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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용한 음성도 들어야 (왕상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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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음성도 들어야 (왕상19:-)


순간에 변화된 사람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과학자요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겨우 17살에 프랑스의 학계를 뒤집는 혁신적인 수학 논리를 펼쳤습니다. 얼마 후 전자계산기의 초창기 모델을 발명했고 이어서 공기의 압축에 관한 탁월한 이론을 발표하면서 20세도 되기 전 학계와 귀족사회에 유명 인사로 떠올랐습니다. 너무 빨리 유명해진 파스칼은 이기주의적인 삶과 성적인 방종에 젖어 살다가 31살 되던 해에 하나님과 일대일로 부딪쳤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감격을 그는 <팡세>에서 『은총의 해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밤 10시30분, 그 짧은 시간에 철학자의 하나님도, 인텔리 지식인의 하나님도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후로 8년 밖에 더 살지 못했지만 모든 학문 활동을 접고 30대의 청년의 저술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기독교사 최고의 명상집으로 꼽히는 <팡세>를 저술했습니다. 종려주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에 엘리야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웅장한 엘리야의 사역

1)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나타나서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고 선언하자 정말 비가 오지 않고 이슬까지 오지 않습니다.(왕상17:1-24) 

2) 아합왕을 피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고 있으면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고 하셔서 그릿 시냇가에 머물었더니 정말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습니다. 

 3) 시냇물마저 마르매 사르밧 과부를 만나서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합니다. 여인이 내가 진짜로 말씀드리는데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인정사정 안 봐주고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하였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4)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하니 살아났습니다.

어느덧 3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고 하셨지만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갈멜산에서 영적인 전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신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지친 엘리야 

아합이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말하자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했습니다.『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고 좌절했습니다. 

여러분! 능력의 대명사 엘리야가 이렇게 힘이 빠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세벨이 두려워서일까요? 또 다시 도피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일까요?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3년 동안 비가 없어 고통당하는 아합에게 비가 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보다는 가나안 사람처럼 극적인 장면을 구상하고 갈멜산의 전투를 제안 했습니다. 이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엘리야의 의식 속에 가나안 문화가 가득 배어있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그의 의식은 다음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 계신 하나님

오늘날의 현대인들도 엘리야의 기도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3년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고, 날마다 까마귀가 먹을 것을 전달해 주고, 기도로 죽은 아이를 살리고, 바알 선지자와 혼자 대적하여 이기고, 비가 오라고 기도하면 비가 오고, 하나님의 뜻을 어긴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을 죽인 것처럼 뭔가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기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엘리야를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에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산에 서있자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즉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이 아닌 세미한 곳에 계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웅장하게 축복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용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리야도 웅장하고 영광스러운 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을 깊이 있게 만나서 새로운 사명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진정한 위기 

요즈음 기름 값이나 생필품 물가가 너무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일본의 원전 때문에 땅에서 나는 채소는 물론 바다에서 나는 생선까지 오염될 것이라는 염려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염려 때문에 다시마나 소금까지 동이 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러나 물질주의 이후(post-materialism)로 불리는 이 시대에 가장 심각한 위기는 영적인 위기 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갈급함을 찾기 위해서 초자연적 영, 유령 등을 아이들의 프로그램에 등장시키고, 복고적인 관심을 쏟다가 정체도 불확실한 사상에 접하게 되고, 건강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대라 건강을 미끼로 각종 방법들이 등장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도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웅장한 하나님! 큰 소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을 만나기도 해야 하지만 조용하게 묵상가운데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기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면서 모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막의 영성

 지난주 제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프린터에 새 잉크를 배합한 이후 갑자기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수리하기 위해서 A/S 센터에 가서 가격을 알아보았더니 결국 수리 하는 것보다 새것으로 구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판단해서 새것으로 구입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했더니 저만해도 새로운 무엇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현재 물건들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도 벅찰 만큼 대부분의 것들을 구비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현대인은 이미 많은 물건들 속에 묻혀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우리에게 편리함과 혜택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막의 교부들처럼 이 모든 것을 떠나서 하나님과 우리의 영이 진심으로 만나는 것이 시급한 때입니다. 내면으로도 하나님을 조용히 깊게 대면하게 될 때 새로운 사명에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우선!!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도 함께 깨달으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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