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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제나 … (시 84:11, 잠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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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  (시 84:11, 잠 12:22)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84편 11절>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언 12장 22절>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특별히 동행하는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날입니다.

우리교회에서도 교사로 수고하는 많은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아침에 문자 하나를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훌륭하신 선생님이 계심을 감사하며 
참 행복합니다.”
가르치신 선생님들을 기억하는 날에 
마음속에 그분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이티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아이티에 지진이 난 이후에 교회를 짓고 봉헌하는 것은
우리교회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출발하여 아이티에 가서 봉헌식 하고
다음 주일 낮예배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우리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큰 일을 기뻐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여러분도 복되고 거룩한 삶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직은 하나님의 뜻

오늘부터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각 가정에 나눠드린
<우리교회 성도들을 위한 삶의 규칙>에 대해 
시리즈로 설교할 예정입니다. 
이 말씀들로 인해 우리의 삶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바뀌고 
가정 또한 평안하고 든든히 서가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위기를 만났을 때,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잘못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정직하게 문제를 해결하십니까?

“정직”은 ‘거짓이나 허식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정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아니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성도들을 위한 삶의 규칙 중에 
첫 번째도 ‘정직하라’고 했습니다. 
정직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합니다. 

시편 111편 8절에 보면
“…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 (개역한글-시 111:8) 다 하였고,
시편 119편 137절을 개역한글성경으로 보면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개역한글-시 119:137)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들은 
하나님이 정직하신 것처럼 정직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직해야 하는 이유>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하면,

첫째,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기 때문 입니다. 
역대상 29장 17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대상 29:17)하였습니다. 

또한, 잠언 15장 8절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5:8)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고(잠 2:7) 
거짓된 자를 미워하십니다.(잠 12:22, 19:9)

둘째, 정직은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 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7절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고후 13:7)
한 것처럼 정직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속합니다.

셋째, 정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 입니다.
그래서 정직은 이방사람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수단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했습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우리가 정직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찾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직하게 사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됩니다.

넷째, 정직한 자가 복을 받기 때문 입니다.
시편 84편 11절에
“…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 했고
잠언 14장 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잠 4:11)했으며
잠언 3장 32절에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잠 3:32)했습니다.
- 참으로 주님은 역겨운 일을 하는 사람은 미워하시고,
바른길을 걷는 사람과는 늘 사귐을 가지신다.(새번역)

이 외에도 정직한 자에게
- 영혼을 보존하는 것(잠 16:17),
-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시 11:7),
- 기쁨을 누리는 것(시 97:11, 107:42),
- 사랑을 입게 되는 것(잠 16:13) … 등
수많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만 살아도 많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정직은 하나님의 원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기 쉽지 않은 현실

그러나 언제나 정직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2005년 어느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피조사자의 60%가 10분간 대화하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의 거짓말을 하며, 
보통은 평균 2.92번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린 업쇼, 『정직이 전략이다』(서울; 미다스 북스, 2011), p.30. 참조>

이처럼 보통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이 선의든 아니든 상관없이 
거리낌 없이 쉽게 거짓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마5:13~16)
그러나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광고의 대사처럼 남들이 모두 ‘예’라고 할 때
홀로‘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08년에 EBS에서 방송했던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실험영상이 있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영상-EBS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사소한 것의 기적’중>
*영상 내용: 준비된 실험은 4개의 막대그래프 중 
같은 크기의 막대그래프를 찾는 것이다. 
실험참여자는 6명의 연기자와 1명의 실험대상자이다. 
누가 봐도 정답을 알만한 뻔한 문제지만 
6명의 연기자는 일부러 틀린 답을 말한다. 
이 때 마지막 순서로 대답해야 하는 실험자는 
답을 알고 있음에도 남들처럼 틀린 답을 말한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요?
우리는 영상으로 한 명만 봤지만 
뒤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실험결과가 나오는데
결과는 ‘전부 틀린 답’을 말합니다. 
똑똑한 대학생도 … 정의를 외치며 피가 끓는다는 사람도 … 
주변의 상황에 휩싸이면 쉽게 거짓말을 합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남의 눈이 무섭기 때문에 … 불이익을 받을까봐 … 
정직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고 여러분도 예외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거짓말하지 않고 사십니까?
아침에 눈뜨자마자‘졸려 죽겠다’,‘배고파 미치겠다’하는 것, 
멋있지도 않은데 ‘멋지십니다.’하고
예쁘지도 않은데 ‘예쁘십니다.’하는 것,
고맙지도 않은데 ‘고맙다, 감사하다’라고 말하는 것 … 등
사실은 모두 거짓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거짓말을 세 종류로 분류했습니다.
첫 번째, <악의적인 거짓말> 
악한 마음을 품고 남을 속여 피해를 주는 거짓말 …
두 번째, <이타(利他)적인 거짓말>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거짓말입니다.
예를 들면 병 치료 가운데 희망치료가 있습니다. 

거의 죽을 것 같아 의사조차도 손을 뗀 환자에게 
“괜찮습니다. 좋아 보이십니다. 많이 나아지셨네요.”라고 말하면 
환자의 건강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이타적인 거짓말입니다.
세 번째, <선의의 거짓말>이 있습니다.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거짓을 말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짓(False, lie)은 
사실과 다른 것이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거나, 
사실처럼 꾸며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하나님 보다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는 교만' (시59:12~13, 사28:15),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인 우상숭배, 복술, 
주술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렘10:14, 암2:4, 슥10:2)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속여서 예언하는 사람들도 
거짓을 말하는 자로 표현되었습니다.(렘29:9) 
모세의 율법에 거짓을 금하였고(출20:16, 레19:11, 신5:20) 
거짓 고소, 거짓 증거도 경계하였습니다.(신19:15~21) 

신약에서도 거짓은 구원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며 
사탄에게 속한 것이라고 보아 요한은 마귀를 거짓말하는 자이며, 
거짓의 아비이고 살인한 자라고 하였습니다.(요8:44) 
사도 바울도 성도들에게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골3:9)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사래)가 너무 예뻐서 
이집트의 바로 왕이 아내를 빼앗을까봐 
누이라고 속였고,(창12:10~20)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도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창20:1~13) 
- 이삭도‘예쁜 아내로 인해 자기가 죽임을 당할까봐’ 
리브가를 누이라고(창26:1~11) 했고,
- 야곱도 아버지 이삭에게 거짓말을 하여 
형이 받을 장자의 복을 가로챘습니다.(창27:19,24) 

칸트(Kant)는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적으로 참을 말해야만 한다”고 했으나 
프랑스의 철인 콩스탕(M. Benjamin Constant)은 
“진실을 말하는 것은 의무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을 주장할 권리를 소유한 사람에게나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홍현설박사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녀나 
부모의 운명을 대신 지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은 
그 자체의 동기 속에 악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 

다만 자기의 이해 문제를 위해서 자기에게 편리하도록
자기 욕심 채우기를 위해서 하는 … 거짓말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 고 했습니다. 
(홍현설 저작전집 제 1권 p.366)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정직을 말하기’전에
‘무엇을 위한 정직’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왕으로 부터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울 때
아들이면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십부라와 부아는 애굽 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남자 아기들을 살렸습니다.(출1:17)
왜 남자 아기들을 살렸냐는 왕의 질문에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출1:19)
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영국의 성서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를 ‘거룩한 불복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매튜헨리 주석 참조)
매튜 헨리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인간의 명령이 어느 모로나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된다면, 
우리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참조, 행 4:19, 5:29)

비슷한 이야기가 여호수아에도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보낸 두 명의 스파이(정탐꾼)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런데 정보가 새어나갔습니다.
정탐꾼이 여리고에 잠입했다는 소식이 
여리고 왕에게까지 보고되었습니다.(수2:2) 
정탐꾼들은 제대로 활동을 해 보기도 전에 붙잡히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라합이 거짓말을 해서 정탐꾼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군사들에게 
“그들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성문이 닫혀 질 때쯤 
어디로 가는지 급히 갔다”고 했습니다.(수2:4) 
사람들은 라합에 대해 
‘라합은 위기에 처한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적군 스파이를 숨겨준 여인이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하게 읽고 깊게 생각해 보면 
그 사건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라합은 이방여인이었지만 
4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길 인도하시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전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2장에 보면 
라합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고,(수 2:9~11)
“상천하지(上天下地)에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수 2:11)
이런 믿음을 가진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려 준 것입니다.
라합은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을 한 것입니다.(히 11:31)

산파 십부라와 브아/기생 라합 … 그들의 행동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대명제를 위한 것이었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기에 우리가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보다, 세상보다, 세상 권력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인가 죽이는 일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간혹 ‘상황윤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상황윤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합리화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1966년 조셉 플레처가 쓴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라는 책을 보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는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를 판단하기 어려운 
회색지대(The gray area)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윤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황윤리에 대하여 플레쳐와 공개 토론을 하던 
코리덴붐 여사는 플레쳐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말했습니다. 
“공산권 나라에 유입 불가능한 성경책을 
큰 가방으로 잔뜩 들고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입국심사대에서 공산당 직원이 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묻는데, 사실대로 성경책이라고 말하면 가방은 물론 
입국조차 금지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거짓말하면서 성경책을 배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입국 심사를 받던 앞 사람에게 문제가 생겨 
한참 실랑이를 하더니, 갑자기‘뒤에 있는 아주머니 빨리 
지나가시오’하고 그냥 들어가게 해주었습니다. 
상황윤리가 인간적으로 이해되긴 하지만, 
그 논리 속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음에 대한 
신앙고백은 빠졌군요.”

이처럼 언제나 정직해야 한다는 것,
모든 상황에서 정직해야 된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정직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원칙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인지 기도하며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언제나 정직하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다른 사람 눈에 눈물을 뽑고,
다른 사람의 땀흘림을 가로채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거짓된 세상에서 
우리가 세상을 이기며 살기 위해서는 더 진실해져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더 진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정직하지 않으면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일터에서도 정직하지 않으면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정직의 또 다른 한 면은
실수를, 무지했음을, 무모했음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목적 없이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정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와 무모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있습니다. 그것이 부정직입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해 기억하실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갔습니다. 엄청났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제 아들이 
“아빠, 난 오늘 아침에도 소고기를 먹었고, 
저녁에도 소고기를 먹을 건데 한국 사람들은 왜 그러는거야!“
라는 편지를 보내왔었습니다.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판결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인정하는 사람도, 뉘우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증거를 조작한 사람들도 …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길거리를 뛰어다녔던 사람들도 …
모두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결국, 침묵으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부정직’입니다. 
<2011. 5. 9. 조선일보 A31면 참조>

하나님은 실수, 무지, 무모함을 인정하고 
회개한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 뉘우치는 것 … 그것이 정직으로 가는 길입니다.

정직한자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잠언 14장 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잠 14:11)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정직하면 최고의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직하면 진정한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정직하면 결국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
생명을 살리는 길인가, 생명을 죽이는 길인가 …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가 …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 …
우리들의 말과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전제로 한 
정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하늘 백성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거짓을 말하고 사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늘 백성답게 산, 하늘 백성답게 사는,
하늘 백성답게 살아가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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