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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문지방의 귀신을 조심하세요.

  • 허태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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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방의 귀신을 조심하세요.
창4:6-7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이야기를 압니다. 세상의 선과 악을 말할 때는 항상 표본처럼 등장합니다. 얼핏 보기에 가인과 아벨의 갈등은 목자와 농부라는 삶에서 오는 이해 불충분 같기도 합니다.

여하튼 아버지 되신 하나님에게 두 아들이 동시에 제물을 바쳤는데, 그 일로 인하여 형인 카인이 화가 났다는 것이고 그만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쳐 죽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아벨이 죽게 되어서인지 그의 이름이 가진 뜻은 ‘헛되게 죽다’입니다.

지난 번 배철현 목사의 인문학 강좌에서 그는 이 대목이 그런 얕은 수의 이야기를 지니는 게 아니라. 모든 인생들이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있는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를 묻는 물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해석 너머에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카인이 아벨을 미워하는 장면 아니 그 원인은 아버지가 한 사람의 제물만 달게 받아 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추측들을 신앙에 적용해 왔습니다. 정성이 아벨의 제물에 더 있었느니, 하나님 마음대로라느니, 하나님은 채소류보다 육류를 더 좋아하셨다느니 하는 게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4:6-7절, 그 중에서 7절을 유심히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라고 되어 잇지 않습니까? 그 7절을 중심에 두고 4:6-7을 옮겨 보겠습니다.

왜 분통이 터졌느냐?
왜 얼굴이 떨어졌느냐?
만일 네가 잘하면, 들어 올려질 것 아니냐?
만일 네가 잘하지 못하면 문지방에 웅크리고 있는 귀신의 죄가 있다.
그것이 너를 원하겠지만, 네가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

메소포타미아의 풍습에서 사람이 제 마음 속에 나쁜 마음이나 적의를 품고 있으면 귀신이 그에게 달라붙어 죄를 짓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문지방에 웅크리고 있다가 그런 사람이 들어가고 나올 때 그에게 달라붙는다는 것이죠. 그게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앞에서 카인에게 하시는 말씀도 그것입니다. 이걸 이해하시면 왜 카인의 제물은 안 받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는지 추측이 가능해 지겠지요? 그리고 다른 억측은 사양해도 되겠지요? 사람이 착하지 않으면, 그 바탕이 바르지 않으면 항상 귀신이 들러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귀신이 저승으로 잡아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다른 그 어떤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제물을 바쳤는지’ 아니면 ‘그 제물에 정성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하는 인간의 본 바탕 혹은 마음이 어떤가를 묻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착하냐 착하지 않느냐 하는 거죠. 그러면 뭡니까? 사람이 착하면 하나님 마음에 아벨처럼 드는 것이고, 착하지 못하면 아무리 제 행위를 해도 하나님은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카인의 살인은 결국 그가 착하지 않음으로 문지방에 웅크리고 있던 귀신이 들러붙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카인이 살인을 한 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카인을 보호합니다. 귀신 때문이고 생각하서입니다.

그러면 착하다는 게 뭐냐? 본문을 곰곰이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마음이며 태도가 착하고 안 착하고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게 밖으로 나타난 사건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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