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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건강한 부부 (엡 5: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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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부부 (엡 5:21-33) 

제2회 부부세미나를 Marriott Hotel에서 가졌습니다. 1회 때 참석해 보았기에 이번 세미나에도 참석하기만 하면 분명히 은혜를 받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여선교회장이 정성껏 준비하였습니다. 오겠다는 분들이 갑자기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하였을 때 낙심해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1박 2일 예정으로 집을 떠나는 것이 직장이나 아이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걸리는 일들로 인하여 쉽지는 않습니다. 은혜는 사모하고 결단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번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 기회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오신 분들은 새롭게 단장된 깔끔한 호텔 분위기에서 식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맛있는 음식이 곁에 서브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제2의 신혼여행을 온 기분이 났을 겁니다. 참석자 모두 세미나에 진지하게 참여할 뿐 아니라 부부가 무릎을 맞대고 기도하고 울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이번 부부세미나에 참석한 분들은 주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성경적인 부부 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정’은 삶의 기초이며 원천입니다. 나아가 가정은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적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고도의 산업 사회에 들어선 지금은 극단의 상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이 확산됨에 따라 전통적 가정 개념이 도전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흔들리며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기독교인 가정에서도 현실적 삶과 신앙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다가 신앙마저 좌초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가정의 위기는 단지 부부의 갈등이나 가정의 붕괴로 그치지 않고 청소년의 비행이나 각종 사회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교회와 가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가정이 그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면 교회도 존립의 기반을 상실하게 됩니다. 반면에 부부 관계의 회복과 치유가 일어날 때 가정이 일어나며 교회가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따라서 교회에 가정들과 그 구성원들의 필요들을 채워주는 구체적인 사역들이 필요합니다.

가정은 창조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입니다. 가정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곳일 뿐 아니라 식구들의 안식처요 인격을 형성하는 곳이요 신앙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가정이 건강할 때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오늘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남편과 아내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에베소서 5장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부부에 관한 성경적인 원리를 삶에 적용하면서 각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본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앞부분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5:18)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시기에 예수를 믿으면 빛의 자녀가 됩니다. 빛의 자녀로서 살려면 성령 충만이 필수적입니다. 술기운이 몸을 주장하면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육신의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온전한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수 있게 됩니다.(롬 12:1) 

성령 충만은 믿음의 공동체에서 온전히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19-21절에는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삶의 모습이 5개의 분사형으로 언급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 충만의 삶이란 하나님을 찬양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서로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복종은 원래 노예에게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노예는 자기의 의지나 사정에 상관없이 주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노예는 매를 맞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합니다. 노예가 주인을 섬기는 자세인 ‘복종’이란 단어를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적용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과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종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 5:13)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복종은 누구의 강요에 의하여 마지못해 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복종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라는 21절의 말씀은 단지 앞부분에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22절부터 33절까지 또 하나의 문단을 이어주는 고리의 기능을 합니다. 본문은 빛의 자녀로서 성령 충만하여 서로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가족 구성원들 즉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간에 우선적으로 실천되고 적용되어야 할 것을 시사합니다. 특히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서로 복종해야 하는 첫 사례가 아내와 남편의 상호 관계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을 종합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22절) 남편을 경외해야(33절)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25절과 33절) 문자적 의미로만 본다면 복종하고 경외하는 것이 더 무겁게 여겨집니다. 반면에 사랑하는 것은 그 정도에 있어 가볍게 여겨집니다. 

본문을 잘못 해석하면 남용하기 쉽습니다. 여성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때에 여성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구절이 될 수가 있고 성경은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1)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22~24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1세기 로마 시대에서 당연한 규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당시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합니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연결시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 복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함을 입은 교회가 구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자발적으로 섬기는 사랑의 복종입니다. 그 복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 창조의 원리’와 복음에 입각한 ‘사랑의 규범’에 의하여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와 영광스러운 구원계획의 원리에 기초한 질서를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으로 구세주가 되셨고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그러한 희생적 사랑 때문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그분에게 복종하듯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므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표현만 보면 남편이 아내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 보시기에 동등합니다. 머리와 몸을 분리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 없는 교회를 상상할 수 없듯이 아내와 남편은 한 몸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머리로 번역된 단어는 ‘근원’ 또는 ‘권위’의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머리됨은 고압적인 자세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내어줌과 같은 아가페의 사랑이 들어있는 권위를 뜻합니다. 물론 아내에 대한 남편의 거룩한 근원 내지 신성한 권위가 아담의 타락이후로 손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재창조’ 사역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조명해볼 때 본문은 구원 받은 성도의 표시가 ‘가정의 회복’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제 남편들은 가정의 머리로서 가정을 잘 돌보고 다스리는 책임을 다하여야 합니다. 다만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복종한다고 하여 남편의 하는 모든 요구를 무조건 다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 대한 도전을 할 때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유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교회에 대하여 그러한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럴 때에도 지혜롭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아내가 복종한다는 것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믿는 아내들이 믿는 남편들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배필로서 남편과 아내는 주종 관계가 아닌 서로 돕는 사랑의 관계여야 합니다. 아내를 이해하고 보살피며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사랑한다면 아내들도 스스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며 따르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완전한 사랑이요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온전하게 복종하듯이 바울은 믿는 가정에서 아내들도 강압적으로나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남편들을 존경하고 섬길 것을 촉구합니다.  

2)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들에 대하여 22-24절까지 세절에 걸쳐 권면하는데 남편들에 대한 권면은 25-33절까지 무려 세배나 되는 9절에 걸쳐 권면합니다. 남편들이 아내에게 복종만을 주장하였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소홀히 여기던 세태를 반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면서 교회에게 희생을 요구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주신 이유는 
(1)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요, 
(2)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함이요, 
(3)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온 힘을 다하여 아내가 정결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남편을 통해 아내를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레위기 19장 18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에 근거하여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를 자신과 같이 사랑할 것을 권면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요,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자기 몸을 보호하고 양육하듯이 아내에 대하여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그 근거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몸인 교회를 양육하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책임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며 다스림이 아니라 돌봄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의 명령을 인용합니다.

그리스도와 바울의 신비롭고 거룩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창세기 본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취하여 신부로 취할 때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부가 연합하여 온전하게 한 몸을 이루었기에 전적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존경하라” 사랑과 존경을 통하여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룰 때 그리스도와 교회가 연합되는 비밀을 나타냅니다. 사랑하라 존경하라 단어는 틀리나 그 당시 남자와 여자의 신분이 달랐던 사회적인 환경으로 볼 때 결국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각각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를 향한 교회의 복종에 비유된 것이라면 성도로서 남편과 아내 모두는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 비밀을 깨닫는 은총과 지혜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바로 이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18절)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피차 복종하며 살아가는(21절), 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성도들(남편과 아내들)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영적인 결혼으로(31, 32) 그립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하는 신부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서로 복종해야 합니다. 특히 아내는 남편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여겨(23) 남편의 권위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21), 주께 하듯(22) 해야 합니다. 남편들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자기 자신을 내어줄 정도의 사랑을 가지고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25)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하듯, 자신의 몸을 대하듯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하고 돌보아야 합니다.(28)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아내와 가정을 잘 다스릴 책임이 남편에게 있습니다. 믿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복종하는 가운데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을 가진 남편에게 아내도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부부가 되려면 

1) 부부가 서로 섬겨야 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섬기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은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서로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사는 자들은 가정생활을 주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는 상호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계층사회에는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하여 권위를 가진 자들과 복종을 하는 자들로 구분이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버지는 자식을 주인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로마제국의 사회적 상황에서 바울은 피차 복종하라는 폭탄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복종하라는 말은 결국 자기의 가진 특권이나 권리를 포기해야 되는 것을 의미하기에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회개하여 구원의 놀라운 은총을 맛본 성도는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가정 속에서 철저한 자기 부인과 타인을 위한 사랑과 섬김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진정한 왕으로 섬김으로 인해 우리의 가정과 교회 속에 더욱 온전한 용서와 사랑의 치유와 회복이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펼쳐져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의 대전제는 21절에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남편과 아내가 자발적으로 서로를 섬길 것을 말합니다. 본문은 남편들에게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을 가르칩니다. 아내도 남편을 경외하고 복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2) 부부생활이 신앙훈련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부 간의 사랑이 자칫하면 눈물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부 세미나 기간 중에 계속 경고하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 관계가 한 달 안에도 끊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결혼생활이 일시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가 되고 서로를 섬기려는 노력과 의지가 계속 필요합니다. 서로 섬기려면 때로 상대방을 위하여 자기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혼인관계는 일평생 함께 가는 언약의 헌신이며 그 헌신을 이끄는 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부생활은 신앙훈련의 일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아끼고 서로 참고, 서로 섬기는 가운데 그리스도가 머리됨을 나타내는 신실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3) 부부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남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아내를 위하여 죽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내들보고 남편 위해 죽으라는 말이 없습니다. 아내들에게는 남편에게 복종 정도만 하면 됩니다. 22절에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보다 21절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복종하라’는 명령이 우선입니다. 

또한 ‘복종하라’는 명령형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헬라 원문에는 분사로 되어 있고 본 동사는 18절에 나오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입니다. 세상에 이끌리지 않고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야 비로소 서로 복종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서로 복종하라는 권면 속에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부부가 함께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부부에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립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가장 먼저 창조하신 인간을 위한 제도로 모든 사람이 창조 원리에 따라 가정을 이루어 나가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부부관계는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말씀하신 것처럼 서로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창 2:18)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서로 돕고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몸을 버리시듯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교회가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가듯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의 모습이 성도의 가정이 취해야 할 바른 모습입니다.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달아 남편과 아내는 서로 자기의 부족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다 요구되는 것은 서로를 향한 관심과 헌신입니다. 부부간에 금실이 좋은 가정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원만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깁니다. 서로 아끼고, 서로 참고, 서로 섬기면서 서로를 향하여 “나는 당신을 기꺼이 섬기겠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부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부부, 건강한 부부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가정, 행복한 가정,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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