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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부모다운 부모 (마 1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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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다운 부모 (마 19:13-15)

저는 제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그리 특별히 맛있는 음식도 없는데 제 아내는 무엇이든지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어떤 때는 총각김치 하나 놓고 먹는데도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제가 보면서 묻습니다.“당신 정말 그렇게 맛이 있수?”그러면 제 아내가 그럽니다.“나는 내가 만든 음식인데도 왜 이렇게 맛이 있는지 몰라!”그러면서 맛있게 먹습니다. 항상 똑같은 대답입니다. 제 아내 흉을 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보기 좋아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같이 있는 저도 행복해 지거든요. 가만히 보면 먹는 것에 대한 행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물질적 여건에만 두고 생각합니다. 좋은 집이 곧 행복이고, 좋은 차가 곧 그 사람의 행복을 말하는 것 같고, 좋은 음식이 행복을 대변하는 것이요, 좋은 의복이 행복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먹는 것을 예로 생각을 해봅시다. 음식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입맛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더라도 입맛이 가시면 먹는 것에 결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진수성찬도 입맛이 있어야 소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입맛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이런 말을 잘 합니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그런데 정말 맛있는 음식을 놓고 보는 것으로 느끼는 행복이 크겠습니까? 입으로 맛을 보는 행복이 크겠습니까? 당연히 입맛으로 느끼는 행복이 큽니다. 그 말은 먹지 못할 때 위안삼아 하는 인사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입맛이라는 것이 정말 묘합니다. 사람의 입맛은 4살 때 결정이 난답니다. 결국 4살 때 결정된 그 입맛대로 거의 일생을 사는 겁니다. 그래서 문화인류학에서는 사람이 마흔이 넘으면서 4살 때 먹던 입맛으로 돌아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시기인 4살 무렵의 그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주로 먹었던 음식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립고 그 음식이 입맛에 맞아진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 든 어르신들은 된장찌개가 좋고, 김치찌개가 좋고, 시래깃국이 좋지 피자니 떡볶이니 스파게티의 맛은 잘 모르십니다. 어르신들은 이런 음식들을 보고 맛을 평가하기를“그 맛이 그 맛”이라고 합니다. 대신 된장을 넣은 시래깃국을 보고는“구수하다.”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깊이 배인 입맛이라는 다른 표현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사람은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면서 가장 중요한 입맛이 Original Point로 확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편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음식 타박을 합니다. 그럴 때 부인들이“나이 들어가면서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고 음식타박을 해!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하고 구박하지 말고‘이 사람이 4살 때 뭘 먹고 자랐나!’를 조사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음식을 해주면 조용해질 것입니다. 알고 보면 불쌍한 남편들입니다. 말은 못해도 몸이 옛것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자 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요...

문제는 어렸을 때의 입맛이 한평생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이 입맛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가치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가치관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어렸을 때 형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이란 한 사람의 인생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일생에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 곧 그 사람의 가치관입니다. 무엇을 보고, 듣고, 행동하면서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것에 대한 진실을 인정하는 중요한 관점이 바로 가치관이라고 봤을 때 그 가치관이 어떠하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판가름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 가치관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입니다. 마치 4살 때의 입맛을 평생토록 기억하고 있듯이 가치관도 어릴 때부터 형성되어집니다. 그래서 가치관이 형성될 그 시기에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가까이 지내느냐는 문제는 그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사람의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네, 부모입니다. 누구보다도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자라게 됩니다. 부모의 생각, 부모의 말, 부모의 행동 등을 통해서 가치관을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가운데 가르침보다, 교육과 명령보다 부모님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는 모방을 통한 배움이 가장 크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듣기보다는 보면서 배우는 것이고, 말보다는 느낌으로 배웁니다. 

어렸을 때 너무 억압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커서 독재자가 될 확률이 많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지나치게 눈치를 보고 자란 사람은 사기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여기서‘어렸을 때’란 보편적으로 부모의 그늘 아래 있을 때란 말입니다. 그러니 이게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겁니까? 

마18:5-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어른, 그것도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란 그렇습니다. 먼저는 내가 죄 짓는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죄 짓게 만드는 것이 또한 죄입니다. 죄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도 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만 죄 안 짓고 살면 되는 게 아닙니다. 남을 죄짓도록 만드는 것도 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가운데 더 큰 죄는 어린 아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화지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무엇을 그려 넣든지 아이들에게는 그 그림이 곧 인생이 됩니다. 거기에 먹칠을 해서 되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한평생 불행하게 살아가야 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입니까?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가장 큰 죄라고 예수님께서 단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실족이라는 말을 기억해야합니다. 자칫 오해해서 아이들에게 실족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 싫은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잘못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즘 엄마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아이들이 분명 잘못하고 있는데도 나무라면 안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나무라는 것이 실족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무라지 않아서 잘못된 것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게해서 인생이 비뚤어지는 실족을 막아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되었다고 가르칠 줄 아는 그것마저도 부모의 책임입니다. 

자, 이제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녀들로 하여금 좋은 가치관으로 훌륭하게 살도록 가르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인성이 자라고, 인격이 형성되도록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란 그렇지 않습니까? 두세 명만 모여도 소리 지르고 뛰고 장난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늘 분잡합니다. 그때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왜 아이들은 데리고 와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느냐! 애들은 좀 집에 두고 오지!”아마 이 정도로 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한 마디 하십니다.“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하시고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안수하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자, 그럼 생각해봅니다.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갔던 사람들이 누구이겠습니까? 네, 부모들입니다. 결국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복된 인생을 위해 한일이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가는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들이 예수를 믿고, 부모들이 예수를 사랑하고, 그리고 부모들이 아이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 교회도 보면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엄마가 교회 올 때 꼭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엄마 밑에 졸랑졸랑 따라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선은 부모가 교회에 잘 나와야 아이들에게도 복이 가는 것입니다. 엄마가 가물에 콩 나듯이 교회에 나오는데 아이인들 교회에 올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모는 잘 안 나오면서 아이들한테 왜 교회 안가냐고 야단쳐봐야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부모들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께로 갈 수 있는 부모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신앙생활이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예수님께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수 있도록 자신 있는 부모들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부끄러워서, 내가 신실치 않아서 아이들마저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갈 수 없는 부모라서 가슴을 친다면 이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 신실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자, 그런데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부모들이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왔겠습니까? 단순히 놀러 나온 게 아닙니다. 분명한 교육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귀한 신앙교육이요, 가장 뛰어난 인생교육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실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네 정서로 이해한다면 이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우리는 이미 늦었다. 아쉽게도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야 만났지만 너희들은 처음부터 제대로 된 삶을 살아라!’그렇게 예수님을 보여 주면서“저분을 우러러 보고 살면서 저분을 닮아라. 저분을 존경하고, 저분을 사랑하라.”이것이 바로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부모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열두 살 때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까?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성전에 올라 가셔서 자기를 찾던 부모님께“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몰랐습니까?”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고백하던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부모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신앙적 삶을 아이들에게 배우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종종 맘에 들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한탄하듯이 쏟아내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그러면서도 크기 전에 부모로서 해줄 일이 무엇인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우리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해줄 때입니다. 아직도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속에서 정확한 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가는 일입니다. 그의 삶을 주님께로 인도해 주는 일이 가장 값진 일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은 함께 신앙생활하며 자녀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가정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온 가족이 한 교회를 섬기며 함께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한 공간에서 예배드리며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이것이 함께의 의미입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여러분가정마다 자녀들과 온 가족이 함께 예중교회를 섬기며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보는 일입니다. 

오늘도 부모로 살아가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나는 부모 된 부모, 부모다운 부모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볼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무엇을 가르쳤느냐는 지난 일로 후회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내 자식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올 자신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부모로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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