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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살아 나셨느니라 (눅 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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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나셨느니라 (눅 24:5-6)


(눅 24:5-6)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그리스도의 사역은 인간의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써 완성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고 하는 것도 이 부활 신앙에 근거한 것입니다. 

안식 후 첫 날 새벽 미명에 큰 지진이 나며 예수님의 시체를 넣어 둔 무덤 돌문이 굴려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마침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주님께서 묻혀 있던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문이 옮겨진 것을 보고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간 줄 알고 근심했습니다. 향품을 가지고 예수의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의 행동은 예수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하여 향품을 가지고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 앞에 전개된 새로운 사태, 즉 주님의 부활에 접해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4절).
여인들이 주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근심하고 슬퍼할 때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여인들은 그들의 찬란한 모습을 보고 놀라서 두려움 때문에 얼굴을 땅에 대었습니다.

(눅 24:4-5)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찾는 시체가 없어졌으므로 근심했고, 영적인 존재인 천사들을 보았을 때, 그녀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해야 할 여인들이 근심에 싸여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 신앙의 결여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불신앙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게 됨으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근심과 공포였습니다.
그것은 부활이라는 종교적 사건을 육적 안목으로 대하려 했을 때 접할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혼란과 공포였습니다.
이러한 불안과 공포는 알지 못함에서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 가는 밤길을 혼자 걷고 있었는데 양쪽은 모두가 높은 절벽이었다. 발을 잘못 딛은 실수로 떨어지던 그는 간신히 나무 뿌리를 잡고 메달리게 되었다. 기적적으로 위기를 모면한 그가 소리를 치며 구원해 달라고 했으나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손목과 팔의 힘은 점점 빠져갔다. 이제는 도저히 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떨어져서 죽는 일만이 남았다. 드디어 그는 악! 소리를 치며 나무 뿌리를 놓쳤으나 이게 웬일인가? 수 십미터의 낭떠러지인줄로 알았던 것이 겨우 털석!하고 발이 땅에 닿는 약 1미터의 높이였던 것이다. 손만 놓으면 떨어져 죽는줄 알고 겨우 1미터 높이의 곳에서 밤새도록 나무뿌리를 잡고 두려워 떨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여 그것을 놓으면 죽기라도 하는 줄 알고 결사적으로 세상 것에 메달려 있는 사람이 그 얼마나 많은가?

어떤 사람이 차가 없어서 지나가는 빈 트럭을 세워서 올라탔습니다. 타고 보니까 빈 관들이 있었습니다. 트럭 뒤에 타고 가는데 소나기가 오더랍니다. 그 사람은 얼른 빈 관의 뚜껑을 제치고 그 안에 들어가 누었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에 다른 두사람이 올라타고 가는 도중에, 관 속에서 잠 들었던 사람이 깨어나 뚜껑을 열고 일어나면서 "비가 그쳤구만"하고 말했습니다. 이를 본 다른 두 사람은 무서워서 차에서 뛰어 내리다가 그중 한사람은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있으면 담대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창공은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고 여행으로 마음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도중 비행기가 갑자기 공중에서 불연속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공기 진공상태로 밀도나 온도, 습도, 풍속, 풍향 등의 기상요소가 다른 두 기층이 대립되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를 만나면 비행기가 갑자기 10-20m씩 급작스럽게 하강하게 되고 기체가 안정을 잃게 됩니다. 기내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놀라서 사색이 되어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두려움으로 회개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할 때마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소녀는 무척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다른 승객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얼마 뒤 비행기가 다시 안정권 안으로 들어온 뒤 손님들은 소녀에게 다가가서 이상스럽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비행기가 진동하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질 때 무섭지 않더냐?' '아뇨,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는 모두 두려웠는데 너는 왜 무섭지 않았지?' '그건요 우리 아빠가 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거든요.' 

종교적 사건을 신앙으로 수용할 때 비로소 그것은 환희와 감격이 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부활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영원한 소망이며, 영생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예수를 매장한 그 이튿날, 즉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은 갈릴리로부터 온 여인들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그들을 따라간 다른 여자들의 일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영구히 매장하기 위하여 향품을 준비해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인간과 다름없이 죽은 사람으로 대접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덤에 찾아간 것은 살아계신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인들은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려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수의를 입고 누워있는 시체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수의는 개켜져 있고 예수님은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벌써 사망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번짓수가 틀렸던 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모아놓은 무덤이라는 동네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산 자, 그중에서도 영원히 사시는 이에게 속하셨습니다. (마 22:32)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 사이를 뒤지고 다녀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비어 있는 무덤을 보고 근심에 잠겨 있던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그녀들을 책망했습니다.

(눅 24:5)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이미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 26:32,막 14:28)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만나려면 무덤으로 찾아올 것이 아니라 갈릴리로 가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면 무덤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가시는 갈릴리 동네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생명을 죽음 속에서 찾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전혀 불합리한 일이었습니다.

(눅 24: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는 부활의 선언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선포였습니다.

생명은 무덤 속에 영원히 누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진리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주님은 생명이요 진리이기 때문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의 극복이며, 모든 죄에 대한 사유의 보증이며 생명의 승리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이 여인들처럼 그 영혼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 신앙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념에 찬 삶을 살게 하며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부활 신앙은 인간의 영혼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해리 리머박사가 한 회교인 관리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 회교도 관리는 대답하였다. "우리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성경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회교 관리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코란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셨다고 믿습니다." 또 리머 박사가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셨음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 회교 관리 역시 대답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언자 모하메드를 통하여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리머 박사는 다시 한 번 강조해 말하였다. "우리는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회교 관리 역시 또 대꾸하였다. "우리는 모하메드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은 것을 믿습니다." 

리머 박사는 또 말하였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 부터 스스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그분의 말씀은 실제로 증거 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러자 회교 관리는 말하였다. "우리는 죽은 이후의 예언자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설교 중간에 나서서 외쳤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한 가지를 가졌소.'그러자 그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 있는 관이 있어서 정말 마호메트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하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고맙소.' 

스탠라 존스는 이렇게 대답한 뒤 계속 이야기했다. '당신의 말이 그대로 사실인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다른 점이오. 우리의 주님은 부활하셨소.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빈 무덤밖에 없는것이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교회학교에 나오는 여덟 살짜리 소년 톰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이 많아 몸이 늘 아프고 휠체어에 실려 교회에 나오는 소년이었습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톰의 교회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속이 비어 있는 플라스틱 계란을 주며 그 속에 무엇이든 생명이 있는 것을 넣어오라고 했습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이 차례로 계란을 열어 보았습니다. 꽃이나 나뭇 잎, 곤충 등 아이들은 생명이 있는 여러 가지를 준비해 왔습니다. 

톰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톰의 계란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몇몇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앓고 있는 톰을 동정해서 교사는 부드럽게 '준비하지 못했어도 괜찮아. 톰이 많이 아팠나 보구나.'라고 위로하였습니다. 하지만 톰은 이렇게 대답했습니ㅔ다. '선생님, 저는 생명을 준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 무덤이 비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생명있음, 살아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잖아요. '이 소년은 10개월 뒤에 죽었습니다. 그의 장례식 날, 그의 관에는 꽃 대신 빈 플라스틱 계란이 놓여졌습니다.

크리스챤 센츄리 지의 편집장 마티 목사가 젊어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을 때, 3학년 반을 맡았는데 그 반에 학습지진아인 스티븐이 있었습니다. 부활 주일을 앞두고 아이들은 숙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상자 속에 하나씩 넣어가지고 오라'는 숙제였습니다. 아이들이 상자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의 상자에는 꽃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의 상자 속에서는 나비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 아이는 파란 나뭇잎을 꺼냈습니다. 

스티븐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스티븐도 자기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틴 선생님은 당황했습니다. 지능이 모자라는 스티븐에게 남들과 같은 숙제를 냄으로써 망신을 당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 스티븐의 빈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스티븐은 싱글싱글 웃으며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선생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상자는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이 상자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틴씨는 스티븐을 껴안고 '맞았다.네 숙제물이 가장 좋다'고 외쳤습니다. 마틴 목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정말 놀랬습니다. 학습지진아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부활이 빈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이 깨달아야 할 진리다'라고 종교지에 자기의 감격을 썼던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전기 중에서 그가 제자에게 한 말이라합니다. '왜 자네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그렇게 많이 그리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고통에 계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 때문인가! 오히려 부활하신 주님을 그리게나! 죽음 을 깨뜨리고 승리하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죄와 죽음의 정복자이신 주님을 그리게나.' (J. Trevor Davies) 

두 명의 흑인소년이 아랍사람에게 팔려갔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모하멧을 믿으라고 권고했습니다. 모하멧의 시신은 아라비아 메디나시 한 관에 보존되어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두소년은 어느 날 어느 선교사에게 그리스도의 장례, 죽음, 부활에 대해 들었습니다. 두 소년은 이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모하멧은 죽어 시신이 관에 있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여 살아 계시는데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까? 결론은 산자를 믿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죽으시고 3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시고 기도하시고 언젠가는 재림하실 것입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부활에 대한 신앙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눅 24:6)...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그것은 주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마 20:19)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눅 9:22)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십자가 고난후 3일 만에 부활에 대하여 주님은 수차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 수난 앞에 좌절해 버렸고, 너무도 충격적인 주님의 죽으심 때문에 그녀들은 미처 부활에 대한 말씀을 기억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인들은 천사의 말에 의하여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주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즉시로 이 부활의 소식을 사도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무덤에서 떠났습니다.
부활 신앙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신앙적 특징입니다.

오늘날 이 부활 신앙을 일깨우고 안내해 주시는 것은 천사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부활이 있음으로써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일 수 있습니다.

꽃을 파는 어떤 허름한 노인이 항상 웃습니다. 생활이 어렵고 옷은 남루하며 꽃 팔면서 힘들고 피곤한대도 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 할머니를 행복한 할머니, 웃음의 할머니, 늘 기쁨의 할머니로 모두 다 불렀습니다.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항상 그렇게 기쁘십니까?', '아니예요. 저도 어려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과정을 생각하면 항상 기쁩니다.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삼 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나도 오늘 있는 이 어려움이 바로 며칠 지나면 부활될 줄로 믿고 좋아질 줄로 믿으며, 좋은 날이 올 줄로 믿고 이 시험이 해결되고 이 짐을 벗고 이 어려움이 다 해결될 것을 믿으니 항상 기쁩니다.'라고 합니다.(1999년 4월 1일 국민일보 겨자씨란에 나온 글)

미국 보스톤 교외에는 골든 코넬 신학대학원이 있다합니다. 이 코넬 신학대학원은 시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럿셀코넬이라는 지휘관이 있었는데 전쟁에서 후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휘관이 그만 자신의 지휘도를 버리고 오게 되었습니다. 수치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코넬 대령은 링이라는 소년을 시켜서 그 칼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이 소년은 목숨을 걸고 적진속에 들어가 칼을 갖고 오기는 했으나 그만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천막에 들어와서 칼을 바치고 마지막 눈을 감을 때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친구이기 때문에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홀로 지켜본 무신론자였고 회의주의자였던 코넬은 시체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오! 주여, 이 어린이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여 이 어린이가 찾는 하나님을 위해서 제가 몸을 바치겠습니다.'라고 결단했다합니다. 

나중에 신학을 공부했고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서 세운 것이 골든 코넬 신학원이라 합니다. 아울러 템풀대학(Temple University)을 세워서 수많은 지도자를 양성했다합니다. 링의 죽음은 불행이었으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코넬 대령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복음 증거자 무디(1837-1899)는 젊었을 때 장례식 설교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식 설교대로 하기 위해 복음서를 다 뒤져보았습니다. 그러나 무디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식 설교가 없었으며 오히려 죽었던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 살아난 기사를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계신 곳에는 부활의 영광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무디는 성경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크게 외쳤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의 두 기둥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크리스천들을 부활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행 4:2-3)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죠지 워싱톤의 고향인 버논산에 죠지 워싱턴 부부의 무덤이 있고 그 무덤 묘비에는 요한복음 11:25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가 다시 사신 것과 같이 우리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들은 모두 무덤에 묻혔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묻을 수 있는 무덤은 없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며 우리도 주님으로 인하여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 믿고 학습 받고 유아 세례 받고 입교 하고 세례 받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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