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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지만 큰 일을 (대상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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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2:1-17 작지만 큰 일을

 

북극이나 남극에는 빙산이 떠다니는데 바다 위로는 약 십분의 일 밖에 올라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빙산이 바다 위에 나타난 것만 보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가면 바다 속에 들어있는 배가 큰 빙산에 부딪쳐서 큰 일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고 합니다.

진돗개가 있는데 큰 개보다는 훨씬 작지만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작아도 아주 무섭습니다.
벌도 조그만하지만 한 번 쐬이면 벌초를 하다가 죽기도 합니다.
바늘도 아무 것도 아니고 작지만 바늘로 옷도 만들고 양발도 기울 수 있습니다.

작은 도끼도 큰 나무를 쪼개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데 큰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조그마한 선로지만 KTX가 300키로로 달려가는데 아주 큰 일을 감당합니다.
선로가 방향이 잘 못되어 이상이 생기면 그 큰 KTX 열차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비행기에 나사못에 조그만 하지만 빠지게 되면 그 큰 비행기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산을 때워 버립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 일을 제대로 감당하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속에서 물맷돌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작은 물매돌이 큰 골리앗을 넘어뜨립니다.
 
우리도 크다고 두려워할 것도 아니고 작다고 무시할 것도 아니고 크나 작으나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해 나갈 때 작지만 하나님 앞에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작지만 하나님 앞에 큰 일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데 1장에서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까지 족보요 
2장에서는 이스라엘에서 다윗까지 가는 족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이름이 바꿔져서 이스라엘이 되었는데 야곱은 에서를 대신한 사람입니다.

3절에 유다는 르우벤을 대신해서 영적 장자로 등장합니다.
다음에 다윗이 큰 형인 엘리압을 대신해서 등장합니다.
야곱이나 유다나 다윗은 전부 큰 아들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둘째요 네 째요 여덟째입니다.

그들의 부모님들이 생각할 때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구속의 역사에 큰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도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 앞에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해서 하나님의 가슴에 잊어버릴 수 없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작지만 어떻게 큰 일을 감당해 가야할 것인지 본문에서 알아 봅시다

우리가 작지만 어떻게 큰 일을 감당해 가야할 것인지 첫 번째는 세상적인데서 영적인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1절에 이스라엘은 야곱이 바꿔진 이름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대신하여 구속사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에서는 원래 잘났고 사냥도 잘하고 아버지에게도 인정받고 사냥해서 요리하여 드리면 아버지께서 기뻐했던 아들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장자로써 할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적인 사람이였습니다. 똑똑하고 잘났고 괜찮지만 에서는 영적인데로 바꿔진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자기 잘난데서만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와 다릅니다.

부족하고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항상 하나님을 먼저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셔서 이스라엘로 만드셨습니다 
야곱은 자기를 위해 살았지만 이스라엘은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원래 야곱은 하란으로 도망가서 20년을 훈련받고 11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아서 20년 만에 고향땅으로 돌아오는데 얍복강에서 혼자 남아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서 기다리시는 벧엘로 올라가야 되는데 숙곳과 세겜에 머물다가 올라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디나 강간 사건을 통해서 불러 올리시는데 환난 날에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올라가므로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꿔지게 되고 나중 애굽에 들어가 바로와 요셉의 두 아들과 12아들들을 축복하는 자가 됩니다

야곱이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대신해서 작지만 구속의 역사에서 열 두 지파를 형성시키는 큰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적인데서 영적인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바울은 세상적인데서 영적인데로 관점을 바꿔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라고 로마서의 결론으로 말씀합니다.

여기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데 이 말은 삶이 예배가 되게하라는 말입니다.
어디를 가도 누구와 만나도 내가 무엇을 해도 그 장소가 예배 장소가 되라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내 관점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내 편에서 보는 눈을 상대편에서 나를 볼 수 있는 눈으로 즉 내 편에서 하나님을 보는 눈에서 하나님 편에서 나를 보는 눈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것은 어떤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싫어하신 줄을 알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로마서의 결론으로 말하고 있는 말씀대로 세상적인데서 영적인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다나엘은 처음에 사도 빌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겠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예수님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이야기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와 보라고 해서 와서 예수님과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 무화가 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벌써 보았다고 하시면서 이보다 더 큰 일을 볼것이라고 말씀하시자 나다나엘은 감짝 놀랍니다.
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거기서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가 영적인 관점으로 바꿔져서 사도가 되어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나다나엘과 같이 세상적인데 있었다면 영적인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 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작지만 어떻게 큰 일을 감당해 가야할 것인지 
두 번째는 정욕적인데서 뜻을 이루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유다는 원래 먼저 에르와 오난과 셀라를 가나안 여인을 통해서 낳습니다.
그런데 에르와 오난은 하나님이 죽이셔서 셀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셀라를 다말에게 빨리 주지 않자 
다말이 유다와 부정한 관계에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습니다.
베레스의 후손을 통해 예수께서 오십니다

야곱의 첫 번째 아들은 르우벤인데 유다는 네 번째 아들입니다.
르우벤이 첫 번째 아들인데도 네 번째 아들인 유다가 영적 장자가 되어서 다윗의 선조가 됩니다.
유다는 정욕적인데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로 가서 영적 장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작지만 큰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 르우벤이라 우선권이 있고 크지만 서모를 통간하여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르우벤은 장자가 되지 못하게 됩니다.
정욕적인데 머물고 있었던 르우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자이지만 요단 동편을 분배받는 것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러나 유다는 네 번째 아들로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요단 서편에서도 가장 중심지를 분배받고 정욕적인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로 온전히 바꿔짐으로 말미암아 영적 장자가 되어서 다윗이 오는데 귀하게 쓰임받은 사람이 유다입니다.

유다는 어떤 일을 할 때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야기 합니다.
요셉을 팔 때도 유다는 죽이지 말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애굽으로 곡식을 사려갔을 때나 시므온이 갇히고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할 때도 유다는 먼저 나서서 아버지 아곱의 가슴에 기억된 바가 되게 뭉클한 이야기를 합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들이 유다입니다.
베냐민 데리고 갔더니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을 알고 
야곱이 내려가서 거기서부터 많은 이스라엘 민족이 생기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큰 일을 감당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

정욕적인데서 뜻을 이루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적인 조건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유다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바꿔져서 큰 일 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바울은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자는 영생을 거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육체를 위해서 심는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해 심어서 정욕적인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일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자기 주인인 빌레몬의 것을 무엇인가 훔쳐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오네시모를 만났습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 정욕적인데서 뜻을 이루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같이 바울과 일할 수 있는데까지 완전히 바꿔진 사람이 오네시모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가 바꿔졌기 때문에 오네시모의 손에 들려서 빌레몬서를 빌레몬에게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만나서 오네시모가 용서받아서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바울과 많은 일을 했을 것 같습니다.

오네시모는 먼저는 자기를 위해서 물건을 훔쳐 갔던 사람입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로 완전히 바꿔져서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유익한 자라고 바울이 증거를 하고 있듯이 오니세모는 전에는 도둑놈이였지만 나중에 바꿔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입니다.

우리도 정욕적인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작지만 어떻게 큰 일을 감당해 가야 할 것인지 세 번째는 육신적인데서 인정받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 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다윗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버지가 이새입니다.
다윗은 여덟 번째 아들이고 큰 형은 엘리압입니다.
사무엘이 이새를 통해서 자기 아들들을 다 데리고 오라고 해서 그 아들 중에서 기름부으려고 했는데 먼저 큰 아들 엘리압이 지나가니까 사무엘도 감짝 놀랬습니다.
얼짱인 것입니다. 너무나 잘났습니다.
그래서 사무엘도 이 사람인가 보구나 하고 기름을 부어야 됩니까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아비나답이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 삼마가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자기 형 일곱 명은 아버지가 데리고 나와서 전부다 지나갔지만 기름을 부을 자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생각할 때는 다윗은 말째라 다윗은 데리고 오지 않했습니다.

너는 막내이니까 양을 지키고 있어. 너는 올 필요가 없어.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일곱 명은 이새가 보아도 왕이 될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일곱 명을 데리고 갔는데 그 아들들은 다 지났는데도 기름을 붓지 않고 사무엘이 아들이 또 없느냐 묻자 이새가 아들이 하나 있기는 한데 속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데리고 온 말째 다윗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데려왔더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엘리압이나 아비나답이나 삼마나 그외에 여러 명의 형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육신적인 조건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집에서 양을 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셨습니다.

엘리압은 육신적인 사람이라 인정하지 않으셨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정한 사람이였습니다.
아무리 육신적으로 뛰어나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얼짱이고 아무리 용감하고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 인정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덟째 아들이였지만 왕이 되었습니다.
왕 중에 왕이 다윗입니다.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설명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한 기둥이요 다윗이 한 기둥인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메시야시다는 말씀이시고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진정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왕이 다윗입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이 육신적인데서 인정받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
시험을 참아서 인정받으면 약속하신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육신적인데서 인정받는데로 다윗과 같이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아만은 수리아의 장군입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왕 앞에 많은 예물과 수리아 왕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문둥병을 고쳐 주라고 왔을 때 
북 이스라엘 왕이 나는 문둥병을 못고치는 사람이라고 걱정하고 있을 때 엘리사가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 주라고 하여 나아만이 엘리사 앞에 왔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왔으니까 문을 열고 나와서 환처 위에 손을 얻고 기도하여 문둥병을 낫게 해 줄줄 알았는데 문도 열어 보지 않고 반갑게 대접도 안해주면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씻으라는 말만 했습니다.
나아만은 장군인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획 돌아서 가려고 하는데 종이 아니 왜 그런 것도 못합니까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나아만 속으로는 하필이면 요단강이야 우리 동네에 가면 얼마든지 좋은 강이 있는데 
왜 요단 강에 가서 하라고 그러느냐고 화를 냈지만 종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구자 어린 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육신적데서 인정받는데로 바꿔지자 문둥병이 나은 것입니다
문둥병이 나아 엘리사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도 엘리사가 안 받았습니다.
나아만이 육신적인데서 인정받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나아만과 같이 육신적인데서 인정받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 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대단한 존재도 아닙니다.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작습니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것으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시고 기억하실 만한 큰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작지만 어떻게 큰 일을 감당해 가야 할 것인지 
첫 번째는 세상적인데서 영적인 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고
두 번째는 정욕적인데서 뜻을 이루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을 감당하고
세 번째는 육신적인데서 인정받는데로 바꿔져서 작지만 큰 일 을 감당하여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칭찬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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