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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뒷모습으로 증거 하는 부활의 목격자 (눅 2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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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으로 증거 하는 부활의 목격자 (눅 24:1-12)


갈림길의 중심에는 

농장에서 일하던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을 위해 도시로 가기로 결심하고 기차역에 갔습니다. 한사람은 뉴욕행 티켓을 구입했고 한사람은 보스턴행 티켓을 구입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다가 뉴욕은 인정이 메말라서 길을 가르쳐 주고도 돈을 받는다는 소리와 보스톤은 인심이 좋아서 거지도 굶지 않는 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뉴욕으로 가려했던 사람은 최소한 굶어 죽지 않을 보스턴으로, 보스턴으로 가려했던 사람은 기회가 많은 기회의 땅 뉴욕으로 바꿔서 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보니 뉴욕에 간 사람은 작은 장사를 하다가 간판청소대행업을 해서 중소기업대표가 되었으나 보스턴에 간 사람은 역전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 다 미래가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로 갔지만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졌듯이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부족한 사람들일지라도 행동양식에 따라서 훗날에는 크게 달라질 것 입니다.


모두가 불완전한 믿음 

여인들이나, 베드로나, 제자들 모두 다 말씀대로 살아나실 것이라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원했던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 믿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실망한 것은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럴지라도 어떤 신앙형태를 취해야 할지 2011년 부활주일에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미래는 모르지만 어떤 신앙의 행동양식을 갖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후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숨거나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안식일 통행금지가 풀린 직후인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살아나실 것이라는 믿음이나 기대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목적으로 향료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굴 형태의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고 무덤이 열려 있었으며 심지어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사건 앞에 여자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천사)이 그들 곁에 서자 여자들이 두려워하면서 얼굴을 땅 아래로 숙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자들에게 『어찌하여 살아 있는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 일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그 때서야 여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와 이 모든 일들을 열 한 제자들과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말을 허튼 소리로 듣고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고 수의만 놓여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상하게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두려워서 여전히 숨은 채로 움직이지 않은 제자들이나, 무덤을 향해서 달려간 베드로나, 안식일 통행금지가 풀리자마자 무덤에 달려간 여인들이나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모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가지고 행동한 여인들이 맨 처음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고, 제자들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여인들도 천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소리를 듣고 베드로처럼 집으로 갈 수도 있었음에도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증거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부족할지라도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의무입니다. 우리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망설이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 가지 실례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가 믿음과 은혜로 하던 일들이 법의 기준으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 결과는 교회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박사학위 논문 통과 문제로 너무 힘든 대가를 치룬 뒤이었지만 일반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서 법학박사 과정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솔직히 그때의 심정은 목회를 하면서 시간이 허락될까? 매 학기 약 5백만원이나 하는 학비에 대한 부담과 낯선 일반대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 그리고 영어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목회경력이 있고 신학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법학박사를 해야 하는 시대적인 사명을 받고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로 벌써 이번학기 마치고 한 학기만 더 수강하면 학점이 충족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건강과 경제적인 면까지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질러 보는 것도 방법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자를 사회적으로 별로 인정해 주지 않던 그때에 여인들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부활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부활의 소식을 전할 때 그 소식이 온 세상에까지 증거 된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에 우리의 사명

현재의 역사표시 약자는 B.C. (Before Christ)과 A.D. (Anno Domini)로 하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B.C.는 '그리스도 이후'라는 뜻이고  A.D.는 (Anno Domini)는 라틴어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외국에서는 B.C. (Before Christ)를 B.C.E.(Before Common Era, 공통시대 이전)로, A.D.(Anno Domini)를 C.E.(Common Era, 공통시대)로 많이 표기 한다고 합니다. 세계 기독교도, 한국기독교도, 우리교회도 위기를 인식해야 할 때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여전히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결과와 열매는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으로 불타고 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 뜻대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 
 
2004년 12월 25일 친구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차 스리랑카에 온 미국 뉴저지 정신보건관리국 이사장인 데브라 웬츠 여사는 이튿날 쓰나미를 경험했습니다. 쓰나미 공포를 직접 느낀 그녀는 생존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외상(트라우마) 전문가들을 스리랑카로 파견하려고 하자 전문가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스리랑카 사람들은 수 십 년 동안 전쟁과 폭동, 가난 속에서도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잘 적응해 간다는 것을 뒤늦게야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사명으로 어떤 일을 할 때도 그 상황과 문화와 조화를 이루어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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