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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되찾아야 할 삶의 기초 (잠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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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아야 할 삶의 기초 (잠 4:1-9)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5월에는 어린이 날을 비롯하여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이 있습니다만, 이런 가정의 날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가정의 기초가 되는 날이 어느 날일까요? 그것은 바로 어버이 날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만이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 포함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 사랑이나 스승에 대한 존경은 보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일에 근거하여 사랑하고 존경하는 일일 뿐 그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이나 근본은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주어진 가장 기초적인 계명입니다. 원래 십계명은 오합지졸(烏合之卒)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질서있는 사회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가장 기초적인 법이요, 노예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거룩한 백성되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계명은 옛날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윤리적 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 사랑의 제일 첫 항목이 무엇입니까? 부모 공경입니다. 이 십계명 가운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법이 5계명부터 나오는데,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장 우선적인 법, 가장 첫 번째 되는 법이 무엇이냐 하니까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법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오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크고 첫 째되는 새 계명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그 계명을 풀이하여 설명하실 때,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이 바로 부모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항목을 왜 십계명에 포함시켰을까요? 그것은 아마 자식 사랑과는 달리 부모 공경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모두가 겪어서 잘 아는 것이지만, 자식 사랑은 계명이 아니어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행하지만, 부모 공경은 강조하지 않으면 잘 이행되지 않습니다. 

사실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효"에 대하여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그것을 효도라 불렀겠습니까? 부모공경을 하나의 신앙처럼 생각해서 길 도자를 붙일 정도면, 부모에 대한 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이 없는 서양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실용주의와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같은 사회에서는 부모 공경은 그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미국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는 우리 사회도 불행하게도 실용주의와 개인주의의 발달로 점차 우리가 간직해 온 효도에 대한 전통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날 이 사회는 과거의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엄밀하게 말해서 과거전통사회에 있어서 윤리 도덕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그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전통적 가치관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윤리 도덕은 권장 사항으로 전락하고 성문화된 법만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부모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닐 수 있었지만, 오늘의 사회에서는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 분 말씀에 아들녀석이 컴퓨터에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데, 우연히 아들 컴퓨터를 보다가 이 메일에 편지가 왔다는 신호가 와서 호기심이 생겨서 그걸 보았는데, 나중에 아들에게 친구에게 편지가 왔더구나! 하고 말했더니 아! 이게 왠 일입니까? 아들이 버럭 화를 내면서 아버지! 왜 남의 사생활을 침해 합니까? 하면서 대들더라는 겁니다. 아버지가 너무 황당한 맘이 들어 허허웃고 말았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아들과 자기의 관계가 그 정도 밖에 안되나 싶어 참으로 서글퍼지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날 우리 사회입니다. 이것은 이미 법으로도 규정되어 있답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도, 또 부부 사이라도 남의 편지를 읽는 것은 정보통신 비밀 법에 저촉됩니다. 

물론 모든 인간의 사적 생활은 그 비밀이 지켜져야 합니다. 그것은 인권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부사이에, 또는 부모 자식 사이에 비밀을 지켜야한다는 이런 가치관이 과거 우리의 전통사회 관습과 가치관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오늘 날 이렇게 전통사회가 무너지게 된 것은, 이 사회의 산업화에 따른 것입니다. 

산업화된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는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지식과 능률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부모님들도 이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자식을 키울 때 과거 전통사회에서 가르치던 삼강오륜(三綱五倫) 대신에 지식을 보다 많이 주입시키고, 능률적인 인간으로 교육을 시켜 산업사회에서 기능적인 인간으로 출세를 시키는데 온 힘을 다 기울이고 있지요.그러니 이런 풍토 속에서 효도가 사라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30여 년 전만으로 한 번 돌아가 보십시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부모를 찾아뵙고, 아무리 집이 좁아도 부모를 모시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었던 것이 우리 사회의 불문율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즈음은 바쁜 생활 때문에 부모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으며, 더구나 핵가족 시대라는 핑계로 부모를 모시지 않는 일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제일의 가치로 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아니하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 가장 큰 희생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경제성장을 서둘러 온 결과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돈은 좀 벌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권위가 붕괴되어 버렸고, 윤리와 도덕이 없는 파렴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계속 터지는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상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가 지난 30여 년 동안 경제 성장의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얼마나 서글픈 현상입니까? 

특히 교육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대학에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마침내 우리의 교육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 교육시킨 결과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 자식들에 의해 부모들은 버림받고 소외되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 그의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정작 그 자식이 장성하였을 때, 부모는 아무 것도 남은 것 없이 버린바 되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 아닐까요? 

자식의 대학 입시를 위해서 부모는 완전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자식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계속적인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시키면 한 짐 덜려니 생각하였던 부모들에게 결혼이라는 또 다른 짐이 지워집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 결혼시켜, 이제는 다 끝났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그 자식의 자식까지 보아주고 치닥거리하느라 또 다시 얽매이고 맙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늙어져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아야 할 때에는 오히려 그들의 천덕구러기가 되어 서름받고 버림받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교육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요즘 나라를 섬기겠다는 사람들이 매일 떠들고 주장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부패한 정권 부패한 사회를 규탄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소리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부패하였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시장경제제일주의요, 민주주의라고 말합니다만, 그러한 신경제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뿌리는 결국은 실용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물질이 최우선이라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가치관에 근거하고 있는데, 어찌 그런 가치관으로 이 부정한 사회 부패한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신경제주의니 시장자유주의니 하는 것을 찬찬히 뜯어보면 결국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거듭 거듭 경고하신 바알주의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오늘 날 우리 국민들의 가치관 역시 그런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부패한 사회를 바로 잡는 길은 근본적으로 가치관을 바꾸는데 있습니다. 기능적인 인간, 능률적인 인간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경제 성장 위주의 사회를 도덕적인 사회,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 부모가 다시 그 권위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로 되돌려 놔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경제를 부강하게 하고, 대학입시제도를 바꾼다고 해도 부모에 대한 공경과 부모의 권위, 그리고 가정에 기초한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회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가 아무리 과거를 청산하는 개혁작업을 성 역없이 행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그 개혁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가 바로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 공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오버이 주일인 오늘 뿐 아니라 평소에 이 사실을 습관처럼 생활태도가 바꿔져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이 사회를 온통 멍들게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받아드리는 새로운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단순한 가정의 문제요,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요 민족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가운데 부모공경을 포함시킨 것은 바로 그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가정이복을 받을 뿐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회가 복을 받는다는 말은 그 사회의 질서가 이루어지고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 공경이 어떻게 사회 안정과 직결되느냐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옛날과 같이 "효도"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효가 도가 되는, 효가 길이 되는 것으로 환원시켜야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인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하나의 신앙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여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모공경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예수님 당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가운데 코르반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은 이 코르반 제도를 악용해서 자기들의 호주머니를 체우려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모님에게 드릴 돈을 하나님께 드리면, 부모님을 공양하지 않아도 그것이 곧 부모님께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석하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교묘히 피해갔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명분으로 부모 공경하기를 게을리 하였을 때, 하나님께 드린다고 부모 공경을 대치할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경외가 중요한 만큼 부모 공경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깊이 새겨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부모 공경을 소홀히 하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입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된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부모가 늙고 쇠약하여지거나 망령이 들어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될 때 모시기가 참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어떠했습니까? 염치 체면 없이 아무 곳에서나 배설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부모님들이 지금의 우리처럼 짜증을 내고 힘들다고 투정부린 적이 있었던가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 똥 냄새 맡으면서도 귀여운 내 새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어린아이로 돌아간 내 부모님이 늘고 쇠약해져서 망령이들 때일수록 더욱 공경하고 잘 돌보아 드리는 일이야말로 바른 효도일 것입니다. 

여러분! 욥의 신앙이 왜 위대했습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만 하나님을 경외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실 때도 변함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때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능력이 없어 자식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때에도 한결같이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것만을 충족시켜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 모시고 잘 해드리고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만이 공경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부모에게 주신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입니다. 오늘 읽은 구약성경 잠언 4장에 보면,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4:1-2) 

고 하였습니다. 이 지혜자는 자기도 아버지에게서 그런 교훈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아들들에게 그의 교훈을 기억하라고 가르치고있습니다.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는 자는 부모의 교훈을 잊지 아니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내려가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을 모든 가정들이 끊어지지 않도록 지켜 내려가는 것을 그들의 제일 중요한 임무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어떤 재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일 보다 신앙의 전통을 물려주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이런 부모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것을 전수하며 실천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신약성경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복종하고 그것을 실천하였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므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 경외와 더불어 부모 공경이 어떠한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있어서도 진정한 부모 공경의 길은 그 부모의 신앙을 전수하고 그의 도덕적 교훈을 충실하게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그냥 잘 모시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효도가 될 수 없습니다. 

효가 도가 되려면 거기에 알맹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그 앞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계명과 더불어 실천되어야 하는 것임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 없는 부모 공경은 반쪽에 불과한 것처럼, 부모공경 없는 하나님 공경 역시 반쪽 짜리 신앙이라는 점을 깊이 새겨야합니다. 

그러나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부모님을 진정으로 공경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자신이 우리의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범을 보여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공경하는지를 보여야합니다. 그렇게 하면우리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그 가르침을 따라 생활하면서 그 가르침을 주신 부모님을 귀히 여기는 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 공경은 십계명 중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오늘도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아니 오늘 우리를 살리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꼭 지키지 아니하면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인식하면서, 부모를 공경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부모공경이야 말로 하나님 경외와 직결되며, 그 인격 완성의 중요한 덕목임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부모 공경을 통하여 오늘 날 이 사회의 타락한 도덕성을 회복시키고, 행복하고 복된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힘써서 우리의 가정과 사회가 대대로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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