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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전도를 하지 않는가? (막 1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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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도를 하지 않는가? (막 16:14-17)  

 
우리가 애창하는 복음성가 중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란 찬양이 있습니다.(설경욱 작사. 작곡)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 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너무도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2천 년 전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지상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 50억의 인구 가운데 30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왜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단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지상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술로 찬양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몸과 마음은 영 아니었습니다.

커티스 허트슨 목사님은 미국 교회에서 한 예를 듭니다.
리 로버슨 목사는 하이랜드 파크 침례교회에서 40년 넘게 목회했습니다. 
40년 동안 이 교회에서 회심하고 세례 받는 사람이 6만 명이 넘습니다. 
1년에 평균 1,500명이 넘는 숫자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리 로버슨 목사가 이런 얘기를 하더랍니다. 
“하이랜드 파크 침례교회 교인 가운데 한 영혼이라도 그리스도께 인도한 사람은 전교인 중 5퍼센트도 되지 않을 겁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여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전도하는 교회 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담임목사의 평가에 따르면, 교인의 95퍼센트는 단 한 영혼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않았답니다.
여러분은 한 영혼을 구원한 5%에 속합니까 아니면 한 영혼도 구원하지 못한 95%에 속합니까?

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를 하지 않습니까? 
그 대답 또한 간단합니다. 
전도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일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고, 돈을 쓰며, 정열을 쏟습니다. 
우리는 쓸 것 안 쓰고, 절약하여 10년 이상 매달 상당금액을 주택부금으로 붓습니다.

왜냐하면 집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밤중이라도 자식이 몸이 아프면 들쳐업고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귀찮다거나 돈이 얼마나 들어갈 것이라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 그러면 왜 전도가 중요합니까?

1) 전도가 중요한 것은 전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지옥가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사람이 상상해서 만들어낸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실재이며, 말 그대로 존재하는 곳, 물리적인 곳, 영원한 아픔이 있는 곳,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는 곳, 고뇌가 있는 곳, 과거의 기억이 아픔을 더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에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으나 거부했던 많은 기회들을 정말 아쉽게, 서럽게 떠올릴 것입니다.

2) 전도가 중요한 것은 영혼의 가치 때문입니다.

한 프랑스 의사가 인간의 영혼의 무게가 얼마인지 알아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의 환자를 매우 섬세한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고, 다시 환자가 죽었을 때 무게를 달았더니 21그램이 줄어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한 영혼의 무게가 얼마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영혼이 얼마나 귀중한지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8:36,37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world, 세상)를 얻고도 자기 목숨(soul, 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한 영혼은 온 천하보다 더 귀중합니다.
예를 들어 비교해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빈손으로 시작해서 평생 100억 원을 모았다면, 정말 대단한 성취를 한 것입니다. 1조를 벌었다면 세상은 그의 수완을 부러워하고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렇게 판단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면 하나님은 100억을 모은 사람보다, 1조를 벌은 사람보다 그를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온 천하의 모든 돈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의 값, 한 영혼의 가치를 진정으로 안다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3) 전도가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영혼을 위해 지불하신 값 때문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예수께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당하신 고난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그 십자가 고난을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릅니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그러나 어떻게 주님이 우리의 죗값으로 받은 고난의 깊이와 넓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겠어요?
어림도 없는 얘기지요.
저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죽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사람 외에는 예수님이 한 영혼을 위해 지불하신 값의 크기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4) 전도가 중요한 것은 전도의 결과 때문입니다.

① 전도는 교회에 기쁨을 넘치게 합니다. 

모든 목회자들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에서 목회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전도보다 더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습니다. 
시편 126:6은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전도는 기쁨으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을 수 있는 면류관은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기쁨의 면류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crown of rejoicing, KJV)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고 말합니다.
기쁨의 면류관은 영혼을 얻을 때 주어집니다.

신생아실에서는 슬픈 얼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생아실의 큰 유리 앞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감탄, 호기심, 웃음을 얼굴에 가득 띠고 고개를 빼고 들여다봅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기뻐합니까? 
새로 태어난 아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교회에 기쁨을 가져옵니다.

② 전도는 교인들 사이에 사랑이 넘치게 합니다. 

요한복음 15:16에서, 주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7절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고 덧붙이십니다. 
여기서 성도들이 맺을 열매는 전도의 열매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전도의 열매가 맺힐 때 우리 사이에는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두 명의 그리스도인이 함께 전도하러 나갔다가 싸우면서 돌아오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대개 다툼은 교인들이 교회 벽을 무슨 색으로 칠할지, 또는 피아노를 어느 쪽에 놓을지 등을 놓고 토의할 때 일어납니다. 
전도하는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2. 전도하지 않는 자의 죄는?

‘20세기의 가장 강한 복음의 펜’이라고 일컬어진 존 R 라이스 목사는 전도하지 않는 자는 일곱 가지 죄를 범한 것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자는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교회를 죽이며,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의 기쁨과 성령의 나타나심을 놓치게 하며, 수많은 영혼을 죽이는 죄를 범하는 자라는 것이지요. 
그중의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1) 전도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28:18-20절에서 지상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고 했습니다. 
하찮은 사람의 명령은 들어주지 않아도 무방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최고의 지휘관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지휘관인 예수 그리스도께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하고, 아무리 성경을 잘 가르치며, 아무리 구별된 삶을 산다 하더라도 전도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전도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분의 소원을 이뤄드리려고 애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청춘남녀의 사랑에도 사랑하는 여자가 원하면 떨어져 죽을지도 모르고 절벽에 핀 꽃을 따러 기어 올라가는 게 아닙니까?
전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핑계를 댈지라도 결국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라고 소리 높여 외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주님의 소원이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전도하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고 있다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거나, 그 사랑이 식어버린 것입니다. 

3)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원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2:2,3절을 보십시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이 구절에 보면, ‘영생’ ‘영원히’ ‘영원토록’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영원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대상이 무엇입니까?
동일본 지진과 쓰나미 현장에서 우리는 똑똑히 보았지요?

재물이 영원합니까?
건강이 영원합니까?
권력이 영원합니까?
젊음이 영원합니까?
그런데 여기에 영원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지혜가 있는 그리스도인은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할 줄 압니다. 
일시적인 것에 생명을 거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 자는 자들이 깰 때,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 앞에서 상급을 받을 때, 어떤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할 때, 전도하지 않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지지리 바보로 살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4)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혼을 살해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17-19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했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하나님께서 정말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경고하고, 그들을 위해 울고, 그들을 설득하며, 그들을 전도하여 그리스도께 나오게 할 기회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옥에 가는 모든 영혼의 피 값은 분명히 우리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지 않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5월 1일 총력 전도주일을 2주간 남겨놓았습니다.
이즈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19,20의 주님의 지상명령을 다시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너희는 가서’ 
‘가야’한다는 데 주목하십시오.
가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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