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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마지막 만찬 (마 26:17-19, 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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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만찬 (마 26:17-19, 26-29)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1926년 스위스에서 세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다른 두 자매를 바라보며 일찍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그녀는 ‘진정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평생 놓지 않았습니다. 어려서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일찍부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 그 사람은 이웃의 아이들을 불러,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경험이 귀한 기억으로 남아 이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되고,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사람들이 지옥같은 수용소 벽에 수없이 그려 놓은 그림들을 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됩니다. 

이 후에 정신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인 미국인 남편을 만나고, ... 이 여자는 결국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20세기 100대 사상가’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 까지 합니다. 이 사람은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일으키는데, 수많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죽음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어떻게 죽느냐는 삶을 의미있게 완성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말년에는 온몸이 마비되어 죽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 이 여자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책을 씁니다. 

그때 쓴 책, 『생의 수레바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고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그녀는 2004년 8월 24일 눈을 감았는데, 마지막 저서인, 『인생 수업』을 비롯해서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있어라』라는 책들을 남겼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려고 할까요? 나도 여러 차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영상에 담는데, 재미있고 유머스럽게, 그러면서도 복음의 메시지가 담긴 인사를 남겨볼까? 아니면 어떤 퍼포먼스, 특별히 연출된 어떤 작업이나 행위를 통해 내 가족과 많은 이들에게 인상에 남는 교훈을 남겨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부터 한 주간 고난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사건을 기억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될지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여러 번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특별한 퍼포먼스(계획된 행위)를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 이 만찬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는 마지막 만찬이었습니다(29절). 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은 어떤 만찬이었습니까? 

이 만찬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 이 만찬은 유월절 만찬이었습니다. 

(17절)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지키는 가장 중요한 명절임.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이집트)에서 탈출하면서 비로소 민족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첫 태생이면 모두 다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마지막 재앙이 내리던 날 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의 가정에는 어린 양의 피를 우슬초에 적셔 인방과 문설주에 뿌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이 모든 첫 태생을 다 죽일 때, 문의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가 있으면 그냥 통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유월’, 즉 패스오버(Passover), '지나간다‘는 의미의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죽음이 통과했던 역사가 구약의 역사입니다. - 이 유월절에 유대인들은 누룩이 없는 떡(빵)과 포도주를 먹습니다. 왜 누룩이 없는 떡을 먹었느냐 하면, 누룩을 부풀릴 시간도 없이 탈출해야 했던 그 긴박한 상황을 되새기며 이 떡(무교병)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무교절’은 유월절과 같은 절기인데, ‘누룩없는 떡을 먹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유월절의 핵심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출애굽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죽음이 통과했던 날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날에 예수님은 어린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는 다는 것을 교훈하시고 싶어하신 것입니다. 


2. 마지막 만찬은 준비된 만찬이었습니다. 

(18절)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이렇게 어린 양이신 예수님 자신이 이제 제자들과 함께 뜻 깊은 유월절 만찬을 갖고 싶어하셨는데, 그 만찬을 할 장소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어디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할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성 안에 들어가면 아무개가 있다”, 본문의 “성안 아무에게 가서”라는 말은 ‘성 안의 아무나에게’라는 뜻이 아니라 벌써 정해진 어떤 특별한 사람인데, 그 이름을 밝히지 않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 안에 가면 아무개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우리 주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당신 집에서 지킬것이라고 말하라’ 

이 말씀에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아무개’라는 사람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은데,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사람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제자들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만나서 미리 대화가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주님이 예지력으로 말씀하시고, 그는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아 승낙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경우에도 그 사람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고, 또 어떤 경험과 체험을 했는지 알 수 없어도 그런 결심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든지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의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름이 없어도, 유명하지 않아도, 주님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이라든지, 생각지도 않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메고 가게 되어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한 구레네 시몬이라든지, 예수님의 주변에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떤 일을 한 사람....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금 여기에 두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현재의 그 직업을 가지게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런 자리에 앉게 하신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시기 위함이 아닌 줄 누가 알겠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그 사람이 가진 큰 집은 주님의 마지막 만찬에 쓰이려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이 만찬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만찬이었습니다. 

1) 생명의 떡인 나를 먹으라 (26절)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상에 있었던 누룩 없는 떡을 집으셔서 먼저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에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종족을 보호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 구원해 주셨던가를 회상하며 먹던 바로 그 누룩없는 떡, 바로 그 떡을 예수님께서 축복하시고 떼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떡은 예수님께서 굳이 떼어 주시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먹을 수 있는 떡입니다. 그 전까지도 늘 그렇게 먹었음.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는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들의 배고픔 때문에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예수께서는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떼어 주게 하셨습니다. 그 기적을 베푸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관심은 생명의 떡인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고 아무리 마셔도 목마른 인생, 무엇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생,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것에 다다를 수 없는 인생, 이것이 너희의 삶이다. 너희가 밥을 먹으면 육신의 배는 부를지 모르지만 영혼은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가 너희의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떡을 주었지만 너희가 찾아야 할 떡은 바로 생명의 떡인 나다”, 

더 나가 봅시다. “이 떡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나를 먹으라”는 것인데, 예수님은 왜 “나를 믿으라”고 하시지 않고 “나를 먹으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은 우리의 동양적인 개념과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먹을 수 있습니까? 이 점에서 우리의 마음이 좀 불편해집니다. 그냥 “예수님을 잘 섬겨라, 잘 믿어라”고 하면 쉬운데 예수를 먹으라 하니 이상함.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갈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니까 잘 안 믿어지고, 죄를 안 지으려지까 더 짓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믿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그냥 믿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안 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인 나를 먹으라’고 하신 뜻은 무엇일까요? 뒤로 미룹니다. 

2) 언약의 피를 마시라 

(27~28절)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떡을 주신 후에 예수님은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을 받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포도주를 마시고 있지만 이것은 내 피다. 내 피를 마시라, 이 피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흘린 피, 곧 언약의 피다”, 여기서도 모든 사람을 위해 흘리신 피, 곧 언약의 피를 ‘믿으라’고 하시지 않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 받을 때, 오해 받았던 것이 여럿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만나며, ‘형제님, 자매님’하면서 만나지, 그들의 모임에는 살을 나눠 먹고, 피를 나눠 마신다고 하니, 이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흡혈귀나 식인종처럼 인식했을 것입니다(여러분도 흡혈귀나 식인종?). 

왜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고 하시지 않고 ‘나를 먹으라’, ‘나를 마시라’고 하셨을까요? 요6:56에 해답이 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먹고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살이 여러분의 생명의 떡이 되고, 예수님의 피가 여러분의 영혼에 뿌려지고 그 피를 여러분이 마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4. 성만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

도 바울은 예수님의 12제자에 속한 사람이 아니어서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인 성만찬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시를 받아 고전11:26에서 성만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주의 죽으심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성만찬은 이 십자가를 주님이 오실 때가지 전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만찬에 관해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았던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만찬이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내가 먹고 마심으로써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동거하고 한 몸을 이루는 것인데, 이것은 곧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성만찬을 자랑하라, 십자가를 선포하라, 십자가를 외치라, 십자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증인의 삶이 결여된 성만찬을 한다면 이것은 형식이 되기가 아주 쉬운 위험한 일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증언, 십자가에 대한 증거가 없는 성만찬은 죄입니다. 

오늘 우리가 고난주간 성만찬 예식을 거행할텐데,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이 내 안에 지금 거하고 계시다는 이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묵상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과 동행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시간 어린아이처럼 그분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먹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먹으라는 말은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셔야 합니다. 오늘 성만찬에 참여하는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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