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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충만을 받아 담대한 전도자가 되라! (행 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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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을 받아 담대한 전도자가 되라! (행 4:7-20)


오늘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우리 모두가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지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기름 부으심이 있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약속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주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치고 낙심하고 선생님을 배반했던 그 배신자의 반열에서 아무 기대도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그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실패자의 집단이었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집단이었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리고 나니까 저들이 가야할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절망과 낙심과 불안과 염려가 저들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리고 그들은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이 약속의 것을 허락하셔서 이 절망과 낙심과 배신과 불안과 염려와 근심과 좌절과 실패로부터 우리를 구하시옵소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절망적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기도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제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한 번의 성령의 사건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사람들이 3천명, 5천명, 날이 갈수록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의 주역들로 변했습니다.  저들의 답답함을 한 번에 바꾼 성령의 사건이 오늘 하나님을 믿는 이 자리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하면 저는 똑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저들을 바꾼 오순절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 가운데 나타난다고 하면 우리들도 이 땅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드는 역사의 주역들로 변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말로만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전심으로 사모하십시오.  "주여! 내게도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물 붓듯이 부어 주시옵소서.  비둘기 같이 임하시옵소서.  파도 같이 임하시옵소서.  바람같이 임하시옵소서.  성령이여! 이곳에 불같이 임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시대가 정말 마지막 시대라고 한다면 모든 교회와 모든 믿는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을 외쳐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것만이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이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이것만이 더 많은 생명이 살아나는 길입니다.  이것만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더욱 강력하게 증거하는 길입니다.

보십시오.  하늘 문이 열리면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이면서 각 사람의 머리 머리마다 임하니까 낙심과 좌절과 실패와 불안으로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던 그 사람들이 생기를 얻었습니다.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골목 골목을 뛰어 다닐 때 저들의 그림자만 닿아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사모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꿈을 꾸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정말로 탐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침에 있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은 세상 것을 탐내지 말고, 거룩한 하늘의 것을 탐내십시오.  부질없는 세상 것을 붙들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저는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우리 속에 가득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하나님의 능력에 마음껏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를 보기 전에 저들의 삶에는 아무런 의욕도 없었습니다.  불안과 낙심을 주었고 기쁨도 감격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들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이 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저들 속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한 저들이 세상을 진동시키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은 논쟁의 주제가 아니라 축복의 주제입니다.  간혹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것이 무슨 성령의 충만이냐?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말씀만 많이 알면 되지, 꼭 그렇게 믿어야 되느냐?"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성령 충만은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이 성령의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대한 감화와 감동의 세계를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면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 앞에 나옵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고 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향한, 내 자녀를 향한, 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을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고아와 나그네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에 취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끝없는 꿈을 주십니다.  끝없는 이상을 주십니다.  끝없는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모든 절망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렇게 주님을 따라 다녔지만 하나님의 영이 오기 전까지는 모든 상황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고 나니까 모든 상황을 정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이 역사가 여러분 속에도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 강한 성령님의 역사에 사로잡히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도 한 번도 신령한 체험을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 사랑, 절대 권능, 절대 능력에 사로잡히지 못하고 그냥 남이 믿으니 믿고, 남이 읽으니 읽고, 남이 공부하니 공부하고, 그래서 이 훈련된 신앙, 훈련된 의지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바른 신앙은 훈련된 의지가 아닙니다.  생명력 있는 신앙은 훈련된 지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신앙은 현실적인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자기 훈련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천만의 말입니다.  내 아내도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내 자식들도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생포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권능에 사로잡히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올 때의 발길이 갈 때의 발길과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올 때의 눈빛과 갈 때의 눈빛과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올 때의 심령과 갈 때의 심령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올 때의 모습과 갈 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서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자녀들에게 주신 위대한 축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이 이 신령한 세계에 대해서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눈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훈련된 지성, 숙련된 의지가 신앙생활의 마지막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때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절대 능력에 사로잡히는 일입니다.  절대 권능에 사로잡히는 일입니다.

지금 이곳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들 머리 머리마다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무엇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제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종교꾼이 되지 말고 능력 있는 주님의 강한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니까 저들이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저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생명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니까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일어나도, 넘어져도 주님을 섬기고 싶어집니다.  저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니까 입이 근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골목과 거리를 다니면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에게는 입에도 하나님의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  입에도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의 세력에 붙잡힌 생명을 빼앗아 올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의 입술에 타고 있는 숯으로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의 입에 사탄의 권세를 결박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입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의 입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니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모든 사건들 앞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귀신들린 여자아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오라"고 했더니 악한 귀신이 즉시로 그 아이에게서 나왔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를 못한 지체장애인을 향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더니 그가 일어나 뛰어 서서 걸으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에게는 입에도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낙심된 마음에 생령을 불어넣는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의 입에 주 예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이 역사해야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가 있니다.  성령이 역사해야 증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해야 전도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고난과 도전 앞에서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복음이 고난을 당할 때 교회와 성도는 좌절하거나 낙심하기는 커녕 오히려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동편에 가면 "아름다운 문"이라고 불리는 미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걷지를 못하는 지체장애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22절에 보면 이 사람의 나이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아주 오랜 세월을 누군가가 아침에 메어다 거기에 앉혀 놓으면 그곳에서 구걸로 연명해 오던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들어가다가 이 사람을 만납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그를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그리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40년 동안 걸어보지 못한 그가 벌떡 일어나 걷고 뛰기 시작합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신통한 능력이 있는 줄을 알고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주목합니다.

이쯤 되면 그는 분명히 슈퍼스타입니다.  그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기회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순간이 자신의 인기나 명예를 추구하는 시간이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주목하면서 뒤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마치 우리의 권능이나 우리의 경건으로 일을 한 것처럼 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느냐?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 가야 될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보면 자기의 이름이 높아지는데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 베드로와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기회를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 일은 너희가 죽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그는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지금도 살아 계신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초대교회에서 있었던 모든 이적과 기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연결하면서 복음 전도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죽은 다비다가 살아난 사건, 옥문이 열려진 사건, 또 다른 곳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 276명이 파선 위기에서 구원받은 사건, 사도행전에 기록된 모든 이적과 기사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결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그것을 복음 전도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관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복음 전도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인생의 문제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결 받고, 그것을 복음 전도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3장의 이 사건을 놓고 4장에서는 시비가 벌어집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서 이튿날까지 잡아 가둡니다.  그리고 너희가 무슨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심문합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건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도시가 더러움으로 가득 차고 오물과 쓰레기가 많이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보다 못해 그것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네가 누구 이름으로 청소하느냐?  군수한테 허락 받았느냐?"  이것이 말이 되는 것입니까?

보십시오.  40년 동안이나 걷지 못하던 지체 장애인을 고쳤습니다.  그렇다면 칭찬을 하고 답례를 할 일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시비를 벌이는 것입니까?  착한 일을 했으면 당연히 격려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왜 이토록 말이 많은 것입니까?  초대교회의 상징적인 이 기적 사건을 이토록 싫어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본문 1절에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공통된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가장 잘 섬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이 앞다투어 나아와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고 핍박합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난 첫 번째 핍박은 로마 당국이나 외부의 불신자들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자부했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이 사람, 40여 년을 걷지 못한 이 사람이 고침을 받아 기뻐 뛰고 노래하고 있다면 내 자식, 내 가족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마땅히 함께 기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시비하고 핍박했을까요?

본문 2절에 보면 지체장애인이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를 고친 분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죽인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신 사건이라는 것이 싫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고 선포하는 이 일이 그렇게도 싫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종교와 종파에 커다란 위협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이라고 모함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 일은 바로 소위 종교 지도자들이 한 짓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무덤에 누워 죽은 채로 있어야 하는데 그분이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했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병든 자들이 나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지체장애인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 사실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외치고 다닙니다.

이 일이 제사장 무리들과 부활을 믿지 않던 사두개인들에게는 종파 생존에 위협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믿는 유대교는 거지에게 동전 한푼 던져주는 종교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구원하는 종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사도들이 증거하는 교회로 하나님의 권세가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만이 살아있는 종교요, 부활의 종교요, 기적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만이, 교회만이, 사도들만이 인정을 받게 생겼습니다.  기독교가 역사 무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종교사에 위대한 터닝포인트를 가져온 사건이 오늘 본문의 유명한 사건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교 권주의자들을 불편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건은 단순히 종교지도자들이 싫어하고 핍박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부흥을 싫어하는 마귀의 짓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귀는 천사와는 달리 하나님 일의 협조자가 아니라 훼방자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그 이름이 훼방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하는 사람을 마귀는 싫어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합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다.  지금도 살아 계시다고 전합니다.  그들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남자만 5천명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교회가 부흥되고 복음이 전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흥왕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마귀는 복음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 백성들이 빼앗기는 일이기 때문에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능력 있게 기도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교회가 함께 힘써 기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데 마귀는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사람은 마귀에게 이쁘게 보일 생각은 처음부터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이쁘게 보이려고 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던지 제사장 가문이 떼거지로 모여서 사도들을 심문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느냐는 겁니다.  이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대답을 합니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는지 알고 싶으냐?  그러면 두 가지를 알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병자가 고침을 받아 너희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라고 합니다.

그것이 본문 10절의 말씀입니다.  본문 1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여기에 보면 그냥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 앞에 나사렛이라는 지명이 붙어 있습니다.  나사렛이란 갈릴리 지방의 한 촌락으로 무명의 마을을 의미합니다.  거기에는 고적이나 명승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산물이나 유명인이 있는 곳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폄훼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폄훼하고 하찮게 여겼던 그 예수는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모함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그 예수는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병자를 고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명하면 귀신이 두려워 떨며 도망을 갑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손을 앉으면 병이 나음을 받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믿고 나가면 복음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 이름에 모든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이 이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권세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단순히 알 뿐만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라고 합니다.

그것이 유명한 본문 12절의 말씀입니다.  본문 1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어떤 유식한 사람들은 세상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목사님들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은 성경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이름을 여럿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이름 하나만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이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이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교회가 위기를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는 오직 예수의 이름을 크게 외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붙들고 그 이름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기독교를 너무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절대적이고 독선적입니다.  예수의 이름 외에 다른 길로는 구원받는 길이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양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에는 결코 양보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포기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순교를 각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에 능력이 있고, 이 이름에 천국문을 여는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에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보자의 반열에 예수님만이 아니라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심지어 자신들이 자칭 이름을 붙인 성인들까지도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리아도 숭배의 대상이고, 성인들도 숭배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성인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었던 제사장 무리들이 이제는 아예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협박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 본문 19절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그리고 이어지는 20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사랑하는 여러분, 초대교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 담대한 전도자들은 때로 집에서 사회에서 쫓겨나도 오직 예수의 복음만은 붙들고 쫓겨났습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직장을 잃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해도, 사자들이 그들을 찢고, 타오르는 불이 그들의 몸을 태워도 이 복음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이 하찮게 여겼던 예수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죽은 자로 무덤 가운데 계신 분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다.  지금도 살아 계신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역사를 운행하다가 천군 천사들과 함께 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다시 오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이요 치유의 이름이요 구원의 이름이다.  온 우주가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이름은 오직 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이름을 위해서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고통이 없으면 면류관도 없고, 얻는 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 제사장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저 사도들의 외침을 잃어버렸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담대한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킨 죄인들입니다.  교회의 권세를 유약하게 만든 죄인들입니다.

물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세상 권세가 있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살 용기가 없습니다.  돈이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멋있게 사는 멋을 잃었습니다.  지식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소심해졌습니다.  목숨을 지키는 지혜는 있지만 버리는 결단은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결같이 예수 날 위해 죽으셨는데 나 예수 위해 죽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더냐?  예수를 위해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순교를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초대 교회 주님의 제자들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주위의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을 실망시키면 시킬수록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십시다.  삶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오직 예수 이름의 능력을 믿으십시다.  주님께서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유일한 치료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음 주일을 귀빈초청 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12주전부터 전도 대상자를 정해놓고 기도하며 정성을 들이다가 다음 주일에 교회로 초청해서 예수를 믿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알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당신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붙드십시오.  당신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세상을 헤쳐나가 담대히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알지 못하는 저 불신자들에게 담대하게 전하십시오.  나사렛 예수 이외에 천하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저들에게 선포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영에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가장 강력한 힘은 하늘이 주시는 힘입니다.  가장 큰 소리는 내면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가장 큰 재산은 내면의 평화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축복된 영감에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취하여 영감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명에 자유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자유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의 능력을 힘입고 값진 미래에 도전하십시오.  하늘의 권세를 받아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어두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외치십시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할렐루야!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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