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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라 (잠 23: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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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라 (잠 23:22-26)


5월의 신록이 깊어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계절의 여왕이요, 꿈과 희망의 계절이며, 또한 가정의 달이기도 한 이 5월에 우리는 그 동안 효도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부모님을 생각할 때 가슴이 저려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분들은 살아생전에 불효한 것, 마음 편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속썩여 드린 일만 생각이 날 것이고, 부모님이 살아계신다 해도 이 세상의 생존경쟁 속에 바쁘게 사느라 제대로 효도하지 못하고, 또 삶 속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실패와 어려움 때문에 마음을 아프게 하고 걱정 끼쳐드린 것 등 잘 해드리지 못한 것만이 생각날 것입니다. 

요즘 사회학자 가운데 에이지퀘이크(agequake)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이라는 ‘age’와 흔들린다는 ‘quake’를 합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지진을 영어로 어스퀘이크(earthquake)라고 하는데 땅이 크게 흔들린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에이지퀘이크(agequake)란 말은 사회의 구성원들의 연령 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나서 사회에 큰 충격파를 던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특히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사회 경제적인 충격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 만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7.2%가 되어 정식으로 고령화 국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작년 2008년에 들어서서는 소위 노령인구가 510만 명으로 집계되어 총인구의 10%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노인들의 평균 수명 증가와 가임 여성들의 출산율 저하로 우리나라는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급속한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노령화 사회현상이 촉진되면서 이미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노인들의 사회 보장 문제가 최대의 사회 현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논의되기를 기피하고 있는 최대의 숨겨진 또 하나의 사회 현안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소위 노인 학대의 문제입니다. 어느 기관이 조사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노인의 8.2% 무려 10%에 가까운 노인들이 그들의 자녀 및 가족원으로부터 학대받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부모님들은 보릿고개를 넘긴 분들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 70세 이상 된 분들이 60여분이 됩니다. 이 분들은 일제 때 나라를 잃고 민족의 설움을 당한 고통의 세대들입니다. 그리고 60대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안고 있으며, 경제발전을 위해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한 세대입니다. 자녀들 챙기느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못한 분들입니다. 심리적 감정적인 상처를 헤아리며 육체적인 현상도 알아야 합니다. 친구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수 있는 사회적인 상황도 헤아려야 합니다. 

이로 인해 오는 충격 가운데 하나가 부모와의 자식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래도 부모가 경제적인 힘이 있으면 자녀들이 그것 때문에 억지로라도 효도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젠 부모도 일방적인 희생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식하나 믿고 모든 것을 다 자녀들에게 준 부모들의 노후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 22절 말씀에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지혜, 그의 경험, 그의 사랑 그리고 그 깊은 잔소리 속에 그 많은 잔소리 속에 중요 한 교훈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측은히 여기던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가 아닙니다. 부모는 공경하는 겁니다. 존경이 없는 사랑은 결코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귀찮게 여겨도 안됩니다. 여기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원래 공경한다는 말의 어원은 신체의 ‘간장’ 이란 뜻입니다. 몸이 모든 장기들이 중요하지만 특히 간은 해독작용을 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어버이를 공경한다는 것은 간을 소중하게 돌보듯 그렇게 부모님을 대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십계명 중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k bad'는 ’무겁다'는 뜻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즉 ‘공경한다'는 것은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신 부모님께는 우리가 도저히 흉내내거나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경륜의 무게, 인식의 무게가 있는 법입니다. 바로 그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하면 귀히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무게'란 ’긍지'와 동의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 인생의 무게를 존중한다는 것은 자식으로써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요, 만약 이 긍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부모님의 무게를 인정하기는커녕 깃털보다 더 가벼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효도란 함께 모시고 사느냐 아니냐, 용돈을 얼마나 드리느냐, 얼마나 호강을 시켜 드리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참된 효도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긍지 여부에 따라 판가름나는 것입니다. 

가끔 부모님들의 장래를 집례 하는 가운데 입관을 하는 것을 지켜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경우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어느 누구 예외없이 깊이 패인 주름살하며, 손마디마디가 앙상하게 변한 모습입니다. 한때 그 곱고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온갖 세상 풍상에 찌들대로 찌든 모습을 보면 참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 아침! 묻습니다. 부모에 대한 긍지가 있습니까? 부모에 대해 함부로 대하지는 않으십니까? 링컨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의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한 의원이 배우지도 못한 무식한 대통령을 모시게 돼서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구두를 벗어들고 이 구두 역시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이라며 조롱했습니다. 그때 링컨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니다. 

나도 어깨너머로 배우 기술이 있으니 당신 구두 수선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고쳐주겠소” 참 멋지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구두 수선공인 것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직업에 대해 하찮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링컨은 부모님의 직업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부모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무슨 일을 하셨든지 간에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바로 자식으로써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요, 만약 이 긍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부모님의 무게를 인정하기는 커녕 깃털보다 더 가벼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명하십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염려와 근심거리가 될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믿음 생활에서 떠날 때 그 부모의 심정은 통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 24절에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여기 의인의 아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때 우리의 부모는 크게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가르쳐주는 믿음의 삶을 잘 따라 순종하여 살아가기를 부모는 바랍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도 고령화에 들어가면서 안타까운 것이 믿음의 계승 문제입니다. 자녀들이 믿음의 이탈 현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김장로님의 교회 묘지를 구하자는 그 취지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산소가 교회가 관할하는 묘지가 있으면 성묘를 할 때 반드시 언제인가 신앙의 방화하는 자녀도 돌아온다는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묻습니다. 무엇이 효도입니까? 자녀들이 무엇보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기 23절에 은 진리를 가장 귀하게 평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팔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천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마13:44-46 예수님의 비유 말씀처럼 값진 진주를 발견한 자나 보화를 발견한 자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소유란 집 자매 부모 자식 전토 심지어 자기 생명까지를 말합니다. 이렇듯 진리는 최대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는 바로 여러분이 예수를 붙잡고 사는 그래서 주님을 경외하는 그 삶을 기뻐하는 것이고 또 여러분의 성숙한 신앙생활이 효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웃지 못 할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이조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서울을 떠나서 개성을 좀 방문하게 됐습니다. 개성에 거동을 하게 됐는데 온 방에 방을 부치고 소문이 나니깐 어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요청을 하는 겁니다. "내가 나라 임금의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번도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을 뵙지를 못 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을 멀리서라도 좀 뵙고 그리고 죽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 아들은 왕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십리 길을 어머니를 업고 거기 길가에 나가 섰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업고 뒷 꿈치를 들어 드렸습니다. 임금님은 멀리서 이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나서 서울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그 때에 그 어머니를 업고 있던 그 사람을 불려 들여서 효자라고 금 백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불효자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다는 걸 억지로, 강제로 업고 나가서 또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다는 겁니다. 왕은 역시 또 불러서 상을 "금 백냥을 주라" 그랬는데 신하들이 말하기를 "임금님이여, 그놈을 불효자랍니다. 효도가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해서 돈 받았다는 말을 듣고 이거 상 받으려고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고로 상을 줄 것이 아니라 벌을 줘야 될 것 같습니다." 임금님 하시는 말씀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주라." 그랬어요. "흉내 내었더라도 좋은 거니 줘라" 결국은 이 사람이 그 뒤에 뉘우치고 진짜 효자가 되었답니다. 여러분 효도는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그렇다면 정말 우리의 부모가 우리의 무엇 때문에 기쁘고 즐거워 하겠습니까? 부모는 우리 자식의 성공, 출세 그리고 건강한 삶을 볼 때 대견스럽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녀들의 믿음 생활입니다. 그리고 내려가서 26절에 보면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길은 부모님의 길, 그의 선택, 그의 철학, 그의 이상, 그의 살아온 생을 내가 기뻐해야 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은 마음속에 지금 무언가 잘못 살았다고하는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만 은 자식의 행위를 통하여, "아닙니다. 부모님은 잘 살았습니다.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훌륭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뭐 그따위로 살았느냐고 말하지 말고요. 훌륭하게 살았다고 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거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 공경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성경에 엡6:3절에 보면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계명들이 있습니다. 그 계명들은 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계명에만 뒤에 보너스가 붙어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잘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땅에서 장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 공경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 일에 무슨 상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 공경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에 상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어야 합니다. 충분히 상을 줄 이유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노부모가 치매에 걸려 자꾸만 집을 나가시는 부모를 공양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수다가 심한 노부모를 극진히 공양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부모를 모시기는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하는 일에 예부터 상이 주어졌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이 복을 받습니다. 천하없어도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부모는 자식에게 공양 받고 효도하기만을 기다리면 안 됩니다. 부모는 자식으로 하여금 부모를 공경하게 해서 복을 받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부모의 역할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서 이 약속된 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메시지를 시작하면서 노인 학대의 이야기을 언급했습니다만 가장 잔인한 부모 학대, 노인학대는 부모 앞에서 우리가 잘못된 인생을 사는 일입니다. 그것보다 더 부모의 가슴을 찢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5남매 대학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세월이 흘러 몸이 쇠약해지면서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식들과 며느리, 사위를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말을 꺼냅니다.  “사실은 내가 사업 하다 빚을 졌다. 이자가 불어서 7억이 됐구나. 그렇다고 빚을 남기고 죽을 수도 없고 ... 그래서 부탁인데 너희들이 조금씩 갚아주면 좋겠구나. 이 종이에 갚아줄 수 있는 액수를 적어라.” 아버지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보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제일 어렵게 사는 셋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원이라고 적습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도 마지못해 1천만원, 1천 5백만원, 2천만원 ... 이렇게 적습니다. 그 후 몇 달 후 아버지가 다시 소집합니다. 자식들은 무슨 말씀을 또 하시려나 걱정하면서 모였습니다. 아버지가 입을 엽니다. “그동안 고민 많이 했다. 유산 조금 남은 것 갖고 내가 죽은 후에 너희들이 반목할까봐 걱정하다 이런 생각을 해냈다. 지난 번 적은 액수에 5배씩 계산해서 주겠다. 이것으로 상속은 끝이다.” 그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게 오늘의 현실 아닌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얼마나 어버이를 잘 섬겼느냐가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왕대밭에 왕대 나듯이 어버이에게 효성을 다하는 부모 밑에 효성스런 자녀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습니다. 지금 우리가 불효를 하면 우리도 늙어서 똑같이 불효를 받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계신 부모님을 잘 섬기고,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 보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 살아생전 효도를 다 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나이들수록 그것을 예외없이 후회하게 되는지 아십니까? 이제 곧 죽으면 하나님과 먼저가신 부모님을 만나게 될 것임을 아는 까닭입니다. 효도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해 가는 비정상적인 세태 속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주셨던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찾으십시오. 

우리의 부모님이 아무리 늙고 병들고 볼품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치밀하신 섭리에 의해 우리 부모님이 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긍지가 될 충분한 자격을 이미 갖추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해 이 긍지를 갖고 있는 한, 설령 남에게 불효처럼 보이는 행동도 그 본질은 실은 효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긍지를 갖지 못한 자식이라면, 그가 부모에게 행하는 것들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또 다른 불효의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살아온 나이만큼이나 깊게 패인 주름살하며 다시는 펴지지 않는 허리, 그리고 이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걸음걸이마져 버거워하시는 우리의 부모님들을 잘 섬겨야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오늘 성경은 모든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부모를 순종하라고 그리고 공경하라고 말입니다. 순종이 부모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면 공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것입니다. 박은수라는 분이 쓴 어머니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좋은 옷이 필요치 않으신 줄 알았습니다. /예쁜 그릇도 갖고 싶지 않으시고/ 맛있는 음식에도 마음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빛깔 고운 립스틱이나/ 꽃무늬 화려한 양산품/ 눈여겨 보시지도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집와서 마흔 고개에 다다르며/ 이제사 깨달아 집니다./ 어머니도 여자이셨음을/ 어머니의 가슴에도 무지개가 있고 파랑새가 있고/ 사파이어 같은 꿈이 있음을/ 이제사 알아봅니다./ 어머니/ 언제나 귀한 이름입니다./ 언제나 우리맘속에 별처럼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이날에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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