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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아남을 교회 (행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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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을 교회 (행 13:1-3)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회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 선교의 센터로 영원히 우리 가운데 살아남아 있는 축복의 교회입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세계 선교를 위하여 복음의 전략기지의 역할을 담당한 교회였습니다. 또한 안디옥은 로마제국 당시의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손꼽히는 세계적 도시였으며 동서 간의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인,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이 섞여 사는 국제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등지에서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이곳으로 피난 왔던 성도들의 전도에 의하여 큰 교회가 세워진 이방인의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입니다. 
사실상 안디옥교회는 교회사에, 아니 주님의 생명책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는 교회입니다. 2011년 총회선교주일을 맞아 "살아남을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Ⅰ. 살아 움직이는 지도자가 있는 교회 였습니다. 

본문 13장 1절에 『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고 했습니다. 
『 바나바 』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곳으로 파송을 받은 사람으로 본래는 구브로 사람입니다. 그는 『 착한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 』(행 11:24)였습니다. 
『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 』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인지 모릅니다. 『 구레네 사람 루기오 』도 시몬과 같이 아프리카 북부로부터 온 유력한 교사인 것 같습니다. 
『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은 귀족 출신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의 사도가 된 사울이 있습니다. 

① 저들은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체험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새로운 피조물들이었습니다. 

② 저들은 생명의 일치를 갖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지역적인 감정이나 민족의 장벽이 없었습니다. 계급적 싸움이나 자리다툼도 없었습니다. 본토 출신과 섬사람이 한마음이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한 뜻이었습니다. 귀족 출신과 평민 출신이 한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지역, 다른 계급, 다른 취미, 다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배타주의나 파벌주의나 분열주의나 우월주의를 갖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모두 영적 일치, 목적의 일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③ 뜨거운 예배와 기도가 있었습니다.
주님을 섬겨 금식하였다고 하였습니다(행 13:2). 여기 『 섬긴다 』는 말은 예배를 의미합니다. 저들은 예배를 위하여 금식하였습니다. 
대개의 경우 교회 지도자들은 오랫동안의 신앙생활이나 봉사사역 때문에 예배나 그 사역이 타성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나 찬송이나 예배 생활이나 사역에 힘이 없고, 뜨거움이 없고, 간절함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사울"은 석학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나엔"은 귀족이었습니다. "시므온"과 "루기오"도 영적 경험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주 앞에 예배함에 있어서 생명의 금식에 이르도록 정열적이었습니다. 
이런 살아 있는 지도자, 깨어 있는 지도자, 뜨거운 지도자, 겸손한 지도자들이 있는 교회는 환난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Ⅱ. 살아 있는 교육이 실시되는 교회였 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5-26절에는 『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라고 했습니다. 
본문 13장 1절에는 안디옥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을 "선지자들과 교사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교육은 신앙 성장의 필수 과제입니다. 바른 교육 없이는 힘 있는 교인을 길러낼 수 없습니다. 잘 훈련되지 못한 사단의 병력보다 잘 훈련된 소수의 병력이 국가의 힘이 됩니다. 

전도(설교)는 있지만 교육이 없는 교회는 성장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바른 사관, 바른 인생관, 바른 우주관, 바른 역사관, 바른 구원관, 바른 교회관, 바른 종말관, 바른 내세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20)고 했습니다. 성경 계시에 의지하여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각 방면에서 주의 말씀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모르면 뒤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지식, 곧 영계의 지식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Ⅲ. 살아 있는 선교운동입니다. 

본문 13장 2-3절에 『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고 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결국 바울과 바나바를 성령께서 시키시는 일을 위하여 따로 세우고,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안디옥교회는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하고, 세계의 지도를 새롭게 그려 놓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Ⅳ. 고려인들의 소원입니다.

1) 우리에게 참된 목자를 세우소서.
교회를 세우는 일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부탁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였습니다(마 28:19).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였습니다(마 16:18).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구령운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2) 우리에게 좋은 교사들을 주옵소서. 
주님은 추수꾼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를 잃고 헤매는, 길 잃은 양 떼가 많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에 살아남을 수 있는 교회나 성도는 결국 옳은 목자, 참된 목자를 만나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고려신학교는 이 시대적인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려신학교는 참된 진리의 파수군, 경건자의 훈련소, 경건자의 고장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미미하나 이 고려신학교의 나중은 심히 창대하여 환난 날에 교회와 백성의 갈 길을 예언할 것입니다. 

3) 우리에게 선교의 열정을 주옵소서.
선교의 열정을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확실히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의 바통을 쥐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안디옥, 로마, 독일, 영국, 미국으로 이어진 세계 선교운동의 바통이 한국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세계 선교운동의 최악의 코스를 통과해야 합니다. 유물론적 공산국가인 중국과 허무주의의 힌두교(인도)와 이슬람권의 중동을 뚫고 예루살렘까지 가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복음운동은 아시아를 마지막으로 그 코스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오늘의 한국과 한국교회를 아시아 선교 기지로 설정하였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느 성도, 어느 교회가 살아남는 자들일까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교회는 결국 일하는 교회, 움직이는 교회, 생산하는 교회입니다. 전도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는 살아남게 됩니다. 옳은 지도자를 만난 교회와 양들은 살아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옳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참된 신학교수와 신학교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지막 소원은 선교운동입니다. 선교운동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받은 제 1차 임무입니다. 우리교단은 이미 이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해 먹는 자, 자기를 위해 출세하는 자들은 요란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작은 자입니다. 생각이 작고, 기대가 작고, 그릇이 작고, 마음이 작은 자입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1980년 선교회가 조직되고, 1982년 첫 선교사를 이태리에 파송하였습니다. 그 후에 오늘까지 80여 명의 선교사를 세계 곳곳에 파송하였습니다. 현재는 현지인 선교사들까지 144명의 선교사가 선교 현장에서 주님의 복음과 함께 수고하고 있습니다. 
367개의 교회가 세워지고 23,000여 명의 영혼을 얻었습니다. 선교지 곳곳에 21개 처의 신학교가 세워지고 5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신학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2007년 7월 22일 최윤정 집사가 특별연보 1,000만원으로 카자흐스탄 첼리교회에 땅을 매입했습니다. 이 땅위에 건축을 해야 되는데 건축비가 3,000만원이라고 이미 우리교회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누군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계 선교는 한 순간도 중단될 수 없는 우리교회에 맡겨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선교를 하는 교회는 살아남지만 선교를 하지 않는 교회는 시들고 말라가다가 마침내 죽고 맙니다.

이 시점에 우리가 크게 깨달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목표지점을 탈환할 때 공격과 방어는 동일한 과제입니다. 인간들의 성장과정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장애요인 즉, 질병 등을 막아야 합니다. 
이 땅에 복음운동도 전파(offense), 방어(defense) 즉, 교량과 성의 역할을 같이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통적으로 전파역할보다 방어 기능에 치우친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비판하는 데 너무 치중했습니다. 

교회 안에 타고 들어오는 비복음적이고 반교회적인 방어에 치우치다보니 정작 전파하는 일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살아남는 교회는 일단 전파기능이 왕성해야 합니다. 전파기능이 왕성하면 장애요인은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살아남아야 합니다. 영과 육이 아울러 살아야 합니다. 
살아남는 사람, 살아남는 교회는 구령운동에 집중하는 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살아남게 됩니다. 왜? 주님이 함께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마 28:20).
이러한 일을 하려는 교회는 살아남게 됩니다. 신령한 일을 하면 살고, 일을 하지 아니하면 죽습니다. 도태를 당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죽거나 망할 수 없습니다. 일하는 교회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마음껏 하는 소원들을 가집시다. 주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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