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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들을 사로잡은 사실들 (눅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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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사로잡은 사실들 (눅 1:1-4)


지중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대리석 기둥들이 버티고 서 있는 멋진 로마식 저택이 있었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보통 사람의 집은 아닌 듯 합니다. 그 집은 로마 귀족 <데오빌로>의 집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손님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환담을 나누는데, 뭔가 즐거운 일이 있는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시종이 와서 편지를 내밀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겉봉에 친근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을 존경하는 누가로부터...>. 데오빌로는 그 글을 확인하자마자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일어섰습니다.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가 없군요. 유감입니다. 내일 다시 와 주시겠습니까?> 

손님들을 돌려보낸 데오빌로는 서둘러 서재로 들어가서 편지를 읽습니다. 편지를 읽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단숨에 그 긴 편지를 다 읽은 그는 엎드려 기도합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저로 하여금 이 놀라운 당신의 이야기를 읽게 하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는 편지를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는 누가에게 답신을 보냅니다. <그 다음 이야기를 반드시 잘 기록해서 보내주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것은 당시 있었음직한 이야기를 상상해 본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데오빌로>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데오빌로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름 뒤에 <각하>라는 칭호가 나오는데, 각하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로마의 지체 높은 관원이나 귀족에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어떤 내용의 편지를 받았기에 이토록 기뻐하고 감격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설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지위를 포기하고, 명예를 내던지고, 생명까지 걸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하찮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삶은 중요한 것들에 의해 인도를 받습니다. 

1936년 12월 11일 밤 라디오를 통해 BBC방송 뉴스를 듣던 영국 국민들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성의 도움이 없이는 국왕으로서의 의무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국왕의 지위를 포기하고자 합니다.> 이 충격적인 선언을 한 사람은 대영제국의 왕 <에드워드 8세>였습니다. 

그는 심슨 부인이란 미국 여성을 사랑했는데, 그 여성은 이혼 경력이 있는 평민이어서 왕의 아내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영국 의회가 반대하고, 온 영국 국민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는 결국 한 여인을 위하여 왕위를 포기했습니다. 그가 왕위를 버린 후 동생 앨버트가 형을 이어 왕이 되어 <조지 6세>가 되었는데, 그는 말더듬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왕위를 수행해 나가는 것을 그린 <킹스스피치>란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명작입니다. 에드워드와 심슨 부인 두 사람은 1937년에 프랑스에서 결혼했고, 35년 간을 사랑하며 살다가 1972년에 에드워드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에드워드란 한 남자를 이끌어 간 것은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대영제국의 왕관보다 그에게 소중했습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에 의해 이끌림을 받으며, 살고 계십니까? 우리에게도 평생에 자국을 남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려서는 소풍 가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소풍 가기 몇 일 전부터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너무 좋아 빙그레 웃곤 했습니다. 그 때 노란 도시락에 담아간 김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보면 그렇게 흥분되던 소풍이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색 바랜 사진이 한 두 장  이 남아 그 때 일을 기억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은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평생 남습니다. 너무 깊은 자국을 남겨서 지울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제 아버님께는 아마도 6.25 전쟁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아버님의 생애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북한에 남겨두고 온 7남매는 아버님의 영혼에 너무 큰 상처로 남아 세상의 그 어떤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버님, 97세까지 살아오시는 동안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여쭌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일을 말씀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그런 사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내 인생에 가장 슬펐던 일은.....>, 혹은 <내 인생에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이라고 시작되는 이야기 거리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혹은 <내 인생에 가장 기뻤던 일은...>이라고 시작되는 이야기도 있을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일이 우리 평생에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이며, 가장 기쁜 일이며,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입니까? 무엇이 우리 생애에 가장 소중한 것입니까?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일, 잊을 수 없는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데오빌로는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아마도 그는 <내가 로마 귀족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대답하거나, 아니면 <내가 군대 장군이 된 것>이라고 대답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인생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데오빌로가 살던 곳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진 팔레스틴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다녀온 한 사람이 데오빌로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한 남자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 그가 몇 일 후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의 추종자들이 그에 대해 사방으로 다니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나 놀랍게 사람들 틈으로 퍼져 들어가는지 유대 당국이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옥에 가두고 핍박을 해도 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데오빌로는 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또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었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예수>인데, 그 뜻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평소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능력이 있어서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그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와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유인이었고,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고, 아무 희망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뿐만 아니라, 그는 로마 제국보다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선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데오빌로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도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양 있는 로마 귀족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하고, 그 앞에서 아부했습니다. 그는 상당한 힘과 재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의 마음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부귀영화에 질렸습니다. 검투 경기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로마식 쾌락도 식상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신비종교에 관심을 가졌으나,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추악함, 가증함, 위선, 죄악에 질려 있었습니다.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인가!> 

예수, 그 선생님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능력자였으나, 그 힘을 이용하여 황제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기가 있었으나 군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세상을 휘어잡을 수 있었으나, 천국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신비한 능력이라면 로마 제국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력과 폭력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놀랍게도 그는 사랑을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인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래, 예수라는 분에 대해 더 알아보자. 그 분께 인생을 걸어보자. 그 분을 의지하자....> 그의 마음은 점점 예수께 기울었고, 어느 새 멀리 떨어진 팔레스틴에서 일어난 일이 이제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인생 안에서 일어난 일이 되었습니다. 예수 사건은 데오빌로에게 인생 최대의 사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하여 데오빌로에게 보낸 누가는 <저 멀리 팔레스틴에서 일어나 사실>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앞 필요가 없는 사실>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누가의 삶에, 데오빌로의 인생 한복판에 이루어진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도, 데오빌로도 예수님의 이야기에 이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누가 데오빌로에게 <그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는 더 이상 <로마 귀족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름 <데오빌로>는 <데오스>와 <필레오>가 합쳐서 된 말로서 그 뜻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마음에 가장 소중한 분으로 모신 이후,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오늘의 데오빌로입니다. 우리 안에도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고, 그 예수님이 우리 생애 목표가 되셨고, 우리 인생의 근거이며, 목적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다가도 예수님의 일이라면 벌떡 일어섭니다. 우리도 <지금은 제가 바쁘니, 나중에 다시 오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위한 일로 달려갑니다. 우리도 <그건 나중에 사고 먼저 그 선교지를 돕자>라고 말하면서 물질을 예수님의 뜻대로 사용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이끌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 사건은 평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2천년 전 팔레스틴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탄생과 삶, 말씀과 행하신 일, 십자가와 부활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보배가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가장 진한 자국을 남긴 것들도 가장 소중한 것들도 <진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삶에 들어오면 그 자리를 물려주고 두 번째 자리로 내려앉게 됩니다. 그 후 새로 들어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가장 중요한 것>을 통하여 두 번째로 중요하고, 소중하고, 가슴아픈 것들이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가 합격 사실을 확인하고 기뻐 뛰며 돌아오는 길에 날치기를 당해 돈을 잃었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하겠습니까? 상당한 거금을 잃었다고 해도 그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돈이 비록 귀하지만, 사법시험 합격이란 최고의 선물을 얻었기에 그는 돈을 잃은 아픔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은 그에게 최고로 중요한 사건이 되었고, 돈을 두 번째 자리로 밀려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사법시험에 떨어지고 오는 길에 그랬다면 그는 술이나 먹든지,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에 의해 두 번째의 것들이 통제되고 다스림을 받는 원리>는 제 아버님의 삶에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제 아버님에게 가장 진한 자국은 전쟁의 상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그 전쟁의 상처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지 않으셨습니다. 꿋꿋하게 살아남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아버님께 진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님께 가장 소중한 것, 아버님 인생에 전쟁보다 더 진한 자국을 남긴 것은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전쟁이 죽음의 이야기라면 예수님의 이야기는 생명 이야기입니다. 전쟁이 비극이라면 예수님의 이야기는 기쁨입니다. 전쟁이 갈라짐이라면 예수님의 이야기는 하나됨입니다. 전쟁이 고통이라면 예수님의 이야기를 싸맴입니다. 전쟁이 <너 죽어!>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더 부드러우나 강한 음성으로 <내가 너를 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버님 인생에 최고였기에, 가장 소중했기에, 가장 진한 자국을 남겼기에 그 다음으로 진한 자국을 남긴 전쟁을 극복하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이야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가장 소중한 이야기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남기는 자국이 그 어떤 사고, 어떤 실패, 그 어떤 상실, 그 어떤 고통이 남기는 자국보다 더 진한 자국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장 기쁜 이야기가 되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의 고통을 사라지게 만들길 원합니다. 예수님만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염려, 근심이 사라지는 복을 얻길 원합니다. 이제 울지 마십시오. 슬퍼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이 채워지고 극복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야기가 최고로 소중한 것이 되어 세상의 그 어떤 귀한 것들에 유혹 당하지 않길 원합니다. 혹시 우리가 상상한 앞의 이야기에서 데오빌로를 찾아온 사람들이 황제의 초대장을 가져온 것이라면 어떨까요? 황제가 높은 자리를 준다는 명령서를 가져왔다면 어떨까요?  전에 같으면 황송해서 바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황제의 곁에 앉아 음탕한 춤을 즐기고, 잔인한 검투 경기를 보면서, 진한 포도주에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사양할 수 있습니다. <황제 폐하, 저는 이제 조용하게 살길 원합니다. 호의에 감사 드리면서, 이 목가적인 삶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시길 청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조용히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불타 오르고, 그는 예수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할 것입니다. 로마 제국을 위한 수고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로마의 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귀족의 팔찌와 반지 대신에 천국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예수님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깜짝 놀랄 결심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의사로서 출세의 유혹을 버리고 목사가 된 분이 있습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법관의 길을 버리고 선교사가 된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이끌리는 삶을 사는 분들은 아름답습니다. 토요일 밤 동료 의사들의 술자리를 거절하고 다음 날 주일 예배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그 날 밤 죽어 가는 한 청년을 살린 믿음의 의사가 부산에 계십니다. 그 날 밤 극적으로 생명을 건진 청년은 다름 아닌 우리 윤성호 집사님, 박정자 집사님의 아들 윤진우 군입니다. 윤진우 군은 토요일 밤 12시부터 주일 새벽까지 수술을 받았고, 생명을 건졌습니다. 모든 의사가 술에 취해 수술이 불가능하던 그 시간, 예수님께 삶이 이끌리던 한 의사 선생님에 의해 한 생명이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직업을 선택하고, 사람을 만나고, 미래를 결정하고, 시간과 돈을 사용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님께 이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신앙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떤 일을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결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데오빌로와 누가처럼 하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소중한 분이라면 그 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고자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누가는 예수님께 대해 자세히 미루어 살폈습니다. 

3절을 보세요.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훑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적어 데오빌로도 알게 하려고 편지로 보냈습니다. 

4절을 보면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이미 데오빌로가 예수님을 알고 있지만, 더 확실하게 알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복음이 확산되는 이야기를 더 적어 보냈는데, 그게 <사도행전>입니다. 

<날마다 더 풍성히, 더 확실하게 예수님을 알아 가는 것>, 이 일에 우리도 힘쓰길 원합니다. 이미 예수님을 알지만, 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이끌리길 원합니다. 예수님께 사로잡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정확히, 더 풍성히 체험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더 깊이 기도하고, 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데오빌로가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듯이, 우리도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더 많이 알게 되길 기원합니다. 

<오, 예수님, 저와 저희 가정과, 저희 교회가 예수님 당신께 사로잡혀서, 이끌림 받으면서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더 풍성히 임하시길 기원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삶에서도 이루어지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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