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귀하게... (딤후 2:20-21)

첨부 1


귀하게... (딤후 2:20-21) 
 
심리학자들이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습니다. 같은 환경과 조건 아래 세 개의 상자를 준비하고 A상자에는 쥐 한 마리를, B상자에는 쥐 열 마리를, C상자에도 쥐 열 마리를 넣었습니다. 세 상자에 들어 있는 쥐들은 꼭 같은 음식, 온도, 습도로 길렀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C상자에 있는 쥐들은 매일 정성스레 어루만져 주며 말했습니다. “쥐들아.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고는 쥐들의 수명을 관찰하였습니다. 홀로 사는 A상자의 쥐는 500일을 살았습니다. B상자의 쥐들은 평균 750일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매일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 준 C상자의 쥐들은 평균 950일을 살았습니다. 

혼자 사는 쥐보다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사는 쥐들이 훨씬 더 오래 살았습니다. 공동체로 사는 쥐들 중에서도 날마다 사랑을 표현하여 준 쥐들이 훨씬 오래 살았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생활이 중요합니다. 혼자 사는 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사는 것도 좋지만 자녀들과 함께 살면 더 좋습니다. 자녀도 하나 낳는 것보다 둘, 셋, 넷 할 수만 있으면 많이 낳는 것이 좋습니다. 
   
어제 심방을 다녀오면서 하남시 덕풍동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를 보면서 제 아내가 “집을 저렇게 많이 지었는데 다 분양이 될까요?”라고 말해서 제가 “아무 걱정하지 말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즘은 부부만 사는 집도 많고 혼자 사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이게 문제입니다. 나홀로 살기 때문에 세상이 너무나 삭막합니다. 정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지고 볶고 하면서 살아야 인간적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나홀로 하면 안 됩니다. 공동체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자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적인 고아입니다.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혹 물질적으로 풍성해도 그 마음에는 항상 허전함이 있습니다. 부모가 채워 줘야할 공간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적인 고아와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채워줄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이 비어있기 때문에 인생이 공허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식구들이 사는 집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족입니다. 육적인 가족관계는 이 땅에서 유효하지만 천국 가면 영적인 가족 관계가 유효합니다. 이 땅에서는 길어야 100년이지만 천국 생활은 영원한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하나는 사역입니다. 또 하나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사역은 있는데 교제가 없다면 일은 잘 될지 몰라도 영성생활은 삭막합니다. 교제는 있는데 사역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풍성해지지만 하나님의 일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사역과 교제가 균형을 이루어야 잘 하는 기도입니다. 
   
문에서는 교회를 큰 집이라고 말하고, 성도는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큰 집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습니다. 20절을 봅시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리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어느 집이든지 부엌의 수납장을 열어보면 다양한 그릇이 많이 있습니다. 저희 집도 수십 개 아니 그 이상의 그릇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주방에도 들어가 보면 몇 백 개의 그릇이 있습니다. 그릇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는 그릇처럼 수많은 사람,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생긴 것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신앙도 다르고 기호도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과거에는 교회에 대한 패러다임이 용광로였습니다. 용광로에 다양한 고철들이 들어가서 뜨거운 불에 녹아집니다. 그리고 다양했던 고철들이 하나가 됩니다. 교회를 용광로로 보았던 시대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동일한 색깔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무지개입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다양한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무지개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교회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색깔로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지개 패러다임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절대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생활을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양성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큰집에 다양한 그릇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그 다양한 사람들이 가져야 할 하나의 목표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에게 귀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20절 뒷부분에 보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입니다. 기왕에 쓰임 받는 것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은 어떤 그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설교를 듣는 모든 분들은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그릇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집에 있는 그릇입니다. 
   
집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도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 안에 거해야 합니다. 주 안에 거한다는 말은 주님의 손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같은 칼이지만 의사가 잡으면 사람을 살리는 칼이 되고 강도가 잡으면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됩니다. 같은 공장에서 만든 주전자이지만 주전자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달리 사용됩니다. 주전자가 술집에 가면 술꾼들이 쓰는 주전자가 되는 것이고 청와대에 가게 되면 대통령이 쓰는 주전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십시오. 주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잡고 쓰시는 것입니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지만 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하여 일하고 또 한 사람은 주를 위하여 일할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살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프리카 밀림으로 갔습니다. 그는 [나의 생활과 사상]이라는 자서전에서 자신은 아프리카 밀림으로 갈 때 하나님을 위해 세 가지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첫째, 바하의 음악을 포기했습니다. 둘째, 유명한 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했습니다. 셋째, 연주와 저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장된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세 가지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평생 아프리카를 위해서 희생과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포기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큰 복과 은총으로 보상해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첫째로 그는 바하의 음악을 포기했지만, 바하 협회로부터 열대지방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대형 페달 오르간을 기증 받아 계속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독일의 유명한 대학에서의 강의는 포기했지만, 세계 여러 대학에 명사로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그는 연주와 저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나의 생활과 사상]이란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오히려 더 넉넉하게 아프리카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을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 안에 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사십시오. 그러면 귀한 그릇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것입니다. 보상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2. 깨끗한 그릇입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깨끗해야 합니다. 21절에 보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면 어떤 그릇을 쓰시겠습니까? 금그릇? 은그릇? 아닙니다. 깨끗한 그릇입니다. 씻지 않고 설거지통에 넣어둔 그릇을 그냥 사용하겠습니까?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사용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급하다고 아무나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깨끗한 그릇을 쓰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급하셔서 일단 능력 있는 사람을 들어 사용하셨는데 그가 더러운 그릇이라면 그는 소몰이용 막대기와 같습니다. 농부가 소를 몰고 가는데 소가 말을 듣지 않아서 길옆에 있는 막대기를 집어서 소를 때리며 소를 몰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소가 외양간에 들어가면 소를 몰고 온 막대기는 어떻게 할까요? 땔감으로 아궁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급하셔서 사용하셨지만 그가 깨끗한 그릇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깨끗한 그릇으로 자신을 준비시켜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깨끗한 사람입니까? 깨끗한 신자가 되는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주 사함을 받아서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입니다. 문제는 그 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요일1:7에 보면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요일1:9에 보면 하나님 앞에 자백하므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마치 걸레로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을 청결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극히 작은 죄도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마음에 쌓아놓지 마시고 생각나면 바로 바로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딤전 4:5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은 영적으로 샤워하는 시간입니다. 물로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물의 역할을 해서 우리의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거룩이 능력’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폴란드 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Rubinstein, Artur, 1887~1982)이 연주를 하기 위해 일본 동경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장의 명령을 받은 한국일보 주일특파원이 그에게 한국에서의 콘서트를 제안하여, 유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최초로 루빈스타인 콘서트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1966년입니다. 지금이야 한국이 엄청나게 발달하여 그렇지 않지만, 당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이틀 동안 콘서트를 한다고 하자, 온 나라 안이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뛰어난 콘서트 장소와 훌륭한 악기가 없었습니다. 어렵게 그가 이화여대 강당에서 콘서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콘서트를 하기 전에, 자신이 연주할 '스타인 웨이 판'이라고 하는 피아노를 한번 두드려보더니 갑자기 'I can't', '못하겠다'고 말하더랍니다. '악기 상태가 너무 나빠서 안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주최측에서는 일본 동경에서 피아노 조율사를 급히 불러다가 그가 ! 연주할 피아노를 조율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피아노에 앉아 연습을 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삐익”하는 기차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연주하는 동안 저 기차 소리가 나면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하더랍니다. 
결국 신촌 구간의 기차를 정지시켜 놓고 그의 콘서트를 진행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음악가들은 자기가 연주할 악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며 아무 악기나 가지고 연주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준은 루빈스타인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중요한 기준은 깨끗함입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귀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3. 준비된 그릇입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려면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 사용하시기 위해서 8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노아는 홍수 때 방주를 사용하기 위해서 120년을 준비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에 나타나기까지 빈들에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준비해야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신자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첫째, 실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나를 알아봐주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때가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모세도, 요셉도 또 다윗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지 않았을 때는 세상이 그들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니 세상이 그들을 알아봐주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있으면 다 알아주는 것입니다. 몇 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추신수 선수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실력을 갖추게 되니 온 세상이 그를 알아봐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실력자를 알아봐주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탁월한 인재요 수재라고 생각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아주 특별한 인물로 알았는데 대학 졸업 후 입사 시험에 거듭 실패를 했습니다. ‘나 같은 인재를 몰라보는 이 어리석은 세상에서 살아 무엇 하나?’ 그는 죽기로 결단하고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한 노인이 그것을 보고 뛰어들어 그 청년을 구했습니다. 

청년의 사연을 들은 노인이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를 주워서 청년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 손에 있는 그 모래를 이 모래사장에 떨어뜨리게나.” 청년이 모래알을 떨어뜨리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방금 떨어뜨린 그 모래알을 주워서 나에게 주게나.” “할아버지, 이 모래사장에서 그 모래를 어떻게 찾아요?” 

그러자 노인은 자기 호주머니에서 진주 하나를 꺼내어 청년에게 주며 다시 말했습니다. 
“자, 이번에는 그 진주를 모래사장에 떨어뜨리게나. 그리고 다시 그 진주를 주워서 내게 주게나.” 
청년이 진주를 떨어뜨린 다음 금방 다시 주워서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이 사람아,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는 다 똑같아 표가 나지 않지만 진주는 금방 알아 볼 수 있네. 이처럼 자! 네가 진짜 수재이고 인재이면 사람들이 왜 자네를 몰라보겠는가? 착각하지 말고 자네를 진주처럼 값지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가꾸어 나가게.” 노인의 말에 크게 깨달은 청년은 ‘그래, 내가 착각을 했구나. 나는 그저 모래알 같은 흔한 사람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구나.’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력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실력을 키우십시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든지 헌신하면 써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하고 큰일은 아무나 헌신한다고 쓰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이 있어야 쓰시는 것입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합니다. 발자크라는 사람은 키가 작아서 늘 열등의식이 있었습니다. 사실 키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는데 키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키 때문에 열등감을 갖는 것이 문제입니다. 키가 작아도 얼굴이 잘 생겼으면 괜찮은데 얼굴도 못생겨서 열등의식이 더 심했습니다. 사실 얼굴 못 생긴 것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좀 봐주기 그래서 그렇지 괜찮습니다. 

그런데 발자크는 못생긴 것 때문에 열등감이 심했습니다. 발자크는 키로 인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구두 굽을 높였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의 키가 정말로 그렇게 작지 않은 줄 알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에이, 가짜 키다.”하며 비웃었습니다. 키가 커 보여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굽이 너무 높으니 마음대로 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헛된 짓을 하고 있었구나. 그래, 실력을 키우자.’ 그는 굽이 높은 구두를 벗어버리고 새벽 2시에 일어나서 10시까지 공부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쉰 다음에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또 공부했습니다.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공부했� 윱求�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의 대문호가 되었습니다. 실력이 있으면 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력을 키우려면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영력을 준비해야 합니다. 
   
영력은 일반적인 일이 영적인 일이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력이 있는 사람은 일반적인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로 만듭니다. 남들과 같은 일을 하지만 그 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다니엘은 총리로서 국가의 일을 했는데, 그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왕이 다니엘 앞에 절을 하고, 여러 왕들이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높이는 조소를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총리 일을 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든지 영력이 있다면 그 일이 단지 돈 벌이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고,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게 될 것입니다. 
   
영력은 곧 성령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은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이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영력이 생겨서 일반적인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분이 큰 포도원 농장을 만들면서 샘을 파는데 몇 백 미터를 팠는데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술자가 다른 장소로 옮겨서 샘을 파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500만 원이 더 듭니다. 그분은 너무 답답해서 그날 밤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 옮겨서 샘을 파야 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그분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너는 어찌 너를 위한 계획만 하느냐? 큰 포도원을 이루어서 너 잘 살 계획만 하더구나. 그 계획에서 왜 나는 빠졌느냐?’ 그때서야 그분이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포도 농사를 잘 지어서 십일조도 드리고 감사 헌금도 드릴게요. 하나님을 잘 섬길게요.” 그러자 성령님께서 그분에게 다른 샘을 파지 말고 파던 자리를 더 파 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조금 더 팠더니 60센티미터도 채 파지 않아 물이 솟아났습니다. 그분이 기도하기 전에는 농장 일을 자기만을 위해서 했었는데 기도하고 영적인 힘이 생기니 같은 일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과 하나 됨의 다른 표현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일치된 마음, 하나님과 일치 된 감정, 하나님과 일치 된 목적을 가져야 잘하는 것입니다. 이게 성령으로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일치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은 모두가 그릇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여기서 그릇 자체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깨끗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말씀과 기도로 깨끗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 준비되어야 합니다. 실력을 준비하십시오. 영력을 준비하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