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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내 맘에 살아계시네 (눅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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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살아계시네 (눅 24:13-35)


오늘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은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부활절이 되면, 감격스러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높이며, 우리의 목청을 다하여,  목소리가 쉬어 더 음성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소리 높여 찬송하고 싶습니다.  주님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오늘 부른 찬송에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나 항상 섬기네” 이 찬송은 알프레드 헨리 액클리(1887-1960)라는 목사님이 1933년에 작사, 작곡하신 찬송입니다.액클리 목사님은 한 젊은 유대인에게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젊은 청년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시라고 복음을 제시하면서 전도하였습니다.

젊은 유대인은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왜 내가 죽은 유대인을 경배해야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액클리 목사님은 “그분은 살아계십니다. - He Lives”라고 말하였습니다.  목사님을 돌아와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읽고 또 읽고, 사도들의 서신서가 증거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성경을 말씀을 읽고 읽고,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다시 사심은 분명하였고, 온 세상 사람이 몰라주고 무엇이라고 폄하하여도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이었고, 확실하였고, 자기 안에 살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액클리 목사님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정도가 아니라, 항상 섬기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에 예수님을 조롱하여도 주님은 정녕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은혜로운 손길로 부드러운 음성으로 인도하시고 계셨습니다.  

“예수 예수 늘 살아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에 나섰다고 낙심하고 절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그 때에 그의 부인이 상복을 입고 방에 들어왔습니다.  
깜작 놀란 루터가 부인에게 “아니 누가 돌아가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이때에 사모님이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여보,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히 살아계시는데 돌아가시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요?”라고 핀잔을 주는 듯이 말했습니다.“당신이 하도 절망을 해서 하나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하나님이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면 왜 당신은 그토록 낙심하고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하면서 새 힘을 얻어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 주님도 내 맘에 살아계십니다. 성령님도 우리 안에 임해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는 아니지만, 12제자들 못지않게 예수님을 믿고 가까이에서 흠모하며 따르던 두 사람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 날에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묻기도 하고 대답하면서 갈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고 있었지만, 그 두 사람의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시키시고 교권자들과 토론하시며 말씀을 선포하신 일이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면서 유대 교권자들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로마의 총독이 그를 죽인 일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들이 길을 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두 사람은 얼굴에 슬픈 빛을 띠면서 머물러 섰습니다.  그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글로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글로바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그곳에서 되어진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나사렛 예수의 일이요,그 분은 하나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였습니다.”  “우리 유대교의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인데,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 여자들이 오늘 아침 새벽에 무덤에 갔었는데 예수님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그가 살아나셨다’ 라고 말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는데, 여자들이 말한 것처럼 빈무덤만 보고 돌아왔으며, 예수님은 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던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서 예언의 말씀으로 밝히신 대로, 당신에 대하여 쓰신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제자가 그들이 가는 엠마오 마을에 가까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가시는 그 분은 더 가시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에게 강권하면서 “우리와 함께 유하십시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이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유하려 마을로 들어가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들어간 집에서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시더니,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는 그들에게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그 순간에 두 제자의 눈이 밝아져 앞에 앉으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에 없었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제자는 한 10Km 가까이 함께 오시고 많은 성경을 가지고 말씀하시던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했습니다.말씀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걸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이 떠나온 예루살렘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제자들이 자주 모이는 곳에 가보았더니, 열한 제자와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예수님은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 베드로에게 그 몸을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두 사람도 엠마오로 내려가던 그 길에서 된 일과 예수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였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 도상에 나타나신 사건은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도 아니요, 초대 교회 안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데 12제자가 아니기에 더 없이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들 두 사람 글로바의 그의 친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는데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만 생각하였지, 정작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은 귀담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무덤에 장사지내었는데,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였고,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들과 함께 길을 가신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리어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만이다, 죽었는데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뒤를 따라 부활에 동참하고 육신이 부활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죽은 몸에서 일어났는데, 우리도 우리의 죽은 몸에서 육신의 부활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 몸의 부활은 언제 일어나게 됩니까? 이 부활신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그런 생각이 우리의 신앙을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역사적인 부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부활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신령한 몸으로 갈아입습니다.고후5:1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진다는 말은 우리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죽으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란 죽음과 동시에 얻게 되는 우리의 새로운 육체입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란 육신의 장막집 곧 무너질 수밖에 없고 임시적인 육신을 대신하여 입는 새로운 몸, 영원한 집을 말씀합니다.  

저는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5)고 하신 말씀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마지막 재림 때에 일어날 역사적인 부활만을 말씀하지 않고, 현존하는 부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 현존하시는 부활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빠가 죽어 슬픔에 빠져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에게 절망을 극복하고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말씀으로, 부활은 이미 현존하고 있으며, 죽어도 죽지 않고 다시 살게 되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없고 생명과 부활만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엡2:5-6을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셨습니다.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고, 함께 일으키신다는 말씀은 부활을 말하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예수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게 됩니다.  

우리는 더 크고 영원한 세계를 내어다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영생을 누리며,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하늘에 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를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부활을 체험하여, 살아계신 주님이 내 맘에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죽으면 신령한 몸을 입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덧입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면서 이제와 영원토록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시면서 엄청난 능력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가 완성될 때에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모든 성도들을 데리고 오실 때에, 역사적인 완성으로, 온전한 몸으로 변화되어 완성됩니다.  지금 예수님을 선택하시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모든 과정, 모든 은총, 하나님이 준비하신 나라가 다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요5:24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사람들, 지금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 있는 현존의 부활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서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그 즉시 신령한 몸,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덧입혀지고,  역사의 마지막 우리 주님이 천천만만의 성도들을 데리고 오실 그 때에 모든 성도들은 주님과 같은 몸으로 부활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노릇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늘의 도성이 이 땅 위에 자리 잡으면서 부활과 불멸의 아름다운 삶으로 채워집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역사의 마지막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지는 완성된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현존하는 부활도 믿었습니다.  죽음과 함께 일어날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도 믿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살다가 죽어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며, 주님이 우리를 책임져주시면서 완전한 생명, 영원한 생명, 온전한 구원으로 전개되고, 확대되고 완성케 해주십니다.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활을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선택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범죄한 자가 들어갈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신 분은 전부를 선택하셨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무궁무진한 은총과 사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축복이십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사순절을 지키면서 너무나 오랜 시간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따라가다 보니, 다 심각해졌습니다.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죄를 회개하라, 버리라, 새 사람이 되라, 주님을 다라 고난에 동참하라고 하여 다 심각하게 굳어버렸습니다.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할 때에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집니다.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우리 안에서 부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시시하게 세상에서 다 썩어질 것을 가지고 아옹다옹하지 말고,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죽음을 이기는 신앙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1)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정리하여 말씀드립니다.  육신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을 고백하고 영접하는 순간에 시작된 부활입니다. 죽음에서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우주적인 차원의 부활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지금도 우리 맘에 살아계시는 주님, 늘 살아계시는 주님과 함께 부활에 참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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