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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에 꼭 있어야 할 것들 (시 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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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에 꼭 있어야 할 것들 (시 128:1-6)


요사이 건축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높이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는 그 높이가 828미터입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 버즈 칼리파의 두 배나 되는 “킹덤 타워”를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형태면에서도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장난감처럼 생긴 모양의 다양한 건물들이 있고, 어떤 건물은 거꾸로 세워진 건물도 있고, 벼랑 끝에 서있거나 물 위에 떠있는 건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형태로 집들이 세워진다고 해도, 그 건물에 꼭 있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초이고, 둘은 기둥이고, 그리고 셋은 지붕입니다. 기초는 건물이 세워지는 터전을 말하고, 기둥은 건물을 지탱하는 얼개를 말하고, 그리고 지붕은 건물을 덮어서 완성하는 마감 틀을 말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이 건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건물이 아름답고 든든하게 세워지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듯이, 가정이 든든하게 세워지려면 꼭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건물이 세워지려고 할 때 반드시 세 가지가 필요하듯이, 가정이 세워지려고 할 때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1. 믿음

건물에 기초가 중요하듯이 가정에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가정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세우셨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함께하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가정의 기초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라는 말씀입니다. 온 가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때 더불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족들이 가정에서 왜 여호와를 경외할까요? 이 가정을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가정 안에 여호와께서 임마누엘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 19: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 예수님께서 부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부부는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셔서 한 몸이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여자들 중에서 너 하나를 택하시고, 또 그렇게 많은 남자들 중에서 나 하나를 택하셔서 부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룻기를 보면 룻과 보아스가 만나서 결혼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2:3-4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이삭을 베는 사람들을 따라서 나섰는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이삭 베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그 현장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룻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아스의 밭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가다 보니 보아스의 밭으로 간 것입니다. 보아스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자기 밭으로 나간 것이 아닙니다. 마침 그때 밭에서 추수하는 것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밭으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은 “우연히”와 “마침”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룻기 기자는 표면으로는 “우연히”와 “마침”으로 일어난 만남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만남은 겉으로 볼 때 우연의 만남일 수 있고, 마침의 만남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청년들의 표현대로 “작업”의 결과로 일어난 만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두 사람을 만나서 부부가 되게 하셨을까요? 창 2: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만나서 부부가 되게 하신 이유는 바로 “돕는 배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부는 서로 도우라고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아내를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도 남편의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남편을 도와야 합니다. 특히 남편은 아내를 돕고, 또 아내는 남편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사명이라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셀린 디온은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에게 붙여주는 찬사인 “디바”라고 불리던 가수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억 4천만장의 어마어마한 앨범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1997년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이라는 곡으로 팝계를 석권했습니다. 그런데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1999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분이 밝힌 은퇴 이유입니다. 우선 이분은 겸손하게 지금 자기가 있게 된 이유는 남편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12살 때 노래 테이프를 들고 후원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답니다. 그 때 지금의 남편이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서 자기의 음반을 만들어주었고, 자기 일이라면 헌신적으로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두 사람은 결혼했고, 자기는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 남편이 암에 걸려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분이 은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남편이 지금 후두암으로 투병중입니다. 남편에겐 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많은 빚을 진 남편 곁에서 그에게 따뜻한 손길을 주고 싶습니다. 저의 성공보다 남편과의 사랑이 저에게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돕는 배필입니다. 비록 남편이 더 이상 내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남편이 내 도움이 필요할 때 그 곁을 지키며 돕는 것입니다. 비록 아내가 내게 짐이 될지라도, 아내가 내 도움이 필요할 때 그 곁에서 그를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이런 돕는 배필이 되라고 부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세워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부부를 섭리 가운데 만나게 역사해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돕는 배필이 되라고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 사랑

건물에 기둥이 있어야 하듯이 가정에도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것은 가족 간의 사랑입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아내가 포도나무가 주렁주렁 열린 포도나무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귀한 감람나무의 어린 묘목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마음속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가득한 가정이 든든히 서 있는 가정입니다. 특히 부부가 사랑하면 그 가정은 든든하게 서 갑니다. 그러나 부부의 사랑이 식어 가면 그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부부의 사랑에 금이 가면 그 가정은 무너지게 됩니다.

사실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하는 부부는 없을 것입니다. 부부가 결혼할 때는 나름대로 사랑하기에 결혼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받고, 갈등하면서 그 사랑이 식어가고 더 심하면 금이 가게 됩니다. 그래서 부부사랑은 잘 관리하고 발전시켜가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부치료의 권위자인 미국의 가트맨 박사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혼하는 부부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부부의 대화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혼으로 가는 네 가지 말투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첫째, 비난입니다. 상대방의 약점과 실수를 날카롭게 지적할 때 사용하는 말투입니다. 이 때 주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당신은 왜... ”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도대체”, “항상”, “한번도”...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둘째는 방어입니다. 비난 받았다고 느낄 때 되받아치는 말투입니다. “그러는 넌 뭐가 잘났다고”, “그게 왜 전부 내 탓이냐 네 탓이지” “네가 날 못 믿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믿냐” 이런 식입니다.

셋째는 경멸입니다. 우월감에서 상대방을 무시하며 내 뱉는 말투입니다. 이것이 다툼의 결정타 역할을 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내 참 기가 막혀서”, “네가 뭐 그렇지”, “주제 파악 좀 해라”

그리고 넷째는 담쌓기입니다. 이제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뜻에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눈 마주치지 않기, 집에 늦게 들어가기, 각방 쓰기, 외박하기 등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을 잘 지켜가기 위해서는 이런 말투를 삼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말투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말투 속에 혹시라도 이런 것들이 있다면 속히 제거해 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무르익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익어가는 것은 마치 적금 통장에 적금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매달 조금씩 적금을 붓다 보면 어느 날 큰돈이 되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는 정을 쌓다보면 나중에 뗄레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습니다. 그 노래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곡입니다. 60대에 들어서서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임종을 하며 이제 세상 떠날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입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게 부부입니다. 적금 붓듯 평소에 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 흔들리지 않는 행복한 가정입니다.

3. 수고

건물에 지붕이 씌워져야 그 건물이 완성되듯이, 가정에도 지붕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수고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가장이 가족들을 위해 수고하여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부가 가족들을 위해 수고하여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에는 저마다 가족들의 서로를 위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편안한 쉼터가 되고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수고라는 것은 단순한 봉사가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고통을 감내하는 봉사입니다. 수고는 보람을 찾고 의미를 추구하는 섬김이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을 말없이 견뎌내는 섬김입니다.

이 고통에는 육체적인 고통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고통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꼭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마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이고, 자기에게는 무익한 봉사이고, 때로는 자기에게 해가 되어 돌아올 봉사인 줄 알면서도 참고 견디며 하는 봉사입니다.

조창인이라는 분이 쓴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다가 결국 자기 몸까지 자식을 위해 준다는 그 가시고기처럼, 자식을 위해 수고를 다하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아내에게 이혼을 당하고 백혈병에 걸린 다운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IMF때 실직을 당하고 계속되는 다운이 치료에 가산을 다 없애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다운이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이혼한 다운이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프랑스로 다운이를 데려가겠다고 다운이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라고 합니다. 기꺼이 동의해 주었습니다.

다행히 골수 이식으로 다운이 병을 고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병원비를 낼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장기 밀매를 생각하게 됩니다. 신장을 팔려고 종합검진을 하는 중에 자기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운이가 수술 받을 때 자기가 곁에 없으면 수술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수술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대신 각막 중 1개를 5000만원에 팔고, 그 돈으로 아들의 수술비로 쓰게 됩니다.

다운이는 수술을 끝내고 엄마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매정하게 다운이를 보냅니다. 간암 말기 아버지는 아픈 가슴을 진통제로 달래면서 매정하게 보냅니다. 그리고 얼마 안돼서 죽습니다. 마치 가시고기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수고입니다. 자기에게는 힘이 들고 고통스럽지만 참고 견뎌내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더라도 가족들을 위해 참고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수고가 있는 가정이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세상의 천국입니다. 이 천국이 지금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천국을 잘 지켜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또한 서로를 향한 수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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