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성직자의 사명은 어디로 갔는가

첨부 1


기독당, 정치세력화보다 선한 감시자의 사명 감당해야 
 
- 김영한 원장(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2008년 총선에서 일부 부흥사 출신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의 정치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혼선을 거듭하다가 ‘비례대표 중심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기독당이 얻은 유효득표수는 1%였으며 표수로는 20만표에 불과했다. 

이번에 이들은 자기들이 속한 교회나 수련원을 중심으로 득표하겠다고 의도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도 기독교 이름의 정당이 한국사회를 향해 또다시 개신교회의 미숙한 행동을 드러내는 것에 그칠까 우려된다. 정치적 표를 얻으려고 대형교회나 특정단체 세력을 묶어 당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피상적인 시도요, 속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아직도 교회와 정당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국민소득이 2만불이 되면 교육수준이 높아진 우리 사회에서, 정당이란 국민 통합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지, 특정 이념과 종교단체로 대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정당이라면 8백만의 크리스천이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당은 기독교인들이 지지해야할 당위성과 접촉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비기독교인 사회구성원들에게도 보편성을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인에게서만 표를 얻어야할 것이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공감과 지지를 얻어야 정당의 공신력을 가질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한국교회의 성장과 함께 목회자들의 변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전(前) 장신대 총장인 이종성 박사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목회자들이 예언자적 품격은 없어지고 대중적 웅변가로 변해가고, 하나님 말씀 전파가 아닌 감언이설로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설교단과 성찬식이 경시되고, 진지한 성직자상은 사라지고 교인을 웃게 하는 만담가처럼 됐으며, 목회지를 하나의 회사로 생각하고,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라 교회를 성장케 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CEO가 되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이 사회적 자리를 위해 교회 재정을 낭비하고, 감투욕의 노예가 되어 목회의 마지막 길을 정치적 야망 달성으로 착각하고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인 교회가 정치를 바른 길로 선도할 의무는 크다. 그렇다고 목회자가 정치적 감투를 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감투를 쓰면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기에, 정치 일선에 뛰어든 목사들은 교회의 담임목사 직위를 사임해야 한다. 크리스천 리더십은 세상의 리더십과 다르다. 세상사의 시간표는 하나님께 맡기며 인간의 꾀와 방법으로 자신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역사와 영광을 가려서는 안된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바로 서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매일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 한다. 또한 하나님과 늘 인격적으로 접촉해 영적인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 이러한 목회자는 세상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세상을 지도할 수 있는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이처럼 세상의 지위와 멀어질수록 양심적인 지도자로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교회 성직자들이 스스로 정치 영역에까지 들어가 표를 달라고 해서는 안된다.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균형잡힌 목회를 통해 존경받는 인격을 갖츤 정치인을 길러내야 한다. 오늘날 정치인 가운데에는 기독교인이 많은데도 한국의 정치가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평신도 정치인들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의 위상이 실추된 원인은 정치세력화의 부족이 아니라 교회가 사회 앞에 도덕·윤리적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님은 5천명의 군중들이 자기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자 이들을 오히려 피하셨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심문받으실 때도 예수님은 “나의 나라는 이 땅에 있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제자들이 싸웠을 것이다”고 말하셨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가 로마의 식민지였던 시대에서, 그는 유대민족의 정치적 해방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그가 부활하신 후에도 유대나라의 독립을 염두에 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와 기한은 아버지에게 있다”고 말씀하였다. 다만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했다. 

성직자의 일차적인 관심은 ‘정치 세력판이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정치적 영적 혼란상’에 가 있어야 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권력 장악에 혈안이 되어 이같은 도덕적·영적 상황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권력을 쥐기 위하여 불의한 타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성직자들은 깨끗하고 빈 마음으로 이들의 잘못을 비판해줘야 한다. 이것이 교회와 성직자의 시대적 사명이다.

성직자의 사명이란 정치 권력을 쥐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바른 정치를 하도록 초월한 입장에서 선한 감시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광의 신학이 아닌, 십자가의 신학이다. 주님이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닌, 바로 십자가의 길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