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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보지 못한 십자가 (막 11:1-10)

첨부 1


보지 못한 십자가 (막 11:1-10)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1)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2)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3)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4)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5)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6)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7)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8)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9)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마가복음 11장 1~10절>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오늘은 강단 장식만 봐도 은혜가 됩니다.
종려주일에 맞춰 아무 멋있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용혜원 씨가 쓴 ‘동행’이라는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인생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고
아플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니
서로 위로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독백이 되고 맙니다. 
인생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동행하십니까?
어떤 분이 여러분 곁에 계십니까?

임상학적으로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6명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그가 속한 모임을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드림의 교회 이상화 목사,
‘역동적인 소그룹 사역 어떻게 할 것인가’강의 참조]

그렇다면 우리 교회에 누군가 새로 왔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갔다면 
6명의 동행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른 분에게 6명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서로 동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다가와 6명이 되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스스로가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하고 대화하려 하고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6명 이상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교회에 예배드리러 오시는 분들 중에도
앞만 보고 교회 왔다가, 예배시간에 앞만 보고 앉아 있다가,
예배 후에도 앞만 보고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좌우를 돌아보세요.
그리고 “만나서 반갑습니다.”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니다.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며 살겠습니다.”
우연히 만난 분이 인연이 되어 서로 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다가 좋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옆의 분과 “옆에 앉게 된 걸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한 십자가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에만 집중하여
자신이 집중하지 않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소개해 드린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책에 보면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옆에 다른 큰 것들이 옆에 지나가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외, 『보이지 않는 고릴라』(서울: 김영사, 2011. 참조)>

그리고 사람들은 관심이 없으면 보았더라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많은 소리를 들어도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1절) 
제자 둘을 맞은 편 마을로 보내시며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왜 이렇게 하느냐고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고 하셨고 
그리하면 “즉시 … 보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볼 때 
예수님과 나귀주인이 전에 만났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나귀를 끌고 왔고,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나귀 위에 얹었고, 예수님께서 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 위에 펴며 외쳤습니다. 

“…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막 11:9~10)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던 것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주간을‘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장면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4개의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고
스가랴 9장 9절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왕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사람들이 겉옷을 펴서 예수님을 환영했는데, 
그런 행동은 왕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왕하 9:13 -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 역시 통치자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사람들이 외친 호산나는‘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때 사람들의 행동과 호산나의 외침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메시아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로부터 정치적인 해방을 안겨줄 
정치적인 리더/민족적 지도자로서의 메시아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로마 황제의 권력을 몰아내고,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새롭게 건설하고 
회복할 다윗왕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목회와 신학 편집부, 『마가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 2003), p.256. 참조>

요한복음에 따르면 그때가 유월절 절기였습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는 모두 죽이셨지만
문설주에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는 
죽음을 면하게 하신 것(pass over)을 기억하는‘해방기념 절기’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해방을 열망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그런 유월절에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로마로부터 구원할 지도자
메시아로 생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정치적인 해방에 있었고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예수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세 번이나 말씀하셨음에도 …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세 번이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막8:31, 9:31, 10:32~34>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인류의 구원이 달린 문제 / 
예수님 자신이 죽게 되고 부활할 것이라는 말씀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셨던 것처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8:29) 고 오늘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며, 왜 예수님을 믿으며, 
왜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목적 없이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대열에 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지 모르면서
대중의 움직임에 편승하는 구경꾼들입니다. 

둘째, 이기적인 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고침을 받기 위해서, 배부르기 위해서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서 따르는 사람들 … 등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이 충족되면 
등을 돌리고 떠나 버릴 수 있는 뿌리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회에 출석하며, 
열심히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주의 뜻을 행하려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름 드러나지 않아도, 박수 받지 못해도 …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하지만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김경수, 『동행의 은혜』(서울; 서로사랑, 2011), pp.21-22. 참조>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기독교의 상징이 된 십자가

홀맨 헌트(Holman Hunt)가 그린 
‘죽음의 그림자(The shadow of Death)’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그림은 나사렛에 있는 목공소의 내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상반신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예수님의 눈은 
하늘을 향해 있으며, 얼굴에는 고통인지 황홀함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팔은 쭉 뻗어 있고, 
예수님의 그림자는 선반위에 드리웠습니다. 
선반은 십자가의 가로대처럼 보이며,
선반의 연장들은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실 때 
손과 발에 박힌 못을 생각나게 합니다. 
왼쪽의 무릎 꿇은 여인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임을 짐작케 합니다. 

이 그림은 예수님이 소년시절부터
십자가를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림의 뜻은 예수님이 목수로 일했던 시간조차도 
십자가를 떠올리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 예수님은 십자가 중심으로 살았고,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 그림이 그것을 나타내 줍니다.

상징(symbol, 象徵)은 대표성을 갖고 있습니다. 
상징만 봐도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상징은 중요합니다. 
기업이나 단체, 정부들도 자신들을 드러내는 이미지,
로고 제작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상징이 자신을 알리는 중요한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상징은 무엇입니까?
수많은 사연과 과정을 거쳐 기독교의 상징은‘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지금까지 시행된 모든 처형 방법 중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일 것입니다. 

십자가는 멸시와 조롱, 비난과 조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값을 치루려면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고,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사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었다고, 십자가를 귀에 걸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멸망치 않고 구원 받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통

『십자가의 진실(박은주 지음, 두란노, 2008)』이라는 책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을 의학적으로 풀어놓았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 예수님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이 박혔을 것이라고 합니다. 
손바닥에 못을 박으면 몸무게 때문에 매달릴 수 없어서 
손목에 박은 것입니다.
그런데 손목에는 손가락 끝까지 뻗어있는 
정중신경(median nerve)이라는 굵은 신경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 신경입니다. 
건드리기만 해도 온 몸이 아프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도 치통 때문에 고생해보셨습니까?
치통은 신경을 압박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치아 밑의 작은 신경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진통제를 맞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디스크 있는 분들도 신경이 눌려서 아픈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신경하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우리들인데
정중신경은 굵은 신경입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못 박혔다면
말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 또한, 두 팔을 위로 올린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리면 
숨쉬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숨을 쉬려면 가슴이 들려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매달려있으면 가슴이 열려지 않아
숨쉬는데 많은 고통이 따른다고 합니다.

- 예수님이 당한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책 한 부분을 읽어드립니다.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한다면, 예수님의 사인은 
<저혈량성 쇼크와 울혈성 심부전으로 인한 심폐부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진정한 사인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오르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비아 돌로로사’라고 말합니다.
물론 지금은 양 옆에 가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길로 십자가를 지고 오르셨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영상을 잠깐 보겠습니다. 
-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촬영 영상 -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제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고 있지만 …
그것이 십자가를 지기 위함인 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하면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내일부터 고난주간 작정새벽기도회가 시작됩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고난주간에 다투지 마시고 분내지 마시고 경건하게 지내십시오.
말을 아끼고, 즐거움을 삼가하십시오.
TV나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미디어 금식을 해도 좋고, 
한 끼 두 끼 밥을 먹지 않는 금식을 해도 좋습니다. 
더 경건하게 지내십시오. 

- 새벽기도에도 나오시고,(5시 30분) 
- 매일 아침 10시부터 하는 릴레이 기도도 하세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시고
부활절의 기쁨과 감사로 찬양하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지만 십자가를 보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을 몰랐던 그 당시 사람들처럼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내 발걸음도, 우리의 발걸음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복된 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몰랐던 그 때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십자가의 고난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경건하게, 더 경건하게 이 고난주간을 보내고
기쁨과 감사로 부활의 아침을 맞는 
승리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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