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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은혜 (벧전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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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은혜 (벧전 1:3-4)    

부활주일의 아침을 맞이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에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과 축복이 차고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완전히 다른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요 또 가장 중요한 교리입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 놓으면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게 하셨지만 만약에 죽으시고 부활하지 못했다면 그 모든 사역의 구속은 헛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고전15장)에서는 사도바울은 이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장황한 논리를 전개하면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거짓 증인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다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 놓으면 남은 모든 것들은 다 공 돼 버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가, 또 부활로서 이루어지는 은혜가 무엇인가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부활의 근거 

사도바울이 부활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3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즉 부활의 근거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님이 죽으실 뿐 아니라,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에베소서에서 ‘긍휼’에 대해서 ‘풍성한 긍휼’이라고, 긍휼이라는 원어의 뜻은 비참한 자리에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옮겨 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긍휼입니다.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지 않고는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이것은 바로 실제입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이 우리를 택해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죽게 하시고, 다시 부활하게 하시고,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할 수 있도록 소망을 주셨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부활은혜의 내용 

1)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부활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부활의 은혜는 3절에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부활의 은혜는 바로 우리가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글자그대로 우리가 새롭게 되어진다. 새롭게 태어난다. 또 우리가 신학적인 말로는 중생했다 새로움을 입었다 그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서에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가서 새것이 됐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됐습니다. 

불신자와 우리들이 다른 것은 바로 우리들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새로운 영이 거하신다고 하는 사실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창조물이 됐습니다. 거듭남을 통해서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됐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죄 가운데 죽었던 죄인인 우리들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의인들이 됐습니다. 그리고 점점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 우리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굼벵이가 어두운 침침한 곳을 찾아 기어 다니고 있지만 굼벵이가 껍데기를 벗는 그 날에는 매미가 돼서 공중에서 날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것처럼 굼벵이의 생활과 매미의 생활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우리 부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혹시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 생활이 굼벵이처럼 이 땅위에 몸을 딛고 이 땅위의 필요를 위해서 살아가지만 우리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부활의 축복으로 인해서 다시 부활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활이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했습니다. 

2) 산 소망이 있게 한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부활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소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죽은 소망과 산 소망, 죽은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세상의 소망은 죽은 소망입니다. 그건 헛된 소망이고, 그건 보잘 것 없는 소망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좀 더 보람되게 살기 위해서 세상적으로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런 소망들은 헛된 소망입니다. 헛된 소망을 가지고 그대로 이루어 진 사람 얼마나 됩니까? 별로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이루어졌더라도 그 속에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또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소망은 죽은 소망, 그 소망에는 역시 죄악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산 소망, 그 말은 살아 있는 소망, 살아있다는 말은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소망, 그 생명은 움직이는 것이고, 활동하는 것이고, 생명은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래서 겨울 동안 땅 속에 파묻혀 있던 생명의 씨들이 이제 따뜻한 봄이 되면, 땅을 뚫고 나와 새싹이 나기 시작하고, 그가 나무가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 않습니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은 이렇게 무서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산 소망이라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고,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산 소망 속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산 소망은 나 자신과 죄악과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환란, 시련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산 소망이지, 죽은 소망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합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산 소망의 주체는 무엇입니까? 나는 죽어도 살아난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나도 부활한다고 하는 사실, 이것이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영생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 소망입니다. 부활의 소망, 그 소망은 살아 있는 소망, 그 소망은 어떤 환란, 시련에도 넉넉히 승리할 수 있는 소망, 우리는 아무리 죽어도 다시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3)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신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1:4) 

  -기업 -                           - 신약 - 
  ① 가나안과 동등시                ① 영생      
  ② 하나님 자신과 동등시         ② 천국 
  ③ 천국과 동등시                   ③ 구원 

이것은 썩지 않고 더러워 지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한다.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 몇 가지 의미로 사용이 되는데 가나안 복지와 동등시 됩니다. 또 하나님과 동등시하게 됩니다. 또 천국과 동등시 하게 됩니다. 신약에 와서 기업이라는 말은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또 영생이라는 말입니다. 또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기업이라는 말을 한마디로 줄이면 바로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함으로 인하여 우리도 부활해서 영원한 천국의 기업을 잇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소망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폭풍이 휘몰아친다 할지라도, 캄캄한 절망의 구렁텅이를 헤맨다 할지라도,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참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천국의 소망은 어떻게 됩니까? 이것은 썩지 않습니다. 천국은 썩어 없어지는 데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아무리 강한 것도 다 썩어집니다. 쇠도 아주 단단해 보여도 땅에서 오래 있으면 다 썩어 집니다. 외국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그렇고, 원자 찌꺼기 들을 다 철저하게 봉해가지고 담아 놨는데, 왜 문제가 생겼습니까? 그것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새어 나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 것은 다 썩어집니다. 썩지 않는 것 없습니다. 아무리 냉장고에 넣고 냉동실에 넣어 봐도 오래되면 다 변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더럽지 아니한다. 천국은 더러운 곳이 아닙니다. 죄 가지고는 못 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아주 청결한 곳입니다. 의인들만 모이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죄가 없으니까, 따라서 죄로부터 오는 이 세상 질병도, 고난도, 괴로움도, 염려도, 불안도, 가난도, 모든 인간의 고통이 없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여러분, 더럽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그랬지만 이 세상 것은 다 쇠해집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고 건강학이 발달해서 건강하고 오래 살려고 다 난리 아닙니까? 한 쪽에서는 노인 시대가 된다고 난리인데, 한 쪽에서는 또 노인이 될려고 또 난리입니다. 여러분 건강관리 잘하고, 식사 관리하고 열심히 운동한다고 해서 늙지 않습니까? 쇠하지 않습니까? 다 늙게 됩니다. 좀 연장할 뿐이지. 역시 몸은 노화가 되어서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인간이라 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쇠하지 않습니다. 낡아지지 않습니다. 천국은 무너지는 법이 없습니다. 천국은 파괴되는 법이 없습니다. 황금 보석 찬란한 영원한 천국,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기업을 잇게 하나니, 그 다음은 감격적인 말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예비 하신 것이라’ 현실이 힘들고 고달파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처럼 우리도 부활해서 영원한 기업,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두신 영원한 기업에서 영원토록 살날이 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참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처소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갈 날이 옵니다. 안심하십시오. 가기 싫어도 갈 날이 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부활의 아침, 우리 모두 산 소망을 가지고,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내일도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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