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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주일]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예수님을 본받자 (벧전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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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예수님을 본받자 (벧전 2:18-25)
   
오늘은 우리 교단 총회가 제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이런 청년주일을 제정한 목적은 다음세대의 주역이 될 청년들을 위하여 온 교회가 기도하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며, 청년부서의 발전을 위하여 관심을 가지라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청년주일을 맞이하여 교회 내의 청년문제에 대하여 외면하지 않고, 청년들의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며, 지금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들어주며, 저들 청년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임을 자각하면서 함께 고민하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청년은 청소년들과는 달리 꿈과 희망, 그리고 비전을 구체적으로 펼쳐나가는 세대입니다.  그리고 다음세대의 주역이 되는데, 10년 내에 그 큰 뜻을 다 이룰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청년’이라는 말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이가 20대 정도인 남자를 이르지만, 그 시기에 있는 여자를 포함하여 청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이만 20대에 접어들면 청년입니까?   저는 그렇게만 보지 않습니다.  청년이란 청년의 꿈과 이상과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라도 뚫고 헤쳐 나갈 수 있는 기백이 있는 사람이어야 청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청년의 반대말은 노년입니다. 몸은 20대의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정신이나 생각하는 것은 노년의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를 부러워하고 젊다는 말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젊은 시절이 지나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중년에 접어들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시절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자신을 희생하여 헌신할 수 있는 것도 청년의 때에만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무디 목사님이 교회는 다니되 전혀 봉사하지 않는 한 젊은이에게 “젊은 청년이 어째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습니까?  예배 시간에도 잘 빠지고, 봉사도 안하고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그 젊은이가 “목사님, 제가 젊었으니 지금은 즐기다가, 돈도 벌고, 여유가 생길 때 나이 많고 늙어서 잘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 선물은 시든 꽃 한 송이였습니다.  선물을 받은 젊은이는 화가 났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일을 당했어도 황당하겠지요?    그래서 그가 목사님에게 찾아가 그 이유를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님이 “여보게, 자네도 시든 꽃이 보기 싫은데 하나님은 좋으시겠냐?”라 하였습니다.  힘 있을 때, 젊었을 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회가 언제까지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젊은 그대”라는 노래는 정말 많이 불린 노래입니다. 
우리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력을 얻고 있지만, 때로는 경쾌하고 발랄하고 도전적인 건전한 대중가요도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가요라고 하여 금기시하거나 대중가요는 하나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적인 것을 중요시하되 사회생활은 폭넓게 알고 경험하는 것이 좋습니다.    “젊은 그대”는 김수철씨가 작사 작곡한 노래인데, 젊은이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는데, 하여간 신명나는 노래입니다.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 보석보다 찬란한 / 무지개가 살고 있는 저 언덕 넘어 / 내일의 희망이 우리를 부른다.// 젊은 그대 잠 깨어 오라 아하- / 젊은 그대 잠 깨어오라 아하~ /아 하- 사랑스런 젊은 그대.. / 아하~ 태양 같은 젊은 그대.. / 젊은 그대- 젊은 그대-// 

미지의 신세계로 달려가자 / 젊음의 희망을 마시자// 영원의 불꽃같은/ 숨결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강산의 꿈들이 우리를 부른다.  /  젊은 그대 잠 깨어오라 / 아하- 젊은 그대 잠 깨어오라 아하- / 아-하- 사랑스런 젊은 그대 아-하- / 태양 같은 젊은 그대 / 젊은 그대 젊은 그대" 

오늘 청년주일에 부른 찬송 중에 이용원작사 이한웅 작곡의 “복된 나라”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본래의 제목은 복된 나라인데, 1절 가사의 첫줄을 제목으로 기록하다보니 “역사 속에 보냄 받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1절   “역사 속에 보냄 받아 이 나라에 태어났다./ 많은 사람 가운데서 우리들을 부르시어/ 주의 복음 전하도록 귀한 사명 주셨으니/ 몸과 마음 다 바쳐서 복된 나라 이룩하자”

2절 “우리 조국 금수강산 할 일 많은 이 땅 위에/ 주의 뜻을 이루도록 보내심을 받은 우리/  갈 길 잃고 방황하는 우리 민족 우리 겨레/ 주의 길로 인도하여 민족 구원 이룩하자”

3절 “같은 믿음 같은 사명 주께 받은 젊은이여/ 사랑으로 하나 되고 말씀으로 무장하자/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용감하게 전진하고/ 이 땅위에 주의 나라 생명 바쳐 이룩하자”  이 찬송은 장엄한 느낌을 가지고 불러야 하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짜 뚜글뚜글 하게 불러야 합니다.  이런 찬송을 부르면 많은 격려가 되고 용기를 얻고 도전적인 젊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대학의 도서관에 가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만원이라고 합니다.  또 고시 공부하는 대학생들로 도서관마다 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적인 것도 있지만, 평생 안정된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거품경제가 서서히 빠져 오면서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었고, 일자리가 나오지 않기에 좀 힘들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로써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인기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임용고시에 매달리고 목숨 거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고시공부에 젊은이들이 매달리는 것은 사람의 출셋길이 공무원의 길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서글픈 일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건 젊은이들의 사고방식과 관심의 대상이 그 나라와 사회의 장래를 말해 주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안정된 자리로서 공무원직에 몰리고 출세하는 자리로써 판사 검사에 쏠린다는 것은 이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에 개척정신과 창조정신, 도전정신과 모험정신이 차고 넘쳐날 때에, 우리 사회는 내일의 희망이 넘쳐나게 됩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은 “소년이여 야망을 품으라”는 말이었습니다.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이었습니다.  

전에 한 신문에 나온 기사인데, 구리시에서 지방공무원 채용고시가 있었는데, 시청의 행정9급 공무원 4명을 뽑는데, 516명이 지원하여 129대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어느 해는 10급 공무원 한 명을 뽑는데 지원자가 무려 300명이나 몰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300대 1입니다.  

저는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려고 땀을 흘리며 수고한 그들- 300명이 과학자가 되고 해외시장을 열어가는 개척자가 되고,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가 국운을 열어 나가는 도전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교육의 가치관이나 방향도 수정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시간은 돈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울 때에 아주 많이 작문한 것이 “Time is money”였습니다.  

시간은 황금이다.  “Time is Gold”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은 생명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Time is lif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요즈음 들어서 시간이 어찌 그리 잘 가는지 하루를 사는 것이 조급하게 느껴집니다.  

누가 말하기를 “나이를 먹는 것과 시간을 감지하는 느낌은 자동차의 시속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20살 먹은 젊은이가 느끼는 시간 개념은 시속 20km의 자동차처럼 더디고 느리나 70~80살 먹은 연로하신 어르신 느끼는 시간은 70∼80km의 자동차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시간의 빠름을 가리켜 ‘쏜살’같다고 표현한다. 쏜살이란 쏘아버린 화살이란 뜻입니다.  시위를 한번 떠난 화살은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듯이 한번 지나가버린 시간은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시간이 덧없음을 가리켜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다”고 한다.  ‘유수’라는 말의 의미도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이 빨리 지나가며 한번 흘러 가버린 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여유도 없습니다.  이제는 남은 시간을 더욱 아끼고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 사실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시간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으니 하루를 살았으면 그 하루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라먹은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의 시간이란 허락된 생명과 같습니다.  내일이 나의 생명의 끝이라고 하면 오늘 하루를 찻집에서 약속 시간을 어긴 사람이나 기다리면서 1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선진국으로 가면 갈 수록 문명사회를 구가하는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강하고, 문화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없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한 사회학자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문명인은 돈보다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알지만, 미개한 사람들은 시간보다는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러면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 그에게 주어진 인생을 가장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시간과 건강을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잘 관리하되, 소중한 것부터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존 맥스웰박사는 많은 리더십에 관한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리더십과 자기개발에 관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전문가입니다.  

그는 사람에게 잠재된 리더십 능력을 극대화하도록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가 지은 책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중에 "Thinking for change"라는 책이 있는데, 번역하면서 “생각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발행하였습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존의 친구가 있는데 그에게는 딸이 둘이 있었는데, 21살인 둘째 딸 킴은 대학 4학년 때에 약대에 지원하였습니다.  그 학생에게 합격통지서가 도착한 날, 25살인 언니 제니도 그 자리에 있었기에 입학이 허락되었다는 소식을 함께 들었습니다.  동생 킴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언네 제니 역시 동생이 원하는 목표를 이룬 것에 대하여 기뻐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동생을 가엽게 여겼습니다.  “엄마, 킴이 불상해요. 앞으로 4년이나 더 학교를 다녀야 하잖아요”라고 제니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생 킴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부수적으로 주어질 직업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언니는 4년이나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는 얼마나 뛰어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독자들에게 각자의 생각을 평가해보라고 하면 이런 유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은 사고인가, 큰 사고인가?   분산된 사고인가, 집중적 사고인가?  틀에 박힌 사고인가?  창의적 사고인가?  공상적 사고인가,  현실적 사고인가?  두서없는 사고인가, 전략적 사고인가?  제한적 사고인가, 가능성 사고인가?  충동적 사고인가, 사색적 사고인가?  통념적 사고인가, 혁신적 사고인가?  혼자만의 사고인가, 공동사고인가?   이기적 사고인가, 이타적 사고인가?  희망에 치우친 사고인가, 실리적 사고인가?”라고 합니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크게 결심하게 됩니다.   존 맥스웰은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유산을 결정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오늘은 어제 생각한 결과이다.  우리의 내일은 우리가 오늘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생각의 크기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사람은 “위대한 생각을 길러라.  어떤 일이 있어도 생각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의 저자 제임스 앨런은 그 책에서 “좋은 생각과 행동은 결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없다.    나쁜 생각과 행동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말하라고 하면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하실 말씀이 많을 줄 압니다.  후회스럽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사람이 변해야 됩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려면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의 영원한 숙제인 죄를 인식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생을 바르게 살아갑니다.  그 안에 예수님이 사셔야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예수님을 본받자”고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인생이 있다고 하시며, 반대로 어떠한 칭찬이 없고, 봐줄 수 없는 추한 인생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가 있습니다.   그가 범죄하여 징계를 받고, 매를 맞았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칭찬이며,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당하게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면 그런 사람과 그의 인생은 실로 아름다운 인생이며 자랑스러운 인생입니다.  

그가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받고 고난을 참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그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어떤 고난도 이겨내는 성실한 삶은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칭찬과 영광이 따르고,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우리의 일생에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이 보여주신 인생을 살아가면 우리의 인생을 대성공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온갖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살아가신 대로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라고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셨고, 그의 입술에는 거짓이 없었습니다.  욕을 당하실 때에도 주님을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셨어도 말로나 행동으로 위협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떠한 고난을 받으셔도 하나님께 맡기고 당신은 죄짓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 양과 같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며 죄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구원받고 보니, 살아가는 목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죽을 수 있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이제야 말로 죄짓는 나는 죽었고, 의에 대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죄짓는 나는 죽었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는 내가 살고 있다고 선언하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오늘 청년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몸과 시간과 삶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시는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쳐야 하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우리들은 다만 관리인이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존 스토트 박사는 ‘제자도’라는 책에서 그가 깨달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존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가지고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정의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은 점점 달라지고 성숙해져갔습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향한 진정 원하시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신 주님을 닮아가고, 사랑의 삶을 살아가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며, 오래 참으신 주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포기하신 주님을 본받고, 닮아가야겠습니다. 

오늘 주님을 우리에게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주님이 사실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사셔야 주님과 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받으시며 우리의 죄를 담당해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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