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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울고 계시는 예수님 (눅 19: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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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계시는 예수님 (눅 19:28-44)  

 
엄청난 무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환호의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분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였습니다. 물위를 걸으셨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분을 보면서 바로 이분이야말로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주고 우리를 배불리 먹여줄 메시야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분이 아니었습니다. 지상의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은 사라지고 환호했던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고 바로 그들의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들의 배신과 그들의 저주 속에 죽어 가신 분,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우리는 이아침에 유월절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 둘을 보내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맞은 편 마을로 들어가라 그곳에서 한 번도 타지 않은 나귀새끼를 만날 터인데 끌어오라”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죠. 무턱대고 나귀새끼를 끌어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이상히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누가 쓰겠냐고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하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는 장면은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피곤하셨지만 늘 걸어서 복음을 전하셨던 예수님. 
주인이 있는 나귀를 두고 주께서 쓰시겠다고 풀어줄 주인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길을 떠나갑니다. 
나귀 새끼를 발견합니다. 나귀를 풀 때 주인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그 나귀새끼를 푸느냐?”제자들이 말합니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주인은 아무런 말없이 그 나귀를 풀어줍니다. 

너무나 이상한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전 세계 만물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쓰고 있고 우리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잠시 우리는 그것을 맡은 위임자,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쓰시겠다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특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도 타지 않았던, 한 번도 사람을 태우지 않았던 새끼 나귀를 타고 뒤뚱뒤뚱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모습입니다.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를 타고 들어가시는 예수님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는 정결한 흠 없는 짐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그 주님을 위해서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을 태우지 않았던 나귀를 타고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나귀를 타고 가신다’라는 말은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증이기도 합니다. 이미 500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예언을 해 주셨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너희 왕이 너희에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작은 나귀 곧 나귀새끼니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탄다는 것은 또한 오늘 말씀처럼 겸손의 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세상의 왕이라면 거대한 백마를 타고 웅장한 개선행진곡을 들으면서 등장하겠지만 우릴 위해서 섬기신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어린새끼 나귀를 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는 이 장면은 오늘 우리 장로님께서 기도해 주신 것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님이시기도 하지만 평화를 주기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보여줍니다. 
독재자라면 탱크를 몰고 긴 창을 들고 입성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나귀새끼에 몸을 싣고 조용히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의 이 모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내리막길로 오실 때였습니다. 
거대한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 몰려듭니다. 사람들은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사람들은 감람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예수님 발 앞에 던지기 시작합니다. 감람나무라는 것은 유대민족의 해방, 유대민족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열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소리칩니다.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왕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 

사람들이 이렇게 소리를 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3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이 사람들이 자신들이 본 일, 하나님의 능한 일을 보고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그들이 본 기적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을 체험한 사람도 있었겠지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테고 죽은 나사로를 살게 해서 걸어 나오게 하는 예수님도 보았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사람들은 확신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었노라고. 
로마의 통치를 끝내고 민족을 해방시킬 그 메시야가 드디어 도래했노라고. 
백성들의 가난을 끝내고 배불리 먹여줄 그 리드를 기대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전혀 모른 채 환호하며 함성을 지르며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 예수님이 겪어야 될 죽음의 고통을 모른 채 지상의 메시야를 기대하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는 베드로도 끼어있었죠. 부친을 버려두고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을 때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까?돈이 제일인줄 알고 달려갔던 세리 마태도 이 순간은 감격스러웠습니다. 
드디어 우리 민족을 해방시킬 때가 왔는가보다 

그러나 그들의 환호소리는 그렇게 오래가지를 못했습니다. 
로마를 정복해야 될 예수님께서는 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적을 쳐서 심판해야 될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쳐서 조롱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침 뱉으며 조롱하는 저들을 향해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예수님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오늘 어떤 예수님을 기대하시면서 이 자리에 앉아계십니까?우리가 다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만 어떤 예수님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예수님 곁에는 언제나 많은 무리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정녕 예수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무리들은 무리가 몰려다니는 곳으로 다니면서 그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깊이 알려고 하지 않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예수그리스도만을 기대한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어야 될 예수님은 우리의 욕구와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 편에 서게 해 달라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들떠있는 군중들과 제자들 사이에서 우리 예수님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계십니까?자신을 보내면서 환호하며 함성을 지르는 호산나 구원하소서 다윗의 아들로 오는 왕이여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저 수많은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보입니까? 잠시라도 즐기고 계십니까? 우리는 전혀 다른 예수님의 얼굴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얼굴에는 두 눈에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배어있어요. 지금 주님은 울고 계시는 겁니다. 

현재 상황이 어떠합니까?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에는 유월절이 다가오는 날이었습니다. 
유월절에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날을 기념하는 순간,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일 어린 양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밀려들고 있어요. 

여러분 지금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수천 명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그 길목에 우리 예수님께서도 뒤뚱뒤뚱 나귀를 타고 들어가고 계십니다. 
자신의 양으로 제사를 드리면서도 정작 우리의 근본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지상의 예수를 소리치는 사람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십자가의 길을 묵묵하고 외롭게 걸으시면서 우리주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그토록 사랑하셨던 백성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을 하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예수님이 지상의 왕국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왜 이토록 우리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리고 계실까요?오늘 말씀 <42절~44절>에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대한 성인 예루살렘이 곧 멸망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심판이 무엇입니까?서기 70년에 로마 장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에 에워싸여서 그들은 죽어갔습니다. 당시대 살았던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글을 보면 110만 명이 죽었고 그 중에 십만 명 가까이가 포로로 잡혀가서 검투사로 사자의 밥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예루살렘이 누구입니까?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하나님이 시온을 기억하면서 얼마나 시온을 아끼고 사랑하셨습니까?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너희에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아래 몸같이 내가 너희를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는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고 생명처럼 아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대가는 그들의 가족이 멸망당하고 민족이 사라지는 처참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눈물을 흘렸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나라가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인류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러 오셨던 예수님이었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것이 주님께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모르고 지상의 메시아를 꿈꾸는 그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이 예수님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죽은 인류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주님이 오셨지만 나를 위한 메시아로 지상의 메시아로 꿈꾸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예수님, 이 주님의 눈물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우리 예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우리 한국 교회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요?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125년 전 짧은 역사에 하나님께서 많은 선교사들을 통해서 한국민족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복음국가로 바꾸어놓으셨습니다. 세계 모든 교회와 사람들이 한국을 부러워하면서 한국의 교회를 배우려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목회자를 보면서 더 이상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으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더 이상 정직하고 희생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지켜보신다고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고 고백하지만 실제 삶의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우리 주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지금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나의 죄악과 허물을 위해서 당신이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생명을 얻어서 호흡하고 있는데 내 속에 주님이 살아계시고 내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인 내 몸을 가지고 여전히 내 생각대로 내 자아대로 내 기질, 내 혈기대로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우리 주님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를 보시면서 지금 주님께서는 무슨 얼굴을 하고 계실까요?당신의 피로 세운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사명을 망각한 채 하나 되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과 목소리가 교회를 움직일 때 우리 주님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바쳐 사랑하고 당신이 대신 죽어서 살려낸 영혼이 바로 내 곁에 앉아계신 형제요 자매인데 그 형제와 자매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으로 보지 못하고 반목하고 질시하고 비난할 때 우리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를 특별한 교회로 주님께서 세우시고 세계 열방을 향해서 사람을 키워서 민족을 바꾸고 세계 열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거대한 꿈을 주셨지만 그 꿈을 내려놓고 나의 문제 우리 교회의 문제에 사로잡혀서 절망하고 낙심하고 앞을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 교회를 보면서 주님은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이 주님의 눈물을 닦아드릴 때가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오신 그 주님의 십자가를 깨닫고 고통스러워하시는 주님의 그 고통을 우리 가슴에 채우고 이제는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해서 대신 울어줘야 될 때가 되었어요. 내 옆에 죽어있는 수많은 영혼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만 여전히 자아가 육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을 가슴에 품고 대신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종려주일을 맞이해서 예루살렘에 우리 죄를 위해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걸어가시는 주님을 보면서 함께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이번 한 주간 동안에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바로 나의 죄를 위해서, 나의 허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새벽을 깨워 기도하게 했고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일어나서 더 이상 우리 주님께서 나를 보시고 우리 교회를 보시면서 더 이상 눈물 흘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을 향해서 눈물 흘리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 이제는 그만 우십시요. 제가 세상을 향해서 저들을 가슴에 품고 제게 당신의 눈물을 대신 심어주십시오.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지나서 광명한 부활을 경험하면서 우리 신앙에도 더 이상 주님을 눈물 흘리게 하는 신앙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 속에 하나님 앞에 감격을 심어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가서 여러 아픔과 고통을 지나고 난 다음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만큼 기대하시고 열망하시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순결한 교회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 그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시면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실 것이 아니라 ‘잘 했다 충성된 종아. 교회가 가장 어려울 때 너의 땀과 너의 눈물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주었구나! 고맙다 충성된 종아.’ 우리 주님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슬픔이 아니라 감격의 눈물을 흘릴 그날이 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 만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와 주께서 맡겨주신 복음 사명을 위해서 다시 한 번 거룩하게 일어나서 우리의 삶을 불태우는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되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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