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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들이 건강합니까? (신 31:12-13, 골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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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건강합니까? (신 31:12-13, 골 3:21)


유대인 가정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꼭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학자인 아끼바의 이야기입니다. 아끼바는 어느 부잣집에 머슴살이로 들어가서 일하던 중 주인집 딸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것이 발각되어 주인은 딸과 아끼바를 쫓아냈습니다. 그들은 쫓겨 나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끼바의 부인은 남편의 무식에 크게 한탄하였습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지금부터라도 학교에 다니라”고 권하였으나 아끼바는 “나이 40이 넘어서 어떻게 공부할 수 있겠느냐?”며 거절하였습니다. 

그 후 아끼바는 계속 양 치는 일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 중 어느 날 목이 말라 개울에 엎드려 물을 마시다가 눈앞에 있는 바위를 바라보니 물이 흘러 떨어진 곳이 움푹 패어 있었습니다. 아끼바는 그 바위를 보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물 한 방울은 약하지만 오랜 세월 동언 흐를 때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나도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하고 배우면 된다’는 신념으로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유명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들려주세요. 이미 늦은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갈고 닦아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가정에 주신 선물입니다. 시편 127:4-5에는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화살 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고 합니다. 군인은 화살 통에 화살이 가득할 때 든든하듯 가정에는 자녀가 든든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든든한 존재로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부모의 몫입니다. 
  
자녀가 든든한 존재입니까? 자녀가 애물단지입니까? 애물단지라면 애물단지로 키운 부모의 책임도 큽니다. 부모는 모름지기 양육권을 바르게 행사하는 것입니다. 부모 양육권이란 밥 먹이고, 옷 입히고, 학교 보내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양육권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교육 내용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는 하나님께서 의탁하신 영혼이다. 둘째는 선생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는 훈련은 행동으로, 본으로, 삶으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공부 잘 하고 약한 것과 공부 못하고 건강한 것, 어느 것이 좋습니까? 공부 잘 하고 건강하면 좋지만 만일에 하나만 택한다면 건강이 제일입니다. 오래 전 어느 광고에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는 것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이들이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리 지식이 있고 착하다고 하더라도 늘 부모에게는 걱정거리입니다. 
  
최근에 와서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부자 되세요”를 제치고 “건강하세요”가 차지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 되어라”보다 “건강하려라”가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규정에 ‘건강은 조화로운 상태를 뜻한다’라고 한다고 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조화롭게 건강한지를 살펴야 합니다. 영적 건강과 육적 건강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살펴서 자녀들이 영육 간에 건강한, 전인적으로 건강한 자녀들로 양육하는 우리 부모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자녀들이 영적으로 건강합니까? 

신명기 31:13에는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에게, 자녀에게 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칠 핵심 내용은 여호와 경외하기입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모르고 세상 학문에 통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사무엘을 보세요. 그는 그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성전에서 엘리의 지도하에 성장하였습니다. 후에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가 되었습니다. 선지자이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최대 왕 사울과 둘째 왕 다윗 왕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런 그의 삶은 어릴 때 영적으로 양육 받았던 덕입니다. 

사무엘상서 3:1에는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섬기는데 사무엘은 누구 앞에서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법을 아이 때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흉악범 혹은 패륜아라고 알려진 이름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10명이나 죽인 강호순, 1994년에 부모님을 죽이고 시체에 불을 지른 박한상,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지강헌,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등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다 문제가정, 결손가정, 파괴된 가정 출신이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영적 교육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박한상의 경우는 그의 아버지가 교회의 안수집사였고, 중고등부장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고3이 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회에 일찍 나와서 예배만 드리고 공부하게 했습니다. 미국에 가서도 예배보다 공부만 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국에 와서 부모를 칼로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영적 가르침이 없이 세상 가르침만 있으면 잘 될 것이라는 부모의 잘못된 생각이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빌리 선데이는 “기도하는 부모를 가진 자녀를 마귀가 넘나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녀에게서 마귀가 피해가게 해야 합니다. 
  
신명기 31:12에는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침 받는 일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있었던 일을 적고 있습니다.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루디아는 복음을 받고 저와 온 집안 식구들이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밤에 찬송하는 중에 옥문이 열렸고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탈옥한 줄로 알고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탈옥하지 않았으니 자살하지 말라고 하였고, 그날 간수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간수가 예수를  믿고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보에서의 이 말씀은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아이들까지 다 세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 이 말씀은 온 가족이 같은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 가족이 영적 일체감을 가지는 것, 영적 공감대를 가지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자녀가 영적으로 부모와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녀가 영적으로 부모와 일체가 되지 않으면 무언가 가정에서 문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좋은 대학교는 아무리 멀어도 보내는데 교회는 아무데나 보내는 것은 잘못입니다. 좋은 대학이 아니라 좋은 교회가 자녀에게 더 중요합니다. 우리교회는 좋은 교회인데 자녀가 우리교회에 와야 영적 일체감을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설문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45%가 건강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중 20%는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고 하였습니다. 가끔 운동하러 가보면 운동하면서 담배피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운동하여 벌어놓은 것을 담배 피워서 다 까먹은 격입니다. 

한국인 가운데 건강이 양호하다는 사람은 10명중 4명 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37%만이 건강이 양호하답니다. 모두들 괜찮아 보여도 건강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도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건강한 아이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의 건강도 육체보다 영적 건강이 더 중요한데 영적 건강이 무시되고 있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일까요? 어느 왕이 나라의 모든 의사들을 모아놓고 건강과 장수에 관한 모든 지식을 모으라고 하였습니다. 의사들은 1만 페이지가 넘는 책을 만들어 가지고 왔습니다. 왕은 그 많은 말을 다 볼 수 없으니 짧게 요약해서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의사들은 1천 페이지로 요약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미 나이가 많아 그 많은 것을 다 볼 수 없어 다시 요약해서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의사들은 다시 가서 오랫동안 수고하여 한 페이지로 줄여서 가지고 왔습니다. 왕은 그 한 페이지도 볼 수 없어 다시 간단히 한 줄로 줄여서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의사들은 가서 다시 한 페이지를 한 줄로 요약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그 한 줄은 “발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발은 뜨거워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는 차가워야 합니다. 냉철한 지성과 뜨거운 영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전인적 건강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바셈’(Yad Vashem)이 있습니다. 이 기념관 공원에는 한 조각이 있습니다. ‘마지막 행진’이라 이름 지은 조각은 유대인이 가스실에 끌려가 사형당하는 장면입니다. 어느 유대인 어머니가 아들의 손목을 잡은 조각입니다. 어머니가 병든 아들에 하는 말이 “아들아, 엄마는 가스실로 끌려간다. 이제 마지막이다. 너를 데리고 가면 너도 죽는다. 너를 버려도 누가 돌보지 않으면 병들어 죽겠지만 너를 하나님께 맡긴다”라는 말을 남기고 어머니는 가스실로 끌려들어가서 죽습니다. 그 아들이 장성하여 조각가가 되어 이 작품을 조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아들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든든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하나님께 맡기세요. 여러분의 자녀를 영적으로 건강한 자녀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자녀들이 육적으로 건강합니까? 

골로새서 3:21에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합니다. 노엽게 하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의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은 분노, 노여움이라는 사실을 실험 결과 알아냈습니다. ‘화’(anger)와 ‘위험’(danger) 알파벳 하나 차이입니다. 화난 상태에서 하는 생각 없는 행동이나 노여움의 한마디가 참 위험합니다. 노여움의 한 마디가 자녀들의 육적 영적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질 수가 있습니다. 
  
분노가 많은 남자는 심장발작이나 관상 심장질환의 위험이 3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분노는 사람을 죽입니다. 분노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은 마치 일상생활 속에서 약효가 서서히 나타나는 독약을 조금씩 먹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아이가 죽을 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육적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습니까? 자녀 때문에 화를 내지 않습니까? 자녀들이 육적으로 건강합니까? ‘성내다’, ‘화내다’, ‘노엽게 하다’라는 말은 성경에 제법 많이 나옵니다. ‘화’라는 단어는 성경에 400번 이상 나옵니다. 화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 나오는 곳은 가인이 분을 내었다는 말입니다. 분을 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아벨을 육적으로 죽인 것입니다. 분노란 사람의 영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육적인 상처도 엄청나게 남깁니다.  
  
분노는 뜻하지 않는 피해를 낳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언어의 미사일을 쏘았지만 작은 파편 조각들이 아들의 영혼을 관통하였습니다. 아들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적으로도 깊은 상처를 평생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분노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합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라는 말은 무리한 요구로 자극시키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녀의 마음과 몸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6:4에는 “또 아비들아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모름지기 자녀를 영적 육적으로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로마 시대 ‘빠뜨리아 뽀데스타스’(Patria Podestas)라는 법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법’입니다. 로마시민권자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절대 권한을 설명한 법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수도 있고, 때리고 채찍질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법은 세계 최고의 법이었습니다. 이런 로마의 법에 대하여 바울은 “자녀를 무시하지 말고,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녀들을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해줄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부모는 자녀에 대한 양육권, 책임은 있지만 소유권은 없습니다. 시편 127:3에는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합니다. ‘기업’이란 말, ‘클레로스’는 분깃, 몫 그리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내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하지 못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답니다. 첫째는 자연을 보고 웃지 못합니다. 둘째는 콧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셋째는 유머를 하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유머를 하는데 웃지 못합니다. 자녀가 육적으로 건강해야 성격도 쾌활해지고 웃음도 많아지고 세상을 보는 눈도 밝아질 것입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테니스 스타, 지미 코너스는 “육체만 건강해서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성과 감성 그리고 정신도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전인적 존재이므로 육체만 가지고는 건강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영혼만 가지고는 건강을 말할 수 없습니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건강해야 건강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교회도 잘 나오고, 공부도 잘하고, 영혼이 건강하고, 육체도 건강해야 참 건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지성이라고 하는 이어령교수는 “아버지는 수염을 잃어버렸고, 어머니는 사랑을 잃어버렸다”라고 하였습니다. 수염은 아버지의 권위의 상징인데 아버지는 권위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더 이상 사랑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부모다움을 상실한 시대라는 문화 비평입니다. 부모가 부모다움을 회복해야 자녀가 영육간에 건강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자녀로 키우는 것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2학년이 쓴 글입니다. “엄마가 있어 좋다.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먹을 걸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놀아주어서.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묻고 싶다”. 아버지들이여, 정신을 차리세요.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야 가정이 삽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야 자녀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99%의 문제는 부모가 자녀들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아버지들이 가정의 제사장이 되세요. 자녀의 영혼과 육체를 건강하게 지키세요. 자녀의 영적 육적 건강을 지키지 못하면 훗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키는 커졌는데 체력은 약해졌습니다. 잘 생기고, 예쁘고, 꽃미남인데 불임이 많아졌습니다. 우리 자녀를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게 키웁시다. 

  
결론 

자녀 다섯을 낳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많은 자녀들을 둔 어머니에게 다들 물었습니다. “어떻게 다섯 명이나 낳았어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어머니의 답이 그 때 마다 달라요. 기분이 좋을 때는 “하나님의 축복이지요”라고 합니다. 기분이 나쁠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지요”라고 합니다. 자녀가 축복이냐, 심판이냐는 나의 자세, 나의 교육, 나의 양육에 달렸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이기를 바랍니다. 한 자녀도 심판이나 저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가 건강합니까? 우리 모든 자녀가 건강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가 우리교회의 장래 희망이 될 것입니다. 육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가 우리국가의 장래 희망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의 체력은 국력입니다. 우리 자녀를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건강한 자녀로 키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자녀가 하나님의 선물이 되고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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