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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하나님의 일을 이룬 십자가 (마 9: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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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을 이룬 십자가 (마 9:21-23) 
 
 
“21.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 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 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 9:21-23) 

I. 본문해설 

본문은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사도 베드로에게 그 유명한 신앙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받은 사건,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사도로 삼으신 이후로 이 시점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예수님이 그냥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을 뿐이었지만 이 시점을 계기로 해서 예수님은 당신의 고난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점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생애, 예수님의 공적인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 시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부터 시작해서 신약을 천천히 읽어보면 성경의 압도적인 주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서의 약 사분의일 이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사건들로 채워져 있고, 이후에 기록된 사도행전과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이 어떻게 전해졌고, 어떻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며 교회 안에서 어떻게 그것들이 받아들여지고 거절되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이 주제는 신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이 짐승을 희생하여 그 가죽을 벗겨 아담과 하와의 겉옷을 삼으신 그때로부터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지정하신 희생의 제물이 필요하고 그것은 제사 속에 구체적인 형태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II. 최고의 신앙고백 

본문에는 최고의 신앙고백이 등장합니다. 원래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하는 장소는 수많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와서 제사를 드리고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던 다신 숭배로 유명한 장소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에게 역사상 최고의 신앙고백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최소한 세 가지의 중요한 신학적인 개념들을 내포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A.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첫째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는 원래 희랍어로 ‘크리스토스’라고 하는 말을 그냥 우리말로 음역을 한 것입니다. ‘크리스토스’라고 하는 이 명사는 ‘크리오’라고 하는 동사 즉, ‘붓다’라는 동사에서 온 피동 남성 단수명사입니다. 그래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마태가 이것을 기록하였을 때 이것을 말하거나 듣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림은 구약의 메시아의 그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야라는 말을 당시 통용어인 희랍어로 옮긴 것이 그리스도스였기 때문입니다. ‘붓다’라는 의미를 가진 ‘맛사’의 피동 남성 분사 단수가 바로 메시야입니다.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나라에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답게 운영해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정하신 직임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왕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기 위해서 주님이 세우신 직분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말씀의 전달자인 선지자입니다. 셋째는 죄 있는 백성들이 완전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그 일을 도와주는 제사장입니다. 각각 다른 일들을 위해 부름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귀한 통치 방법입니다. 이 삼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아에 대한 그림 안에서 통합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도 바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모든 기능들을 통합한 신적인 존재로서의 메시야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구약에서 우리에게 예언하였던 이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교를 신봉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잘못된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방의 모든 침략을 막아줄 것이고, 탁월한 지혜와 지도력 그리고 기적을 베푸는 놀라운 신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최강의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하는 왜곡된 메시야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예수님을 핍박한 이유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꿈꾸던 메시아처럼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라고 고백을 했을 때도 그 고백은 참 맞는 고백이었고 아름다운 고백이었지만 고백하는 베드로 속에도 이미 잘못된 메시야 사상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는 그리스도시라’고 하는 이 신앙의 고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만 하시고 상관하지 않으시는 단절된 신도 아니시고 법칙으로 세계를 다스리는 철학적인 신도 아닌 오히려 지금도 살아계셔서 인간의 삶속에 오시어 당신의 은혜와 아름다운 모든 속성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역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사람의 인격이 아닌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본질상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연약한 그리스도의 육신 너머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고 하는 것은 아주 놀라운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기뻐하셨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바로 이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신앙의 고백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 지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신약의 교회를 세우기로 한 예언이 바로 베드로의 이 훌륭한 신앙 고백이 있은 직후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가 영영토록 그들의 마음에 새겨야 할 기본 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B. 십자가의 죽음을 가르치심 

예수님은 이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이 있은 직후에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전에도 고난에 관해 가르치셨지만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미움을 당하여 모함을 받으실 것과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배반을 당하고 죽을 것을 말씀하심으로서 십자가의 죽음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자들에게 그려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이 이루실 일들을 이루시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며 이것의 증인이 되어서 대대에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그리하신 것입니다. 


III. 최고의 책망 받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간절히 말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에게 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주님 죽으시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 한 몸 던져 당신을 보호해 드릴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A. 사단아 물러가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막아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책망을 내리셨습니다. 최고의 신앙고백 이후에 그는 즉시 최고의 책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외치셨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실제로 사단이 베드로에게 역사하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베드로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위하는 생각이 사단에게 도움을 주는 생각이었다고 해석을 합니다. 이 해석이 어울리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B.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차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고 책망하셨을 때 이렇게 듣기를 원하셨던 대상은 사단이라기보다는 사실 베드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하는 사람의 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내가 대신 고난을 받더라고 주님은 오래 사셔야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어떤 일보다도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세상의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고 있는 때였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사단에게 도움을 주는 생각이었기에 준엄하게 책망을 하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기로 결심하셨던 것입니다. 

도대체 기독교에 있어서 십자가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자신이 대가를 치를 수 없는 무한한 죄책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창조세계에 가득했던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의 충만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영적인 모든 생명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내버려 두셨더라면 인간은 영원히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참한 존재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세상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눈뜨게 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지, 왜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더욱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살아나신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 위에 기독교의 터를 세우기를 원했는지를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신앙의 고백을 기뻐하셨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을 자신의 삶 속에서 온전히 실현하도록 부름을 받은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알고 그리스도를 위해 더 많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IV. 결론 

그러므로 오늘 기억하십시요. 십자가가 작아 보이면 이미 여러분 마음속에 세상이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러분들에게 크게 보일 때 세상은 작아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여러분들은 예수님처럼 이 세상을 이긴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감격에 다시 한 번 굳게 붙들려 그 십자가 아래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고 피투성이가 된 체 죽어 가시는 그리스도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몹쓸 죄인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보면서 그 몹쓸 죄인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용서하고 자기의 아들은 징계하셨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 묻고 우리에게 지워주신 우리의 삶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 끝 날까지 충성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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