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정의달] 룻의 가정, 최악에서 최선으로 (룻 1:1-5)

첨부 1


룻의 가정, 최악에서 최선으로 (룻 1:1-5)
 

가정의 달을 맞았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 4주 설교를 한꺼번에 준비하면서 4가정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정을 보든지 갈등과 문제가 하나도 없었던 가정은 단 한 가정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브라함 가정도 가정불화가 심하였습니다. 
동방에서 믿음이 제일 좋았던 욥 가정도 물질적은 풍파, 자녀가 다 죽는 극심한 아픔, 병으로 인한 환란이 심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엘리 가정도 거룩을 떠나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터에서 비극적으로 죽는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사사 중에 최고의 사사인 사무엘 가정도 가정 불화가 있었습니다.
가정의 달인 데 특별히 가정을 살펴보면 어느 가정이나 다 문제가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냥을 좋아 하는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산속으로 사냥을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이 쪽에서, 아들은 저 쪽에서 사냥감을 몰았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아들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찾아 보니 이미 맹수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가마니에 아들 시체를 싸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사냥한 짐승은 정말 특별한 짐승이요. 동네에 나가 한번도 아픔을 당해 보지 않은 집을 찾아 냄비를 얻어다가 이 짐승 요리를 하여야 맛이 난다는 군요. 수고 좀 해 주시지요."

아내는 별 짐승이 다 있다고 생각하며 동네로 나갔습니다. 이 집 저 집을 다 다녔습니다.그러나 한번도 아픔을 당하지 않은 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아내는 빈 손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한번도 아픔을 당한 일이 없는 집이 한 집도 없어 냄비를 구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 때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그 동안 우리 가정은 평탄하였지요. 그런데 우리 가정도 오늘 아픈 일을 당했소. 저 가마니 속에 들어 있는 짐승은 바로 아들이요. 맹수에게 물려 죽었소."
이 말을 들은 아내는 흐느끼면서 아들의 죽음을 조용히 받아 드렸습니다. 이 세상에 아픔이 없는 가정은 단 한 가정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정의 주인공 나오미를 생각하며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남자와 나오미라는 여자가 결혼하였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었습니다. 아들만 둘을 낳았습니다.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흉년이 들어서 부득이 그 땅을 떠나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네 식구는 흉년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 곳에서 비참한 아픔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이 이 세상에 없는 동안에 두 아들을 결혼시켜 두 자부를 맞이 하였습니다. 10년 가량 새로운 시절이 흘렀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또 생겼습니다. 두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세 과부만 남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남편 생각, 두 아들 생각, 고향 생각 모두가 아픔이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은 아픔이 많았고 환란이 많아 내려갈 때까지 내려간 가정입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내려간 가정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름에는 예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오미는‘나의 기쁨, 나의 즐거움’이라는 의미입니다. 
말룐은‘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이름 그대로 일찍 죽었습니다.

기룐은 ‘낭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그의 생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한 낭비같은 생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오르바는 ‘목의 뒷부분, 뒤로 빠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이름 그대로 뒤로 빠졌습니다.
룻은 ‘친구, 동반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 그는 수많은 이들은 좋은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가난의 아픔

나오미가 살고 있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극심한 흉년이었습니다. 나오미 가정은 땅을 팔았습니다. 흉년이 계속 되었습니다. 집도 팔았습니다. 그래도 흉년을 이기지 못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이방 땅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다른 집에 비하여 가난하였던 것같습니다. 나오미 가정만 이민을 간 것을 보면 오랜 흉년으로 민심도 안 좋았던 것같습니다.

나는 아버지 일기를 몰래 본 적이 있습니다.
피란나와서 신학공부를 하시면서 어떤 집에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추운 겨울 늦게 돌아 왔습니다.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밥 먹었니?”

밤늦게 밥을 달라고 하기가 미안하였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먹었어요.”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눈치를 채고 차려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거냥 들어 갔습니다. 아버지도 빈 속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지 않을 때 일어나서 쓴 일기였습니다.
가난의 아픔이 종종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가난은 아픈 것입니다.

2. 남편 죽음의 아픔

이민간 이국 땅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가장 아픈 때가 부부가 같이 살다가 한 편이 먼저 곁을 떠날 때라고 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홀메스와 라헬은 사람이 살면서 가장 스트레스가 클 때가 상대방이 사별하였을 때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 비슷하게 죽으면 얼마나 좋을 가요?
그러나 어느 가정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먼저 가야 합니다. 나오미는 인생에 가장 아픔을 맞았습니다.

3. 큰 아들 죽음

나오미에게 또 다른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 왔습니다. 큰 아들 말론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습니다. 나오미의 상처는 더욱 깊이 파였습니다.

4. 둘째 아들 죽음

그러던 어느 날 견딜 수 없는 아픔이 또 밀려 왔습니다. 둘째 아들 기룐이 죽었습니다. 남편은 산에 묻고, 큰 아들은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심장에 묻었습니다.

한 여인이 세 남자를 다 땅에 묻었습니다. 이 아픔은 당하여 보지 않은 사람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5. 비난의 아픔

나오미는 사별의 아픔과 가난의 아픔을 지닌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월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그를 비웃는 비난의 아픔이 나오미를 몹시 괴롭혔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그랬더니 동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 지를 성경은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룻1;19) 

남편 죽고 두 아들 죽고 물질 잃고 비참하게 돌아 온 나오미를 보면서 <꼴 좋다>라는 태도였습니다. 배고픈 것은 좀 참을 수 있습니다. 남편 죽은 것과 아들 죽은 것이야 인간의 힘으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비웃는 것만은 정말 참기 어려운 자존심이었습니다.
비난을 참기란 정말 아픈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당연하게 받아드리며 굳굳히 앞으로 전진하였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다른 이가 비난하는 것이 맞을 때가 있고 모함일 때가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당당하게 받아드리고 굳굳히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나오미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모함으로 비난하는 것이라면 비난의 비가 젖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책상위에는 이런 글을 붙여 놓고 매일 읽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그 다음에는 비판의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라.”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을 쓰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 성막 쎄미나마다 끝나고 앙케이트를 받습니다. 다 좋아 하는 데 비난하는 이가 한 두 명씩은 나옵니다. 지난 번에는 커피 자판기 300원이 너무 비싸니 10원씩만 받으라고 쓴 이도 있었습니다.
나오미를 향한 비난을 나오미는 참기 힘들었습니다.

나오미는 늑대를 피하였더니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곰을 피하였더니 사자를 만났습니다. 나오미는 계속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복으로 끝났습니다. 가정 파괴는 회복으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회복의 원인이 있습니다.
룻때문이었습니다.
룻이 어떻게 하였기에 나오미 가정이 회복된 것일가요?

1. 오직 한 길을 가는 룻

모압 지방에서 세 여자가 나오고 있는 그림을 그려 보십시요. 나오미, 큰 자부 오르바 그리고 둘째 자부 룻입니다.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말했습니다.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이 마음이 아프도다>(룻 1;13)

큰 자부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엉엉 울면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큰 자부처럼 돌아가라.” 그 때 룻이 말했습니다.

<내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머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므시는 곳에 나도 머믈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의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룻은 오직 한 길만 걸었습니다. 오르바와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룻의 말속에서 그런 결심을 역역히 볼 수 있습니다.

<내 어머니를...>
<어머니께서 머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므시는 곳에 나도 머믈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의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렇게 오직 한 길을 걷던 룻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방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가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가 신임하는 정치인 길브레이스가 있었습니다. 길브레이스가 어느 날 피곤에 지쳐 일하다가 잠간 집에 들어 와서 침대에 푹 쓰러지며 하인에게 말했습니다.
“나 너무나 피곤하여 잠간 자고 일어나야 겠네. 어떤 전화가 와도 깨우지 말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 때 존슨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하였습니다. 하인이 받았습니다.

“나 대통령인 데 길브레이스 있나?”
“네.”
“나와 이야기 하게 하여 주게.”
“안 됩니다. 지금 자고 있습니다.”
“깨워 주게, 급히 통화할 이야기가 있네.” “안 됩니다. 나는 각하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길브레이스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길브레이스 말을 들어야 합니다. 각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길브레이스가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자네 하인에게 전해 주게. 백악관에서 나를 위하여 일하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룻은 오직 시어머니를 위하여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보상을 주셨습니다. 오직 한 길을 걸었습니다.

지난 주간 나는 청송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에 교도소가 40개, 구치소가 8개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극아범들을 모아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술 1급을 가르쳐서 내보내며 재범률이 없다는 것입니다. 2급 기술로 내보내면 17% 재범률입니다. 3급이면 34%. 4급이면 64.5%가 재범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동차 정비 기술, 제빵 기술, 도장 기술등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4명당 교도관 한 명이 수고하기에 범죄자 한 명이 들어오면 일년에 2500만원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받고자 하는 사람이 31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주러 내려 갔었습니다. 그런데 청송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 데 내가 내려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 미영 선교사가 음식점으로 와서 나를 보더니 미국식을 꼭 포옹하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같이 갔던 사람들도 놀랐습니다. 나도 당황하였습니다.
“목사님! 저 모르세요?”

묻는 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13년 전 내가 미국 삼일교회에서 부흥회할 때 교인이었습니다. 부흥회에서 감사헌금을 특별히 많이 하였습니다. 평소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온 교인들이 무엇을 하여 돈을 많이 버는 지 궁금하였던 여인이었습니다. 그 때 그 여자는 남모르게 마약을 제조하여 팔았습니다. 미국은 마약의 나라라 돈을 긁어 모았습니다. 은혜를 크게 받았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처음으로 복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 끝나고 공항으로 오는 데 비행기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그는 차에 경광등을 걸고 싸이렌을 울리면서 나를 공항으로 데려다 주었다는 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간에 체포되어 라스베가스 감옥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그 때 나를 통하여 받은 은혜를 되새기면서 3년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평행 잊을 수 없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I say, I love you."

그래서 이 말씀을 책 제목으로 두 권을 썼습니다. 그리고 가장 악한 곳에 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청송 교도소에서 10년을 일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이렇게 쓰시려고 감옥을 보냈었습니다. 나는 그 후 결혼하지 않고 오직 범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목사님을 통하여 받은 복음만 전하다가 하나님께 갈 것입니다.”
그의 눈을 오직 사명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룻은 오직 한 길만 걸었습니다. 오직 한 길만 걷는 이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2.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룻.

룻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여인,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룻은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의 내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룻은 한번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끝까지 죽기까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ㄴ 룻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쑥대밭같이 된 나오미 가정을 룻을 통하여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생긴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우리 아이가 굶어 죽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조금만 주세요. 아이 먹일 수 있을 정도만 주세요. 남편에 전쟁에 나가서 죽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청합니다. 내가 당신을 위하여 하여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주인은 동냥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런 사람이 귀찮아서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기도제목을 적은 종이를 저울 위에 올려 놓으세요. 그만큼만 드리지요.”

안 주겠다는 말입니다. 종이 한 장 올려 놓으면 저울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기도제목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을 한 쪽 저울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에 빵 한 개를 올려 놓았습니다. 저울이 빵쪽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또 올려 놓았습니다. 역시 종이 한 장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자꾸만 올려 놓아도 그대로였습니다.
주인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자꾸만 올려 놓아도 저울이 그대로 있으니 가지고 가고 싶은 만큼 봉지에 담아 가십시요.”

그 여인은 봉지를 집어 빵을 그득 담아 가지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돌아 갔습니다. 조금 후 주인은 저울이 고장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기도 제목을 적어 올려 놓은 종이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지구 역사상 바하가 가장 큰 작곡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라이프티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반주를 하였습니다. 주일마다 성가대 곡을 자기가 작곡하여 불렀습니다. 주일마다 새 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피눈물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로부터 작곡료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매주 하나님께 새로운 곡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좋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오직 사명과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합창곡 263곡, 오르간곡 356곡 피아노곡 162곡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6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새로운 곳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 훈련을 통하여 명곡이 탄생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십니다.

3. 축복받을 행동하는 룻

룻은 큰 자부 오르바와 달리 끝까지 어머니를 따라 왔습니다. 베들레헴에 오니 마침 보리 추수계절이었습니다. 룻은 보리밭으로 나가서 이삭을 주워서 어머니를 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는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룻 2;7)
이 말씀을 보아 열심히 이삭을 주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네에서 착실한 자부라고 소문이 자자하였습니다.

이 태희 목사님이 부흥회중에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일을 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습니다.” 이런 룻을 통하여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룻은 나중에 부자 보아스와 결혼하였습니다. 그 가문에서 다윗이 나오고, 솔로몬이 나오고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룻이 그랬습니다.
앞은 캄캄하여도 그가 걸어간 길 뒤에는 항상 밝은 미소를 남겼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면서 그가 가는 곳 뒤에는 항상 불을 밝히는 사람을 사람들은 찾고 있습니다.
그 가정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한 사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룻의 가정이 예수님의 족보를 만드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꼭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실 것이다.”
이런 소망 하나만은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소망은 능력이었습니다. 자부 룻이 마을 유지 보아스와 결혼하여 그 마을 최고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고, 다윗의 후손에서 예수님이 탄생되는 예수님 가문이 되었습니다.

결론은 축복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나 후손들로나 모든 면에 최고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웃음이 참 웃음입니다. 중간에 결산하는 것은 참 결산이 아닙니다. 끝에 가서 평가하는 것이 참 평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한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방탕하게 지내다가 예수를 영접한 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를 청산하고 가로등을 끄는 직업에 취직하였습니다. 하루는 같이 방탕하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여보게. 요즈음 재미가 어떤가?”
청년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였습니다.

“가로등을 끌 때마다 뒤를 보며 과거 어두었던 시절을 회상한다네. 내 과거는 어두움이었네. 그러나 내 미래는 밝은 등으로 전진하고 있다네.”
주정뱅이 친구는 낄낄 웃으며 물었습니다.
“이 멍청한 친구야! 그러면 마지막 등을 끄고 나면 어디로 가나?”
청년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걱정말게. 마지막 등을 끄면 아침이 온다네. 등불이 필요없어지는 낮이란 말일세.”
인생은 가로등을 끄는 작업입니다. 인생은 소망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가정! 상처 투성이 가정! 아픔으로 뒤범벅이 된 가정! 나오미는 4가지 아픔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아픔, 물질의 아픔, 비난의 아픔, 일이 안 풀리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리지 않은 소망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지난 놓고 보니 모든 사건속에는 하나님의 묘한 섭리가 있습니다.

역사속에는 구속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기근, 이민, 이방 여인과 결혼 그리고 세 남자의 죽음이란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이방인의 피가 흐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의 조상중에 이방 여인이 들어 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한 구세주입니다.

가정에서 한 사람만 축복의 통로만 있어도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축복하여 주십니다.
욥의 가정에서는 욥 하나 때문에 온 식구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는 아브라함 하나 때문에 온 식구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라합의 가정도 그렇습니다. 라합 하나 때문에 온 식구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여러분 가정에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과학자로서 명성을 날리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은 본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내의 지혜로운 내조가 컸습니다.
유대인들은 근친 결혼이 가능합니다. 아인슈타인은 39살에 사촌누이 동생과 엘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1917년이었습니다. 그는 축복을 받을 행동만 하는 여자였습니다.

1. 집안 일이나 다른 일로 남편 아인슈타인의 마음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남편을 온상에 있는 화초처럼 보호하였습니다.

2. 남편이 늘 피곤하게 서제에서 강의 준비, 공부, 연구를 하기에 남편 방을 푸른 색으로 칠하였습니다. 녹색이 눈에 가장 피로를 적게 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3. 음악적 재질이 있었던 엘리자는 남편 아인슈타인가 피곤할 때마가 피아노를 쳐주고 노래를 불러 주어서 잠간 동안에 피곤을 씻어 주었습니다.

4. 아인슈타인의 명성이 높아 지자 찾아 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다 남편을 만나게 하여 줄 수는 없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연구에 방해되지 않도록 적당하게 처리하여 주는 데 명수가 되었습니다.

5. 아인슈타인 위장이 약하였기에 항상 식사는 자기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6. 남편 아인슈타인의 책상 청소는 누구에게 시키지 않고 조그만 종이 조각조차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때로는 어머니가 되었고, 때로는 아내가 되었고, 때로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비서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외출할 때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면 항상 돈을 쓸 줄 몰라서 그대로 있었습니다. 죽기까지 세숫비누와 면도 비누를 구별하지 못 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가정을 복되게 하는 숨은 공로자였습니다.
룻은 엘리멜렉 가정, 나오미 가정을 회복시킨 공로자가 되었습니다. 최악의 가정을 최선의 가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