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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패의 정화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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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 목사(삼일교회 담임목사)

욥기를 읽으면, 욥은 100% 순전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온갖 고난 중에서도 결코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이런 순수한 욥의 믿음을 자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단과 내기를 한다. 하나님의 공명심(?) 때문에 어쩔수 없이 욥이 고난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완전한 오해이다. 욥은 결코 완전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 

고난을 당하면, 속에 있는 것이 나온다. 왜 십자가 형이 무서운가? 육체적 고통, 수치심이 오랜 시간 지속된다. 그러면 사람은 속에 있는 모든 악한 것들, 궤사, 더러움이 나온다. 십자가형은 자기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다 쏟고 죽는 형벌이다. 그래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며 더러움을 참지 못하고 피해간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당하면서 더러움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 용서, 기도, 생명이 나왔다. 여러 차례 십자가형을 집행했던 백부장은 이런 특이한 현상 때문에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 

하나님의 사람에게 왜 고난이 있는가? 자기 속에 있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무의식 세계 속에 숨겨진 진실된 자아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욥은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자신의 건강을 잃었다. 그때 그의 아내가 이렇게 외친다. "아직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는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 

욥의 아내는 악처이고, 욥은 탁월한 신앙인으로 비쳐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욥의 아내는 고난 중에 여러 가지 말을 했을 것이다. 아픔, 괴로움, 신앙적인 갈등 등을 토로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말 중에 욥이 기억한 것은 "아직도 믿음을 지키는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말이었다. 자기 가슴 속에 없는 것은 들리지 않는다. 가슴 속에 흔들림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이야기가 들린다. 자기 가슴 속에 욕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욕하라는 말이 들리는 것이다. 속에 교만이 있는 사람이 교만이 보인다. 속에 음욕이 있는 사람이 음욕이 보인다. 욥은 실제로 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 속에 욕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 말이 가슴에 남은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마음까지도 변화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오랜 기간 세 친구들과 논쟁하면서, 욥의 순전치 못함이 드러난다. 자기의 공로와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던 욥의 태도는 산산히 무너진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중보자를 찾는다.(욥16:19) 그리고 그 내면 깊숙이 있는 죄악을 철저히 회개한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6)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장난의 산물이 아니다. 성도의 고난은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다. 내면 깊숙이 묻혀 있던 연약의 침전물들을 들춰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쉽게 인식하지 못한 부족한 것들까지 완전히 정화시켜 버린다. 실패를 겪으면 깨끗해진다. 실패를 겪으면, 부족한 것들이 채워진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괜찮은 성도'에서 '성숙한 성도'로 변화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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