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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한 사람”을 없애려 했으나 그 “한 사람”으로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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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없애려 했으나 그 “한 사람”으로 모두가 살다! (단 6:1-28)
 
 
1. “한 사람”

정말 복잡하고 거대한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 우리 자신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억지가 버젓이 통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든 바르게 살려던 발버둥이 바보짓처럼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만 같은 일들을 뻔뻔스럽게 행하는 이들을 보면, 기운이 빠질 때도 있습니다. 정의와 상식은커녕 신앙으로 살려고 애쓰는 것이 때로 정말 어리석게 느껴질 때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나 한 사람으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여러분, 한 사람의 힘, 한 사람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커서 때로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중 1차 반환분 75권이 지난 13일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방치돼 있던 외규장각 의궤가 반환되기까지 꼭 기억해할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국내에 처음 알리고, 그 연구에 평생을 바친 올해 83세의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입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1978년 도서관 창고에 방치돼 있던 <조선왕실의궤>를 처음 찾은 박 박사는 그것이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임을 확인한 후 국내에 알렸습니다. 그로 인해 도서관에서 쫓겨나는 서러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기에 매달려 10년 만에 의궤 297책을 모두 번역했으며, 나아가 의궤가 다시 우리나라에 돌아오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이번에 의궤가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된 것이죠.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박병선 박사가 보여준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몸무게 45kg의 가냘픈 유색인종으로서 혼자 당시 세계 인구의 2/3를 지배하던 거대한 영국 제국을 굴복시켰던 “간디” 역시 그 경우입니다. 

한 사람의 힘, 그것은 세상 역사를 바꾸거나, 인류를 유익하게 하거나, 나아가 모두를 살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한 사람”의 가치를 안 사람들

갈대아(바벨론)의 벨 사살 왕이 살해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그 나라를 차지했습니다(단5:31). 다리오는 역사적으로 키악사레스 2세(CyaxaresⅡ)라고 불리는 사람으로서 메대-페르시아 연합국의 왕이었습니다. 이 다리오는 지방 장관 백이십 명을 세워서 나라를 다스리게 했고, 그들 위에 총리 세 사람을 세워, 지방 장관들이 총리들에게 업무를 보고하게 하는 행정 형식을 택했습니다. 다니엘은 세 명의 총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다니엘의 나이는 84세로서 고령이었지요. 

그런데, 다니엘은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총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다리오는 그를 자신의 다음인 ‘제2인자’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총리들과 지방 장관들이 다니엘이 제2인자에 오르는 일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메대-페르시아 국이 여러 민족의 혼합체여서 각 민족들 간에 끊임없는 알력과 세력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며, 메대인들로서는 자기 민족이 아닌 이방민족, 그것도 소수민족인 유대 출신이 제국의 2인자가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일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하여 먼저 다니엘의 그동안의 국정경력과 개인생활을 살폈습니다. 개인적인 허물과 국정에서 잘못 처리한 것을 찾아내려한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다니엘에게서 그 어떤 허물이나 실책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고 합니다. 

다니엘에게는 업무상의 태만이나 소홀함이나 부주의나 작은 실수도 없었다는 말이고, 그래서 어떤 뒷조사를 하고 미행을 붙이고 은밀한 수작을 벌려도 고발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말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자는 그가 믿는 신의 법을 문제 삼지 않고는, 고발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5).” 개인이나 가정생활, 그리고 업무 면에서 도무지 약점이나 허물이나 실수를 찾을 수 없는 사람, 이것이 다니엘을 제거하려던 정적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 대해서도 이런 이야기가 들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결론 끝에 다니엘의 정적들이 찾은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신앙과 상충되는 어떤 문제를 만들어 그로 하여금 그 올무에 걸리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신앙이 특출한 다니엘이 하루 세 번 빼먹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이것을 이용하여 그를 제거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런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운 총리들과 방백들이 왕에게 나아가서 아뢰었습니다.
“다리오 왕, 만세 만세 만만세! 이 나라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들이 모두 의논하여 왕께 법을 하나 만드시기를 주청하옵나이다. 그것은 하나의 금령으로서 그것을 정하셔서 전국에 내려 주시옵소서. 그 법은 앞으로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그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왕이시여, 이 금령을 세우시고 그 문서에 왕의 도장을 찍으셔서 메대와 페르시아의 바꾸거나 변할 수 없는 법을 따라서 절대로 그것을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6b~8).” 이러한 주청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메대-페르시아 제국이 바벨론 제국을 없애고 세운 나라인데다가, 메대와 페르시아라는 두 민족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로서 두 민족 간의 갈등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왕권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나라의 리더십을 세우고, 제국 내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로 품는 데는 이만한 처방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리오 왕은 그들의 주청을 좋게 여겨 금령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금령은 왜 만들어진 것입니까? 그것은 다니엘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하여 제국의 법이 하나 만들어진 것이죠. 그리고 이 법을 제정한 사람들 뒤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기도하는 한 사람, 그리고 그 한 사람이 거대한 세상 나라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지난 날, 즉 느부갓네살과 벨 사살 왕의 통치 기간 동안, 기도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하는지 입증한 바 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로서 사람이 풀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했으며, 제국 내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사탄이 이런 사람을 그대로 버려두겠습니까? 그래서 사탄은 다리오 왕 재임 하에서 다니엘의 영향력을 막기 위하여 이러한 음모를 꾸민 것이죠. 

그렇게 해서 그들은 30일 동안 기도를 금지하는 법령을 공표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금령 문서에 도장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다락방은 예루살렘 쪽으로 창문이 나 있었습니다. 거기서 다니엘은 늘 하듯이, 하루 세 번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무리들은 곧바로 왕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먼저 왕에게 이번에 내린 금령을 상기시켰습니다. “왕이여, 왕께서 이미 금령에 도장을 찍으시고,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지기’로 하셨지요? 그렇지요?” 왕이 대답했습니다. “그 일은 확실하여 고칠 수 없다. 그것은 메데와 페르시아의 법을 따라 확정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왕이시여, 유다 포로 중 한 사람인 다니엘이 왕을 무시하고, 또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무시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고발을 듣는 순간, 왕은 ‘아차’ 싶었습니다. 자신이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자들의 음모와 술수에 걸려든 것을 깨달은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민족과 나라와 왕의 권위로 세운 법을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몹시 괴로워하는 한편, 다니엘을 구하려고 마음을 쓰며 해가 질 때까지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이 왕을 은근히 협박했습니다. “임금님, 메대와 페르시아의 금령이나 법률은 한 번 세우면,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15).” 

그래서 왕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을 가두어 놓고 사형수들을 거기 들어가게 하여 사자들의 밥이 되게 하는 잔인한 사형법이 시행된 것입니다. 왕은 그렇게 명령해 놓고서도 안타까웠든지 이미 굴속으로 들어간 다니엘에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항상 섬기는 그대의 하나님이 그대를 구하여 주시기를 바라오(16).” 그러고 나서 군인들이 큰 돌을 굴려다가 굴 입구를 막았고, 왕은 그 위에 자기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을 찍어 봉인했습니다.

그 후, 왕은 궁으로 돌아가서 그 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즐거운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충직한 신하 한 사람을 잃은 슬픔이 컸기 때문이죠.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왕은 즉시 사자 굴로 갔습니다. 굴 가까이에 이르러 왕은 슬픈 목소리로 외치며 다니엘에게 물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은 들으시오. 

그대가 늘 섬기는 그대의 하나님이 그대를 사자들로부터 구해 주셨소?(20)” 아직도 제 배를 충분히 채우지 못한 사자들이 으르렁 거릴지는 몰라도 사람의 목소리, 다니엘의 목소리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안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왕이시여, 만수무강하옵소서! 저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제게는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왕께 해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21,22).” 다니엘의 목소리와 생존을 확인한 왕은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리도록 명했습니다. 그가 자기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게 아무런 허물이 없었기에 그에게서 아무런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한 왕은 명령을 내려서 다니엘을 헐뜯는 사람들을 데려오게 하고, 그들과 그 자식들과 아내들을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리오 왕은 전국에 사는 민족과 언어가 다른 뭇 백성에게 조서를 내렸습니다.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25~27).” 다니엘의 굳은 신앙 절개와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다리오 왕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조서를 전국에 반포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의로운 신앙 행위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빛나며, 모든 어려움과 시련 가운데서 승리하는 원동력이 되며,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이 다스리는 동안과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다스리는 동안까지 장수하면서 총리를 역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탄과 그 추종자들은 한 사람의 하나님의 사람, 한 사람의 경건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하는 사람을 제거하여 위하여 국가를 동원하고 법까지 동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다니엘 한 사람이 자신들에게 위협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누군가가 주목하는 한 사람입니까? 적들이 견제하는 한 사람입니까? 하나님 나라와 복음과 주님의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은 아닙니까? 사탄이 무시하고, 악한 영들의 세계가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소중한 한 사람, 교회에 소중한 한 사람, 이 땅에, 아님 여러분의 주변과 직장에서 꼭 필요한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3. 한 사람으로 모두를 제거할 수 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주목할 한 사람은 사실 다니엘이 아닙니다. 아시다 시피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신 날이며, 주님의 고난은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약의 인물인 다니엘은 오실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이었습니다. 즉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란 말이죠. 이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 그리고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다니엘에게 일어났던 고난,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부터 8절은 주님의 고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예수님은 기둥에 두 손이 묶인 채로 매를 맞으셨습니다. 당시 채찍들은 그 끝이 몇 갈래로 갈라져 있고, 그 갈라진 끝에는 납덩어리와 뼛조각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형 집행인들이 번갈아가며 그 채찍을 휘두르면 “쉬익” 바람소리를 내면서 채찍은 예수님의 등, 어깨, 허벅지, 팔, 정강이 등을 사정없이 내려쳤습니다. 납덩어리들은 피부 깊숙이 박혔고 그것을 떼는 순간 살점들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쏟아졌습니다. 이 가혹한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이런 침묵이 집행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더욱 심하게 매질을 해댔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온 몸이 탈진을 하여 다리는 마구 휘청거렸는데, 예수님의 몸을 기둥에 묶어 넘어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던 중 형집행인들은 명령을 받아 죽기 직전에 채찍질을 멈추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붉은 망토가 예수님의 어깨에 걸쳐지고, 가시로 엮어 만든 면류관이 머리에 사정없이 씌워졌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왕이라고 한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유대인들을 대변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모멸감이 들 말장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며 그 앞에 절을 하는가 하면, 피 흘리는 얼굴과 머리를 주먹으로 치면서 “만세, 유대인의 왕이시여”라고 소리치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없으셨습니다. 더욱 의기양양해진 조롱꾼들은 그의 얼굴에 마구 침을 뱉었고, 채찍과 조롱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빌라도 앞에 가서 외쳤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란 말이오!” 무리들의 강력한 요구를 못이긴 빌라도는 예수님께 사형언도를 내렸습니다. 이미 상처와 함께 말라붙어버린 망토가 예수님의 몸에서 벗겨지며 다시금 상처에서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어깨 위에 십자가의 가로 기둥이 지워졌습니다. 로마의 관습에 따라 세로 기둥은 이미 갈보리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고, 약 60kg 정도 되는 십자가의 가로 기둥은 희생자에 의해 손수 운반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맨발로 빌라도의 집무실에서 골고다언덕까지 연결된 약 1.5㎞ 정도의 험한 경사 길을 오르셨는데, 자꾸만 땅에 쓰러지셨습니다. 채찍에 맞은 상처와 고통으로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 겨우 겨우 발걸음을 떼셨던 것이죠. 

그리고 십자가의 가로 기둥을 지고 가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미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어깨 위에 그 가로 기둥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가 없어서 자꾸만 예수님의 어깨에서 미끄러졌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어깨와 등의 살가죽이 벗겨지고 또다시 상처가 터져 피가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몸을 가누지 못하여 넘어지기를 몇 차례 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병사들은 예수님이 갈보리 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까봐 걱정하여 마침 길에서 구경하고 있던 구레네 시몬을 잡아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했습니다.

갈보리산 위에서 예수님은 벌거벗겨지고, 로마 군인들은 유치한 장난질로 그의 겉옷을 제비뽑아 나누었습니다. 온갖 고통들이 수백만 개의 바늘처럼 온 신경조직을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등과 다리와 정강이에 생긴 상처들은 먼지와 핏덩이로 엉겨 붙었습니다. 예수님의 양 어깨와 팔이 십자가의 가로 기둥 위에 놓이고 형 집행인들은 예수님의 몸에 못 박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긴 사각 못을 예수님의 손바닥 우묵한 곳에 박기 시작했습니다. 

한 손, 그리고 다른 손에 큰 망치를 휘둘러 사정없이 못을 박았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여전히 말이 없으셨지만, 그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신경중추는 거의 손상되었지만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아서, 갑자기 그의 엄지손가락이 손바닥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근육 경련이 일어난 것이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고통이 중추 신경계의 손상으로 일어났습니다. 인체의 각 부분이 이 무시무시한 고통을 전달받아 전율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온 몸은 고통으로 크게 떨렸습니다. 

형 집행인들은 십자가의 가로 기둥을 2미터가 넘는 세로 기둥에 달아야 했습니다. 두 손에 못이 박혀 가로 기둥에 고정된 예수님과 가로 기둥을 끌어올려 세로 기둥에 고정을 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무릎은 굽혀지고 왼발의 발바닥이 나무위에 평평하게 놓여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못을 박았습니다. 왼 발 위에 오른발을 올려놓고 겹쳐서 못질을 한 것이죠.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한 집행인들이 마취제인 쓸개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어 마시게 했으나 예수님은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의 팔 근육은 몹시 위축되어 경련을 시작하고, 손가락도 안쪽을 향하여 날카롭게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근육 경련과 강직 현상이 정강이와 허벅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배와 목의 근육들도 단단히 강직되고 호흡근들도 강직되었습니다. 짧은 숨이 휘익 소리를 내며 들어가지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천식으로 고통 받는 환자처럼 호흡이 잘 안 되어서 헐떡거리신 것이죠. 예수님의 창백한 얼굴은 자주 빛으로 변하고 거의 질식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폐에는 공기가 가득 차 있지만 비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숨을 쉬기 위하여 몸을 조금 들어 올려 가슴 근육을 완화시켜 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러나 곧 내려앉아 버리고 또다시 힘겹게 몸을 치켜 올리고… 그렇게 겨우 겨우 한 숨 한 숨 쉬면서 여섯 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상처들이 더욱 상하기 시작하고 파리 떼들이 예수님의 주위를 붕붕 거리며 날아다녔습니다. 그렇게 고통은 극대화 되었고, 마침내 마지막 고통의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막15:34)” 그러고서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고 외치신 후(눅23:46), 머리가 천천히 앞으로 굽어지고 턱이 앞가슴까지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숨을 멈추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그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고통 역시 너무나 극심했습니다. 영적인 고통이란 바로 버림받음의 고통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주로 오셨으나 그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려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 환호하던 바로 그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소리치는 자들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과 제자들로부터 철저히 버려지셨습니다. 저주하면서 맹세까지 해 가면서 자신을 부인하는 소리를 바로 그 곁에서 들어야했습니다. 

그때의 주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버렸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마저도 인류의 죄짐을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는 그만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가장 절망적인 영혼의 고통 속에서의 부르짖음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심장은 파열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이러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수님에게 가해진 이 고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한 사람으로 모두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이기 때문이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고,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기쁨을 주고, 없어지지 않는 천국을 주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온 세상, 모든 인류가 사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4. 그 “한 사람”으로 살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희생과 수고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도 보았습니다. 

➊ 메대-페르시아 제국의 거의 대부분의 관료들이 총동원되어 한 사람 다니엘을 제거하려고 법령을 세웠습니다. 신실한 한 사람의 하나님의 사람이 지옥을 흔들고 지옥의 권세를 깨트릴 수 있기에 그들은 바벨론 정부를 동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지옥을 흔들고 사탄의 권세를 멸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자 굴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➋ 사탄과 그에게 속한 자들이 예수님을 없애려 했습니다. 아니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사실 여러분 예수님에게 가해진 십자가 고난이 참혹하면 할수록 그것은 십자가를 포기하려는 유혹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침묵과 떠나심은 더더욱 비참한 것이었기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피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길이 없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니엘의 사자 굴보다 더한 십자가로 망설임 없이 나아간 것입니다. 

➌ 만약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며, 성령이 주시는 놀라운 삶을 세상에 알리는 사람이라면 세상은 여러분 한 사람을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84세의 노인 다니엘을 가만 두지 않았던 그들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주와 복음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입니다.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와 복음을 거절하고 그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을 피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고 죽을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시작되는 오늘, 다니엘처럼, 우리 주님처럼 주를 위하여 여러분의 전부를 드리고 사자굴이나 죽음의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고난주간을 맞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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