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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이와 하나님의 나라 (눅 18: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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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하나님의 나라 (눅 18:15-17)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꽃은 어린이입니다. 오늘은 바로 우리들 가정의 꽃과 같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교회당 화단의 꽃을 보셨는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런 꽃이 어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집 셋째 아이가 네 살 때쯤으로 기억됩니다. 막내 아이가 제 눈에 몹시 귀여워 보였던지 제 동생을 데려다 보며 하는 말이 “하나님은 어쩌면 이렇게 예쁜 아이를 주셨을까?” 라고 감탄한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5월의 꽃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런 자녀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죤 밀턴은 “아침을 보면 그날 하루를 알고, 어린이를 보면 일생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이를 보면 가문의 장래를 알 수 있고, 교회의 장래와 국가의 장래를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역사를 보면 어른들이 어린이를 오늘날처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의 생사여탈권이 부모에게 있기도 했고, 이방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도 했으며, 사람의 숫자에는 넣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오셔서 어린이의 위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슨 신앙이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무슨 지각이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겠습니까? 다만 어린아이들이 비록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는 못할지라도, 주님이 만져 주시면 축복을 받을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축복을 받게 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부모들 중에 어떤 성도들은 자신은 은혜 받고, 기도하고, 예배 참석하고, 예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와 복을 구하면서도, 자녀는 도서실로 학교로 학원으로 쫓아다니게 만들어 영혼을 죽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영혼 구원받아 믿음 생활 잘 하는 것보다는,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그러려면 학원도 남보다 더 다니도록 하고, 그래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며,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돈 많이 벌어서 출세하는 것에만 급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의 집사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집에 고 3짜리 아들이 있었습니다. 고 3이 되면서부터 그 집 아들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주일날에도 학원에 보내고 열심히 입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집은 마치 초상집 같았습니다. 누구 하나 웃는 사람도 없고 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아들 대학교 보내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습니까? 그러다가 대학교에는 들어가고 천국에 못 들어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학교 못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프면, 천국에 못 들어갈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그 후에 그 집사님은 크게 깨닫고 회개를 하였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절실한 마음이 없습니다. 자꾸만 세상 것에 더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자식이 사랑스럽거든 예수님 앞으로 데려와서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그 자식이 정말로 잘되기를 바라거든 주님께로 데려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도 요한은 ‘가이오’라는 성도에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먼저 신앙 안에서 영혼이 잘 되어야,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데려와서 그 분께 의탁된 아이들의 생명은, 절대로 마귀가 넘보지 못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부모들을 보고, 제자들이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꾸짖는 제자들에게는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의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서, 또는 주님의 수고를 덜어 드리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중요한 가르침을 잊었던 것 같습니다. 

곧 어린아이의 소중성을 몰랐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을 꾸짖으며, 접근을 못하게 하는 것을 목격하신 예수께서는 심히 노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노하신 기록이 몇 번 있는데, 예를 들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 것을 보시고 분노하신 경우 등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을 꾸짖는 제자들을 보신 주님이 분하게 여기셨다는 것은 심히 노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곧 “어린아이를 내게로 오게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어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실 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극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천국에 들어갈 자의 훌륭한 표본으로 어린아이를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어린아이와 같은 성품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성품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에게는 전혀 죄가 없다는 뜻일까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어린이들이 순진하느니, 죄가 없느니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이도 죄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이 어른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부모의 말대로 믿습니다. 부모의 지식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부모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삼습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힘이 없고 지식도 경험도 부족합니다. 그들은 여러모로 약하기 때문에 부모에게만 의지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절대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그 신뢰가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에 들어갈 조건입니다. 아이가 부모를 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이,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교회 나가는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교육가 페스탈로치는 말하기를 “어린이는 반죽해 놓은 밀가루와 같다.”고 했습니다. 반죽된 밀가루는 만드는 이의 생각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북한의 어린이들이 TV에 보도될 때, 김정일을 찬양하고 기계적이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서 철저하게 훈련된 공산주의자를 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 세뇌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또한 묘목과도 같습니다. 묘목이 견실해야 나무가 바르게 잘 자라듯이, 우리 가정의 자녀들도 어린아이 때부터 견실하게 잘 기르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시절이 가장 귀중하며, 일생을 판가름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을 어떻게 잘 기를 수 있을까요?

1.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능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이 지구상에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생존하는 종족이 있습니다. 나약하고 힘없이 살아온 이 작은 민족은, 지금도 세계무대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 무엇으로 그들의 생존을 지켜 왔을까요? 그것은 교육입니다. 스파르타에는 강한 교육이 있었으나 망했고, 유대 교육은 지금도 생명을 이어가는 신비가 있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유대 교육의 신비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스파르타 교육은 훌륭한 육체와 훈련된 싸움의 기술로 힘은 길렀으나, 그 힘을 바르게 쓸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망각했다. 스파르타 사람은 어린이를 전쟁의 수단으로, 나라의 재산으로 보았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 제도일지라도 사람을 살상하는 투사적 승리에 목적을 둠으로, 인간의 참 모습과 이웃 사랑을 거부하여 버렸다. 드디어 인간성을 빼앗아 가는 스파르타 교육은, 그 민족을 멸망시키는 비극으로 끝났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밤낮 외국의 침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학교가 없어지고, 성곽이 무너져도, 자녀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만은 계속했다. 어린이를 보는 눈이 달랐다. 이것이 큰 차이점이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빼앗겨도 가정만은 포기하지 않았고, 세상적인 지식은 학교에서 못 가르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율법을 가르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평화를 가르치는 교육을 하였다. 육백만 명이 학살당하고, 나라 없는 설움에서 이천 여년을 방랑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한 가지 성경 말씀과 탈무드를 자기들의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일만은 게으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턴은 어머님 생일 축하식에 많은 분들을 초청하였습니다. 불란서 대사가 워싱턴 어머니에게 가까이 가서 묻는 말이 “저토록 훌륭한 아들을 둔 비결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워싱턴 대통령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아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가르쳤습니다.” 이렇듯 훌륭한 어머니는 자녀를 믿음의 자녀로 기릅니다. 대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교회 장로님의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목사님이 물었더니, 요즘 대학 입시 공부를 하느라고 못나오는데, 대입 수능시험에 합격하면 다닐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그 장로님의 아들이 대학 입시에 떨어졌습니다. 또 다음해도 실패했습니다. 온 가족이 슬퍼하고 우울해 하면서 교회 나왔는데, 그 아이는 창피하다고 교회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 아들은 방탕하기 시작했고, 술집에 드나들며, 밤이면 그런 친구들과 함께 고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대구 고고클럽 화재 사고 때에 그만 불에 타져 죽고 말았습니다. 혹시 우리 성도들 중에 시험 기간에는 교회 가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라고 골방에 가둬 두는 부모는 없습니까? 

우리는 자녀 교육을 어려서부터 바로 시켜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녀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을 소홀히 한 분들은 크게 회개하여야 합니다. 현대인의 자녀 교육은 기계문명이 발달된 사회에서 피눈물 나는 경쟁의식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많은 것을 알고 배우고 남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기계화 교육입니다. 시험 치는 기계, 영어 하는 기계, 세련된 기계, 이는 분명 현대판 스파르타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학교 현장입니다. 오늘의 학교 교육, 그 곳에서 강요되는 지나친 경쟁의식, 그것은 결국 우리 어린이들에게서 인간성도, 부모의 영향력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한국식 스파르타 교육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자녀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자녀들이 고급 음식물을 먹고 영양 음료를 마시어 살이 찌고 있지만, 심령은 굶주리고 말라서 해골처럼 만들어 놓은 분은 없는지요? 자녀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려 백화점을 드나들면서, 의로운 옷을 입히는 신령한 백화점인 교회는 얼마나 열심히 데려 오는지요?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옛날 우리들이 성장할 때는 우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기에 부모에게 순종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인정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이들은 엄마의 부드럽고 따스한 젖가슴을 만지지 못하고, 소독 냄새 풍기는 우유병만 만지며 소젖을 먹고 자라서, 소처럼 심령에 뿔이 돋아 부모님도 선생님도 들이받는 인간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문화가 저지른 교육의 큰 문제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신령한 젖 곧 하나님 말씀이 매일같이 신령한 식탁에 공급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 부모의 신앙생활과 모범으로 양육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에 부모의 역할은 참으로 큽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서 부모는 직접 보고 배우는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딸들은 대개 아버지 같은 남자를 동경하게 되고, 아들들은 어머니 같은 여자를 이상적인 여인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혹 부모가 자식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될 일들을 보여주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므로, 자식들이 그만 부모에 대하여 존경심이 사라지고 오히려 부모를 혐오하기도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를 하고 나니까, 어린아이 하나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목사님에게 묻기를 “하나님은 누구와 같으신 분인가요?” 라고 묻자,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너희 아빠와 같으신 분이시다.” 라고 하자, 아이는 금세 실망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아이가 대답하기를 “우리 아빠는요. 술도 잘 먹고, 욕도 잘하고, 때리기도 잘해요”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때 목사님은 “그렇다면 너희 엄마와 같을 거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우리 엄마는 아빠보다 몇 배나 더 나빠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이와 같은 부모는 없는지요?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믿음의 모범을 보이고 계십니까? “자녀들은 부모 앞에서 배우지 않고,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잔소리는 교육 효과가 없다는 말입니다. 부모가 어떻게 사느냐를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부모가 성경을 읽으면 자녀도 성경을 읽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기도하면 자녀도 기도할 것입니다. 부모가 정직하면 자녀도 정직할 것입니다. 부모가 이혼하면 자녀도 이혼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입니다. 부모가 부부 사랑의 모범을 보이면, 자녀도 그렇게 사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부모가 신앙생활에 신실하면, 자녀들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부모가 쉽게 세속적 가치와 쉽게 타협하고 믿음을 버리면, 자녀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악인의 꾀를 좇아 사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믿음보다는 세상적인 처신을 먼저 배우게 될 것입니다. 조금만 바쁘면 주일 날 빼먹고 일을 한다거나, 놀러 가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동안, 아이들은 하나님과 주일을 경홀히 여기는 것을 아마 뼛속 깊이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자녀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부모로서 자녀들의 믿음의 본이 되고 계십니까? 아니면 실족의 원인이 되고 계십니까? 자녀에게 본이 못 되고 실망을 주는 부모가 된다면, 그 심판은 무거울 것입니다. 

부모들의 책임을 일깨워주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이가 비평을 들으며 자라면/그 아이는 남을 저주하게 될 것입니다/아이가 적대감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남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아이가 조소를 받으며 성장하면/그 아이는 열등 인간이 될 것입니다/아이가 수치심속에서 자라면/그 아이는 죄의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아이가 참고 견디는 가운데 자라면/그 아이는 인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아이가 칭찬을 받으며 성장하면/그 아이는 자신감을 가질 것입니다/아이가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그 아이는 감사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아이가 올바르게 자라면/그 아이는 정의를 알게 될 것입니다/아이가 인정을 받으며 자라면/그 아이는 자기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아이가 관용과 우정 속에 자라면/그 아이는 세상에서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과 가정과 자녀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을 살펴서 어린아이처럼 절대적으로 주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소중한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 모두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국가의 장래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자라면서 이루어 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으로, 그리고 여러분의 신실한 신앙생활과 모범을 통해서 잘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농부는 봄에 씨 뿌리고 가꾸는데 따라 가을에 추수할 것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로 인하여 인생의 후일을 웃으며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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