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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생명의 통로 (창 21:1-7, 갈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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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통로 (창 21:1-7, 갈 4:19)

<본문말씀> 

<창세기 21장 1-7절 말씀> 
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갈라디아서 4장 19절>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생명의 통로’와 본문 이해> 

‘생명의 통로’라고 제목을 정한 것은 오늘날에 있어 부모에 대해 자식이 어떤 자세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적인 관점을 찾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부모인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아들 이삭의 이야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이에서 태어나지만, 이 생명의 탄생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탄생이었다. 

그래서 이 생명의 탄생은 하나님으로부터 근거한 생명이며, 이 생명이 부모님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부모’ 그 자체만으로 존귀하며 효성의 마음과 자세로 섬겨야 함을 전하고자 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말씀은 육체의 부모 뿐만 아니라, 신앙의 부모, 신앙의 스승도 동일하게 ‘생명의 통로’로 쓰임받기에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참된 복음으로 새 생명을 얻게 하는데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의 통로’로 쓰임 받은 부모님에 대해 감사하며 존귀하게 여겨야 함을 전하고자 했다. 

<서 론> 

며칠 전이 어버이날 이였습니다. 전통적으로 효를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이 되면, 아직까지는 부모님께 꽃도 달아 들이고, 안부전화도 하고, 찾아뵙기도 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처럼 경로잔치를 하는 교회들도 있기에 아직 어버이에 대한 마음이 있음에 참 감사한 일입니다. 

특히 기독교에선 부모님에 대해 어떻게 섬기고, 봉양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잘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말씀 드리지 않아도 실천을 하면 될 듯합니다. 

특별히 자식으로써 어버이에 대해 어떻게 효를 하고 자식의 도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교우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효도를 하지 못하는 못난 자식이 말씀을 선포하기가 부끄럽습니다. 

다만 어버이가 어떤 분인지를 기독교 입장에서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경향도 있고, 더 심하게는 무시하는 경향도 있기에 부모님의 존재에 대해서 성경적 견해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본 론>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 실수나 우연, 아니면 인간의 계획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농담을 하면서 넌 실수로 태어났다고도 하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 둘째 셋째가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계획을 세워 애를 하나, 둘, 셋을 조절해 보기도 합니다. 우린 인간이 생각할 때 그렇게 태어나고, 또 그렇게 자녀를 가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본문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듯이 아브라함 가정에 이삭이 태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 이였고 그 약속이 성취됨으로 이삭이 태어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약속에 대해 인간의 판단으로 가능하겠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신실함과 사랑하심으로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셨습니다. 

우린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태어난 한 생명, 그 생명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이 땅에 왔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통해 생명이 유지되고 또 새로워집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 이 땅 가운데 태어나고 성장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는 것은 어버이를 통해서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이 땅에 태어났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선한 백성 삼기 위해 우리 부모님을 통해 이 땅 가운데 태어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이 땅 가운데 있게 하는 ‘생명의 통로’이십니다. 이 생명이 하나님에게 있지만 부모님을 통해 이 생명이 태어나고 돌봐짐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생명이 태어남에 있어, 어머니는 생명을 내어 놓습니다. 한 생명을 양육하기 위해 부모님은 자신의 전 삶을 자식을 위해 헌신하십니다. 그리고 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일평생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이렇게 한 생명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고, 헌신하며 기도하는 부모님을 존경하며 정성을 다해 섬겨야 될 줄 압니다. 

육체의 부모와 함께 신앙 가운데 생명의 통로로 쓰임 받은 이가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자신은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우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새 생명의 길로 인도함에 있어 해산의 수고로 선교와 목회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는 것도 해산의 고통이 있지만,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것도 해산의 고통이 따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어버이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분이 부모님이든, 전도자든, 가족이든, 이웃이든, 누구이든지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렇게 한 생명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는 것도 해산의 수고가 따르고, 그 자녀를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게 하기까지도 해산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함을 꼭 기억합시다. 우리는 이렇게 한 생명으로 태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 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이 이 땅 가운데 있는 것은 부모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생명 자체가 있음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했어도, 생명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혹 부모로부터 신앙을 물려 받았다면 주님의 은혜인줄 알고 자손에게 신앙을 물려 주시길 바라고, 혹 부모님이 아닌, 복음 전도자를 통해 갈라디아교인들 처럼 주님을 영접했다면 신앙의 어버이인줄 알고 그분들께 감사하길 바랍니다. 

세상에 소유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육체의 생명이 있음에 감사하고, 세상에 희망이 없어 보여도 부활한 주님을 만나 새 생명 얻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희망을 가졌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길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위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성취하는 생명의 통로로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인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이여! 그 귀한 생명의 통로로 쓰임 받고 있음에 감사하고, 우리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던, 아니면 이미 주님 품에 있던 상관없이 늘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이 새 생명을 얻은 자녀로써 가져야 할 마음이고 삶의 자세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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