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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에게 배우게 하라 (신 3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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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배우게 하라

(신 31:12-13)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젊은 엄마가,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사 줄까 한참 생각하다가. 책을 선물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살 짜리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에 들어갔습니다. 직원이 반갑게 맞이합니다. “어서 오십시요.. 혹시 찾는 책이라도 있으십니까?” 엄마가 말합니다. “아이에게 줄 동화책을 사려고 왔습니다. 

혹시 그 유명한 ‘돼지고기 삼형제’라는 책이 있나요?”직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고 합니다. “저기 ‘아기돼지 삼형제’ 라는 동화책 말씀하시는 거지요? ‘돼지고기 삼형제’라는 책은 없고요,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떠 올릴 때 마다, 책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아이는 배우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어린이가 배우지 않는다면, 그 어린이에게 어떤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린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하지만 더욱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 31: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배워야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잘 경외하도록 배우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말씀을 듣고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신 31:12)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신 31: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어린이에게,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하여 자녀들에게 성경말씀을 틈날 때 마다, 읽어 주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 특히 아론의 자손 중에서 제사장직을 계승하였는데, 그들은 제사장, 성가대, 성막 수위 등의 업무를 맡아서 일했습니다. 출애굽 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멈추었으며,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했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이때 레위인들은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율법책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에게 보관시키도록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르치는 임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위 지파였던 제사장들은 종교적인 의식을 주관하면서 동시에 백성들을 가르치는 교육적인 임무도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기록된 율법을 그들에게 주어 언제나 백성들을 잘 가르치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막 등을 레위 지파가 그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깨닫고 감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그리고 조금도 손상함을 입지 않는 가운데 영원토록 보존하기 위해서 율법책을 맡겼고 제사장들에게 정기적으로 이 언약의 율법을 낭독시킨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전형적인 것이며, 보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교법사 중에 레위인이 많이 속하게 된 것도 율법을 레위인이 맡았던 까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성경을 어느 한 계층만 소유하거나,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이 깨닫거나, 알아야만 하는 전유물이 아니요, 세상의 모든 인간이 알아야만 하며 알 권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복음을 알리기 위해 복음의 사역에 예수님의 모든 제자 곧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하여야 합니다.

이태리 시실섬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합니다. 어떤 전도자가 길을 가다가 산속에서 강도를 만나 가지고 있던  돈은 다 빼앗기고 소지품은 모조리 불속에 넣으라는 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전도자는 소지품을 모두다 불속에 넣을 수가 있었지만  성경책만은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내가 이책을 불속에 넣겠는데 당신은 여기에  무슨말이기록 되어있는지 궁금하지 않소? 내가 한 두 마디만 읽고 불속에  넣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전도자가 성경을 펼치니 시편 23편이 나왔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강도 앞에서 열심히 읽어가니  강도는 "아하! 그것참 좋구먼! 그 책은 여기다 놓으시지." 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신약 성경을 펴고 마태복음5장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복이 있나니..." 이번에도 "아하! 그것도 좋구려, 그것도 여기  놓으시지?" 하고 나서 강도는 그 성경책을 싸서 날렵하게 사라졌습니다.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목사님 한분이 전도자를 찾아 왔습니다. "날 기억하시나요?" "아뇨?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시면 수년전 강도를 만나서 돈과 성경을 빼앗겼던 일은 기억하시나요?" "예 그 사실은 기억 납니다." "죄송합니다..." 말을 더듬으면서 "내, 내가 바로 그 강도입니다. 전도자님의 물건 속에 주소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 책을 가지고  가서 읽기 시작한 후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나는 신학공부를 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전도자님 용서해 주세요!" 라고 성경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회개의 역사를 이루키는 능력으로 임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지켜 행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신 31:12)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년의 초막절에도 율법을 낭독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 40년의 쓰라린 고통, 곧 집도 없이 떠도는 장막 생활을 해야 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7일 동안 준비한 장막에서 그 당시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의 풍성한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도록 하려는 데 그 절기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규례를 통하여 광야 생활을 를 경험했던 자는 다시금 과거를 회상하게 되고, 알지 못하는 후손들은 이러한 기회에 선조들이 경험했던 광야 생활에 동참하여 자신들도 이스라엘 공동체와 하나가 되어 생활속에 적용하므로 지난 날의 선조들의 신앙 체험을 현재의 자신의 것으로 적용 하였습니다.
  
영국의 제임스6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6세이면서 잉글랜드의 제임스1세)때의 얘기라 합니다. 당시의 염소 도둑은 아주  큰 도둑으로 간주돼 대개는 사형선고를 받는 게 상식이었다 합니다. '아티 암스트롱'이라는 사람 역시 염소도둑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 집행 날만을 기다리던 이 사형수는 간수에게 한가지 청을 했습니다.

"간수님 죽기 전에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국왕 폐하까지 성경을  영문으로 번역을 하셨다는데 제가 죽기 전에 번역하신 성경을 보고 죽는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 간청이 국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왕으로서는 어렵게 번역한 성경을 아무도 보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사형수가 회개하면서 자기의 번역서를 보고 싶어 하다니 하며 감격해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 성경을 건네주면서  "그 사형수가 이 성서를 다 읽기 전까지는 사형을 시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형수는 한 술 더 떠서 이 성경을 완전히 암기하기 위해서 하루에 한 줄씩만 읽겠다고 했는데, 국왕은 그 말이 마음에 든다며 다 읽자면 300년이 걸릴테니 마음껏 암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읽는다는 보고를 듣자 집행 유예처분을 내려 궁에서 일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머리 좋은 염소도둑은 성경을 항상 끼고 다녔다고 합니다. 국왕은 점점 그를 총애해 그는 궁안을 거리낌없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단지 국왕이 번역했다는 성경 한권 때문에 사형은 커녕 호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사는 자에게는 더 큰 은헤와 복으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자녀들에게, 성경말씀을 읽도록 하고 있습니까?
말씀대로, 예배생활하고, 기도생활하고, 헌금생활하고, 봉사생활 해야 된다고, 잘 가르치고 있습니까?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믿음의 어머니 한나는, 기도하며,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말씀으로 양육하였습니다. 서원한데로, 사무엘을 성전에 갔다 드렸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키워서,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선지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제사장의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는 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맛있다고, 드리기도 전에, 도적질하여, 먹어 버립니다. 결국, 홈니와 비느하스는 한 날 한 시에, 죽게 되고, 그 소식을 듣고, 놀라서, 엘리도 의자에서 떨어져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존중’(카바드)이라는 말은 ‘무겁다’ 라는 뜻입니다. 무겁다. 중하다.. 중요하다...하나님을 중하게 중요하게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보면 유니우스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합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백과사전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또 그를 설명하기 위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것을 보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17세기에 살던 사람으로, 목사이자 탁월한 고전학자로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를 지냈던 분이라 합니다. 그는 목사 집안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목사였는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지만 기독교 백과사전에 그 이름이 실릴 정도로 탁월한 인물이었다 합니다. 그러니까 부자간에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라면 어려서부터 그 믿음이 탁월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니우스는 그렇지 못했다 합니다. 그는 어릴 때는 아버지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긴 했지만 머리가 커지고 학교에 가서 고등학문을 배우면서 점점 믿음에서 떠났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신앙생활마저 포기해 버리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놓고 늘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절대 강압적으로 신앙생활 잘 하라고 말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신앙의 가족들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예수 잘 믿으라고 너무 윽박지르면 자녀들이 오히려 빗나갈 확률이 참 높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상당히 총명한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속이 답답하지만 인내하면서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꾸준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에 그 아버지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들이 가끔 자기 서재에 들릴 때면 늘 찾아가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다 신약성경을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갖다 놓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아들의 눈을 열어 주시면 아들이 성경책을 보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하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어느 날 유니우스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서재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생각에 골몰하면서 늘상 하는 대로 자기가 잘 가는 그 자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책이 한 권 놓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심코 그 책을 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요한복음 1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니라." 

이 구절을 슬쩍 보는데 뭔가 가슴을 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을 배웠기 때문에 논증의 구조를 잘 보는 예리한 눈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요한복음 1장 1절의 논증 구조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야, 이거 대단한 논증인데.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고, 군더더기도 없이 핵을 치면서 3단계로 뛰는 논증이 다 있네.' 하고 그 논증 방법에 감탄을 한 것입니다. 

내친김에 그는 요한복음 1장을 내리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읽어갈수록 자기 마음이 자꾸 이상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뭐,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이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마음이 자꾸 이상해지니까 이내 성경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황급히 서재를 나왔는데, 이상하게 그 마음이 진정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흥분했다고 할까요?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요? 아니면 불안했다고 할까요? 무엇인가에 쫓긴다고 할까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감정에 붙들려서 헤어나지를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도, 심지어 밤을 새도 마음이 진정 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너무 견딜 수 없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제가 이제 믿겠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제가 이제 고백합니다" 하고  신앙고백을 했다합니다. 그랬더니 그 순간에 형용할 수 없는 평안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합니다. 그 불안하고 초조하던 마음이 바다와 같이 잔잔해진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유니우스는 신학 공부를 시작해서 목사가 되었고, 옥스포드대학에서 가르치며, 성경의 사본을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하는 학자가 되었다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를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신줄 믿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합니다.
멸시(칼랄)는 가볍다 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가볍다. 중요하지 않게 여기다. 기준 이하로 보다...그런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가볍게 여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하나님께서 가볍게 여기시니, 바람에 날려 버립니다. 그래서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의인은 반대입니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이 의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인도하시므로 하는 일이 다 형통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의로운 자리에 함께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주일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 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 가르치지 못하면 놀러가겠다고 주일을 빼먹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찬송도 모르고 기도도 못하고 성경도 찾을 줄 모릅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외식하고 선물 사는 것은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께 예물 드릴 줄은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바른 믿음을 배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이 바른 신앙을 배울 때, 그 자녀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가정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 사회 국가 교회는 내일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동북부 콰피리스탄 산지에 사는 종족인 한 콰피르인이 선교사를 찾아왔다합니다. 선교사가 준 성경책을 사냥개가 먹어 치웠다는 푸념이었다 합니다. 선교사는 위로하면서 한 권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합니다. 원주민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불평했다합니다. "사냥개가 성경책을 망가뜨린 것보다 성경책이 저희 집 개를 망쳐놓았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지요." "아니, 성경책이 당신의 사냥개를 망쳐놓다니요?" "성경을 먹기 전에 우리 집 개는 정말 사냥 하나는 잘하는 뛰어난 맹견(猛犬)이었지요. 그런데 이제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으니 사냥을 하려고 들지 않을 것 아닙니까?" 
개가 성경책을 먹었다고 원수를 사랑하여 사냥을 포기 하지는 않겠지만 원주민은 그렇게 여겼다면 원주민의 마음에 변화가 있었다는 추론을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믿음위에 나라를 세워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제일 중요하게 해야 될 일은 자녀들에게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배우도록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자녀에게 배우게 하되 말씀을 배우게 하고 말씀대로 사는 법을 배우게 하며 진정한 복 받는 삶이 무엇인가 배우게 하여야 합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만나고 우리에게 성찬을 허락하신 은총을 깨닫고 성찬에 참여 하며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쳐 배우게 하며 사명 감당 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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