가복음 13장(22~23)을 보면 사건 직후에 제자들이 나와서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생님, 아무리 전도하려고 해도 적은 숫자밖에는 따라오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하기에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아주 미미했습니다. 반대와 핍박에 부딪히게 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을 반대합니다.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제자들은 패배주의와 비관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시점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작다. 그러나 이 작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은 현실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겨자씨가 자라나듯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교훈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작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토가 작아서 그런지 유달리 큰 것을 좋아합니다. 서양인들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하는데, 우리는 ‘세계 최고’, ‘동양 최대’라는 말은 잘 써도, ‘세계 최소’라는 말은 안 씁니다. 나라 이름도 대한민국, 최고 수반은 대통령, 최고 학부는 대학교, 외교사절은 대사, 길들을 모아도 양재대로, 강남대로 라고 부름. 우리 제천에도 지도를 보면, 청전대로, 의병대로 라고 씀. 

다리를 놓아도 우리나라 다리는 다 큰 것만 있습니다. 올림픽대교, 천호대교, 청풍대교, ...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길고 넓고 오래된 명물이지만 이 다리를 미국인들은 대교라 부르지 않습니다. 

술 마시는 사람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작은 잔에 마시면서 대포라고 합니다. 더 아나가 왕대포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예배가 있는데, 주일오전예배를 ‘대예배’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일오후예배는 ‘소예배’입니까? 그 외에도 대강당, 대운동장, 대청마루, 크지도 않은데 대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무조건 큰 것을 좋아하는 모습은, 큰 차, 큰 집, 큰 교회, 등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참 큰 것을 좋아하는 이것은 작은 것을 보상받으려는 열등감, 보상 심리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것들을 비하시켜서 자꾸 감추려고 하고 작다는 것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다는 것은 안 좋은 쪽으로 평가됩니다. 작은 것도 좋은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미래의 기술은 작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나노기술’이라고 하죠? 10억분의 1 .... 앞으로 미래는 작은 것이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앞으로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것 속에 있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열등감과 비관 속에 빠져 있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겨자씨 한 알의 꿈을 이야기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위대한 것도 갑자기 커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두 미약한 시절을 거칩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2. 겨자씨가 그렇게 자라고 커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생명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단순히 작은 것의 중요성만을 가르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은 많이 있습니다. 모래알도 작고, 먼지도 작습니다. 그러나 굳이 겨자씨를 비유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겨자씨가 모래와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입니다. 직경 1mm. 이렇게 작은 씨가 나중에 자라면 평균키가 1.5m, 어떤 종자는 3m 이상 자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겨자씨의 생명력을 복음의 생명력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고 예수님이 능력입니다.  예수님 자신이야말로 기독교의 최대 자신이요 우리 인생의 꿈과 소망, 반석과 능력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있으면 다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전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현실이 불투명하고 고통스럽지만 현실 건너편에는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들이 있음. 내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면 제자들이 불평하고 좌절했을까요? 주님을 믿는 믿음이 부족한 것, 그것이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못하지만 주님은 하십니다. 내 인생은 불투명하지만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만 믿고 신뢰하십시오. 이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이 주님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에게 미래를 보는 눈이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 예수를 통해 위대한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예수의 위대한 제자입니다. 


3.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은 이웃에게 축복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성장이 이웃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작지만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작지만 우리는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나의 삶이 이웃들에게 반드시 축복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크게 자라나고 그래서 이웃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줄 주 있는 그런 우리, 그런 가정, 그런 교회가 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런 환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작은 겨자씨의 비전입니다. 

‘내가 자라나 울창한 나무가 되고 가지를 펼칠 때 새들이 날아올 것이다.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리라. 그래서 새들로 하여금 노래하게 할 것이다.’ 나의 삶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주고 꿈을 주고 축복을 나누어주는 그런 인생을 살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겨자씨 한 알의 비전이요.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입니다. 

세속적인 성공관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공관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셔서 내가 잘 되면 그 축복으로 내 이웃을 섬기리라는 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입니다. - 우리가 자랄 때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공부 좀 해라, 배워서 남 주냐?”, 그러나 배워서 남 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목적은 얻은 지식으로 인류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남 주기 위해 배우고, 남 주기 위해 버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이며 재물관입니다. 

수 년 전, 타임지에서 금세기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 100명을 선정해 발표하였는데 그중 한 명이 미국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 여자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였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매일 그 프로를 보는 사람은 1400만 명이나 됩니다. 그 방송은 132개국에서 위성으로 중계되고 있고, 그 프로에서 윈프리가 한번 책을 추천하기만 하면 그 책은 바로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언젠가는 그녀가 장애인 대학 보내기 캠페인을 벌였더니 순식간에 100만 불의 성금이 모금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윈프리는 아픔이 있는 여자입니다. 1954년 미혼모에게서 사생아로 태어나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전전하며 상처투성이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 속에서도 성경을 매일 읽고 암송하며 위로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아픔과 슬픔과 비애를 독서로 달랬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장학금을 추천하여 주었고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게 된 윈프리는 많은 교훈과 좌우명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사명을 3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1) 남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무엇이든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할 사명이 주어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남보다 지혜가 많으면 그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고, 남보다 불질을 많이 받았으면 그 물질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사명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2) 남보다 아파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하나님이 아픔을 주셨다면 그것은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픔을 통하여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라고 하시는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한 여인이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마약을 한다고 말했을 때, 윈프리가 “나도 사생아로 태어나 어렸을 때 강간을 당한 적이 있어요.”라고 1400만 명이 보는 앞에서 솔직하고 담대하게 이야기함으로 동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어려서 강간을 당하고 그로 인해 어린 나이에 출산을 경험하고, 그때 태어난 아이가 2주 만에 죽고.... 내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남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라는 사명이라고 그녀는 늘 말했습니다. 

3) 남보다 가슴 설레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미치도록 좋은 것이 사명이요. 마음속에 불타는 소원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가장 작아 보이더라도 가장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현실이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꿈과 비전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주님의 꿈을 꾸는 사람들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겨자씨 한 알의 비전이요 꿈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비유로 가르치신 말씀 중에 오늘 겨자씨의 비유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겨자씨 한 알의 비전과 꿈속에서 나와 내 가정, 우리 교회의 꿈, 우리 민족의 비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비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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