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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 (창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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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창 22:2-7)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세기 22장 2∼7절

오늘날 평등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순종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세기의 결혼식이라 불리며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올린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미들턴 양의 결혼식 서약문에서도 ‘순종하겠다’는 문구가 ‘사랑하고 보호하겠다’는 말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는 부부 관계가 복종보다는 대등한 관계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자녀는 자녀의 위치에서, 부부는 남편과 아내의 위치에서, 그리고 사제지간은 각각 스승과 제자의 위치에서 존중될 때, 이것이 진정한 평등이 되며 이를 통해 사회의 질서가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구약의 갈보리 사건이라 불리는 이삭의 번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00세에 낳은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을 통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에게 순응한 이삭을 통해 순종의 의미를 잃고 부부간, 부모자식 간, 스승과 제자 간의 질서가 무너진 이 시대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계십니다. 

1. 아브라함의 순종(창 22:1∼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해 100세에 낳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청천병력과 같은 명령을 아브라함에게 내리셨습니다. 이삭이란 이름은 “웃음, 즐거움”이라는 의미로 아브라함에게는 삶의 의미이자 열매요, 기쁨과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한때 그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와서 지내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애굽에 내려갔다가 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조카 롯을 데리고 왔다가 조카의 하인들과 아브라함의 하인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허락 없이 그랄 지방에 내려갔다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연단 끝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인간적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아내와 상의하지 않은 채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을 번제로 드릴 모리아 산으로 향했던 것입니다(창 22:3). 
 
모리아 산으로 가는 3일은 아브라함 자신이 먼저 죽임을 당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유를 묻지 않고 신속히 순종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시 119:60). 그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된 순종입니다. 사랑은 감정이나 말로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헌신과 순종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명령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믿고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불순종한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은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의 발을 씻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와 대야를 등에 짊어지고 3,000여 km를 도보로 순례하며 사람들의 발을 씻기고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에 순종한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정이 회복되고 중독이 치유되며 조직폭력배가 변화 받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데이빗 목사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성공이나 실패가 없고 오직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순종할 때 기적은 다가옵니다. 은혜가 임합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순종의 본을 보이는 부모님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이삭의 순종
 
이삭은 “순종형” 자녀였습니다. 이삭은 처음부터 아버지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리러 가면서 제물로 드릴 양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라고 여쭈었습니다. 이삭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번제로 드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이르러 제단을 쌓았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묶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그를 죽여 번제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때에도 이삭은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창 22:9∼10). 당시 이삭은 약 16세로 혈기왕성한 나이였고 아브라함은 110세를 훨씬 넘긴 노구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결박하려 할 때 능히 노쇠한 아브라함을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결박에 순순히 응했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자 완전한 신뢰였으며, 아브라함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기인한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삭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예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고 순순히 갈보리 십자가의 제단 위에 오르셨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빌 2:6∼8). 순종을 통해 예수님은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셨고 영화로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수 있었습니다(빌 2:9∼11).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으로 인해 이삭은 한평생 평탄하고 복 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훌륭한 아내 리브가를 얻었고 농사하여 100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창 26:12-13). 물이 귀한 중동 지역에서 그가 우물을 파기만 하면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이삭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순종은 축복입니다. 그 순종의 첫 번째 대상은 부모님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자식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마음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부모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고통을, 부모의 눈물에서 하나님의 눈물을, 부모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할 뿐 아니라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행동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 존중해야 합니다(엡 6:1∼2). 그 이유는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양심의 명령을 넘어섭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을 넘어 공경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장수하게 하십니다(엡 6:3). 

3.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할 때,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이삭을 찌르려는 순간 야훼의 사자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0∼12).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결단을 보시고 그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생명과도 같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라는 요구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란 자기 생명과 같은 최상의 것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시면 언제든지 돌려드려야 한다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이 믿음을 인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미리 번제에 쓰일 숫양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창 22:13-14).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번성하는 축복, 승리하는 축복,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 그리고 열국의 아비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창 22:27∼28).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것, 최상의 것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최상 그 이상의 것으로 축복하십니다. 최상의 것을 드린다는 의미는 최상의 믿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사랑, 최고의 선물, 최선의 봉사와 섬김, 그리고 최선의 충성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최상 그 이상의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믿음의 종들에게 임합니다. 여러분 모두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종, 이삭과 같이 부모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종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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