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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마지막 관심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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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마지막 관심 (마 28:16-20)

 
3주 전에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이 성경 몇 군데 몇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에도 똑같이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사도행전,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도 부활로 예수님의 관심과 목적은 같은 내용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여기 모인 제자들이 열한명이라고 숫자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명의 사도가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지역은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오늘 모여 있는 곳은 갈릴리 산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의 거리는 고속도로로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걸어가면 며칠 걸리는 거리인데 모두 걸어서 갈릴리까지 온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목격했을 때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부탁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가서 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오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 갈릴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처음 만났던 장소이며 피차 약속을 나누었던 영적 의미의 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다시 만나서 옛날을 회복시키려는 주님의 일종의 영적 홈커밍데이(Home Coming Day)를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모임은 일종의 사명 회복 부흥회요 세계 선교를 향한 출정식이 됩니다. 나중에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에 모였던 열한제자 중 열 명은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밧모 섬에 귀향 가서 요한계시록을 남기고 에베소에서 자연사하였습니다. 

오늘 나타난 말씀에는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나타나고 있는데 지나간 3년 동안 제자들을 교육한 목적이 들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신 후에 곧바로 하늘로 승천하셨으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 마지막 말씀이 됩니다. 이 후로는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활동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예수님의 마지막 관심의 말씀을 한번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어느 날 유대 사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질문을 했습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냐?” 지금 예수님이 그런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권세가 무엇인가? 그 권세는 다름 아닌 이 이후로 인간 구원의 권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되어지는 영적 권세를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 사건으로서 예수님이 얻은 하나님의 영적 권세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어느 인간도 예수님의 이름만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이 주어지는 하늘나라의 구원의 권세를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이 그 권세를 사도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 약속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교회 오실 때 여러 도로를 거쳐서 교회까지 도착하셨습니다. 이 고속도로에 가보면 1분에도 수천 개의 차량이 총알 날아가듯 달려갑니다. 

어떤 때는 그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참 무섭게 느낄 만큼 무서운 힘의 물결이 계속해서 날아가는 듯한 도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잡하고 총알 튀는 듯한 차가 오고가는 그 거리 한복판에서 교통순경은 그 밀려오는 자동차들을 손가락 하나로 다 지휘합니다. “서!” 그의 손가락 지시에 따라서 모든 차량이 꼼짝도 못합니다. 아무 말도 안합니다. 누구도 꼼짝 못합니다. 어떤 사람도 교통순경의 그 거만하게 보이는 손가락 짓에 다 순종합니다. 내 사정이 아무리 바쁘고 급해도 소용없습니다. 

서라면 서고 보내줘야 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권세가 있기에 그 물결치는 거리 복판을 손가락 하나로 다 움직입니까? 국가가 그에게 부여해준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에게는 이런 권세를 줄 테니 행세해라.” 국가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꼼짝 못합니다. 그래서 잘못한 차는 세워서 벌을 주고 봐주려면 봐주고 마음대로 합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권세는 무엇인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생명의 권세, 영생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믿으면 영원한 권세를 누릴 수 있는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정부가 파송하는 대사를 다른 나라에서 함부로 취급하지 못합니다. 그의 뒤는 그 나라의 권세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못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그 권세를 너희들에게 주겠다. 우리는 세상 권세가 아닌 하늘나라의 권세가 있는 자로서 이 영적 권세를 너희에게 주노니 가지고 나가서 내가 시키는 일을 하도록 하라.” 세상 만국에 파송하는 하늘나라의 복음의 대사 임명장을 나누어 주는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나가서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주님이 주시는 권세는 세상 권세가 아니라서 일을 하는 방법도 세상 법과는 다릅니다. 아마 우리 생각 같으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장소가 예루살렘이고 십자가에 달린 곳이 그곳인데 거기서 부활하셨으면 예루살렘 복판에 한번 광장에 나타나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했던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타나셔서 “보라! 내가 예수이다. 사흘 전에 너희가 나를 그토록 처참히 죽였으나 내가 말한 대로 이렇게 살아났느니라.” 그러면 그 소문이 하루 만에 전국에 퍼져서 나라가 다 뒤집힐 것입니다. 빌라도도 쩔쩔 맬 것이고 가야바 법정에 예수님을 판결해 내준 그 사람들도 쩔쩔 매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이 날 것입니다. 

사흘 전에 당했던 그 굴욕적 모든 내용을 뒤집어엎는 그 작업을 한번 하셨더라면 예수님의 권위는 삽시간에 회복이 되고 예루살렘 모든 백성들은 주님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것이라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하시고 ‘갈릴리의 산골짜기까지 아무도 보지 않게 열한 제자만 갖다 놓고 지금 이런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것일까?’ 이렇게 우리는 생각이 됩니다. 여기 열한명의 사도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군중이 아닙니다. 제자입니다. 군중 심리는 언제나 여론 따라 바람 따라 날아다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강사로 예루살렘 군중집회를 열었다면 대 성공적인 집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그 광고 하나 만으로 군중동원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교포 사회가 뒤집어엎어졌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소문이 퍼지는데 ‘펠시콜레’라고 하는 미국 사람이 천국에 갔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 집회를 하는데 우리 한인 타운에서 한번 하자고 해서 아주 어렵게 그분을 한인 타운에 모셔오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천국 다녀온 펠시콜레 간증 집회”라고 크게 기사가 나니까 저도 가보았습니다.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차도 댈 데가 없고 천국 갔다 온 사람의 간증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 왔는지 모릅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사람이고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 광고 하나로 온통 로스앤젤레스가 그 사람의 간증을 듣기 위해서 와글와글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그 광고 하나로 예루살렘을 다 뒤집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로 안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지금 산골짜기에 열한 제자만 불러서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펠시콜레 간증 집회를 못들은 사람은 아쉬워하고 간증 집회 테이프 없느냐고 난리쳤는데 몇 달 후에 발표가 났습니다. 그 사람이 가짜로 했다는 것입니다. 군중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바람에 밀려 돌아다니는 군중은 하나님의 나라 사역자라고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바람이 불까봐서 예수님은 자제시키셨습니다. 어떤 불치의 환자의 고쳐주신 후에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너 제발 병이 났으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잘못 소문이 퍼지면 나는 병 고치러 온 사람으로 알려질 것이다.” 오히려 숨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필요 하느냐 하면 제자가 필요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몸을 바칠 줄 알고 시간을 바칠 줄 알고 물질을 바칠 줄 알고 때로는 생명까지 바칠 줄 아는 제자를 삼으라. 모든 족속이 내 제자가 되도록 너희가 노력하라.” 
지금 예수님의 주변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3년 목회의 결산이 오늘 나왔습니다. 한때는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교인이 1만 명도 넘었습니다. 떡을 먹은 자가 여자와 아이 외에 남자만 5천명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떼로 몰려다녔는데 예수님은 군중에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남은 자는 열한 명뿐입니다. 이제 기독교는 열한 명으로 다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열한 명에게 무슨 힘이 있었는가? 오늘 말씀에는 열한 제자가 제자된 힘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게 그들에게 큰 힘입니다. 제자화된 교인, 제자화된 교회! 이것이 주님의 나라에 도움이 됩니다. 바람에 밀려다니는 교인들, 오히려 그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군중집회를 버리시고 열한 제자만을, 그것도 예루살렘이 아닌 저 시골 갈릴리 산골짜기로 모아서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서 “너희가 해야 할 일이 있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이렇게 교육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으려면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군중은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다 도망가고 맙니다. 제자화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역사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돌로 자기 몸을 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죽을 것도 모르고 자기 몸을 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신 들리면 사람이 자기 가정을 돌로 때려 부수기도 하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자기 손으로 때려 부숩니다. 

제가 LA에 살 때 LA에는 갱단들이 많이 있는데 시청에서 어느 동네에 돈을 많이 들여서 공원을 지어서 이 공원을 휴식의 쉼터로 사용하라고 얼마나 예쁘게 페인트칠을 하고 아름답게 화장실도 비누와 화장지까지 시청에서 다 내어보내서 휴식공간으로 제공했습니다. 그러면 그 동네 사람들이 그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그곳을 잘 보존하고 서로 쓰레기를 치우고 아름답게 보존해서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며칠 만에 얼마나 지저분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변기도 다 떼어가 버렸습니다. 쓸 만한 것은 다 떼어가고 아무 것도 안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쉼터가 쓰레기장이 되고 아무나 와서 대소변을 봐서 똥구덩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귀신 들렸다. 자기 동네를 망치는 귀신 들린 자기 동네 사람들” 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동네의 집값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동네로 누가 이사 갑니까? “자기 몸을 상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동네를 반짝반짝하게 하고 예쁘게 해야 자기들의 삶의 가치가 평가를 받고 자기들의 가치가 올라가서 점점 부자가 될 텐데 귀신들이 들려서 자기가 사는 동네를 귀신 소굴로 만들어 버리니 소용없다.” 이렇게 신문에 났습니다. 

제자화 되지 않으면 교인들이 교회를 어렵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제자화 훈련을 그렇게 많이 어렵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전도폭발이니 성경공부이니 다 이래서 제자화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인들이 교회를 어렵게 하고 성남 시민들이 성남시를 어렵게 하고……. 귀신들린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군중이 필요치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군중이 몰려와서 “호산나”를 불러주었는데 바람이 한번 부니까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런 사람 필요치 않다.” 군중에 실망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위해서는 제자가 필요하다 하시고 제자들을 불러서 집중 교육을 시키며 “너희도 가서 내가 주는 권세를 가지고 제자를 삼으라.” 그러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너희들이 또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복음을 전하라. 선교해라.” 그런 뜻입니다. 사도행전과 복음서에 예수님의 최고의 관심과 마지막 관심이 어떻게 나와 있느냐? 마태복음에는 오늘 말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말씀을 가르치라.” 

마가복음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요한복음에는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주인이라.” 누가복음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사도행전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다 똑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관심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의 제자가 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위하는 교회가 되고 교인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꽤 성공을 해서 잘 사는데 뜻하지 않는 불행을 만났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려면 목사가 필요하니까 제가 어떻게 그 장례식을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 나오던 사람인데 이 학생이 가끔씩 교회에 나왔던 관계로 그 장례식을 제가 했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됩니까? 사업에 성공해서 돈을 잘 벌고 자동차에 관계된 사업을 했는데 종업원이 수백 명이 되고 잘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만나서 낙심이 되어 있는데 제가 장례식을 조심스럽게 아주 성의 있게 잘 진행을 하면서 그분의 슬픔의 마음이 좀 열려서 전도를 했습니다. 

“이 슬픔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그 기회를 확실하게 제가 만들어 드릴 테니 교회 나오세요. 한번 내 말을 믿어보십시오. 목사의 말을 믿고 밑지는 셈 치고 교회 나와 보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회를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집중적으로 심방도 갔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신앙이 급속도로 자랐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던 세계가!” 그래서 마음이 변하고 기쁨이 오는데 이렇게 간증을 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우리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나는 이런 일이 없었다면 평생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닌데! 아들을 통해서 우리 집안이 구원 되었다. 아들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아주 사람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신앙생활하시며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나 이제 이거 위해서 살고 싶은데 우리 회사에 종업원들이 많습니다. 우리 회사에 오셔서 한 달에 한 번씩 예배를 좀 보실 수 있겠습니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직장에 얼마든지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 다 예수 믿게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가서 첫 예배를 드리는데 이 사장이 사람들이 찬송가를 모를 테니까 복사해서 찬송가를 나눠주고 의자를 놓고 사장이 “우리 회사에 목사님이 오시니까 여러분이 잘 모르시겠지만 목사님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말하고 첫 예배를 드리는데 사장이 깜짝 놀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찬송가를 하나도 모를 줄 알았는데 얼마나 찬송가를 잘 부르는지 또, 사도신경을 하자고 하면 사도신경을 모두 잘 외우고 “아멘”도 하고 “할렐루야!” 별걸 다 하는 겁니다. ‘가만있어 봐! 그러면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이 우리 회사에 이렇게 많았다는 거야?’ 그래서 놀라서 나중에 설교 끝나고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지금 교회 열심히 나가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그랬더니 많이 손을 드는 겁니다. “그러면 예배 끝나고 내 사무실로 여러분들만 오십시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교회 다니는 종업원들은 모두 사장 사무실로 가고 저도 따라 갔습니다. 사장은 나이가 많고 사무실로 온 종업원들은 거의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첫마디가 뭔지 아십니까? “너희들 뭐야? 야, 이 나쁜 놈들! 나하고 이 직장에서 일한지가 몇 년이야? 그런 인생의 좋은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너희들 가운데 단 한명도 나한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한 사람 없지? 있으면 있었다고 말해 봐! 나는 지금 예수 믿은 지 몇 달 밖에 안 되었어. 

그런데 내가 이 영생의 진리를 깨닫고 너무 흥분해서 너희들 다 예수 믿게 하려고 목사님께 부탁해서 오늘 이게 첫 예배야! 그런데 보니까 다들 찬송가 할 줄 알고……. 뭐야? 너희들 다 가짜야!” 몇 개월 안 된 신자인 사장이 막 야단을 치는 겁니다. “너희들 예수 믿은 거 헛것이야. 그런 인생의 좋은 진리를 성경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고 했는데 나와 같이 일하면서도 한 사람도 나한테 몇 년 동안도 교회 나오라고 전도한 사람 없으니 뭐야? 너희들 다 가짜야!” 얼마나 흥분하며 화를 내는지……. 그래서 나는 옆에서 맞다 그랬습니다. 왜 그 사람들은 전도를 한마디도 안했을까요? 제자화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를 필요로 하십니다. 떠돌아다니는 군중은 나한테 필요가 없습니다. “너희들 같은 제자가 필요하고 너희들 같은 제자를 또 만들어!”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화된 믿음은 누구를 보든지 신앙생활을 권유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그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손해 볼 때도 창피 당하는 경우도 있고 물질과 시간과 명예적으로 손실이 납니다. 그런데 합니다. 왜?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있던 교회에서는 교단에서 전도왕이라는 상을 준 여 집사님이 계십니다. 

“나는 선교사도 아니고 가정주부이지만 노방전도는 할 수 있으니까 또 내 이웃에게는 전도할 수 있으니까 내 사명은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이 개인전도 훈련을 받고 그것을 잘했는지 1년에 그 사람이 전도해서 교회에 등록한 사람이 1년 150명입니다. 그래서 교단에서 그것을 알아서 “당신은 정말 훌륭한 전도왕이십니다.” 상을 드린 집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는 못해도 최소한 복음의 장사를 배는 남겨야 합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누군가 나를 전도하고 기도해서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한 사람을 예수 믿게 했다면 그게 본전치기입니다. 두 사람 전도했다면 배로 남긴 것입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했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이 그 설교를 하신 거 아닙니까? 우리 교회 제자화 되니까 어떻게 됩니까? 세계 60개국에 1,502명을 우리교회 이름으로 선교사 파송했지 않습니까? 주님은 제자가 필요합니다. 제자가 된 사람, 제자의 역할을 하는 교회! 나의 최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아는 교회! 그리고 실천하는 교회! 오늘 저녁에 목양협력기구 모이는 날이잖아요? 오늘 보고할 것을 어제 나에게 미리 줬는데 1월에서 4월말까지 여러분이 교회 헌금하신 것 중에서 42.8퍼센트가 외국 선교비로 나갔습니다. 50퍼센트 가까이 여러분이 내신 헌금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장 크게 관심하셨던 일을 위해서 우리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제자화된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그 예수님의 관심을 항상 집중하고 거기에 모든 교회가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약속을 하나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일을 시키는데 이 약속을 가지고 나가라!” 뭐라고 약속을 주시는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탄생과 마지막을 임마누엘로 장식한 것입니다. “나는 임마누엘로 세상에 왔으며 지금 가지만 임마누엘로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있겠다.” 그래서 오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바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약속해주신 “나는 제자인 너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이 약속 하나를 움켜잡고 하나님의 역사에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제자화된 사람, 제자화된 교회! 주님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40년 전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러시아에 격동기 시절을 배경으로 해서 지바고와 라라의 눈 덮인 설운에서의 사랑 이야기가 엮어주는 영화인데 인간관계도 복잡하고 삼각관계, 전쟁 통해서 죽고 사는 이야기로 재미있고 관심 있게 만든 영화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린 소녀가 하나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분명치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버지가 그 아이를 길렀는데 전쟁의 위급한 상황이 되니까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버지가 손을 놔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가버린 것입니다. 사실 자기 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아주 험난한 인생 여정을 살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이 이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아이에게 사진을 하나 보여주면서 “사진을 보는 이 사람이 너의 진짜 아버지이다. 만약 코마로프스키가 너의 진짜 아버지였다면 전쟁 중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어도 네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네 손을 위급한 상황에서 더 굳게 잡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네 손을 놓고 간 것이다.” 여러분! 주님은 오늘 “어떠한 상황이 와도 제자가 된 자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너의 손을 잡고 갈 것이다.” 그 약속 하나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린, 주님이 쓰시는 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은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가 제자 교회가 되고 갈보리 교인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이 시대에 필요로 하는 인간 구원의 사역에 쓰임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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