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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좋은 새언약의 예수님 (히 8: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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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새 언약의 예수님’.com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8;7-13)

이번 주는 ‘苦難週間’입니다. 

금요일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제사(祭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으로서, 동시에 제물로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에게 드리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인데,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길은 죄(罪)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罪問題가 해결되는 것이, 사람이 깨끗해지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수천년의 역사는 인간의 죄의 역사입니다. 죄는 이기심으로, 욕심으로, 범죄로, 전쟁으로 드러나면서 인간들 사이에서 고통과 슬픔을 가져왔고,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에서는 단절과, 존재적인 외로움, 절망을 가져왔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 방법은 두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구약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과 신약의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에서 모세와 맺은 언약을 옛 언약이라고 하시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새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하시면서 구약의 옛 언약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우신 새 언약이 전혀 다르다고 강조를 하십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약속이며 언약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새 언약입니다. 이제 우리는 옛 언약과 새 언약과의 차이점을 하나씩 비교해 보면서 십자가의 그 큰 의미를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옛 언약은 짐승의 피로 사람의 죄를 대속했습니다. (히9;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지만 이렇게 짐승의 피로 인간의 죄를 속하는 옛 언약은 문제가 있습니다.

(히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옛 언약은 흠이 있는, 불완전한 언약입니다.. 그래서 완전하고 흠이 없는 언약이 있어야 합니다. 즉  불완전한 첫 언약은 완전하고 흠이 없는 새 언약이 오실 동안만 유용한 언약입니다.    (히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낡아지고 쇠한다고 합니다. 

레위 제사장을 통한 옛 언약은 낡아지고 쇠하여 가는 언약입니다.    (히9;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옛 언약은 육체의 예법입니다. 어떤 음식은 먹어도 되고 어떤 것은 먹으면 안 되고 하는 ‘먹고 마시는 것’ 과, 언제 씻고 몇 번을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여러 가지 씻는 것’ 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들은 다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만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개혁이 됩니다. 

** 우리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인 아론과는 다른 제사장입니다. 

* 예수님은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히7;21)“(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110;4)“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예수님은 아론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사람이 무슨 약속을 하면  ‘너 맹세하나?’하고 묻습니다.  이 말은 ‘너 변치 않을 거지!’하는 것을 확인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레위지파의 제사장직은 맹세하지 않았을까요? 일시적이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시기에 맹세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영원한 제사입니다. 

(히7;23-25)“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님’ 은 영원한 중보자이니까 가능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자녀, 손자들에게도 중보자이십니까? 또 예수님은 10년 전에도, 또 10년 후에도 우리의 중보자이십니까? 항상 살아계시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미래가 현재입니다. 레위의 제사장 직분은 일시적이었습니다. 레위지파의 구약의 제사장들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합니다.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에 죽으면 다른 사람이 제사장 직분을 이어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영원한 중보자이십니다. 더 이상 다른 중보자가 필요 없습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으신 예수님이십니다. 

(히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 예수님의 제물은 자신의 몸이 제물이었습니다. 
레위 제사장은 자신과 백성을 위해서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8;3)“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말만 제사장이 아닙니다. 제물이 있어야  제사를 드립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양, 염소, 송아지로 예물을 삼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물은 자신의 몸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여서 그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 단번에 완전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제물은 (히7;27)“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단번에’ 드렸습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사는 지금도 유효합니까? 단번에, 한 번에 자기를 드려 제사를 드린 것이 지금도 유효합니다. 완전, 영원, 단번에 드린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셨습니다. 이 말은 더 이상 다른 제사는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문제, 죄 속죄의 문제는 구약에서는 매일, 매주, 매년 중보자를 통해 소, 양, 염소 같은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드리는 대속죄일의 예배는 1년간 유효했습니다.  그러나 단번에 자기를 드려 제사를 드린 것은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입니다.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새 언약은 탁월한 언약입니다. 
 
① 그림자와 실체의 차이라서 탁월합니다.  

(히8;5)“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모델하우스 많이 보셨지요. 멋집니다. 모델 하우스를 보고 집을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모델하우스는 말 그대로 실제 집의 모형입니다. 아파트 다 지으면 모델하우스 어떻게 합니까? 아무 필요 없습니다. 다 철거합니다.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이기 때문에, 실체인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당연히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실체인 새 언약을 보여주기 위해서 옛 언약이 잠시 존재했던 것입니다. 
 
②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신 것이지만, 새 언약은 온 백성에게 주셨기에 탁월합니다. 
     
모든 백성,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다 유용한 새 언약입니다.   특히 여성들 여러분, 지금도 힌두교, 이슬람교는 여성을 억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새 언약은 남자 여자, 흑인 백인, 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입니다. 이런 가치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있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유교적인 가치를 가지고 예수를 믿는 남성들이 많습니다. 생각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새 언약은 차별이 없는 언약이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미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10;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혹시 남성 여러분 중에서 아직도 유교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여자가...’ 하는 분 있습니까?  여성들도 드세가지고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고 했는데 종을 대하듯이.. 하는 분 있나요?   요새 50대 남자는 이사 갈 때 제일 먼저 이삿짐 차에 앉는다 합니다. 버리고 갈까봐.  실제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답니다. P.D.수첩에도 나왔지 않습니까? 물론 오죽 못나면 그렇겠냐 마는... 그래도 버리면 안 되지요. 

③ 새 언약은 마음에 주는 언약이라서 탁월합니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주신 613가지 계명은 조건이 있습니다. “잘 지켜야 내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고, 애굽에서 끌어내어 주셨고, 또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하셨고, 다른 어느 민족도 받지 못한 특별히 언약도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언약을 파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새 언약’은 렘31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렘31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망했고, 남 유다도 바벨론의 침략으로 포로가 되기 직전의 예언입니다. 이미 황폐해지고, 망해가는 나라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렘31;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망한 나라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렘31;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부모 자식간은 1촌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간은 2촌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는 촌수가 없습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내로서 남편인 하나님을 배신하고, 음란하듯이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부부관계를 스스로 깨어버렸고, 언약을 파기해버린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다른 언약, 새 언약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닙니다. 전과 다른 관계입니다. (렘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오늘 본문에도 있습니다. 

(히8;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새 언약은 심비(心碑)에 기록한 언약입니다.  내 마음과 생각에 주신 새 언약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받아 돌판 위에 기록하였습니다.  십계명도 돌 위에 기록하였습니다. 돌판 위에 새겼기 때문에 흐려지거나 깨질 수 있습니다. 

 할례(割禮)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육체에 심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그렇게 돌판이나 육체에 심지 아니하고 마음에 기록하고, 또 생각에 기록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믿음이란 종교적인 외형이나 거룩한 예식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생각과 마음의 변화입니다.  예배는 형식이나 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생각과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새 언약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구약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식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내면의 변화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법이 생각과 마음에 기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의 변화,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새 언약의 예배자가 아닙니다.  생각이 거듭나야 합니다.  가치의 변화가 필수입니다.  종교적인 모양은 있으나 그 생각이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바꾸고, 하나님의 법이 그를 녹여야 하는데... 종교적인 폼은 있으나 자기 생각으로 가득 하다면... 위험합니다. 

저는 이것을 ‘마늘 짱아지’에 비유합니다. 간장에 마늘을 넣었다가 빼는 것을 짱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겉은 좀 거무스럼합니다. 그러나 씹어보면 쌩 마늘입니다.   ‘짱아지’는 열흘이상을 푹 삭혀서 마늘의 쏘는 맛이 없어지고 탁 씹으면  아삭아삭하고 달콤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마늘이라고 하지 않고 ‘짱아지’라고 합니다.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안에 있는 것과 지나간 것이 같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처럼 변(變)하는 것입니다. 본질이 변하는 것입니다.  만약 믿음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도무지 생각과 마음이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정말 예수님을 믿은 것인지 자기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④ 새 언약은 죄를 기억하지도 않는 탁월한 언약입니다. 
 
용서의 차원이 아닙니다. (히8;12)“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는다는데... 자꾸 자기가 기억을 해가지고,  또 고백하고, 또 용서해주세요 하면 하나님께서 더 난감하십니다. 성도여러분, 단번에, 영원히 속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10년 전에 잘못한 것...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잊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의 죄만 기억지 아니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남편의 죄, 내 아내의 죄, 내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죄... 모두 다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새 언약을 믿는 저와 여러분도 모두 다 기억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과 새 언약은 우리를 죄책감에서 영원히 자유케 하십니다. 물론 과거의 부족함이나, 범죄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전히, 단번에, 영원히 속죄하셨음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믿고 자유하십시오. 이제는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⑤ 끝으로 옛 언약은 과거를 지배하는 것이지만, 새 언약은 미래를 바라보게 하기에 탁월합니다.       옛 언약은 우리의 과거의 죄, 실패, 무능, 잘못을 기억하게 합니다. 

(히10;3,4)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옛 언약은 우리를 과거에 묶어 버립니다. 계속 죄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은 미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43;18)“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새 언약 안에서는 누구든지 소망 중에 미래를 꿈꿉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43;19)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새 언약 안에서는 회복이 일어납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누구든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출발이 가능합니다. 믿습니까? 예수님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치료와 회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위력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이제 새것입니다. 아멘?  과거는 끝났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 옛 언약은 그림자요 새 언약은 실체입니다.  
 *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신 것이지만, 새 언약은 온 백성에게 차별없이 주셨습니다. 
 * 새 언약은 마음과 생각에 새기는 언약입니다.
 * 새 언약은 죄를 기억하지도 않는 언약입니다.  
 * 끝으로 옛 언약은 과거를 지배하는 것이지만, 새 언약은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주인공이신 여러분, (요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는 말씀처럼 새 언약 안에서 자유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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