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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대로 되었다 (왕상 16: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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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되었다 (왕상 16:28-34) 


열왕기상하는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책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을 때 북쪽 10 지파의 대표자였던 여로보암은 왕에게 찾아와 백성들의 세금과 노역을 줄여달라는 청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로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늙은 신하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젊은 신하들의 교만한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협상은 깨어졌고 북쪽 10지파는 반란을 일으켜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고 나라는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둘로 나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였던 죄에 대한 징계였습니다.   비록 나라가 둘로 갈라졌지만 남북쪽의 어느 왕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다윗 왕이 걸었던 의로운 길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머무를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왕이 된 후 즉시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고 절기 때마다 남쪽 예루살렘으로 찾아가면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왕권이 미약해질 것을 두려워 한 여로보암은 북쪽의 단과 남쪽의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다.  이제부터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 하며 레위 사람이 아닌 일반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워 벧엘과 단에서 절기 때마다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이런 종교정책은 그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모든 왕들이 따랐던 나쁜 모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이런 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버리셨으니 자신도 범죄하고 이스라엘 전체로 범죄하게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왕상14:16).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았던 왕은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 하실 정도로 다윗을 인정하셨습니다.  반대로, 북쪽 이스라엘의 왕들이 악을 행하면 그들이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 평가를 내리실 정도로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한 악한 왕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주로 다루는 인물은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 왕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합처럼 악한 왕이 없었습니다(왕상 16:30, 33, 21:25).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왕은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모든 악한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노를 격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고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바알을 숭배하였으며, 사마리아에 바알을 위한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습니다.  

아합이 시돈(페니키아)의 공주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북쪽의 아람 나라를 견제하려고 맺은 결혼동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 여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따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방 여인들이 시집올 때 가지고 들어온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힐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 명령을 깨뜨린 대표적인 왕이었습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애굽의 공주를 비롯하여 주변 국가들의 왕족들과 결혼동맹을 맺었습니다.왕비와 궁녀들이 시집올 때 가져온 신상들을 묵인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읍 근교에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의 신 몰록 등 수 많은 이방 신당들이 들어서게 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솔로몬의 나라가 아들 대에 둘로 분열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왕들은 이 범죄에 계속하여 가담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이 역사상 최고로 악한 왕이 된 배후에는 이방 여인 이세벨의 간악한 부추김이 있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거느릴 정도로 뼛속 깊이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빠져있는 시돈의 공주가 이스라엘 왕비로 시집온 목적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무너뜨리고 바알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합은 자신보다 더 악한 아내 이세벨의 부추김에 끌려다녔고 자기 주관도 없이 왕비의 치마폭에 싸여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다 인생을 망친 가련한 임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합 같은 사람에게도 여러 차례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1. 바알 선지자들과 벌인 갈멜산의 기도대결에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고 3년 6개월간 계속되던 가뭄이 끝나고 비가 내렸습니다.   백성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바알과 하나님 중에 누가 참 신인가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이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고도 회개할 줄 몰랐고 엘리야를 미워하는 이세벨의 복수심에 편승하여 엘리야를 죽이려 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아람 왕 벤하닷을 아합의 손에 붙이시고 승리를 약속하며 벤하닷을 죽이라 하셨지만 벤하닷이 목숨을 구걸할 때 살려보냈습니다.   자기 힘으로 승리를 얻은 줄 착각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여유를 부렸으며, 아람과 동맹하여 막강한 군사력으로 앗수르를 대항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아합을 책망하시기를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으니 네 목숨을 그의 목숨과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하셨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 아합이 잘못을 뉘우쳤습니까?   그 자리에서 회개할 줄 모르고 다만 근심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사마리아 궁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3. 아합이 사마리아 궁 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값을 주고 사려고 했지만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땅을 팔지 않겠다고 거절하자 마음이 상하여 침대에 누워 밥도 안 먹고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 이세벨이 악한 꾀를 내어 나봇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죽이고 기어코 그 땅을 빼앗고 말았습니다.하나님께서 이 악한 행위를 보시고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어 아합의 집안에 일어날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개들이 나봇이 흘린 피를 핥은 그 자리에서 아합의 피도 핥을 것이며,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의 시체를 먹을 것이다.   그리고 아합에게 속한 사람이 성읍에서 죽으면 그 시체를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을 것이라는 끔찍한 예언이었습니다.   

아합이 이 모든 말을 듣고 이번에는 하나님이 두려워 그 옷을 찢으며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굵은 베에 눕고 걸음도 천천히 하여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합의 겸비함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의 시대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리겠다고 심판을 연기하셨습니다 (21:27-29).이것이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사람들이 왕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금식하며 회개할 때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아합은 역대 모든 왕들 중에 가장 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설 기회를 주시고 심판을 연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아합은 어리석게도 자기 시대에 징벌이 내리지 않는 것으로 족하고 한 걸음 더 나가 바알을 버리고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서지는 않았습니다.   내 시대에 흉악한 재앙이 없으면 괜찮은 것일까요?   그 아들의 시대에 임하게 될 두려운 심판을 알았다면 정신 차리고 바로 살아 아들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기를 구하는 것이 아비로서 정상적인 태도가 아닌가요?아합은 역시 구제받을 수 없는 악하고 어리석은 죄인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아합이 아무리 악한 왕이었지만 그에게도 회개의 기회가 있었고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합이 정신을 차리고 다윗의 길로 돌아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아합은 엘리야의 예언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왕상22:38).   

아합이 남쪽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아람 왕과 대전투를 벌였습니다.   아합의 병거가 아람 군대에 포위되어 적군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그 상처의 피가 병거 바닥에 고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각자 자기 진영으로 돌아갈 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아합의 시체를 사마리아로 메어다가 장사지냈습니다.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가서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이것이 아합 왕의 최후였습니다.

아합 집안에 내린 징벌이 이것으로 끝이 났습니까?   아합의 아들 요람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요람의 신하였던 예후가 배반하여 요람을 죽이고 그의 시체를 나봇이 억울하게 죽은 밭에 던져버렸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으니 이 토지에서 갚으리라’(왕하9:26)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요람의 어미었고 아합의 아내였던 이세벨은 아들을 죽이고 성으로 돌아오는 예후를 창문 밖으로 내려다 보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예후가 내시들에게 이세벨을 밖으로 던지라 명령하자 그들이 이세벨을 내어 던지니 그 피가 담과 말에게 뛰었고 예후가 그 시체를 발로 밟았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예후가 ‘가서 이 저주 받은 계집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였지만 사람들이 그 시체를 찾은 즉 이미 개들이 먹었고 두골과 발 그리고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처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 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왕하9:36, 37)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응하였습니다. 

상아로 치장한 화려한 궁궐에서 먹고 마셨으며 왕권을 악용하여 자기들 하고픈 모든 일을 하며 살았던 아합과 이세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어떤 왕들보다 더 악하게 바알 우상을 섬기고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인도하였던 아합과 이세벨의 가정이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아합 왕보다 더 악한 왕비 이세벨은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아 왕궁의 정원을 만들었지만 예후의 손에 죽임 당한 아들의 시체가 그 땅에 버려지는 꼴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개들에게 뜯기는 저주스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하나님의 정의는 말씀하신 대로 이렇게 시행되고 말았으며 아합의 집안은 멸망하였습니다.   

아합 왕가 심판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고 예후가 아합의 70 왕자들을 모두 살해한 후에야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아합의 아들 70명을 살해한 예후는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왕하10:10)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딸이며 남쪽 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내로 시집을 왔던 아달랴 역시 희대의 악한 황후였습니다.   아들 아하시야 왕이 예후에게 죽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달랴는 손자들을 모두 죽여 유다 왕의 씨를 진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홀로 남겨진 어린 왕자 요아스를 보호하던 제사장 여호야다의 손에 죽임을 당함으로 아합이 남긴 불의의 씨앗들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아합에게 하신 약속,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 다윗에게, 그리고 오래 전에 가나안으로 들어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선지자들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열왕기상에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구절들을 주의깊에 살펴보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대로 왕들과 백성들에게 시시때때로 전달하였습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합의 통치시대를 소개하는 머릿 부분에 여호수아가 경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그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증거로 보입니다.여호수아 6장26절에, ‘여호수아가  그때에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했는데 그 말씀이 아합의 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본문34절을 봅시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여리고 성의 폐허를 증거물로 남겨두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죄악을 받드시 심판하신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증거물을 없애는 사람, 즉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리고를 다시 세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이고 그에게는 합당한 벌을 내리시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여리고를 건축하는 사람은 죽는다!’   여호수아 시대에 하신 말씀이었는데 수 백년이 흘러 아합의 시대에 이 경고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거나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받는 징벌입니다.   이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사단의 미혹을 받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아합에게도 이런 경고가 주어졌습니다.   네가 불순종하면 죽는다!  그런데 아합은 경고를 가볍게 여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은 선포된 그대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이루어집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말씀이 신약에 이루어졌습니다.   이사야와 미가 등 주님이 세상에 오시기 700여 년 전에 활동하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가 유대 땅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였고 아기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일과 부활하실 것을 내다 보시고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외침 일곱 마디 말씀 중에 마지막 숨을 거두며 하신 말씀은 ‘내가 다 이루었다’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언약은 지켜지기 위하여 있고 예언은 성취되기 위하여 선포된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 예고하신 말씀들이 다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가실 때 약속하신 말씀,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모인 성도들에게 임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제 세상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힘쓰며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아합과 같은 죄인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은 오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누구든지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은 죄사함을 얻으며 새 생활의 기회를 선물로 얻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시인하는 자마다 구원을 얻습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잃어버린 생명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며 끊임없이 경고의 사인(sign)을 보내십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을 불문하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가리켜 말세요, 말세지말이라라고 탄식합니다.   대재앙을 가져오는 자연재해는 물론 나라와 민족간의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드러나는 잔악한 인간성과 갈수록 타락하고 악해져 가는 문화현상을 보며 우리 스스로 말세라고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인간문명이 발전하고 물질이 풍성하며 편리한 기계의 혜택을 누리고 의술이 발달하여 앞으로 누구나 100살 까지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들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아합과 이세벨이 누린 영화는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보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며 풍요로왔습니다.   자기하고픈 대로 다 하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고 꿈꾸며 이루려 했던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대항할 때 그들이 가지고 누렸던 모든 것들은 헛되고 헛된 것이었으니 비참한 멸망을 가져왔습니다.

우리 시대에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깨어있는 성도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지금은 자다가도 깰 때이며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일어나 순결한 믿음을 힘써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경고하심과 구원의 말씀에 항상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듣고 깨달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원하는 성도의 거룩한 삶을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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