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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행 2: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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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6-37) 

I. 본문해설 

본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은 직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에 강력하게 임한 성령은 사람들을 바꾸어 놓았고, 핍박의 두려움에 떨던 작은 무리들을 담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갖고 있었고 그것은 설교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해 주듯이 성령의 강한 역사는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방언의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서 모여왔고 모인 사람들이 오순절 날 각각 자기 나라의 말로 방언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방언은 오늘 여러분들이 받은 방언하고는 차원이나 정도가 다른 것입니다. 성령의 직접적인 임재로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말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오늘 일상적인 방언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심리학적인 요소들이 많이 가미되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비교될 수 없는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II. 하나님의 구원 경륜 

이들이 하나님의 큰일을 말했다고 성경이 기록하는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오늘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자신들도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던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방언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방언의 역사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시고 나서 공중에게 첫 번째 보여주신 이적이 바로 방언이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신학적으로 창세기 10장과 연결하여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곳에서 살았고 그들은 하늘 꼭대기까지 이를 수 있는 높은 탑을 쌓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 높은 탑을 쌓은 것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 탑을 보면서 그 탑 아래로 모이자고 하는 의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에 닿을 탑을 쌓아 우리가 흩어지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보기에 커다란 반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시도록 창조하셨고 이 세계 구석구석까지 흩어져 살아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도록 인류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벨에 저주를 내리셨고 이로 인하여 일시에 사람들이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통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작은 집단을 이루게 되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점점 떨어져 살게 되어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강력한 간섭으로 온 지면에 흩어져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이때 내린 혀의 저주를 풀어주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에 있어 기적적인 방언을 주셔서 여전히 갈라진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일시에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큰일 곧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구원경륜에 관하여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역사적인 왕국이 다윗 왕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을 때 바로 이 사람이 다윗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 오신 유대인의 메시아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런 방법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해 주지 않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약속하신 바와 같이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께로부터 주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고, 이제는 그 성령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통치하는 일들을 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오순절 성령 강림은 성령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첫 번째 임재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너희는 예전에 나와 같이 지상 다윗의 나라의 재건을 꿈꾸고 있지만 사실 그 다윗의 나라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했던 것은 그보다 더 훌륭한 영적인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다스리다 죽었지만 이 나라를 다스리는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선포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로 모여 한 주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그 분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임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런 일들이 이루어졌다고 마지막 이 설교에 귀결을 지었던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 위대한 구원의 경륜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III.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심 

A. 그리스도의 부활과 주 되심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과 주되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만약에 부활하신 후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한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주와 그리스도가 아니셨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대답은 이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주셨고 그리스도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기 전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주셨고, 또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 곧 그리스도로 등극하신 것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이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주요 그리스도셨지만 그것을 감추시고 겸손한 종처럼 우리를 위해 봉사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이후에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주 그리스도라 일컬음을 받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앞에 무릎을 꿇어 복종하여 주로 시인하게 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하늘에 오르셔서 이번에는 하나님을 대신해 이 모든 세계의 머리가 되셔서 통치하시는 사실상 성부의 대리자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주’라는 말이 구약에서 말하는 ‘여호와’ 바로 그 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연결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고 아버지께로부터 왕권을 위임받아 이 세계를 통치하시고 성령이 이 땅에 강림하셔서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역사하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을 무너뜨려 위대하고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B.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이 하나님의 은혜가 지상에 있는 불쌍한 인류에게 쏟아지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무한하고 큰 사랑을 알게 해 주시고 일생동안 우리들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공중 권세 잡았던 자들의 마귀의 권세의 구멍이 뚫리고 어두움을 가르는 찬란한 진리의 빛이 들어왔고 죄악으로 가득 찬 그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이 물밀듯 밀려왔던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령의 강력한 역사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했고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도입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이로 말미암아 막혔던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시 열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곧 영생이 모든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IV. 그대의 마음을 찌릅니까? 

이런 복음의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게 하였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깊이 찔렸습니다. 교만하던 유대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그러면 우리가 어찌해야 할꼬’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에 깊이 찔림을 받고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것이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요.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 손에 피를 묻힌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 찔림은 양심의 찔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 드러났고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때까지는 몰랐는데 이 모든 구속의 경륜을 듣고 나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바로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었고, 그 손에 못 박았을 때 그 자신들이 죽인 것은 바로 자신들 속에 하나님이 주시려는 생명을 죽인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찬란한 양심의 빛 앞에 숨을 곳이 없이 부끄럽게 자신들의 죄가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찔렸던 것입니다. 

한때 여러분들도 그렇게 떨리는 찔림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대할 때마다 할 말을 잊고 이렇게 깊은 찔림을 경험하는 것은 거룩하고 위대한 성도의 본분이 아니라 기본적인 자격 조건입니다. 현재 여러분들의 마음을 찌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수시로 묵상할 때나 기도할 때나 찬송을 부를 때나 여러분들의 마음을 찔러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구나,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부당한 일이었고 내가 구원 받은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일뿐이라’고 하는 그런 고백이 여러분 속에 지금도 있어서 오늘도 찔리고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사도는 어찌할꼬 하고 믿는 이 사람들에게 여러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두 가지를 말했는데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징표로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뉘우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모두 이룬 이 구원의 경륜은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 속에 실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항하는 죄악과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악들을 봅니다. 이것들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찔림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매일 매일 반추하며 그 분의 죽음이 바로 나의 삶을 위한 것이었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지신 십자가는 그 분의 몫이었지만 그 분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준 십자가를 지고 갈 때마다 우리는 고통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예수를 죽였다는 사실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찔림을 당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큰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직도 내가 주님의 이 큰 은혜를 몰랐다면 이 십자가의 사랑을 몰랐다면 우리는 여지껏 방황하고 이 세상에서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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