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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가르치심(3) : 성령, 다른 보혜사 (요 14:16-17,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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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르치심(3) : 성령, 다른 보혜사 (요 14:16-17, 25-26)  

예수님은 진리의 선생이시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쳤다. 땅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하늘의 것으로 가르쳤다. 계시의 영을 주셔야 알 수 있는 영의 말씀으로 가르쳤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6장을 통해 하나님이신 성령을 가르치신다. 성령 하나님은 보혜사이신데 보혜사는 성령, 즉 파라클레토스(paraclete)에 대한 종합적 번역이다. 파라클레토스는 변호사란 뜻이다.(요15:26) 변호사는 대신하여 모든 것을 일해주고 도움을 주는 자란 뜻이다. 

파라클레토스는 위로자란 뜻이다. 상심한 사람, 낙심한 사람, 실패한 사람을 만져 주고 따뜻함으로 감싸 위로한다는 뜻이다. 파라클레토스는 상담자란 뜻이다. 나의 모든 문제, 억울하고 답답한 문제를 들어주시고 길을 안내하고 방법을 알려준다는 뜻이다. 

파라클레토스는 돕는 자란 뜻이다. 어려운 환경에 빠져 있을 때, 위험한 물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달려와서 건져주기 위해 돕는 자(헬퍼, Helper)가 된다는 뜻이다. 보혜사란 결국 변호사되신 성령, 위로자, 상담자, 돕는 자 되시는 성령을 포괄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보혜사는 한자어로 保 지켜줄 보, 惠 베푸실 혜, 師 스승 사 즉, 파라클레토스의 의미가 다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보혜사는 아들의 구함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시는 이라고 요14:16은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가 보내실 보혜사 성령을 말할 때 요14:16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였다. 또 다른 보혜사란 예수님이 첫 번째 보혜사란 뜻이다. 

성령은 두 번째 보혜사로서 예수가 떠나시면 그 다음에 오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다른 보혜사란 질적으로 다른 것인가? 예수님과 다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알론’, 즉 ‘다른’이란 말은 본질이 같고 기능이 다르다는 뜻이다. 오동나무를 가지고 바이올린을 만들고 첼로를 만들었다. 그 울림통이 오동나무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그러나 바이올린과 첼로는 기능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다른 보혜사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가?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보내셨다. 성자 예수님은 자신을 대신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도록 아버지께 구한다. 그래서 둘째 보혜사로서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시게 되는데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다. 

예수가 요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였다. 또 다른 보혜사도 본질면에서 진리이시며 진리의 영이다. 그러나 그 기능은 다르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한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것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러나 성령 보혜사는 철저히 예수를 위해서 일한다. 그래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계급적인 것 같으나 본질상 하나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관계한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보혜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가?  

1.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요14:26)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영을 살리는 것이다. 사람의 머리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께 속한 말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은 가르치고 생각나게 한다. 예수님의 약속을, 예수님의 교훈을 생각나게 한다. 죄악을 이기는 길, 사탄을 물리치는 권세, 복 받은 인생이 되는 것, 천국에 이르는 생활 등등에 관하여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한다. 생각나면 딴짓을 안한다. 

죄를 짓는 도둑들이 금, 은 패물을 훔칠 때 형사 입건이 된다. 붙잡혀서 심문 받을 때 절도범들의 고백은 한 가지다. “너 콩밥 먹을 생각을 못했느냐? 벌 받을 줄 몰랐느냐?”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한 가지다. 금, 은 패물을 보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반짝이는 금만 보이지 콩밥 신세, 철창 신세, 가족들의 고생 따위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각나게 하는 것, 예수의 말씀의 모든 것, 하나님 나라, 하나님 아버지, 예수의 주기도문, 팔복의 복음 등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성령의 하는 일이다. 보혜사 성령, 성령 하나님이 오셔야 한다.
  

2.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을 증언하신다. (요15:26)

보혜사 성령은 예수의 말을 생각나게 할 뿐아니라 예수를 증언하신다. 예수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하신 예수, 말씀이셨다가 성육하신 예수, 성부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 분을 증언하신다. 그러므로 2,000년 전에 말구유에 오신 예수,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를 지시므로 구속주가 되신 예수, 그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보혜사는 증언하신다. 우리가 예수를 예수님으로,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으로 공백하는 것은 나의 재능과 지혜가 아니다. 성령 보혜사가 하시는 일이요 기능이다.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그래서 성령의 증언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십자가 은혜 아래 엎드린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보혜사가 오셔야 된다. 그래서 예수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이 성령을 구하고 또 부활 승천하시어 이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우리 믿는 자들에게 부어주셨다. 

행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이 오셔야 예수가 예수로 믿어지고 예수가 예수로 드러난다. 고치시는 예수, 사랑의 예수, 빛되신 예수, 생명되신 예수로 예수가 드러난다.
  

3.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을 유익하게 하신다. (요16:7)

요16:7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왜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보내는 것이 유익한가? 떠나가야 보혜사가 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제자들을 유익하게 하시는 영이시다.  

① 성령은 책망하신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요16:8) 책망이 있어야 예수를 믿게 된다. 책망이 없으면 믿지 아니하는 죄가 뭔지도 모르게 된다. 

② 성령은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틀리거나 하지 않고 오류가 없는 것이다. 성령이 바로 진리로 인도하시니 이런 유익이 어디 있는가? 결코 잘못된 곳으로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③ 성령은 장래 일을 알려주신다.

요16:14을 보면 성령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알려주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것은 또 아버지의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성령이 알려주는 것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일치되는 것으로 알려주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장래 일을 알려주실 때 그것이 교회의 유익한 정보가 된다. 

성도에게 지혜가 되고 지식이 되며 장래에 대한 준비가 된다.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될 것인가? 사람이 죽는다는 죽음의 존재인 것만 알아도 태도가 달라지는데 심판을 알게 하고 하늘 나라 천국 생활을 알게 하고 내일의 교회 생활에 대하여 알게 하고 신자의 소망과 상급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고 장래 일, 내일과 모레도 알게 한다면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성령은 제자들을 유익하게 한다. 그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 성령이 거하게 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가 가르치신 성령 보혜사.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안식 후 첫 날,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였는가?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였다. 성령을 받는 것이야말로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에 보혜사 성령을 말씀하셨다. 

보혜사는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다. 그 분이 오시는 것은 육체에 갇힌 그리스도께서 팔레스타인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영으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역사다. 우리 오목천동 사람들도 오시는 성령을 받을 수 있다. 

행2:39을 보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도 이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교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유익을 누린다. 예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예수를 주님으로 믿게 하는 성령이야말로 예수님을 대신하는 또 다른 두 번째 보혜사이다. 

두 번째 보혜사로 인해 우리가 얻는 유익은 측량할 수 없다. 성령 보혜사로 인해 삶이 담대하고 꿈을 꾸고 사역자로 일어서는 승리의 제자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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