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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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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동화작가) 

타자를 의식하지 않는 믿음은 없다.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존재의 증명을 궁구(窮究)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존재의 방식을 궁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사람은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만 안정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많은 공감을 준다. 

우리의 면면을 돌아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전체를 의식한다기보다는 특별히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을 의식한다. 말하는 도중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그가 돌아왔을 때 다시 말하고 싶어진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안정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존재가 본질보다 선행한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 자신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의 본질을 알기 전에, 세상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이러한 논리를 전개시켰다. 그의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물의 존재는 인간과 다르다. 형광등을 예로 들면, 형광등은 어둠을 밝힐 수 있다는 이유, 즉 본질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여, 인간과는 달리 형광등은 본질이 존재보다 선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수정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것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는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존재 이전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테레사 수녀,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걸으며 자신의 신발을 옆 사람에게 벗어 주었던 피에르 신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힘이 빠져 끝내 자신을 구하지 못했던 익명의 사람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이 허영심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 것은 아니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보다 톨스토이의 사랑에 더 많이 공감한다. '사람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다녀간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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