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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크다 일컬음을 받을 자 (마 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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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 일컬음을 받을 자 (마 5:17-20)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역입니다. 지식을 가르치고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격을 가르쳐서 온전한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는 일에 주력하였습니다(마 9:35). 승천하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마 28:19-20). 예수님은 가장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고 누구나 만나는 사람마다 천국 복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가르치는 자는 존경을 받을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실천하면서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 받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가르침의 내용이나 방법이나 결과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1. 말씀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행하신 일은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 말씀을 읽고 가르치신 일입니다(눅 4:16-19). 부활하신 다음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쓴 모든 성경을 풀어서 가르치셨습니다(눅 24:27).

1) 최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서 맞춤형 교육을 좋아합니다. 무엇이나 다 배워서 나쁠 것이 없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것을 골라서 집중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여깁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없어서는 안 되는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최상의 교육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17절).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를 율법, 계명, 규례, 율례, 법, 증거 등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하였으나 한마디로 정의하면 ‘말씀’입니다. 다윗은 그 말씀을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고 하였습니다(시 19:10).

2) 불변의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18절).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론이나 어떤 학설도 진리는 없습니다. 정부가 학생들을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제정된 교과서도 시대에 따라서 내용을 바꿉니다. 한가지의 역사를 놓고 편향된 시각에 따라 왜곡시키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계시의 산물인 성경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시편 119:160에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성경을 평가하고 자기 편리한대로 적용하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다르게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 1:8).

3) 신비로운 능력이 행사됩니다.

이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완성시켜 줍니다. 시편 19:7-8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바로 가르치기만 하면 말씀과 함께 성령이 작용하시기 때문에 잠든 영혼을 깨우고 강퍅한 인간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에스겔 선지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순간, 성령의 기운이 마른 뼈들을 일으킨 것도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겔 37:10).

2. 사랑과 진정으로 가르치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7:28-29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랑과 진정으로 가르치는 자가 크다 일컴음을 받을 자입니다.

1) 부모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생이며 또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하였습니다(시 127:3).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식을 선물로 주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교육시킬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잠언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땅히 행할 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뜻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는 이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신 6:4-9). 

2) 선생입니다.

성경에 선생(διδασκαλοs)은 최고의 학문과 덕을 갖춘 스승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의 ‘랍비(요 1:38)’는 율법에 정통한 선생을 지칭합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나(요 3:10) 사도 바울의 스승인 가말리엘과 같은 사람이 여기 해당됩니다(행 5:34). 성경은 가르치는 자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1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선생은 무엇보다도 진실을 가르쳐야 됩니다. 성경에는 거짓 선생에 대하여 많이 경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의 사욕을 좇는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하였습니다. 그럴수록 가르치는 자의 소임을 따라 책망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2).

3) 전도자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자기도 알지 못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롬 1:1). 때가 되었을 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붙잡혔습니다(행 9:3). 이후부터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였습니다(고전 9:16). 그는 전도하고 가르치는 일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사를 하면서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쳤다.”고 하였습니다(행 20:19-20). 전도자는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자입니다.

3. 행하며 가르치는 자입니다.

19절에 “......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20절에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은 말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마 23:3).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이는 선생을 크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1) 믿음의 모범을 보이는 자입니다.

성경은 말세가 되면 여기저기서 거짓된 믿음이 바른 믿음처럼 행세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벧후 2:1).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내용 없는 형식적인 믿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것과 구제하는 것과 금식하는 것까지도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외식적 신앙이었습니다(마 6:1-4, 16).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한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였습니다(마 7:22-23).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바른 믿음의 표본입니다(마 16:16). 히브리서 11: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벨과 에녹과 아브라함같은 사람이 모범적인 믿음의 증거자들입니다.

2) 생활의 모범을 보이는 자입니다.

믿음이 그의 삶과 직결될 때 생명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입으로만 믿음이 있는 척하면서 행동이 뒷받침 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26). 바리새인처럼 죽은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를 예수님께서 가장 경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시고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 5:14-16). 빛은 경건한 성도의 삶을 뜻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로 세상에 왔습니다. 그는 제사장이었지만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금욕 생활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회개하며 변화를 받았습니다(마 3:1-12).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마 11:11).

3) 축복의 모범을 보이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안다고 하였습니다. 곧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마 7:17-20). 이 말씀대로 바른 믿음은 아름다운 축복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에는 바른 믿음과 바른 생활을 통하여 풍성한 축복이 보장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8절에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약속된 축복의 상징입니다(창 12:2-3). 축복의 모범은 자기 한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그 받은 복을 천하만민이 다 누릴 수 있도록 축복의 공여자가 되는 것입니다(창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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