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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된 가정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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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가정  (시 1:1-6)


세계 모든 사람이 애창하고 있는 노래 중의 하나가“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입니다.“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마음속에 가정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가정은 편히 쉴 수 있고, 즐거움을 나누는 곳이며, 서로 사랑하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즐거운 나의 집’을 지은 존 하워드 펜이라는 사람은 한 번도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 노랫말을 지은 곳은 프랑스 파리였는데 동전 한 푼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 때 이 노랫말을 지었습니다. 

그는 한 평생 결혼도 하지 못했고, 집도 없었고, 아내의 사랑과 자식에 대한 소망도 가져보지 못한 채 일평생을 지구 이 구석 저 구석을 방황했습니다. 그 후 그는 튀지니에서 머무는 집도 없이 길거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얼마 후 그의 시체가 그의 고향인 워싱턴에 있는 오크 언덕에 이장 되었을 때, 무덤이 그가 이 세상에서 가진 유일한 집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일평생 가정이 어떠한 곳인지 모를 법한 그가 어찌하여 그토록 가정을 예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인 것입니다.
한 평생을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그가 왜 가정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대개 가진 자는 가진 것에 대한 행복을 바로 알기 어려운 법입니다. 가정을 가진 지상의 수많은 사람이 가정의 행복을 가슴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가정을 갖지 못한 사람은 가정을 뼈저리게 그리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도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기 일 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를 볼 때, 그 들은 조국에서 살 때에는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잃어버리고 포로 생활을 하면서는 날마다 조국 산천을 그리워하며 울었습니다. 우리는 내게 있는 것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인간 사회의 조직 중에 가정보다 더 아름다운 조직은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가정위에 국가를 군림시켜 인간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사악한 집단이었습니다. 반면 자본주의는 물질로 가정의 행복을 사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이 또한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정은 생활의 중심점이요, 역사의 기원점이며, 삶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승점입니다. 인류 역사는 에덴의 한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가정은 우리의 영과 육이 자라는 터전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화목 정신을 실현하는 경건의 교육장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가정을 통해서 신앙 계승이 이루어지며, 인간의 삶을 지키는 최후 보루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교육자였던 페스탈로치는“기독교의 위대함은 국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서 나타난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하늘나라의 영생만을 위함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신명기 28장 1절~6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1. 복은 누가 줍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복 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복 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복을 누가 주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은 사람에게 가서 복 받을 길을 알려 달라고 부탁하면서 사람을 통해서 복 받길 원합니다. 사람은 피차에 의논하고 위로할 수는 있어도 복 자체를 준비했다가 나누어 줄 실력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복을 받으려고 우상을 찾아 갑니다. 미신을 따라 토정비결을 보며 손금을 보며 관상을 봅니다. 점을 치고 거액을 드려 굿을 합니다. 또는 몇 만원,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을 드려 부적을 사서 붙이거나 베개나 속에 이불속에 넣기도 하고,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무속시장의 매출이 년 간 2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공식 등록된 무당이나 점쟁이가 30만 명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합한다면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수백 년, 수천 년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만일 이 같은 우상숭배와 미신이 인간에게 복을 줄 수 있었다면 왜 단 한 번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까? 왜 단 한 번도 선진국에 들지 못했습니까?

우리나라의 자동차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운전자의 80%이상이 무사고를 위해 부적을 가슴에 품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것이 만일 효력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교통사고가 이렇게 많겠습니까? 아직까지 교통사고율 세계 1위라는 뉴스가 며칠 전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상이나 미신 뒤에는 무서운 악마의 궤계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악마는 방해꾼입니다. 받을 복을 흔들어 버리는 것이 악마의 궤계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복을 누가 줍니까? 천지와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복을 주실 권능이 있습니다. 태양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햇빛의 복을 주실 수 있으며, 공기를 만드신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호흡을 줄 수 있습니다. 독생자를 대속 물로 주신 하나님만이 영생의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우상도 미신도 사람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45장 5절~7절에“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이 지구상에 우상이나 미신을 숭배하여 복 받은 나라가 있습니까? 선진국이 된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 가운데 얻어먹는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선진국은 100%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까? 공상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였습니다.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잘 살아보려는 욕심에 미혹되어 유물론 사상에 빠졌습니다. 교회를 불태우고 성직자와 성도들을 무참히 박해하며 죽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망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들이 그토록 원하는 축복은 하나님만이 주신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십니까?

봉독해드린 말씀 시편 1편에“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복을 받는다는 비유의 말씀인데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1. 생명의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모든 초목이 시들시들 말라 죽어가도 시냇가의 나무들은 가물수록 뜨거운 햇빛을 받아 더욱 푸르게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시냇가의 나무는 가뭄이 오히려 성장의 촉진제가 됩니다. 

여러분! 요셉이라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날씨에 비유한다면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과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옥중에서 삶을 낭비하며 헛되어 죽어 갔습니다. 요셉은 그곳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산실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가뭄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가정마다 가뭄 같은 좋지 않은 악조건이 다가올지라도 시냇가에 심긴 나무 같은 안전 보장의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냇가의 나무는 생명이 안전하듯, 세상 종말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세상이 불타고 인류가 아우성을 치나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화를 누릴 터이니 이것이야 말로 시냇가에 심긴 나무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자라나는 복을 주십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둥치가 굵고 싱싱하게 70척 80척 100척 쭉쭉 뻗어 올라갑니다. 천하가 비좁다는 듯 사방으로 뻗어나갑니다. 자라나는 복이 귀합니다. 
자식을 키우는데 해가가면 무럭무럭 자라나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겠습니까?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잘되지 않으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취직을 했는데 위치가 높아지지 못하고 평생을 평사원에 머물러 있다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무럭무럭 자라나며, 지식이 높아가며, 여러분의 사업이 확장되며, 여러분의 지위가 올라가는 축복을 기원합니다.

3. 열매 맺는 복을 주십니다. 

열매 맺음은 끝마무리를 가리킵니다. 자라긴 잘 자랐는데 열매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농사는 잘 지었는데 결실기에 홍수가 나면 소용없습니다. 과일 농사가 잘 되었는데 결실기에 갑자기 추워서 얼어 버리거나 강한 바람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식을 잘 키워 일류대학까지 진학시켰는데 그 아들이 방탕한 사람이 되고 만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시편 127편 1절~3절 말씀에“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 이러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는 축복이 필요합니다. 성도님들이 하는 일들의 모든 것이 중도의 실패 없이 끝까지 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 

4. 기도 응답의 복을 주십니다.

본문 6절에“의인의 길은 인정하시나”라고 하셨는데, 여기의“길”이란“소원”을 의미합니다.“인정 하신다.”는 말은 결재하시고 허락하신다는 말입니다. 소원을 아뢰면 하나님이 들으시고“오! 그 소원이 옳구나.”하시며 인정하신 다음에 허락의 도장을 찍으시고“하늘 창고를 열고 내어주마”하시며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소원이 성취되기를 축원합니다. 

三.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복을 받으려면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준비일까요?

1.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1절에“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라고 하셨는데, 악인이란, 히브리 원어의 뜻으로“도덕에 해이하여 인격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도덕이 해이해진 사람은 놀기를 좋아합니다. 건달들을 보세요. 그들에게 도덕이 있습니까? 놀려니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불법의 이익을 추구하며 못된 짓 합니다. 놀려면 멋을 부려야 되니 사치합니다. 보통 마음으로 놀려니 흥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갖가지 추태를 부립니다. 

아담과 하와를 꾀인 악마가 지금도 우리를 꾀입니다. 우리들 주변에 악인이 많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도덕이 해이해진 건실치 못한 자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각오같이“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사도행전 24:16)하는 각오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양심을 팔아먹는 악한 자를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1절에“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이란 히브리 원어의 뜻으로“목표를 맞추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의 뜻을 맞추어 드리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곧 죄입니다. 즉 법을 어기는 사람입니다. 학교에서는 학교의 법, 회사에서는 회사의 법, 단체에서는 단체의 법, 국민에겐 나라의 법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양심의 법이 있고, 신자에게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법을 어기면 복이 아니라 벌을 받습니다. 법을 어기는 자를 본받아 그를 따라 가지 말기 바랍니다. 같이 망하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되 성경의 법을 어기는 죄인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의 직분이 비록 목사나 장로라도 권사나 집사라 할지라도 본받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사람이 만든 법은 뜯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고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들 전등불은 켰다 껐다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만드신 태양불은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범인 성경의 말씀은 마치 태양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 앞에서는 오직 아멘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를 쉽게 믿으려는 사람, 편안하게 믿는 사람을 본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길은 좁은 길, 가시밭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좁은 길이 어찌 쉽고 편안하겠으며, 가시밭길, 십자가의 길이 어찌 편하고 쉽기만 하겠습니까? 죄인을 따르지 않아야 복을 받게 됩니다.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1절에“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오만한자는“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업신여깁니까? 불신자, 타락한 자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은 마음의 병자이다.”라고 했습니다. 눈이 병들어 실명된 자는 빛을 볼 수 없고, 귀가 병들어 귀 먹은 사람은 들을 수 없듯, 마음이 병든 자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만한 불신자, 탈선된 오만한 사람을 멀리하고 겸손히 주를 섬겨야 복을 받게 됩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본문 1절의“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신 것은 복 받을 사람의 소극적이 자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2절에는 복 받을 사람의 적극적인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하여 늘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야간 말씀묵상의 끈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18절~21절 말씀에“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 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축복의 물가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습니다. 잠시만 방심하면 쓰레기통처럼 되고 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복을 받아 누릴 성도의 지혜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앞으로 얼마를 더 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땅 위에 생명이 있는 한 악인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예의 바르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을 앞세워 불순종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복종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오만 자 본받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 말씀이 내 가는 길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시편 119:105).

우리 모두 이렇게 하므로 시냇가에 심긴 나무 같은 형통의 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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